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 수학자가 없었다면 우리는 아예 컴퓨터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컴퓨터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의 수학자 알란 튜링입니다. 2012년 6월 23일은 튜링이 탄생한 지 꼭 100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래서 세계 곳곳에서는 이 천재 수학자의 업적을 기리는 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수학동아와 함께 튜링에 대해 알아보러 영국으로 떠나 볼까요?
튜링이 없었으면 컴퓨터도 없다!
영국에서 처음으로 찾은 곳은 케임브리지대학교의 킹스칼리지입니다. 1936년에 튜링이 현대 컴퓨터의 기원이 되는 ‘튜링 기계’에 대한 아이디어가 담긴 논문을 쓰고 발표한 곳이지요.
요즘 컴퓨터라고 하면 본체와 모니터, 키보드가 있는 데스크톱이나 노트북, 혹은 태블릿PC를 떠올립니다. 튜링이 대학교를 다니던 1930년대에도 컴퓨터라는 단어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과 달리 기계가 아니라 사람을 뜻했지요. 창의적인 연구를 해야 하는 수학자 대신, 지루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덧셈과 뺄셈 같은 단순 계산을 맡아서 해 주던 사람이었습니다.
단순한 계산을 더 빠르고 정확하게 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드는 것은 수학자들의 오랜 꿈이었습니다. 실제로 기계 계산기를 만든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계산기로는 정해진 계산만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다른 계산을 하려면 다른 기계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튜링이 발표한 ‘튜링 기계’는 이와 달랐습니다. 정해진 계산만 하는 게 아니라 ‘알고리듬’이라는 단계별로 나뉜 명령을 내리면 어떤 계산이든 할 수 있었죠. 예를 들어, X라는 자연수의 약수를 찾도록 튜링 기계에게 명령을 내려 보겠습니다.
➊ 먼저 N=1이라고 정한다.
➋ X를 N으로 나눴을 때 나머지가 0이면 N을 출력한다.
➌ X=N이면 멈춘다.
➍ N에 1을 더한다.
➎ ➋로 돌아간다.
이처럼 작은 단계를 하나씩 밟아 문제의 답을 구하는 과정이 알고리듬입니다. 튜링 기계는 적당한 알고리듬만 있으면 어떤 계산이든 할 수 있습니다. 프로그램에 따라 작동하는 오늘날의 컴퓨터와 비슷합니다.
우리가 컴퓨터로 동영상도 보고 글도 쓰는 등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건 컴퓨터의 구조가 튜링 기계를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마트폰부터 슈퍼컴퓨터까지, 컴퓨터라면 거의 모두 이런 구조를 따릅니다. 알란 튜링을 ‘컴퓨터과학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게 당연하지요?
암호 해독으로 수많은 생명을 구하다
킹스칼리지에서 컴퓨터의 기초를 닦은 튜링은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수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블레츨리 파크’라는 영국 정부의 비밀 시설에서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하는 임무를 맡게 되죠. 암호를 해독하려면 엄청나게 많은 계산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튜링이 연구한 암호 해독 기술이 컴퓨터의 발달로 이어졌지요.
오늘날 블레츨리 파크는 전체가 박물관이 돼 있습니다. <;수학동아>;가 찾아간 날에는 비가 내리는 중에도 수많은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기를 끈 곳은 역시 알란 튜링과 관련된 전시관이었습니다. 튜링이 개발했던 암호해독기 ‘봄(Bombe)’과 튜링이 쓴 논문, 튜링이 생전에 사용했던 물건까지 전시돼 있었습니다.
전시관에 있는 ‘봄’은 실제로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최근에 다시 복원한 것이지요. 박물관의 설명에 따르면 그 안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썼던 실제 부품이 딱 1개 들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봄은 어떻게 암호를 해독했을까요? 당시 독일군은 에니그마라는 장치를 이용해 암호를 만들었습니다. 알파벳을 서로 다른 알파벳으
로 바꿔서 암호를 만드는 겁니다. A를 C로, B를 D로 바꾸는 식이죠. 이것만으로는 간단한 암호지만, 에니그마는 이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해서 암호를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GOOD’를 암호화한다고 해 보죠. 첫 번째 알파벳인 G를 두 자리 뒤의 알파벳인 I로 바꿉니다. 그리고 두 번째 알파벳인 O는 두 자리가 아닌 세 자리 뒤의 알파벳인 R로 바꿉니다. 이어서 세 번째 알파벳인 O는 네 자리 뒤의 알파벳인 S로 바꾸는 식입니다. D는 다섯 자리 뒤인 알파벳 I가 되겠죠. 똑같은 알파벳 O라고 해도 다른 알파벳으로 바뀌기 때문에 매우 복잡합니다. 이 과정을 3~4번 반복하면 정말 풀기 어려운 암호가 됩니다. 독일군은 이렇게 만든 암호를 모스 부호를 통해 무선으로 전송했지요.
연합군은 독일군의 무선 신호를 가로챌 수 있었지만 그대로는 풀 수 없었기 때문에 힌트가 필요했습니다.
