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바리 해적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탈출 계획을 세운 허풍과 도형. 하지만 하메드, 아니 하디시 공주가 도망치지 않겠다고 한다. 공주에겐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1 하디시 공주의 경호원
“도형아, 사람이란 말이다. 누구에게나 말 못할 사연이 있는 거란다. 공주도 마찬가지야. 우리라도 여기서 도망치자, 응?”
“선생님! 아리따운 숙녀의 사연은 경성 최고의 신사가 듣고 해결해 주셔야 하는 것 아니에요?”
한시라도 빨리 도망치자는 허풍과, 공주와 함께 탈출해야 한다는 도형이 팽팽하게 맞서는 가운데 어느덧 마다가스카르에 도착한다.
“저기, 질문이 있는데…요. 하메드, 아니지 하디시 공주님은 언제부터 이 배를 타신 거…예요?”
“말 낮춰, 도형아. 네가 붙잡혀 오기 며칠 전. 바르바리 해적선이 모로코에 정박하고 있을 때, 핫산이라는 검객과 함께 들어왔어. 내 얘기는 여기까지만 하자. 도망치더라도 난 빼줘.”
도형은 ‘핫산’이라는 검객을 만나면 공주의 사연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저기, 핫산 씨 맞죠? 공주님 일로 잠시 할 이야기가 있어요.”
공주님이라는 말에 핫산은 놀라는 듯하나 애써 태연한 척한다.
“다 알고 왔어요. 하디시 공주님이 왜 이 배에 타고 있는 거죠?”
“목소리를 낮추세요. 어디까지 알고 온 거죠?”
“아저씨의 칼에 반복되는 무늬를 본 적이 있거든요. 공주님과 함께 이 배에 타게 됐다고 들었는데, 그 이유가 뭔가요?”
도형은 왕실에서 얻었던 단서 중 하나인 퍼즐을 내보인다. 가로, 세로, 대각선에 ▲,■,●가 들어가되 연속으로 세 칸에 ▲■■, ▲●▲와 같이 두 종류의 도형만 들어가도록 빈칸을 완성하는 퍼즐이다. 단, 연속으로 같은 도형이 세 번 들어가도 안 된다.
“숙녀의 비밀을 지켜주는 건 남자가 해야 할 당연한 일이지. 하지만 그것이 숙녀를 힘들게 한다면 다르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네.”
허풍의 진지한 말에 핫산은 뭔가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인다.
2 공주의 비밀
“오래전 해적들이 약탈해 간 왕실의 증표를 찾고 계신 겁니다. 국왕의 권위를 탐내는 자들이 그 사실을 알고 왕가를 위협하고 있어 공주님이 나선 것이죠.”
방으로 돌아온 허풍과 도형. 밖에선 섬에 상륙할 준비를 하느라 바쁘게 움직인다.
“핫산의 말은 해적들보다 앞서 보물을 손에 넣는다는 뜻인데…. 그럼 어차피 공주도 탈출을 생각하고 있다는 거 아닐까?”
“선생님 대단해요! 거기까지 미리 생각하고 계시다니. 그럼 공주님과 함께 탈출할 수 있도록 보물을 손에 넣은 뒤에 탈출하는 계획을 세울게요.”
“이봐, 우리는 지금 상륙한다. 이번엔 너희도 함께 가야하니 준비하도록 해.”
바르바리 해적선 선장의 말에 허풍은 안절부절못하지만 도형은 이미 예상한 듯 차분히 계획을 세운다.
“일단 계획은 완성됐어요. 선생님, 포도주병을 좀 모아 주시겠어요?”
허풍이 모아온 포도주병을 가지고 작업을 끝낸 도형은 하디시 공주를 만나러 나간다.
“선장님, 짐을 싸는데 하메드가 도와줬으면 좋겠어요.”
“하하하, 그래 짐이야 싸나 마나지만 말이다. 보물만 찾으면…. 하하하.”
공주와 함께 방에 들어온 도형.
“공주님, 잘 들으세요. 핫산에게 대충 전해 들었어요. 저희도 보물을 찾은 뒤 탈출할 계획이에요. 이건 1번 선실에서 해안으로 나오는 길을 퍼즐로 나타낸거예요. 출발점부터 각각의 색을 같은 횟수만큼 지나서 도착점까지 가는 거예요. 순서는 상관없어요. 단, 흰색은 예외고요. 이 배치도랑 같이 보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도형아, 나까지 신경 써 주지 않아도 돼. 기회를 봐서 먼저 탈출해. 응?”
“에이, 참. 공주님도. 우린 이미 한 배를 탔어요.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이걸 핫산에게도 전해 주세요. 보물 확인은 저희가 먼저 하게 될 거예요. 선장이 약속했으니까요. 확인하자마자 이 지도에 표시된 곳을 향해 달리는 거예요. 아시겠죠?”
3 드디어 열린 보물상자
“핫산은 우리나라 최고의 검객이야. 너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탈출할 수 있어.”
“실력을 못 믿는 게 아니에요. 보물 때문에 사람을 다치게 하면 우리도 해적과 다를 게 없잖아요. 아무도 다치지 않고 일이 잘 마무리됐으면 해서요. 그게 악랄한 해적이라고 해도 말이죠.”
