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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의 나라

제8화 태양이 사라진다!


지오의 나라


‘흉흉한 소문이라고? 이번엔 또 무슨 일이 생긴 거야?’
공주의 말에 지오는 가슴부터 철렁했다. 쇳물 사건과 십이지 시계를 만드는 일로 이미 연월기 작업이 많이 늦어지고 있었다. 계획했던 날짜에 일정을 맞추기에도 빠듯했다. 그런데 또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걸까?
 “태양이 사라질 거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어. 그 이유가 연월기 때문이라지 뭐야.”
공주는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공주가 전한 소문이란 이런 것이었다.
‘무릇 시간이란 하늘의 영역인데, 이것에 도전하는 자들이 있다.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의 흉측한 계략이다. 이는 마치 하늘을 욕보이려는 것과 같다. 그 일이 다른 곳도 아닌 궁궐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에 하늘이 진노하였다. 이 때문에 조만간 하늘에서 태양이 사라지는 천재지변이 벌어질 것이다.’연월기를 두고 하는 이야기였다.
“대체 어떤 놈들이 그런 헛소문을 퍼트리고 다닌단 말입니까요, 공주님?”
발끈한 천복이 다듬망치를 내려놓으며 소리쳤다.
“그 시작이야 알 수 없지. 하지만 분명 정대섭 대감의 측근들이 만든 소문일 게야.”
“상감마마께서도 소문을 아십니까?”
황산사의 미간 사이로 굵은 골이 파였다. 공주는 고개를 끄덕끄덕 하더니, 낮은 한숨을 뱉었다.
“아바마마께서 곧 황산사를 찾으실 게야. 흉흉한 소문을 잠재울 대책을 세워야 할 테니까.
그런데 문제는 궁궐 안 소문이 아니야. 소문이 벌써 도성 밖에까지 퍼져나가고 있어. 백성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는 소리지.”
황산사의 얼굴이 금세 흙빛이 되었다.
“어떻게 연월기 소문이 도성으로 퍼졌단 말입니까? 임금님과 공주님, 그리고 중요 대신과 연월치인만의 비밀인데…….”
“분명 정대섭 대감 측근에서 이야기를 흘린 거야. 대신들은 연월기가 정말로 완성될 거라고는 믿고 있지 않았지. 그런데 막상 몸통이 완성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불안해진 거야. 자신들의 입지가 흔들릴까 봐 초조해하고 있어.”
이번엔 지오가 발끈했다.
“공주님, 그럼 정대섭 대감을 잡아서 혼을 내면 되잖아요. 헛소문을 퍼트린 죄를 물어 큰 벌을 내려야 해요.”
“그게 그리 단순하지가 않아.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이 없질 않느냐. 게다가 섣불리 대신들을 건드렸다간 큰 곤혹을 치를 수도 있고.”
공주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지오를 바라볼 때였다.
“황산사님! 상감마마께서 찾으십니다.”
문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임금을 모시는 대전내시였다. 임금이 곧 황산사를 찾을 거라던 공주의 생각이 맞았던 것이다. 황산사는 급히
문정전으로 달려갔다.
“혹시 상감마마께서 연월기 만드는 일을 그만두라고 하시는 거 아녀?”
천복의 말에 모두들 낯빛이 어두워졌다. 지오는 마냥 황산사를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었다.
“이대로 있을 순 없어요.”
지오는 문정전 앞으로 달려갔다. 천복과 장도사도 지오를 뒤따랐다.
문정전 앞은 경비가 삼엄했다. 임금과 황산사의 비밀스런 밀담이 길어지고 있었다. 지오가 천복, 장도사와 함께 속절없이 문밖을 서성일 때였다.
 

태양이 사라진다!


