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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 Math] 수학을 그린 화가 브네의 작업 노트

수학을 그린 화가 브네의 작업 노트


스위스의 천재 작가 파울 클레.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상징적인 기호로 정확히 표현한다. 나는 언제쯤 이것이 가능할까. 작품 속 나만의 언어를 찾기 위해 오늘도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글을 쓴다.


이 기사는 작가 베르나르 브네가 직접 쓴 것이 아니라 기자가 구성한 글입니다. 브네가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의 생각을 밝힌 작업노트 형식입니다. 그의 그림에는 어떤 철학이 담겨져 있는지, 어떤 작가의 영향을 받았는지 등이 글에 녹아들어 있습니다.


1959, 나만의 표현법을 찾아 헤매다

상징! 클레의 신비로움에 매료된 이후 상징이라는 단어가 내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다. 이는 나에게 독이 되고 있다. 클레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까. 사람들은 내 작품이 매우 진지하며 상징적인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상징이 나만의 표현법은 아니다.

하지만 오늘, 난 나만의 언어를 발견했다. 아직 옹알이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만족스럽다. 클레의 굴레에서 드디어 벗어나고 있으니….
 

브네의 '인생은 죽음으로부터 휴가다'. 브네가 비로소 클레의 영향으로 벗어났음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아무것도 없는 공허함, 죽음이다. 죽음은 아무도 막을 수 없다. 하지만 받아들이기 힘들며, 그 길로가는 길은 변덕스럽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아무것도 없는 검고 밀폐된 공간에 사람을 가뒀다. 이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불가능하고, 갇힌 공간은 죽음과는 다른 삶이다.


파울 클레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파울 클레(1879~1940)는 스위스의 표현주의 화가다. 자연 대상을 단순히 아름답게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색이나 구도 등을 과장하거나 생략했다. 부모님의 영향으로 모차르트, 베토벤의 음악을 좋아했으며, 일부 평론가들은 클레의 그림을 이해하는 열쇠는 음악이라고도 말했다. 클레는 여행 중에 본 광경이나 체험활동을 그림으로 그렸는데, 사각형, 삼각형, 원, 선 등의 도형으로 대상을 표현했다. 캔버스에 그린 그림이 적으며 신문, 붕대, 판지 등의 다양한 재료에 그림을 그렸다. 그의 작품은 9000여 점에 이른다.

 

작품명 '종이 위에 타르'. 브네는  1961년 프랑스 남부 타라스콩에서 군 복무를 하던 시절부터 타르를 작품에 이용했다. 그는 중력에 의해 타르가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는 모습 자체를 작품화했다.



1966, 수학을 이용하다

뉴욕 여행 중 본 미니멀리즘(단순함을 추구하는 예술) 작품들이 아직 눈에 선하다. 사물의 근본만 표현하는 예술, 얼마나 매력적인가.

단순함, 한 가지 의미만을 가지는 것. 오늘 난 그 자체로 상징적이며 한가지 의미만을 갖는 것을 찾았다. 바로 수학적 기호나 도표다. 대부분의 예술가는 수학을 작업에 이용하지 않는다. 이를 이용하는 소수의 작가는 단지 수학을 통해 무질서나 혼돈을 표현할 뿐이다. 하지만 난 앞으로 수학을 이용해 단의성을 표현하고자 한다.

단의성은 하나의 이미지가 하나의 의미만을 뜻하는 말이다. 작가가 y=2x2+3x-2를 그리면 감상자도 y=2x2+3x-2를 본다. 작가가 의자를 그렸는데, 감상자가 암소로 보면 곤란하지 않은가.
 

수학 그래프와 도형은 그 자체로 한 가지 의미만을 지녀 단의성을 표현하기에 적합하다고 브네는 생각했다. 기존의 예술작품은 하나의 이미지에 다향한 의미가 있는 다의성을 따르는데, 단의성은 통상적인 미술영역의 밖에 있는 다른 시각이다.



2000, 그림으로 돌아오다

오랜만에 글을 쓴다. 지난 30년 동안 조각가, 의상 디자이너, 음악가, 영화 제작사, 설치미술가 등으로 원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수학을 도입해 그림을 그렸던 그때가 그립다.

1968년 미국 뉴욕 저드슨 극장에서 했던 퍼포먼스가 떠오른다. 초대한 세 명의 미국 컬럼비아대 수학자는 자신들의 증명을 발표하고, 난 그들의 증명을 뒷받침해 줄 그래프를 그려 공개했다. 내 작품을 보면서 그 누구도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단지 어떤 문제의 그래프일 뿐.

난 다시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구상(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재현하는 미술)과 추상(주관적인 감정을 넣어 대상을 표현하는 미술)을 넘어 더 풍부한 잠재력을 지닌 영역으로 가기 위해 수학 기호와 수식을 이용할 것이다. 난 언제나 누구도 하지 않은 예술을 하길 원하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내 작품에 매력을 느낄까.

