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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도 거부한 수, 음수


18세기까지 서양 수학자나 지식인의 음수에 대한 생각을 들어 봤다. 그 당시 최고의 수학책을 보면 이 때까지도 수학자들은 음의 기호와 뺄셈을 혼동했다. 대수학의 아버지라 부르는 디오판토스조차도 음수를 방정식의 해로 인정하지 않았다. 좌표를 처음 생각해 냈던 근대 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도, 계산기를 만들었던 천재 수학자 파스칼도 음수를 거부했다. 수로 인정되기까지 우여곡절 인생의 주인공, 음수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자.

영상 3℃와 영하 3℃, 지상 2층과 지하 2층, 이익 500원과 손실 500원 등은 서로 같은 양이지만 그 의미는 반대다. 기준을 0으로 정하고 이보다 큰 값에 양의 부호 ‘+’, 작은 값에 음의 부호 ‘-’를 붙여 수로 간단하게 나타내면 ‘영상 3℃’는 단순히 ‘3℃’, ‘영하 2℃’는 ‘-2℃’로 나타낼 수 있다. 이와 같이 음의 부호가 붙은 수를 음수라고 한다.
 

뺄셈규칙과  덧셈규칙
 

위 네가지는 뺄셈규칙, 아래 네가지는 덧셈규칙이다. 뺄셈규칙에서는 부호가 같은 두 수 a, b는 서로 빼고(동명상감①), 부호가 다른 두 수는 서로 더한다(이명상가②). 양수가 상대가 없으면 즉 상대가 0이면, 음수가 되고(정무부지③), 음수가 상대가 없으면 양수가 된다(부무정지④). 덧셈 규칙에서는 두 수의 부호가 다르면 서로 빼고(이명상감⑤), 두 수의 부호가 같으면 서로 더한다(동명상가⑥). 양수가 상대가 없으면 양수이고(정무부지⑦), 음수가 상대가 없으면 음수가 된다(부무부지⑧).


동아시아에서 음수는 언제부터 등장했을까?
 

중국 고대 수학서 ‘구장산술’ 실제 상황에서 부딪히는 문제와 계산법이 담겨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내용은 원과 원에 내접하는 정육각형을 이용한 유휘의 원주율 계산법이다.


동아시아에서 음수가 처음 기록된 곳은 ‘구장산술’이다. 1세기 무렵 중국 황제의 명에 따라 예수(隷首)가 처음 썼다고 전해지나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오늘날 전해지는 ‘구장산술’은 총 9권으로 263년 중국 위나라의 유휘가 엮은 것이다. 놀랍게도 이 때 벌써 음수가 등장했다.

제8권 ‘방정’에서는 계산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음수가 등장한다. ‘방정’은 숫자를 네모 모양으로 늘어놓고 계산한다는 뜻이다. 요즘 말로 하면 연립일차방정식 문제를 행렬식으로 바꿔 푸는 것이다. 즉 문자 앞에 놓인 숫자와 상수를 직사각형 모양으로 배열하고 한 줄에 같은 수를 곱한 뒤 서로 다른 줄에 있는 수와 더하고 빼는 것을 반복해서 답을 구했다. 이런 과정에서 작은 수에서 큰 수를 빼는 경우가 자주 발생해 음수가 필요했다.

양수와 음수를 셈하는 방법인 ‘정부술’도 역시 제8권 ‘방정’에 나온다. 여기서 정은 양수, 부는 음수를 뜻한다. 실제로 ‘구장산술’에서는 방정을 ‘이것으로 양수와 음수가 뒤섞인 것을 다룬다’고 설명한다.

한편, 음수와 양수의 곱셈 법칙은 원나라 주세걸이 1299년에 쓴 책 ‘산학계몽’에 중국 수학의 역사에서 최초로 등장했다. 동아시아의 수학인 산학에 음수가 방정식의 계수와 문제 풀이 과정에 등장하지만, 답에는 음수인 경우가 없었다. 예를 들면, ‘산학계몽’ 하권 ‘방정정부문’의 일곱째 문제의 풀이에는 아래 왼쪽과 같은 주식 숫자들의 배열이 등장하는데, 이에 대응하는 연립방정식은 아래와 같다. 한문에서는 위에서 아래로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쓰기 때문에 이런 배열을 얻는다.
 

연립방정식


실제 계산을 할 때는 나뭇가지로 만든 보조 도구인 산대를 이용했다. 양수와 음수를 산대의 색깔로 구분해서 나타냈는데, 양수는 빨간 산대, 음수는 검은 산대다. 용돈기입장에 적자를 빨간색으로 쓰는 지금과는 반대다. 또는 일의 자리를 나타내는 산대 위에 다른 산대 하나를 비스듬히 올려놓는 방법으로 음수를 나타냈다.
 

