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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상부상조를 위한 수학, 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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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 전화하는 곳은 경찰과 가족뿐만이 아니다. 보험회사에 전화해 사고를 수습한다. 또 병원에 갔을 때 치료비를 보조해 주는 것도 보험이다. 여행에 갈 때는 여행자보험을 들고, 식당에서는 손님들을 위해 책임보험에 가입한다. 이 밖에도 보험은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생활 속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그런데 이런 보험의 발전에는 수학이 깊이 관련되어 있다. 보험을 만들 때에 수학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수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보험의 세계를 만나 보자.

런던 대화재, 보험을 만들다


자동차를 타고 다니다 보면 언제나 교통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고로 집에 불이 나거나, 병에 걸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살면서 늘 위험이 곁에 있지만, 모든 위험에 혼자 대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각종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보험을 만들었다. 보험은 사람들이 모여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각종 사고에 대비해 돈을 모아 공동으로 재산을 마련하고, 그 중 불의의 사고를 당한 사람에게 정해진 돈을 주는 제도다.

보험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기원전 1700년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함무라비 법전에서 찾을 수 있다. 바다 무역을 하는 배의 위험을 보장하는 일종의 ‘해상보험’이었다. 우리 나라에는 오래전부터 보험과 비슷한 제도인 ‘계’가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돈을 모아 큰 일이 나거나 안 좋은 일을 당했을 때 서로 돕는 일종의 친목 모임이었다.

통계와 수학을 활용하는 현대적 의미의 보험은 17세기 유럽에서 시작됐다. 1666년 영국 런던에서는 큰 불이 났다. 당시 런던 시내에 있는 집의 85%인 1만 3200채가 타 버렸을 정도로 큰 불이었다. 이 일로 런던 시민들은 화재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됐고, 이런 두려움을 달래는 보험 상품이 생겼다. 이 보험은 가입한 시민에게 조금씩 돈을 받고, 돈을 낸 시민 중 화재로 피해를 입는 사람이 생기면 새로 집을 지어 주거나 수리해 주는 상품이었다. 영국에서 시작된 이 ‘화재보험’은 큰 인기를 끌었고, 유럽 각지로 퍼져 나갔다.

‘대수의 법칙’ 이용해 구하는 보험료

런던의 화재 보험은 불이 일어날 확률을 구하고, 보험에 가입할 사람을 예상해 보험료를 계산했다. 이 과정에서 보험의 수학적인 엄밀한 기초가 마련됐다. 보험료를 계산을 할 때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지급된 보험금과 거둔 보험료가 같아야 한다는 것인데, 이를 ‘수지상등의 원칙’이라고 부른다. 이에 따라 보험료는 다음과 같이 계산한다.

1만 채의 집이 있는 도시에 집 한 채 값이 3억 원이고, 모든 집이 보험에 가입했다.
화재로 인해 5년 동안 평균적으로 두 집이 불탔다.
보험회사는 화재가 난 집에 5년에 한 번 총 6억 원을 지불한다.
그러면 1년의 한 집 당 보험료는 6억 원÷1만 채÷5년=1만 2000원 이다.

이처럼 계산된 보험료를 내면 집에 불이 나더라도 보험금을 받아 집을 다시 지을 수 있다. 물론 위치나 가치에 따라 집의 가격이 다르고, 같은 도시라도 불이 날 확률이 다르기 때문에 집집마다 보험료는 차이가 생긴다. 그런데 집의 가격이나 도시에 있는 집의 수는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지만, 불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는 알기 힘들다. 따라서 과거에 일어난 화재 통계를 활용해야 한다.

보험에서 통계를 이용할 때 가장 중요한 법칙은 ‘대수의 법칙’이다. 대수의 법칙은 측정 대상의 수나 측정 횟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실제의 결과가 예상된 결과에 가까워진다는 법칙이다. 주사위를 굴려 1이 나오는 확률은 이론적으로 1/6이지만, 실제 주사위를 굴리면 정확히 1/6이 나오진 않는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이 주사위를 굴릴수록 1/6에 가까운 확률이 나온다.