어떤 사람은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을 다른 사람은 아니라고 말한다. 취향에 따라 아름다움의 기준이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한 작품은 아름답다고 말한다.

난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지금까지 최대한 단순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작품에 어떤 효과도 주지 않았다. 그런데 어떤 효과 탓에 생기는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지금에 와서알았다.

작품에 색채를 도입하기로 했다.
 

나선형 적분곡선을 포함하는 매개변수 미분방적식


시간에 따라 변하는 미분방정식을 그래프로 그리면 모르는 함수의 형태를 추측할 수 있다. 이렇게 그려진 곡선을 브네는 자신의 작품세계에 끌어들였다. 미분방정식은 모르는 어떤 함수와 미분(x의 변화에 대한 y의 변화율, x와 y는 함수관계) 간의 관계를 나타낸다. 미분방정식을 푼다는 것은 모르는 함수를 찾는다는 뜻이다.



브네의 다양한 직업

브네는 뛰어난 예술적 재능 때문에 미술, 음악, 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업세계를 경험했다. 1959년에는 프랑스 니스시립오페라단에서 무대디자이너로 일했고, 1983년부터는 무거운 느낌의 철을 유연하게 구부려 만든 호 모양의 대형조각을 선보였다. 그의‘호’조각은 일반적인 상식이나 원칙을 지키지 않는 조형 세계를 보여줬다는 평을 받았다. 1988년에는 장 루이 마르니토키 베네이의 발레작품인‘졸업’의 음악, 안무, 무대디자인, 의상디자인을 담당했다. 1990년대 초반에는 자신이 작곡한 음반을 발매했으며, 영화제작에도 관심을 보인 그는 단편영화를 포함해 다섯 작품을 제작했다. 그의 영화 중‘압연강 XC-10’은 캐나다 몬트리올 영화제에 초대되기도 했다.


2008, 다양한 주제를 설명하는 포화

포화, 통신에서 신호가 너무 많아 전송된 메시지가 모호해지거나 식별하기 어려운 상태.

우리는 동시에 전달되는 다량의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산다. 따라서 정보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이는 광범위한 예술적 주제가 된다. 영화, 시, 음악, 퍼포먼스 등을 통해서…. 난 포화를 표현하기 위해 여러 개의 수식을 겹쳤다. 마치 암호처럼 알 수 없는 것들이 무질서하게 있는 것이다.

작품에 이용한 수학은 나도 잘 모른다. 포화를 표현하기 위해선 모르는 것을 작품에 시도해야 했다.이것이 모험이고 다른 사람과 차별된 나만의 예술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단지 미술에는 한계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을 뿐이니까. 내가 수학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아마도 수학을 모르기 때문인 것 같다.

이런 점에서 난 수학자 쿠르트 괴델을 존경한다. 괴델은 참인지 거짓인지 결정할 수 없는 존재의 가능성을 밝힘으로써(불완전성 정리) 이전 학자들이 생각하지 못한 높은 수준의 수학을 보여줬다. 이런괴델에게 경의를 표하며 작품을 하나 제작했다. 단순한 삼각형에 괴델의 이론을 가득 채웠다. 이 작품은 시리즈로 제작할 예정이다.첫번째 작품은 글자를 읽을 수 있는 형태로 삼각형 안에 담았다. 앞으로 제작할 두 번째 작품은 글자를 희미하게 해서 담을 것이고 세 번째 작품에서는 완전히 이해 불가능한 포화 상태를 보여줄 것이다.


이것이 예술인가?

내 작품이 예술이 아니라 수학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게 이것이 예술이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명확하다. 농촌생활을 그린 루이 르 냉의 그림은 예술인가 사회학인가? 나무나 바위를 그린 귀스타브 쿠르베의 그림은 예술인가 자연과학인가? 도형으로 그려진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그림은 예술인가 기하학인가?

그래프, 도형, 수식을 그대로 그렸기 때문에 예술작품이 아니라면 이 땅에 예술은 없을 것이다. 자연이나 어떤 사회현상을 그린 그림을 예술이라고 한다면 수학을 이용한 그림도 예술이다.

대중들은 내 작품을 보고 어려워한다. 어쩌면 당연하다. 수학을 담았기 때문에 작품을 이해하지 않고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하지만 예술작품은 다른 작품과의 차별화를 통해 생명력을 얻는다. 따라서‘미술에 수학을 이용할 수도 있구나’‘미술에는 한계가 없구나’라고만 이해하고 내 작품을 감상했으면 한다.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것을 표현하기 위해 수학을 도입한 베르나르 브네는 구상과 추상을 넘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단의성을 잘 표현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브네는 미술의 목적이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담는 것이며, 미술의 역사를 바꾸는것이라고 여기고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했습니다. 남들과 다른 예술을 하기 위해 노력한 베르나르 브네. 캔버스에 수학 기호가 가득 찬 작품, 앞으로도 기대하겠습니다.

2011년 05월 수학동아 정보

  • 조가현 기자
  • 허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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