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에선 꼴찌였지만 자신들의 최고 기록 세워
7월 30일 경기도 하남시 미사리조정경기장에는 3만 5000명의 관중이 모였다. 한산하던 이곳이 많은 사람들로 붐비게 된 이유는 ‘무한도전팀’ 때문. 근육질의 힘센 선수들이 하는 조정 경기에 허약하기로 소문난 그들의 도전 모습을 보기 위해 몰려든 것이다.
무한도전팀은 ‘STX컵 코리아 오픈 레가타, 제53회 전국조정선수권대회 에이트(8+) 2000m 노비스 대회’ 에서 호주 멜버른대, 영국 옥스퍼드대, 일본 게이오대와 와세다대, 서울대와 연세대, 한국외대 조정팀과 함께 실력을 겨뤘다.
경기 시작을 30분 앞두고 관중의 환호를 받으며 선수들이 결승선 쪽에 준비된 곳에서 배를 들고 입장했다. 방향을 조절하는 콕스(타수) 위치에 정형돈이 앉고, 그 다음으로 유재석, 정진운, 개리, 노홍철, 데프콘, 길, 박명수, 하하 순으로 자리를 잡았다. 무한도전팀은 마지막으로 호흡을 맞추며 출발선까지 노를 저어 2000m 이상을 이동했다. 오후 5시가 지나자 전광판에 선수들이 비치기 시작했다. 등에 엄청난 땀이 흐르는 것도 모른 채 출발선을 뚫어질 듯 바라보는 관중들.“부~.”짧은 버저 소리와 함께 조정 경기가 시작됐다. 그런데 무한도전팀은 버저소리를 듣지 못해 허둥지둥하며 가장 늦게 출발했다.
일본 게이오대와 호주 멜버른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선두 경쟁을 벌였다. 관중들의 환호와 응원소리에 무한도전팀은 힘차게 노를 저어 선두를 추격했다. 하지만 실력의 차이는 너무나 컸다. 선두와의 거리는 좁혀지기는커녕 갈수록 멀어져만 갔다. 500m 지점에서는 선두와 24초 정도의 차이를 보였으나 1000m 지점에서는 1분이상 벌어졌다.
결국 무한도전팀은 호주 멜버른대의 기록 6분보다 2분이상 늦은 8분 3초에 꼴찌로 결승선을 통과했다.노를 젓지 않았던 정형돈을 제외한 모든 선수가 결승선을 통과하자마자 쓰러졌다. 비록 꼴찌였지만 이들에게는 한계를 넘을 정도로 온 힘을 쏟아부어 기력을 다 써버린 경기였다. 기록은 다른 팀에 비하면 많이 뒤떨어졌지만 무한도전팀이 세운 것 중에서는 최고였다. 누가 봐도 쉽지 않은 도전이었기에 꼴찌였어도 결승선을 통과하는 무한도전 팀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tip 조정 보트는 6000만 원
무한도전팀이 이용한 배(보트)의 가격은 6000만 원 정도다. 가장 비싼 경기용 배는 1억 원까지도 한다. 이렇게 비싼 이유는 항공기에 들어가는 최첨단 소재를 활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정을 즐기는동호회에서 개인이 배를 사는 경우는 없고, 각 시도 조정협회나 지자체에서 보유한 배를 이용해 경기를 즐긴다고 한다.
2000m를 넘게 달렸다?!
조정에서 무한도전팀이 꼴찌를 한 이유를 수학적으로 살펴보자. 무한도전팀의 2000m 기록은 8분 3초(공식 기록은 8분 2초 93)다. 이를 속도로 바꿔보면 얼마나 될까? 속도는 이동 거리를 시간으로 나눠서 구한다. 2000m : 8분 3초 = xm : 1초라는 비례식을 이용하면 초속을, 이 식에서 1초를 1시간(3600초)으로 바꾸면 시속을 구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초속 약 4.1m, 즉 시속 약 14.9km가 나왔다. 이는100m를 약 24.2초에 움직이는 속도다.
이 속도가 어느 정도인지 달리기와 비교하려고 마라톤 42.195km를 2시간 10분에 달린다고 하자. 2시간 10분은 130분, 즉 7800초다. 즉 42195m : 7800초 = xm : 1초에서 초속 약 5.4m, 즉 시속 약 19.5km를 구할 수 있다. 이 속도는 100m를 약 18.5초에 달리는 것과 같다.
8명이 온 힘을 다했으나 2시간 넘게 달리는 마라톤보다 느리다는 사실에서 조정이 얼마나 힘든 스포츠인지 예상할 수 있다. 비록 도구의 힘을 빌리지만 조정은 물에서 이동해야 해 땅에서 달리는 것보다 느리다.