‘신편산학계몽’은 성종때 우리 활자로 다시 펴낸 것으로 ‘산학계몽’의 개정판이다. 방정식 계산의 입문서이며 민간 수학의 대표적인 책이다. 향료·약초·귀금속 등의 거래에 관한 문제를 다루기도 했다. ‘산학계몽’ 상, 중, 하권 중 중권에 해당하며 우리나라 보물 제1217호다.


송·원 시대의 음수

960년~1367년 송·원 시대에는 산대를 그림으로 나타낸 ‘주식 숫자’가 등장했다. 산대로 표현한 수를 그대로 옮겨서 숫자 사이의 간격 없이 꼭 붙여 썼다. 0에 해당하는 빈자리는 기호 ◯으로 나타냈다. 음수는 일의 자리숫자에 빗금을 그어 나타냈다.

서양에서는 음수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현대 수학의 밑거름인 고대 그리스 수학에서 음수는 언제 수로 인정을 받았을까? 고대 그리스 수학은 대단히 높은 수준까지 발전했음에도 그리스 인들은 음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심지어 4x+20=0과 같이 해가 음수인 방정식을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현재의 수 표기법을 완성한 인도 사람들은 빚을 음수로, 재산은 양수로 나타냈다. 수학자 브라만굽타는 628년에 음수와 관련된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규칙이 포함된 책을 썼다.

음수에 관한 인도의 연구 결과는 아랍을 거쳐 유럽에도 전달됐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흘러 16~17세기에도 유럽 수학자 대부분은 음수를 수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음수를 수라고 생각하더라도 방정식의 해로는 인정하지 않았다. 방정식의 음수 해를 허구의 해 또는 거짓 해라고 불렀다.

파스칼은 0에서 4를 빼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기록했다. 파스칼과 친했던 아놀드는 신학자이자 수학자였는데, 비례식 -1:1=1:-1에 대해서 “-1이 1보다 작은 데 어떻게 큰 것에 대한 작은 것의 비가 작은 것에 대한 큰 것의 비와 같을 수 있는가?”라면서 음수의 문제점을 제기했다.
 


음수는 답으로 인정할 수 없다!

‘산술’은 250년경에 활동한 고대 그리스 알렉산드리아 수학자 디오판토스의 저서다. 방정식 문제 150여 개가 담긴 일종의 문제집이다. 디오판토스는 정·부정방정식의 해를 구하는 내용을 실어 총 13권으로 엮었으나 6권만 전해져 온다. 특히 부정방정식 풀이에 중점을 둬 그 풀이법을 디오판토스의 해석이라 부르기도 한다. 부정방정식은 찾고자 하는 변수가 주어진 방정식의 개수보다 많아, 해가 없거나 무수히 많다. 따라서 주어진 방정식을 만족시키는 모든 정수해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디오판토스는 방정식의 해가 음수가 될 경우에는 답이 없는 것으로 취급했고, 해가 무수히 많은 부정방정식도 한 가지 방법으로만 풀었다. 숫자 0의 역할, 양수와 음수의 계산 방법 등도 설명돼 있다. 이 책은 1621년 라틴어로 번역됐다.

음수 곱하기 음수는 양수

‘두 음수의 곱은 양수다’는 설명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일상생활과 수학적 개념을 연관짓다 보면 종종 모순적인 결론에 이른다. 이를 테면, 음수를 처음 발견한 당시 ‘-500×-500=2500을 500원의 빚과 500원의 빚의 곱은 2500원의이익이다’라고 해석하는 등 뛰어난 수학자도 음수 개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지금 ‘음수 곱하기 음수는 양수’는 수학적으로 증명 가능한 참인 명제다. 수직선을 이용하면 설명이 쉽다. -2와 -2의 곱은 -2의 반대 방향으로 2칸씩 두 번 뛰어가면 2를 두 번 더한 것과 같으므로 결과는 4다.더 쉽게 설명하는 방법도 있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이사오고 이사 가는 어떤 마을을 상상해 보자. 좋은 사람은 +이고 나쁜 사람은 -이며, 이사 오는 것은 +이고 이사 가는 것은 -다. 이 때, 좋은 사람이 이사 오는 것은 그 마을에는 +이고, 좋은 사람이 마을을 떠나는 것은 -다. 또, 나쁜 사람이 이사 오는 것은 -이고, 나쁜 사람이 마을을 떠나는 것은 +다.

2009년 10월 수학동아 정보

  • 허민 수학과 교수
  • 진행

    이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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