도형의 말에 공주는 고개를 끄덕인다.
“왜 보물이 필요한지는 묻지 않는 거야?”
“저기 계신 우리 선생님께서 그러셨거든요. 숙녀의 비밀은 지켜줘야 한다고, 그게 남자가 해야 할 일이라고요.”
하디시 공주가 허풍을 바라보자 허풍은 찡긋 윙크하며 포도주잔을 들어 보인다.
“알았어, 도형아. 그럼 조금 있다가 봐.”
공주가 방에서 나가고 얼마 뒤 상륙이 시작된다.
“자자, 이번엔 우리 꼬마 선생님께서 함께 가니까 험한 말하지 말고, 위험한 연장도 함부로 휘두르지 말도록 해라. 하하하.”
목적지에 도착한 해적 일당과 허풍 일행. 지도에 표시된 곳을 파기 시작한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 커다란 상자를 발견한 해적 일당. 역시나 상자엔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선장은 도형을 부른다.
“자, 꼬마 선생. 이것도 척척 풀어주게.”
자물쇠에는 똑같은 수식이 두 개가 있다. 예 다음의 첫 번째 식은 세 칸을 지워서, 두 번째 식은 다섯칸을 지워서 올바른 수식을 만들어야 한다. 이때 숫자는 물론 연산 기호가 있는 칸도 지울 수 있다.
“약속했던 것은 잊지 않았겠죠? 보물 확인은 우리가 먼저 한다는 거 말이에요.”
“하하하. 그럼 물론이지, 꼬마 선생.”
약속대로 뒤로 물러서는 해적 일당. 허풍과 도형은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어본다.
“보물이 확실한 거지? 그럼 이제 우리가 확인해 봐도 될까?”
4 도형의 속임수
바르바리 해적선 선장이 다가오려는 순간 도형이 외친다.
“잠깐!”
도형의 외침에 모두 놀라 그 자리에 멈춰 선다.
“어허, 꼬마 선생 약속이 틀리잖아. 약속을 어기면 곤란하다고.”
“선장님, 질문 하나만 하죠. 선장님께서 습격한 배는 보통 어떤 배죠?”
“그야 당연히 무역하는 상선이지. 군함을 습격하는 바보는 없으니까.”
“그럼 그 배에는 어떤 물건들이 실려 있나요? 금? 은? 보석?”
“대부분은 일반 무역품이지. 차, 융단, 상아….”
그때 갑자기 도형이 소리친다.
“뛰어요! 빨리!”
도형이 뛰기 시작하자 그 뒤로 세 명이 함께 뛴다.
“싱거운 꼬마로군. 어차피 멀리 도망치지는 못할거다. 반은 보물을 옮겨 싣고 나머지는 천천히 추격하도록 해라. 이제 내 보물을 확인해 볼까?”
뒤도 한 번 안 돌아보고 달린 일행은 숨이 턱까지 차올라 쓰러지기 일보 직전에 해안 모래사장에 다다른다. 잠시 숨을 돌리는 순간 핫산이 도형의 목에 칼을 들이댄다.
“이봐. 공주님의 목적은 보물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야?”
“보물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어, 도형아.”
“여기. 이거 받으세요.”
도형은 품에 안고 온 나무상자를 내민다. 상자 위에는 정사각형의 칸이 그려져 있다.
“바닥 색깔과 같게 나무 조각을 올려놓아 칸을 메우면 열릴 거예요.”
한편 바르바리 해적선 선장은 화가 머리끝까지나 있다. 보물상자 안에는 오래돼 썩은 차와 향신료 자루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얘들아. 녀석들을 모두 잡아다가 물고기 밥을 만들어라!”
★ 모로코를 지키기 위해 싸운 공주
“핫산 씨, 불 피우는 것 좀 도와주시겠어요?”
“헛소리 하지 마라. 네 녀석 때문에….”
“화는 나중에 내시고 제 말을 들어주세요.”
불을 피우고 조금 기다리자 칠흑 같은 밤바다 저편에 불빛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상자를 열어 보셔야죠? 초상화에 없던 마지막 마무리…. 잃어버린 왕실의 도장. 맞죠? 여러분을 모실 모로코 함대도 마중 나와 주셨네요. 하하하.”
“어떻게….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거지?”
“해적선을 탄 4개월 동안 한 번도 해군을 만나지 않았어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죠. 누군가 해적선을 보호하고 있다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혹시나 해서 공주님이 주신 모로코왕실의 퍼즐과 탈출경로를 포도주병에 넣어 바다에 띄웠죠.”
“핫산, 당신이 그런 건가요?”
“공주님께서 왕실을 위해 위험에 뛰어든 것을 아는데,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죄송….”
“해적들이 오기 전에 빨리 도망가요. 아직 공주님의 신분을 모르니까 이곳만 벗어나면….”
군함의 보호 속에 허풍 일행과 하디시 공주는 무사히 모로코에 도착한 뒤 왕궁으로 들어선다.
드디어 해적 편이 끝났다. ‘허풍과 나도형, 사고 치더라도 해적이나 악당과 엮이지 마. 너무 골치 아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