이 때 튜링은 ‘크립’이라고 부르는 힌트를 이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아침에 보낸 암호문의 첫 문장에 ‘ABCD EFGHIJK’라는 말이 있다면 이것을 ‘GOOD MORNING’이라고 가정하고 G는 A로, 첫 번째 O는 B로, 두 번째 O는 C로 알파벳을 짝지어 놓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알파벳은 일일이 하나씩 짝을 맞춰가며 암호문이 해독되는지를 확인하는 거지요. 이런 힌트로 자주 쓰인 문구가 암호문에 흔히 나오는 ‘TOP SECRET(최고 기밀)’, ‘NOTHING TO REPORT(보고할 사항 없음)’이었다고 합니다.
힌트가 있다고 해도 나머지 알파벳을 짝지을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서 손으로 풀려면 엄청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튜링은 기계로 만든 암호는 기계로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봄은 자동으로 26개의 알파벳을 짝지을 수 있는 경우의 수를 하나씩 확인하면서, 해석했을 때 말이 되는 경우를 찾았습니다.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한 덕분에 제2차 세계대전은 몇 년 더 일찍 끝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전쟁이 일찍 끝난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죠. 하지만 블레츨리 파크는 최고 기밀 시설이었기 때문에, 튜링을 비롯해 이곳에서 암호를 해독한 사람들의 업적은 나중에야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생각하는 컴퓨터를 떠올리다
튜링은 전쟁이 끝난 뒤, 다시 컴퓨터를 설계하는 일에 뛰어들었습니다. 런던의 국립물리연구소에서 ‘자동 계산 기계’라는 이름의 컴퓨터를 설계했고, 이후 맨체스터대학교로 옮겨 컴퓨터를 설계하거나 활용하는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그 때쯤 튜링은 생각할 수 있는 컴퓨터를 만드는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10여 년 전 자신이 만든 튜링 기계는 사람과 달랐습니다. 사람은 컴퓨터와 달리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 반대로 컴퓨터는 아무리 실수 없이 답을 척척 내놓아도 생각한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튜링은 컴퓨터가 사람처럼 생각하려면 배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른처럼 지성을 갖춘 컴퓨터가 아니라 어린아이처럼 자라면서 지식을 익히고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는 컴퓨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컴퓨터가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아닌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이를 고민하던 튜링은 ‘튜링 테스트’라는 판별법을 만들었습니다. 채팅을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화상 채팅이 아니라면 우리는 상대방의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상대방이 사실은 컴퓨터였다면? 튜링 테스트는 상대방이 사람인지 컴퓨터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질문을 던져 대답을 보고 정체를 알아맞히는 시험입니다. 만약 컴퓨터의 대답이 사람과 비슷해서 구분할 수 없다면, 그 컴퓨터는 생각할 수 있다고 여겨야 한다는 거죠.
그러나 아직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인공지능은 없습니다. 얼마 전 엄청난 지식을 자랑하며 퀴즈쇼에서 우승한 IBM 슈퍼컴퓨터 ‘왓슨’조차도 사람처럼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컴퓨터가 아무리 많은 지식을 알아도 결국에는 사람이 프로그램한대로 움직일 뿐이니까요.
그래서 요즘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사람의 뇌처럼 작동하는 새로운 컴퓨터를 만들려고 합니다. 튜링의 꿈 또한 뇌와 같은 컴퓨터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튜링이 오늘날 살아 있다면 뇌를 연구했을 겁니다.
천재 수학자의 비극적인 최후
튜링은 뛰어난 수학자가 모인 블레츨리 파크에서도 눈에 띌 정도로 특출났습니다. 동료들이 튜링을 ‘교수님’이라고 부를 정도였지요. 하지만 그만큼 괴짜였습니다.
튜링은 자전거를 타고 다녔는데, 그 자전거는 어느 정도 달리면 체인이 빠지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튜링은 체인을 고치지 않고 자전거를 타며 바퀴가 돌아간 횟수를 계산하고 있다가, 체인이 빠지기 직전에 자전거를 세워서 체인을 조절한 뒤 다시 탔습니다. 꽃가루 알레르기를 막기 위해서 방독면을 쓴 채로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도 했으니, 어지간히 남의 눈을 신경 쓰지 않았던 사람인가 봅니다.
현재 블레츨리 파크에 가면 튜링이 쓰던 사무실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사무실 난방기에는 쇠사슬로 묶인 머그컵이 눈에 뜁니다. 튜링은 다른 사람이 자기 컵을 쓰는 게 싫어서 난방기에 묶어 자물쇠를 채워 놓았다고 합니다.
맨체스터대학교에서 일하던 1953년, 튜링은 동성애 혐의로 재판을 받았습니다. 당시 영국에서는 동성애가 불법이었습니다. 튜링은 감옥에 가는 대신 호르몬 치료를 받았고, 그 결과 몸에 변화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결국 1954년, 튜링은 집에서 독을 바른 사과를 먹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습니다.
2009년 영국 정부는 동성애를 이유로 튜링을 부당하게 대우했던 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했습니다. 튜링이 삶의 마지막을 보냈던 맨체스
터대학교에는 튜링의 이름을 딴 건물이 들어섰습니다. 맨체스터의 운하 옆에 있는 공원에서는 사과를 한 손에 들고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튜링의 동상도 볼 수 있습니다.
동상이 된 튜링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세상의 또 어떤 현상을 계산할 수 있는지 궁리하고 있을까요? 튜링이 불행하게 세상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지금 우리는 생각하는 컴퓨터와 마주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