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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콜로세움엔 왜 아치문이 많을까?

 

로마 콜로세움엔 왜 아치문이 많을까?


모든 길이 통한다는 로마. 그래서인지 언제나 여행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로마는 이름만으로도 설레는 매력적인 도시다. 2000년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로마는 도시 전체가 유적지다. 섭씨 40℃가 넘는 열기와 강한 햇볕에 지쳐 쉬어갈 만도 했지만, 콜로세움 경기장을 보기 위한 발걸음을 더욱 재촉했다.

거대한 역사의 도시, 로마
 

팔라티노 언덕에서 본 포로 로마노.


로마는 7개의 언덕 위에 세워진 도시다. 그중 가장 오래된 언덕은 팔라티노다. 팔라티노, 콜로세움, 포로 로마노를 함께 둘러볼 수 있는 입장권을 산 다음, 팔라티노 언덕으로 들어갔다. 안내판에는 33개의 장소가 표시돼 있는데, 넓은 언덕에 돌무더기와 건물 잔해만 남아 어디가 어딘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한참을 걷다가 여러 가지 크기의 직육면체 돌무더기가 널려 있는 곳에서 로물루스의 헛간을 겨우 찾을 수 있었다. 로물루스는 로마를 세운 사람이다. 전설에 따르면 전쟁의 신 마르스와 베스타 신전의 처녀 제관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 형제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테베레 강에 버려져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다. 이들은 자신들이 발견된 언덕에 새로운 나라를 세웠는데, 그중 형 로물루스가 팔라티노 언덕에 세운 작은 나라가 로마다.

기원전 8세기에 사람들이 정착하기 시작했는데, 언덕에는 귀족이나 부유한 시민이 자리를 잡았고, 평민이나 노예는 평지에 살았다. 언덕과 언덕 사이에 위치한 평지는 자연스럽게 시민들이 교류하는 장소가 됐다. 그중 팔라티노 언덕 옆의 평지가 포로 로마노다. 토론의 장소란 뜻이다.

팔라티노 언덕을 다 돌고 포로 로마노로 향했다. 포로 로마노는 기원전 6세기부터 약 90년에 걸쳐 고대 로마의 중심지였다. 지금은 폐허가 됐지만, 커다란 기둥 하나로 당시의 신전이 얼마나 웅장했을지 상상할 수 있었다.

포로 로마노에는 눈길을 끄는 것이 두 가지 있다. 첫째는 아치 모양의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 개선문 옆에 있는 영점이고, 두 번째는 원로원 건물이다. 영점은 로마의 중심을 나타내는 곳으로 이곳에서부터 다른 곳까지의 거리가 얼마인지 쟀다고 한다.

그리고 원로원 건물은 로물루스가 지은 로마의 입법기관이다. 로마의 유명한 정치가이자 장군이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당한 곳이기도 하다.

콜로세움 벽에 새겨진 숫자의 의미

콜로세움은 로마가 정복 전쟁으로 영토를 넓힐 때, 전쟁터 못지않게 함성을 지르던 장소다. 코끼리가춤을 추고 표범이 전차를 끄는 서커스가 열리다가, 검투사들이 대결하고 맹수들과 싸우던 곳이다. 결투에서 목숨을 잃은 검투사나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부를 거머쥐었던 검투사의 이야기는 세월의 무게를 잔뜩 안은 콜로세움의 전설이 돼 버렸다.

콜로세움은 로마 사람들이 즐기던 문화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도 고대 로마의 발달된 건축 기술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다. 콜로세움에서 엿볼 수 있는 고대 로마인의 지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궁금했던 하나는 경기가 끝나고 관중들이 어떻게 그렇게 빨리 빠져나갈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콜로세움에 꽉 찬 5만 명의 관중이 밖으로 나가는데 1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하니 어떤 비법이 있었으리라. 그 비법을 찾아 콜로세움 벽을 따라 유심히 살펴봤다.

드디어 뭔가를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아치형 문 위에 새겨진 로마 숫자다.
아치 머릿돌 위쪽에 흐릿하게 남아 있는 6, 7, …, 37, 39, …. 잘 보이지 않는 숫자도 있었지만 확실하게 오른쪽으로 돌면서 숫자가 커지고 있었다. 고대 건축물인 콜로세움은 이미 그 오래전에도 지정된 관람석으로 출입하는 문이 정해져 있었고, 그 문에 번호를 새겨놓았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로마 숫자표


한편 콜로세움은 원형 경기장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 그 모양은 타원에 가깝다. 긴 쪽 지름이 188m나 되니 한 바퀴를 돌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햇살은 여전히 뜨거웠지만 이곳에서 응원하던로마인을 상상하며 콜로세움을 한 바퀴 돌았다.