따라서 불이 나거나 교통사고를 짧은 기간이 아닌 긴 시간 동안 관찰하면, 사고가 일어날 확률을 더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대수의 법칙은 사고가 일어날 확률을 측정하고, 과거의 확률을 통해 미래에 사고가 발생할 확률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 이렇게 정해진 확률에 따라 보험회사는 앞서 말한 방식으로 보험료를 정하는 것이다.
 

핼리혜성과 생명표

생명보험에서는 ‘생명표’라는 조금 독특한 통계를 사용한다. 생명표는 대수의 법칙에 따라 연령대별로 사망확률을 나타내는 표다. 이를 바탕으로 각 연령마다 보험료를 내는 사람의 수와 보험금을 받게 되는 사람의 수를 추측할 수 있게 됐다. 이를 근거로 생명보험을 만드는 것이다.

생명표는 핼리혜성으로 유명한 천문학자 에드몬드 핼리가 1693년에 처음으로 만들었다. 핼리는 수년동안 공동묘지를 다니며, 묘비에 새겨진 사망자들의 기록을 수집해 인간생명에 관한 통계를 완성했다. 이 통계를 이용해 수학자 제임스 더드슨이 나이에 따라 보험료 부담에 차이를 두는 오늘날과 같은 보험을 고안했다.

예를 들어 한국의 2010년 남자와 여자의 기대수명은 각각 77.2년과 84.1년으로, 여자가 남자보다 7년 정도 더 살 수 있다. 2010년 출생아가 암에 걸려 사망할 확률이 남성은 28.3%, 여성은 17.0%였다. 여성이 뇌혈관질환에 걸려 사망할 확률은 12.3%로 남성(10.5%)보다 2.3% 더 높다. 생명표에는 이렇게 연령별, 성별, 직업별 기대수명과 질병발생률이 실리고, 이를 바탕으로 보험료가 책정된다.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국민건강보험

건강보험은 질병에 걸리거나 사고로 다쳐 많은 치료비가 들 때 치료비를 보조하는 보험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나라에서 건강보험을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나라에서 운영하고 있는 보험을 공공보험이라고 한다.

보통 민간보험은 나이와 직업, 성별에 따라 보험료가 다르다. 젊을 때는 병에 걸릴 확률이 낮고 돈도 많이 벌 수 있지만, 병에 걸릴 확률이 낮아 보험료가 낮다. 나이가 들면 병에 더 자주 걸리고 은퇴한 뒤에는 돈도 많이 벌지 못하지만 보험료가 높아진다. 나이가 들수록 소득은 줄어드는데 보험료가 높아지는 단점이 있는 것이다.

또 민간보험에서는 군인이나 건설노동자와 같이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은 보험료가 높고, 사무직 노동자들은 보험료가 낮다. 하지만 군인과 건설노동자들도 사회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렇게 다르게 보험료를 부담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옳지 못할 수 있다. 그리고 민간보험에서는 과거에 질병을 앓았으면, 보험료를 더 부담한다.

이에 반해 공공보험인 국민건강보험은 개인의 건강이 사회적 책임이라는 관점에서 나이, 직업, 질병이력에 상관없이 국민 누구나 혜택을 받는다. 그리고 보험료 부담은 개인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부담한다. 젊은 사람은 노약자를 돕고, 건강한 사람이 환자를 돕는 상부상조의 원칙에 충실한 것이다.

따라서 공공보험은 보험료를 정하는 방식이 민간보험과 다르다. 국민건강보험은 매년 의료비 지출액을 계산하고 나라에서 보조하는 금액을 뺀 뒤, 나머지 금액을 국민 모두가 경제적 부담능력에 따라 평등하게 부담한다.

보험에는 개인에게 닥친 위험을 사회적으로 해결하는 상부상조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이런 상부상조를 실현해 주는 것이 바로 수학과 통계다. 수학과 통계를 전공한 많은 사람들이 보험을 만들고 있으며, 앞으로 수학과 통계가 더욱 많이 이용될 것으로 보인다.

2012년 07월 수학동아 정보

  • 김종립 기자
  • 도움

    김기환 계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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