물에서 움직이는 것이 그만큼 어렵고 힘이 든다는 얘기다. 실제 조정은 정식 코스인 2000m를 온 힘으로 노를 저어가면 약 1.5kg의 체중이 줄 정도로 힘든 스포츠로 알려져 있다.
이런 이유로 조정에서는 힘을 많이 쓰는 만큼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 그런데 노를 젓는 무한도전팀 선수 일부는 온 힘을 다해 배를 저은 다음, 노를 원 상태로 움직이는 ‘리커버리’ 단계에서 노가 물에닿으면서 이동했다. 물에 닿은 노가 결국 배의 속도를 줄였다.
얼마나 손해를 봤을까? 2000m 경기에서 보통 200회에서 250회 정도 노를 젓는다. 한 명이 노를 1회 저을 때 마다 방해 동작을 한 번 하고,이 때문에 배의 속도가 줄어 6cm 정도 덜 나간다고 하자. 그러면 2000m 경기에서 250회 노를 저을 때총 15m가 덜 나간다. 노를 1회 저을 때 8m를 나아가므로 2회 정도 노를 더 저어야 해 힘도 시간도 더든다. 결국 2000m 이상을 달린 셈이다. 방해동작을 한 사람이 많았다면 손해가 더 컸을 것이다.
경제적이지 못한 노 젓기
무한도전팀이 꼴찌를 한 이유는 방해 동작보다 다른 데 있다. 바로 노를 경제적으로 젓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생활에서도 경제가 중요한데, 노 젓기에서도 경제적인 특성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런데 어떻게 노를 저어야 경제적일까? 그림1의 ①과 ②를 비교해보자. ①에서는 초기에 속도가 빠르게 늘어나다가 나중으로 갈수록 속도가 천천히 늘어난다. 반면 ②에서는 일정하게 속도가 늘어난다.
시간과 속도 관계에 따르면 그림에서 색이 칠해진 부분(넓이)이 거리를 뜻한다. 어느 쪽의 넓이가 더넓은가? 당연히 ①이다. 처음에 힘이 들더라도 빠르게 속도를 올려놓고 그 다음에 그 속도를 유지하거나 그보다 조금 더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 점진적으로 속도를 올리는 것보다 경제적이라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이 방법이 낭비되는 힘을 줄이고 피로를 최소화하면서 노를 저어 장거리를 이동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조정 경기는 출발선부터 결승선까지 일정거리를 빨리 노를 저어 먼저 도착하면 이기는 경기다. 가능한 한 빠른 속도를 내 많은 거리를 나아가는 것이 핵심이다. 즉 무리가 되더라도 초기에 속도를 최대한 높이는 것이 유리하다. 속도와 힘의 관계식을 참고하더라도 일정한 힘이 계속 주어진다면 속도는 계속 빨라진다.
그런데 대회에서 무한도전팀은 출발할 때 허둥대며 느리게 출발한 데다 속도를 빠르게 높이지 못했다.초기에 속도를 최대한 높이도록 노력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다 보니 그 다음 속도도 별로 빨라지지 못했다. 게다가 가장 빠른 속도도 다른 팀에 비해 느렸다. 속도가 느리다 보니 그만큼 이동거리는 짧아질 수밖에 없었다. 힘은 힘대로 들면서 상대보다 느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특히 무한도전팀은 선수들 간의 노 젓는 속도가 맞지 않아 속도를 높이는 데 문제가 많았다.
실내조정기구 ‘로잉머신’
조정 선수들은 강물이 얼었을 때 실내조정기구인 ‘로잉머신’ 이라는 운동기구로 연습한다. ‘로잉(rowing)’ 은 배를 젓는 일을 뜻하며, 조정 경기의 영어 표현이기도 하다. 로잉머신은 관절에 큰 부담을 주지 않고 몸 근육의 85%를 사용하도록 하는 전신운동기구인데, 배를 가상으로 타는 도구라고도 볼 수 있다.
무한도전팀이 참가한 대회가 열린 행사장 한쪽에서는 로잉머신 이벤트가 있었다. 두 사람이 한 조가 돼서 5조, 총 10명이 시합을 하는 방식으로 경기가 진행됐다. 가장 빨리 결승선에 도착한 조에게는 10만원짜리 문화상품권이 주어졌다. 10분마다 이어진 이벤트에 외국인을 비롯해 많은 관중들이 참가해 조정 경기를 즐겼다.
노의 길이 비와 힘의 방향을 몰랐다?!
