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들이 준비한 첫 번째 이야기는 수학자 칸토어에 대한 이야기예요.‘무한’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수학자죠. 칸토어가 주장한 무한 이론에는 어떤 것이 있었을까요? 인피니트의 성규, 성종, 동우가 준비했어요.
자연수와 짝수의 개수가 같다?!
수학동아 독자 여러분~! 반가워요. 인피니트의 성규예요. 팀의 리더를 맡고 있어요. 요즘 저희들은 1집 정규앨범을 내고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정말 저희 이름대로‘무한한’사랑을 받고있는 것 같아요.
게오르크 칸토어는 수학에서 무한에 대한 새로운 세상을 연 독일 수학자예요. 무한을 개척한 사람이죠. 그런데 칸토어가 태어난 해를 봤더니 1845년. 고작 160여년 전에 무한에 대한 세상이 열렸다니 조금은 놀랍죠?
사실 무한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어요. 기원전에 피타고라스는 반복되지 않고 끝이 없는 무리수를 발견했고, 제논이란 수학자도‘제논의 역설’로 유명한 거북이와 아킬레스 이야기를 통해 무한을 알고 있었거든요. 이렇게 오래전에 이미 사람들이 무한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칸토어를 무한의 개척자라고 말하는 이유는 칸토어만이 무한을 설득력 있는 이론으로 설명했기 때문이에요. 칸토어의 수많은 이론 중에서도 특히 무한집합의 개수를 세는 일은 매우 신선한 생각이었어요.
여기서 잠깐 퀴즈를 하나 내 볼게요. 저희 인피니트와 비스트 중에서 어느 그룹의 멤버 수가더 많을까요? 문제가 너무 쉽나요? 하하.
저희 인피니트 멤버는 7명이고, 비스트 멤버는 6명이니까 인피니트 멤버가 1명 더 많아요. 여기서 7이 6보다 더 큰 수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인피니트 멤버와 비스트 멤버를 한 사람씩 연결하면 인피니트 멤버중 한 사람이 남게 되니까 인피니트가 비스트보다 멤버 수가 더 많다고 말할 수도 있어요.
조금 더 어려운 문제를 생각해 볼까요?
자연수와 짝수 중에서 어느 수가 더 많을까요? 언뜻 생각하면 자연수의 반은 짝수고, 반은 홀수니까 자연수의 개수가 짝수 개수의 2배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만 자연수와 짝수의 개수는 같답니다. 칸토어는 이것을 ‘일대일 대응’을 이용해 설명했어요.
일대일 대응은 말 그대로 하나에 하나씩 연결하는 것을 말하는데, 멤버들과 간식 내기로 종종 하는 사다리 타기는 일대일 대응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어요. 일대일 대응을 이용하면 끝이 없는 무한한 수도 셀 수 있답니다. 자연수와 짝수의 개수가 같다는 사실을 보이기 위해 자연수의 1은 짝수의 2와, 자연수의 2는 짝수의 4와 일대일 대응시키는 거예요. 이런 방법으로 대응을 계속하다 보면 자연수와 짝수의 모든 수는 남김 없이 대응할 수 있어요.
칸토어는 이렇게 두 집합의 원소를 서로 일대일 대응시킬 수 있다면 두 집합의 원소의 개수가 같다고말했어요. 아무도 하지 못했던, 무한한 집합의 개수를 세는 데 성공한 것이죠.
이 밖에도 칸토어는 당시 사람들에게 파격적인, 무한에 관한 이론을 발표했어요. 그렇지만 사람들은 칸토어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칸토어에게 어떤 시련이 있었을까요? 그 이야기는 동우에게 넘길게요.
수학에도‘농도’가 있어요!
액체의 묽고 진한 정도를 나타내는 농도만 있는 줄 알았는데, 수학에서도‘농도’란 개념이 있어요.
수학에서 농도는 두 집합의 원소가 일대일 대응이 될 때,‘두 집합의 농도가 같다’라고 말해요. 자연수와 짝수, 홀수, 정수, 유리수 집합은 모두 일대일 대응이 되기 때문에 네 집합의 농도는 모두 같죠. 이렇게 자연수와 일대일 대응이 되는 집합의 농도를 기호로는 히브리 문자를 이용해‘ ${א}_{0}$(알레프)’라고 쓴답니다.