아치로 세운 콜로세움
 

아치형 문은 무게가 양옆으로 흘러 기둥을 통해 바닥으로 전달된다.


콜로세움이 세워진 당시, 로마인들은 지중해 연안을 정복하면서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그리스에서는 비탈진 경사에 부채꼴 모양의 극장을 만든 반면, 로마는 평지에 원형 경기장을 세워 싸움을 구경하며 즐겼다.

또 그리스의 신전은 두 기둥 사이에 석재를 올려 두 기둥 사이의 거리가 짧다. 로마는 그리스의 영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건축양식과는 다른 양식으로 거대한 콜로세움과 같은 건축물을 지었다. 콜로세움처럼 큰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비밀은 어디에 있는 걸까?

비밀은 바로 아치에 숨어 있다. 아치의 원리는 간단하다. 쐐기 모양의 홍예석을 반원 모양으로 쌓으면 돌들이 서로 밀어내 아치 위쪽의 무게가 아치를 거쳐 기둥으로 집중된다. 따라서 건물 전체의 무게가 기둥을 통해 바닥으로 전달된다. 기둥사이의 간격을 넓게 해도 무게는 여전히 기둥을 통해 바닥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전보다 훨씬 더 폭이넓은 문을 만들 수 있다.

물론 아치를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힘의 균형이 잘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대 로마에서는아치 기술이 매우 발달해 수로, 다리, 돔 구조 지붕 등 광범위한 건축 영역에 아치가 널리 쓰였다.

로마인들은 아치형 문을 제외하고도 아치를 길게 연달아 설치한 구조도 사용했다. 간단히 말하면 터널 같은 구조인데, 아치 모양으로 된 이 터널도 역시 무게를 옆으로 흘려보내기 때문에 무거운 천장을 지탱할 수 있다. 로마인들의 지혜가 다시금 경이롭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돔의 원조, 판테온!

서울의 숭례문을 지나갈 때마다 현대 속에 덩그러니 놓인 과거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 적이 있다. 로마의 판테온을 봤을 때도 같은 느낌이었다. 아무리 로마가 역사의 도시라지만 복잡한 도시 한복판에 고즈넉하게 세워진 두꺼운 벽, 거대한 돔은 현실이 아닌 듯했다.

판테온은 기원전 27년에 로마의 장군 아그리파에 의해 세워진 신전인데, 원기둥 모양의 벽 위에 반구모양의 돔을 얹은 단순한 구조다. 판테온의 돔은 가장 오래된 돔으로, 철근이 들어 있지 않은 돔 중에서 세계에서 가장 크다.

판테온의 돔 역시 아치의 원리로 지어졌다. 원기둥 모양인 벽의 두께는 무려 6.4m다. 홍예석의 두께가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얇아져 천정에 뚫린 지름 9m의 구멍에 이르면 1.2m가 된다. 아치를 이용해 무게가 벽을 타고 흘러내리게 하면서도 위쪽의 무게를 줄이는 지혜가 돋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판테온은 미켈란젤로가 천사의 설계라고 극찬할 정도로 완벽한 구조다. 판테온의 높이와 돔 내부의 원지름이 약 43.3m로 같다. 즉 판테온의 바닥에서 천정까지 꼭 맞는 구 하나를 끼워 넣을 수 있는 모양이다. 판테온 안으로 들어가면 벽에 장식된 조각상이 내뿜는 위엄과 천장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햇빛으로 장중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판테온은 대리석과 기둥이 없어져 처음 판테온과 다르다. 7세기에 동로마가 돔 바깥을싸고 있던 청동을 벗겨내 콘스탄티노플로 가져갔고, 17세기에는 교황이 현관의 청동을 녹여 대포를 만드는 데 사용했다. 그 와중에 겨우 건물 자체를 유지했던 것이다. 이 밖에도 유명한 돔 건물에는 르네상스 시대에 지어진 피렌체 두오모의 돔과, 푸코의 진자로 유명한 파리 팡테옹의 돔이 있는데, 모두 판테온을 따라 지은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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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수학동아 정보

  • 진행

    장경아 기자
  • 조숙영 교사
  • 남호영 교사
  • 정미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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