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불뚝이 들창코에 무능한 남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가 있다. 2009년에 개봉한 ‘거짓말의 발명’ 이라는 영화다. 이 영화는 반전은커녕 그 흔한 액션 한 컷도 없고 전혀 코믹하지 않지만 묘한 매력을 갖고 있다. 이 영화의 배경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 똑같지만 ‘거짓말’ 이 없다. 말 그대로 모든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아니, ‘거짓말’ 이라는 단어조차 없다.
얼떨결에 거짓말 발명
레스토랑에 들어선 손님은 주변에 사람이 있거나 말거나 “예전엔 이렇게 후지지 않았는데…”라고 불평을 하고, 비서는 회사에 출근한 상사에게 “나 같이 잘난 여자가 당신 같은 무능력자의 비서로 일하는 것도 참 자원낭비죠”라며 인사를 건넨다. 그뿐인가? 결근하겠다고 회사에 전화해서는 “아뇨,아픈 게 아니라 그냥 당신의 꼴 보기가 싫어요!”라는 식의 직설적인 말로 교~양 있게 말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이런 식의 대화가 오고간다면 금새 토라지거나 거친 말과 함께 주먹 싸움이 여기저기 일어나고 말 것이다.
과연 거짓말이 없는 세상, 아예 거짓말이라는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는 그런 세상에서 인간이 살 수 있을까? 아마도 감독은 그런 곳에서는 인간이 살 수 없다는 것을 꿰뚫어보고‘거짓말’을 등장시켰는지도 모른다. 아니면‘거짓’에 해당하는 상황들이 종종 필요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인생낙오자로 나오는 주인공 ‘마크’ 는 집세를 내야 하는데, 금액이 부족해 쫓겨나야 할 상황이다.은행잔고가 300달러뿐인 주인공 마크가 은행에 갔을 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은행은 전산장애로 마비상태였다. 마크의 은행잔고를 확인할 수 없었던 은행직원은 마크에게 은행통장에 얼마 남았는지를 물어 보아 그 금액을 미리 주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마크는 통장잔고가 800달러가 있다고 은행직원에게 얼떨결에 거짓말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 은행직원은 당연하다는 듯 800달러를 마크의 손에 쥐어 준다. 이 놀라운‘거짓말의 발명’ 덕분에 800달러를 손에 쥔 마크는 은행을 나오면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마치 에덴동산에서 선악과의 열매를 따 먹은 것 같은 표정으로.
가짜 수?!
그런데 감독이 이 영화에서 놓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수! 거짓말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 만들면서‘수’에 대해서만큼은 인심을‘팍!팍!’썼다. 거짓말이 없는 세상인데도 참값과 그 값에 가까운 근삿값이 공존하니 말이다. 근삿값은 엄연히 가짜 수가 아닌가!
영화에 나온 일간지와 잡지의 1면을 장식한 다음 제목들을 보자. ‘하늘의 그분 덕분에 104살까지 산 할머니’‘근로 생산성 14% 감소’‘하늘의 그분이 쓰나미로 4만 명을 죽이다’…. 마크가 “사후세계에 그분이 존재한다” 라고 한 거짓말이 퍼지면서 세상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마크의 입에 초점이 맞춰지고, 매스컴은 생로병사의 희노애락 전부를‘그분’이 한 것처럼 기사들을 연일 쏟아낸 것이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세상에서 ‘104살’의 104는 참값이다. 하지만 잡지의 제목을 장식하고 있는 ‘14%’ 의 14는 참값인지 알 수 없다. 정확하게 14%일 수도 있지만, 14.1%나, 14.27%, 14.358…%를 간단히 14%라 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4만 명’의 4만도 마찬가지다. 신문의 제목만으로는 정확히 ‘4만 명’ 이라기보다는 ‘4만여 명’이라는 의미로 봐야 할 텐데, 그건 정확한 값을 알아내기 어렵기 때문에 참값에 가까운 값, 즉 근삿값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만약 그 수를 셀 수 있어서 ‘하늘의 그분이 쓰나미로 4만 4219명을 죽이다!’ 라고 썼다면 이 영화에 훨씬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꼭 참값을 몰라도 되는 경우
확실한 것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나라에서 ‘4만여 명’ 이라는 말이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 나라의 최고 기본원칙이 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어떨까?