칸토어와 스승 크로네커의 악연
저는 인피니트의 동우예요! 성규 형에 이어 저는 칸토어와 크로네커라는 수학자의 이야기를 할까 해요. 칸토어는 무한에 대한 수많은 이론을 발표해 새로운 세상을 열었지만 그는 당시 수학자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비운의 수학자였어요. 특히 그의 스승이었던 크로네커는 칸토어의 이론을 앞장서 반대하던 대표적인 사람이었지요.
크로네커는 독일의 베를린대학에서 대수학과 정수론을 연구하는 교수였어요. 칸토어는 그 대학에서 수학을 공부하는 학생이었고요. 크로네커는 영특한 학생이었던 칸토어의 연구에 관심을 가졌지만, 칸토어가 무한집합에 관한 새로운 이론을 내기 시작하자 강하게 그의 이론을 반박하기 시작했어요. 당시 크로네커는‘유한주의’를 대표하는 수학자로 수학에서 어떤 것을 정의하려면 반드시 유한한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거든요. 크로네커는 자연수까지만 인정할 뿐 그 밖의 무한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했어요.
스승의 반대가 심해지자 칸토어는 그가 간절하게 원하던 베를린대학에서 교수가 되는 꿈도 이룰 수 없었어요. 당시 베를린대학은 독일에서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수학자들이 많은 곳이어서 수학자들에게는 꿈의 무대였는데 말이죠. 베를린에서 교수의 꿈이 좌절되자 그는 베를린에서 서쪽으로 약100km 떨어진‘할레’라는 곳으로 떠났어요.
칸토어는 할레에서도 무한에 대한 연구를 멈추지 않았어요. 칸토어가 말한, 무한에 대한 연구의 핵심은 무한에도 다양한 크기가 있다는 것이었어요. 칸토어는 무한집합에서 일대일 대응이 되는 집합은 농도가 같다고 생각하며 자연수와 정수, 유리수까지 같은 농도를 갖는 무한집합이라고 설명했고, 이처럼 자연수와 농도가 같은 무한을‘셀 수 있는 무한’이라고 불렀어요.
이뿐만 아니라 ‘셀 수 없는 무한’도 있다고 주장했는데, 자연수와 일대일 대응을 시킬 수 없는 무한은 무한이긴 하지만 자연수보다 더 큰 무한이라고 설명했어요. 무리수와 실수가 바로 셀 수 없는 무한의 예죠.
칸토어는 이처럼 무한에 크기 순서를 매기는 일에 몰두했어요. 더 나아가 유리수 집합보다 크고 실수집합보다 작은 무한집합이 있을까 질문했고, 그런 무한집합은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어요. 이것을 연속체 가설’이라고 부르는데, 연속체 가설은 칸토어가 죽을 때까지 연구한 문제였죠.
그러던 어느 날, 칸토어는 연속체 가설을 증명했다며 스웨덴의 유명한 수학자 미타그-레플러라는 사람이 발간한‘악타 마테마티카’라는 수학 저널에 자신의 증명을 실었어요. 하지만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아서 자신의 증명이 잘못됐다고 번복했고, 이런 일이 종종 생기자 친구처럼 지내던 미타그-레플러는 칸토어에게 등을 돌렸어요. 게다가 크로네커는 칸토어의 논문이 저널에 실릴 때마다 그를 강하게 비난하며 공격했는데, 이런 일을 겪으면서 칸토어는 점점 정신적으로 병들고, 우울증을 겪었어요.
칸토어의 연속체 가설은 1918년 칸토어가 죽은 지 50년쯤 뒤에서야 해결됐어요. 그 해결의 실마리는 1930년 괴델이란 수학자가 발표한 ‘불완전성의 정리’였는데, 괴델은 불완전성의 정리를 통해 수학에서 증명할 수도 반증할 수도 없는 문제가 있음을 밝혔지요. 그 후 1963년 폴 코헨이라는 수학자가 연속체 가설이 괴델의 불완전성의 정리에 따라 증명할 수 없는 문제임을 보여 3년 뒤 수학계 최고의 영광인 필즈상을 받았어요. 연속체 가설의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죠.
tip ‘집합론’의 창시자, 칸토어
무한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일대일 대응, 농도와 같은 새로운 개념을 도입해 ‘집합론’이라는 새 이론을 만들었다. 칸토어는 집합론을 만들어 현대 수학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19세기의 가장 위대한 수학자 중 한 사람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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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인피니트가 들려주는 무한도 이야기
PART 1 무한의 개척자, 칸토어
PART 2 무한한 사람들이 사는 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