에이트 경기에서 노는 축을 기준으로 보통 안쪽은 114cm, 바깥쪽은 268cm다. 길이의 비는 1 : 2.35다.길이가 다르다는 점에서 노가 축을 지렛대로 이용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노의 안쪽과 바깥쪽이 같은 각도만큼 이동하려면 바깥쪽에 1의 힘이 필요할 경우 안쪽에서 2.35의 힘을 작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즉 바깥쪽이 긴 만큼 노를 젓는 선수들의 힘이 세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무한도전팀은 힘이 약했다. 이런 특성을 감안했다면 노의 바깥쪽 길이를 보통 선수들보다 많이 줄여 적은 힘을 쓰게 하고, 대신 노를 젓는 횟수를 늘려 속도를 높이는 방법이 적절했을 것이다.
게다가 조정은 노를 저을 때마다 배의 방향이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조금씩 이동한다. 왼쪽 노를 젓는 선수들과 오른쪽 노를 젓는 선수들의 힘이 정확히 맞아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수학과 물리학에서는 힘의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특성을 벡터로 표현한다. 힘의 크기 못지않게 방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250회 저어 2000m를 이동할 경우 1회에 방향이 5°틀어지면 배의 이동거리가 약 8m 늘어난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에이트 경기에서 우승팀 캐나다가 영국보다 7.5m 정도 앞서 결승선을 통과했다는 것에서 방향의 중요성을 가늠할 수 있다.
지난해 8월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존 배로우 교수는 조정에서 배의 방향이 바뀌지 않도록 하는 수학적인 방법을 연구해 ‘미국 물리학 저널’ 에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조정에서 배가 왼쪽 또는 오른쪽으로 이동하지 않으면서 노를 저을 수 있는 수학적인 방법이 있다고 한다.
그림3처럼 노를 젓는 위치에 따라 배가 앞으로 나가도록 하는 힘은 같아도 배에 작용하는 힘의 방향은 반대가 된다. 이런 차이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림4의 ①처럼 4명이 교차로 놓여 있을 때(전통적이며 가장 일반적인 방법) 배의 앞쪽에 작용하는 힘을 수식으로 나타내보자. s는 배 앞쪽과 1번 선수와의 거리이고, x는 선수 간 거리이며, 위쪽에서 노를 저어 생기는 힘의 방향을 +, 아래쪽에서의 힘을 -라고 한다. M은 (배 앞에서 노까지 거리)×(방향을 고려한 힘)을 모두 더한 값이다. 여기서 선수들의 힘은 모두 같고 일정하다고 가정한다. 단, 단위는 생략한다.
M = sF+(s+x)(-F)+(s+2x)F+(s+3x)(-F) = -2xF < 0
이때 s와 x, F가 모두 1이라고 가정하자. 그러면 M은 -2가 된다. 이것은 노를 저을 때마다 2만큼의 힘이 왼쪽 또는 오른쪽으로 작용해 배가 왔다갔다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배의 이동거리가 더 길어진다. 그럼 배가 왔다갔다 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없을까? 노의 위치를 바꿔보자. ②처럼 노의 위치를 바꾼 경우를 계산하면 -4(M=1+2-3-4=-4)가 된다. 각 자리의 좌우 위치만 바뀌므로 부호만 바꾸면 된다. ③처럼 하면 0(M=1-2-3+4=0)이 된다. 이 방법은 1956년 이탈리아의 한 팀이 사용하기 시작해 ‘이탈리아인’ 방법으로 불린다. 이들은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서 이 방법으로 우승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럼 8명이 하는 에이트에서 방향성을 0으로 만드는 자리 배치는 어떤 형태일까? 8명이 좌우로 노를 젓는 방법은 총 70가지다. 이 중에서 방향성이 0이 되는 자리는 그림5와 같이 총 4가지다. ⑤는 1950년대에 독일 선수들이 쓰기 시작하면서 유명해져 ‘독일인’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남자 에이트 경기에서 캐나다 조정팀은 이 방법을 이용해 우승했다. ⑥은 ‘이탈리아인’ 방법이다.
조정과 카누, 누가 빠를까?
조정은 이동하는 의자를 이용해 다리의 힘을 최대한 노에 전달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즉 온 몸을이용해 노를 젓는 셈이다. 게다가 축에 노를 걸고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 배가 나아가는 데 필요한 힘을 최대한 끌어내서 활용한다. 반면 노를 직접 들고 젓는 카누는 주로 상체의 힘을 이용한다. 이런이유로 조정은 일정 속도까지 올라가는데 카누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하지만 일정 속도에 오르면 속도를 유지하거나 그 이상으로 올리기가 카누보다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실제 조정과 카누가 겨룬 100m와 200m 경주에서, 100m에서는 카누가 조금 앞섰고, 200m에서는 조정이 월등하게 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