한여름이면 TV 뉴스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내용 중 하나가 더위를 피해 해수욕장에 모이는 피서객의수를 추정하는 일이다. 수많은 인파를 대상으로 단 한 사람도 빠뜨리지 않고 셀 수 있는 달인을 초빙하지 않고서야 피서객의 정확한 수를 알아내는 건 불가능하다. 그 수가 매우 클뿐더러 사람들이 한자리에 있지 않고 수시로 이동하기 때문에 정확히 파악하기 매우 어렵다. 또 뉴스를 듣는 시청자들 입장에서도 딱히 정확한 인원수를 알 필요도 없다. 만약 해운대 해수욕장에 간 피서객의 인파가 20만이라고 할 때, ‘20만’ 이라는 말을 통해 시청자들은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해수욕장에 갔다는 것만 인식하면 될 뿐, 굳이 20만 3432명과 같은 구체적인 피서객의 수를 알 필요는 없다!
이와 같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참값에 비해 오히려 근삿값이 더 유용하게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주변에서 우리가 쉽게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예로는 옷이나 신발의 사이즈가 있다. 보통 의류 가게에서는 사람의 체격에 꼭 맞는 정확한 사이즈의 옷이 아니라, 각 나이대별 체격에 따라 S, M, L, XL 등의 4단계나 5단계로 나눠져 있는 옷을 판매한다.
신발의 경우는 또 어떤가? 사람마다 아침저녁으로 발의 크기가 조금씩 변하기 때문에 구입할 당시 꼭 맞는 신발을 살 경우 아침과 저녁 어느 한때는 너무 꽉 끼어 발이 아플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5mm 단위로 신발 사이즈를 정해 판매하고 있다. 만약 내 발이 242mm라면 245mm를 사서 신더라도 전혀 불편함을 느낄 수가 없다. 이럴 경우 굳이 참값이 필요한 건 아니다.
참값과 근삿값의 차이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보자. 마크가 “사후세계에 대해 알고 있다” 고 말하자 많은 시민들이 마크의 집앞에 모여들였다. 과연 여기 모인 시민들의 수는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 화장실을 가거나, 늦게 와서 친구 사이로 들어가 버리는 사람이 있다면? 단 한 명도 빠뜨리지 않고 전체의 수를 구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이 장면을 생중계하는 아나운서의 경우라면 정확한 사람 수가 중요한 건 아니기 때문에 일단 마크의 집 앞 땅이 대략 몇 m²인지만 알면 된다. 왜냐하면 엉덩이가 서로 닿지 않을 정도로 바짝 붙어 서 있을 경우 보통 1m² 안에 5명 정도 들어가기 때문에 마크의 집 앞 땅이 300m²이라면 300×5를 계산해 약 1500명이 모여 있다고 하면 된다.
이때 실제로 시민들을 한 줄로 세운 뒤 달인이 한 명 한 명 셌을 때 참값 1452명을 얻었다면 아나운서가 말한 근삿값 1500명과는 48명의 차이가 난다. 이런 차이를 나타내는 값을 무엇이라고 할까? 빙고! 바로 이것을 ‘오차’ 라고 한다. 오차는 근삿값에서 참값을 뺀 값을 말한다.
