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예술작품이나 멋진 글에는 창조의 고통이 녹아 있다. 새것이 주는 아름다움은 힘든 과정을 통과한 땀의 열매인 셈이다. 경북대 과학영재교육원은 논문집과 자매기관처럼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고 있다. 이 모습은 영재에게 자연스레 전해져 새로운 것을 향한 도전과 기대를 품게 한다.
논문집‘과학영재’8년째 발행 중
“햄스터야, 오른쪽! 오른쪽으로 가.”
대구시 북구 경북대의 한 실험실, 중학생 3명이 햄스터와 씨름 중이다. T자 모양의 우리에 햄스터 한마리를 넣고 햄스터가 오른쪽으로 가는지 왼쪽으로 가는지 기록하고 있다. 총 4마리의 햄스터로 20번씩 실험한 결과, 대부분은 왼쪽으로 가는 걸 좋아했다. 두 번째 실험에서는 햄스터가 오른쪽으로 갈 때는 가만히 두고, 왼쪽으로 갈 때마다 작은 막대로 엉덩이를 2대씩 때렸다. 4마리를 대상으로 각각 20번씩 실험하면서 이동 방향을 기록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실험에서는 왼쪽으로 갈 때마다 4대, 6대씩 자극의 횟수를 늘리며 방향을 기록했다.
왼쪽으로 가기 좋아하던 햄스터들은 자극을 받기 시작하자 서서히 오른쪽으로 가는 횟수가 늘었다. 2대를 때릴 때보다 4대, 6대를 때릴 때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횟수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 이를 바탕으로 동물을 학습시킬 때, 자극의 세기가 강할수록 동물의 학습능력이 높아진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지난해 경북대 과학영재교육원 생물사사과정에 있던 권기현, 권휘구, 조광현 학생은 이 실험을 구상하고 우리를 만든 뒤, 햄스터 실험을 하고 논문을 작성했다. 서론을 쓰기 위해 동물 행동학에 대한 이론을 찾고, *파블로프 실험과 비교하며 이번 실험의 목적과 의의를 부각시켰다. 실험재료와 실험과정을 꼼꼼히 적고, 실험결과는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기록했다. 각 실험을 마칠 때마다 결과를 분석한 내용도 함께 담았다. 특히 실험한 햄스터 중 햄스터 A의 학습능력이 자극의 세기와 큰 관련이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결론 속의 문구도 눈에 띈다. 이들은 참고문헌과 감사의 글까지 담아 한 편의 완벽한 논문을 완성했다.
이 논문은 경북대 과학영재교육원이 펴내는 논문집‘과학영재’2010년 6월호에 실렸다. 이처럼 사사과정에 있는 학생들이 쓴 논문은 1년에 2차례씩 논문집으로 발간된다. 올해로 8년째 발행 중인‘과학영재’는 국회도서관에 정기간행물로도 등록돼 있다.
매년 가을에는 자신이 쓴 논문을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연구논문 발표회가 열린다. 우수한 논문을 발표한 팀에게는 상과 함께 전국 대회에 참가할 자격을 준다. 앞서 소개한 햄스터 연구팀은 지난해 전국 과학영재교육원 사사과정 발표회에서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파블로프 실험
동물의 조건반사에 대한 실험. 러시아의 생리학자 이반 파블로프가 처음 개에게 불빛을 보여주고 먹이를 주는 것을 반복하면, 불빛만 보고도 침을 흘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지방자치단체와 손잡고 대구 동구에 ‘자매기관’마련
경북대 과학영재교육원에는 동구과학영재교실이라는‘자매기관’이 있다. 대구 동구지역의 중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영재교실을 따로 운영하는 것이다. 대학부설 영재교육원이 지방자치단체와 손을 잡고 해당 지역의 영재를 교육하는 일은 흔치 않다.
우리나라에서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영재교육기관은 대학부설 영재교육원과 시도교육청의 영재교육원이나 영재학급이 있다. 시도교육청에서 기초 영재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대학 영재교육원에서 심화교육을 받는 체계다. 대학교수가 직접 지도한다는 점에서 깊이 있는 교육이 가능해 대학 영재교육원은 많은 영재들이 선망하는 기관이다. 이 때문에 동구과학영재교실은 경북대 과학영재교육원이 파격적인 결정을 내린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대구 동구청의 요청을 받아들여 2009년부터 시작된 동구과학영재교실은 경북대 과학영재교육원의 프로그램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운영된다. 중학교 1학년 때 기초과정에 선발된 학생은 3년 동안 꾸준히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수업 때마다 학생 5명당 1명의 조교가 수업을 함께하면서 관찰지를 작성하기 때문에 학생 한 명 한 명의 강점과 약점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학생뿐 아니라 학부모를 위한 상담도 있어 교육 전문가와 이야기할 기회도 열려 있다.
동구과학영재교실을 운영한 결과, 과학에 대한 학생들의 흥미가 높아졌으며 진로를 이공계 분야로 하겠다는 학생의 비율도 늘었다. 영재학교나 과학고로 진학하는 학생의 수도 늘고 있다. 지금까지 없던새로운 영재교육기관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융합과학 교육을 향한 잰걸음
경북대 과학영재교육원은 지난해‘융합과학 교육프로그램’이라는 책자를 펴냈다. 솔방울의 모양을 관찰해 습도를 측정할 수 있는‘솔방울 습도계’를 만드는 과정이나 축구공에 담긴 수학을 배우고 ‘바나나킥’을 통해 물리를 공부하는 과정 등이 포함돼 있다. 눈의 착시나 입체효과를 이용해 예술작품을 만드는 과정, 과학을 소재로 해 글쓰기를 훈련하는 과정도 소개한다.
과학이 추상적인 지식에 머무르지 않고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으려면 실생활 속의 기술로 발전하고 예술에도 접목시킨‘융합과학’이 필요하다. 미국과 유럽에서 시작한 융합교육은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도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과학과 기술, 공학, 예술 그리고 수학의 영문 첫 글자를 딴 STEAM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뜻이다. 각 학문의 벽을 허물고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경북대 과학영재교육원은 이 같은 추세에 발 빠르게 움직이며 현장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는교육프로그램을 모아 책자로 펴냈다.
미니 인터뷰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인재를 육성한다
안녕하세요. 경북대 과학영재교육원(SEIGY) 이광필 원장입니다. 화학교육과 교수로 나노기술을 적용한 바이오센서와 나노섬유를 연구하고 있으며, 1998년 영재교육원이 처음 시작할 때부터 함께하면서 창의성과 인성을 갖춘 영재를 교육하기에 힘쓰고 있습니다. 창의성이란 지금까지 없었던 것을 스스로발굴해 이를 분석하고 실험하는 과정에서 기를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창의력은 인내할 수 있는 힘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하나의 문제에 대한 끈기와 참을성은 결국 인성과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밖에 없어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넓은 가슴과 사랑하는 마음에는 오래 참음이 필요합니다. 오래 참을 줄 아는 인성을 갖춘 사람에게는 창의성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창의성과 인성 중에서 인성이 먼저라고 생각하는 이유기도 합니다.
앞으로 우리 영재교육원에서‘무’에서‘유’를 창조하는 세계적인 과학자가 나오길 기대합니다. 이들이 과학적 업적뿐 아니라 인성에서도 존경받는 리더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계속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