“쯧쯧! 천한 것들이 궁궐 안을 제 집처럼 드나들고 있으니 원……. 이 나라가 대체 어찌 되려고 이러누!”
“이러니 천재지변이 일어날 수밖에! 큰일일세. 큰일이야!”
불평 가득한 목소리가 지오 무리를 향해 날아왔다. 관복을 입은 대신들이었다.
순간 천복과 장도사는 귀신이라도 본 듯 소스라쳤다. 두 사람은 다급히 무릎을 꿇더니 머리가 땅에 닿도록 허리를 구부려 절을 했다. 천복은 뻣뻣이 선 지오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입술을 오물거렸다. 천복의 입술이 ‘지오야, 어서 절을 올려!’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오는 절은커녕, 고개조차 숙일 마음이 없었다. ‘천한 것’이란 말이 가슴을 송곳처럼 찔러왔기 때문이다. 대신들은 개나 소를 보듯 지오 무리를 보고 있었다. 지오는 입술을 자근 깨물었다. 분을 삼키려다 보니 그러쥔 두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두 해 전, 누나가 죽었을 당시 마을 사람들이 하던 말이 머릿속을 빙빙 돌았다.
“양반 아닌 것은 사람도 아닌 세상이잖느냐. 상것이 어디 사람이더냐. 개나 소만도 못한 것이 상것이지.”
지오는 대신들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라도 치고 싶었다.
‘우리는 개나 소가 아니라고요. 당신네들과 똑같은 사람이라고요. 봐요! 똑같이 생긴 사람이잖아요!’
지오가 잔뜩 독이 오른 눈길로 대신들을 노려볼 때였다.
“네 이놈! 감히 누굴 향해 눈을 부릅뜨고 선 게야! 이놈이 죽고 싶은 게로구나. 당장 무릎을 꿇지 못할까!”
대신들 중, 가장 젊어 보이는 자가 눈썹을 파르르 떨며 소리쳤다.
 “지오야! 어서 엎드려. 어서!”
천복과 장도사가 지오의 양팔을 끌어당겼지만, 지오는 끄떡도 하질 않았다. 그러자 대신들 사이에서 벼락같은 호령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저놈을 당장 의금부로 넘겨라! 감히 천것 주제에 양반을 능멸하려 들다니! 이놈을 살려두지 않을 것이야!”
긴 수염에 눈썹까지 하얗게 센 자가 두 볼을 실룩거리며 소리치고 있었다.
그 소리에 가장 젊어 보이는 자가 지오의 팔을 막 잡아끌려는 참이었다.
“대감, 용서해 주십시오. 철없는 어린애가 아닙니까.”
누군가 긴 수염의 대신에게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황산사였다. 대신들과 지오가 실랑이를 하는 사이, 문정전을 나온 모양이었다.
“험! 험! 아무리 철없는 어린애라 한들 어찌 상것이 감히……. 반상(班常)의 도리를 모르는 자를 어찌 용서하겠는가.”
대신은 하얀 눈썹마저 부르르 떨며 목청을 높였다. 그러자 황산사는 급히 오른팔을 들어 지오의 허리를 툭툭 쳤다. 허리를 굽혀 절을 올리라는 뜻이었다.
 “영의정 정대섭 대감이시다. 어서 절을 올려라.”
황산사가 지오를 향해 무섭게 소리쳤다.
‘저 할아버지가 바로 정대섭 대감이라고?’
말로만 듣던 정대섭 대감을 마주하고 보니, 언젠가 들었던 공주의 말이 떠올랐다.
“연월기 만드는 일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대신들이 많아. 연월기가 성공하면 천한 신분 의 너희들이 벼슬에 오르게 될 테고, 그럼 자신들의 입지가 좁아질까 봐 두려워하는 거지.
 어떤 음모로 연월기 작업을 방해할지 모르니 조심해야 해. 특히 영의정 정대섭의 사람들은 각별히 조심하도록 해.”
그제야 지오는 황산사가 자신을 향해 무섭게 소리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정대섭 대감이라면 이번 일을 꼬투리 삼아 또 어떤 음모를 꾸밀지도 모를 일이었다.
천복과 장도사도 두 눈을 실룩거리며 ‘어서, 절을 올려!’라는 신호를 다급하게 보내고 있었다. 지오도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지오는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허리를 구부렸다. 그리고 무릎을 꿇어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을 했다.
“어린 것이 철없이 한 짓이니, 이번만은 용서를 하지. 허나 또다시 이런 불미스런 일이 생길 땐 목숨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야.”
그제야 정대섭 대감은 목소리를 누그러뜨렸고, 천복과 장도사는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대신들은 찬바람이 불도록 쌩하니 자리를 떴다. 그제야 천복과 장도사도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하지만 지오는 끄덕도 하질 않았다.
“되었다! 잘 참았다!”
황산사가 지오의 어깨를 토닥였지만, 지오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툭! 툭!
 지오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지오의 마음을 짐작한 듯, 황도사와 천복, 장도사도 지오를 더 채근하지 않았다. 그저 먹먹한 표정으로 하늘만 올려다볼 뿐.
 하늘엔 무심한 구름만이 유유히 흘렀다. 구름 사이로 울음 섞인 지오의 목소리도 따라 흘렀다.
“두고 봐. 꼭 연월기를 성공시킬 거야. 미래는 분명히 셈법 같은 세상이 될 거라고. 누구나 똑같이 소중하고, 누구나 똑같이 나눠 갖는 세상일 거라고. 내 눈으로 꼭 그런 세상을 보고 말 테야.”
정대섭 대감과의 일로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탓일까? 지오는 그날 이후 이틀이나 앓았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혼미한 상태에서도 지오는 황산사와 장도사가 나누는 이야기에 마음이 쓰였다.
“상감마마께서는 뭐라고 하셨소?”
“민심을 걱정하셨소. 백성이 반대하는 일을 할 수는 없다고 하셨다오.”
“해가 사라질 거란 소문에 백성들이 겁을 먹은 게지요. 연월기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인데, 대신들이 헛소문을 내어 백성들을 겁먹게 한 것이오.”
“허나 그 사실을 도성 안의 백성들에게 알려줄 방법이 없으니…….”
황산사와 장도사가 나누는 이야기가 꿈결처럼 아득했지만, 지오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덮었던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앉으며 지오가 말했다.
“해가 사라지는 일 따윈 일어나지 않아요. 그건 대신들이 만든 헛소문이잖아요. 그런데 왜 걱정을 하시는 거예요?”
장도사와 황산사가 놀란 표정으로 지오를 보았다.
“괜찮으냐? 정신이 들었어?”
이틀이나 죽은 듯이 누웠던 지오가 벌떡 일어나자, 몹시 놀란 눈치였다. 지오는 언제 앓았냐는 듯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다시 소리쳤다.
“해가 사라지는 일 따윈 일어나지 않을 거잖아요. 계획대로 연월기를 작동시키면 되잖아요.”
황산사가 믿기지 않는 말을 한 건 그때였다.
“해는 정말 사라질 것이다. 해가 사라질 거란 말은 헛소문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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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수학동아 정보

  • 진행

    장동일
  • 이향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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