만약 달인이 아니라 어딘가 어설픈, 달인의 조수가 센다면 셀 때마다 오차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오차에 대한 법칙을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은 이탈리아의 수학자이자 과학자인 갈릴레오 갈릴레이다. 갈릴레이는 근삿값이 참값에 대해 좌우대칭으로 분포하며, 참값에 가까운 근삿값은 많지만 참값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근삿값은 드물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 어떤 대상을 관측해 얻어낸 값을 그래프로 나타내어 봤더니 종 모양의 그래프가 됐다. 즉 어떤 대상을 관측했을 때, 계속해서 일정하게 나타나는 값들의 평균값이 중앙에 나타나는데, 이는 근사값을 의미한다. 이 그래프를 ‘정규분포곡선’ 이라고도 하지만 발견한 독일의 수학자 이름을 따서 ‘가우스 분포곡선’ 이라고도 한다. 독일에서는 이것을 기념해 이 곡선을 마르크화에 그려 넣기도 했다.
오차를 얼마까지 허용해도 될까?
근삿값을 다룰 때 오차의 허용범위를 심각하게 고민하도록 만드는 애니메이션이 있다. 코믹과 SF를 가미한 ‘망상과학시리즈 원더바 스타일’ 이다. 주인공인 츠쿠모는 13살 천재 과학자이다. 그는 4명의아름다운 미소녀 그룹 ‘믹스 쥬스’ 의 첫 콘서트를 달에서 열 야심 찬 계획을 세운다.
츠쿠모는 온갖 아이디어를 총동원해 로켓 엔진을 전혀 사용하지 않으면서 달에 갈 수 있는 별별 실험을 다 한다. 하지만 결과는 번번이 실패. 그러다 한 번은 그야말로 만화에서만 나올 법한 황당한 실험을 하는데….
장난감 새총에서 영감을 얻은 츠쿠모는 우주선을 날려 줄 거대한 새총을 만든다. 지구중력을 벗어나기 위한 속도를 얻기 위해 고무줄을 바다 위 두 항공모함에 묶고, 길이가 74리(2만9061.8181…m, 이때 1리=1296자, 33자=10m)가 될 때까지 쭉 늘린다. 이제 준비완료. 발사각도 3°로 우주선을 발사! 츠쿠모의 계산대로라면 지구대기권 이탈 후 48시간이 지나면 달에 도착할 것이다.
앗! 그런데 이게 웬일. 우주선이 궤도를 벗어났다. 또 실패인가? 로봇 키쿠 8호가 컴퓨터로 조사해 본 결과, 단위 1자에 해당하는 거리를 미터(m) 단위로 바꾸면 0.303030…m가 나오는데 발사에 참여한사람이 이 값을 근삿값 0.3m로 계산해 우주선을 발사한 것이다.‘0.303030…m’와‘0.3m’, 고작해야 오차가 0.003030…m(약 3mm)밖에 안 되는데 실패라니. 하지만 높은 정밀도를 요구하는 분야에서는 이처럼 작은 차이의 값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이런 일이 비록 만화에서만 일어나면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지만 실제 상황이라면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한국 최초 우주발사체‘나로호’도 두번의 실패를 겪었다. 2009년 8월 첫 발사 때는 2단 로켓분리 이후 페어링(유선형 위성 덮개)의 한쪽이 분리되지 않고 위성에 계속 붙어 있어 비행 속도에 오차가 생겨 위성이 궤도 진입에 실패했다. 2010년 6월 두 번째 발사 때는 발사 후 137초 만에 1단 로켓이 87km 상공에서 폭파돼 추락했다. 발사체 개발, 우주센터 건립, 위성 개발 등에 들어간비용까지 계산하면 그 피해액은 가히 천문학적인 액수라고 할 수 있다.
참값은 참값대로, 근삿값은 근삿값대로
참값과 근삿값 중 어떤 값이 더 좋고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세상에는 몸무게나 키와 같이 정확한 값을 모르고 살아도 전혀 불편함이 없는 것들이 많다. 그렇다고 모든 값에 근삿값을 아무렇게나 적용할수도 없다. 첨단우주항공 분야나 10억 분의 1의 정밀도를 요구하는 나노기술 분야인 경우에는 정확한참값을 모른다면 참값에 가장 가까운 근삿값을 사용해야 한다. 그러니 참값과 근삿값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참값은 참값대로, 근삿값은 근삿값으로 충분히 그 가치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