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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꿈꾸는 삐에로

서울교육대학교 배종수 교수

노벨상 꿈꾸는 삐에로^서울교육대학교 배종수 교수


수학으로 생명을 살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삐에로 복장을 입고 무언극으로 수학을 가르치는 강의로 유명한 배종수 교수다. 실제로 그의 강의를 들어 보면 언제나 생명력이 넘친다. 직접 찾아가 배종수 교수의 교육 철학에 대해 들어 보았다.


"인터뷰하기 전에 먼저 이걸 좀 보세요."

연구실에서 만난 배 교수는 불쑥 수학 문제가 적혀 있는 종이 한 장을 내밀며 오히려 질문을 던졌다. 얼떨결에 받아 든 종이에는 예전 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보지 못했던 유형의 수학 문제가 적혀 있었는데….

'2+7=9에 알맞은 문장을 만들어 보세요.'

'21÷3=7인 이유를 여러 가지로 설명해 보세요.'

이게 도대체 무슨 수학 문제인가 의아해하고 있을 때 배 교수가 입을 열었다.

"우리나라 수학 교육의 문제점은 기능만을 가르치고 있다는 겁니다. 중학교에서 함수값을 구하건, 고등학교에서 미분값을 구하건 그게 무슨 상황인지를 알아야죠.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그게 어떤 상황인지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단순 계산법만 가르치고 있어요. 그래서 앞으로는 이렇게 물어야 해요. 답을 구하고 계산하게만 하는 게 아니라 문제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겁니다."

아직 질문을 하지도 않았는데 배 교수의 입에서는 현재 우리나라의 수학 교육에 대한 문제점과 해결 방안이 술술 흘러나왔다.

"문제를 하나 풀어 보세요. 3 나누기 2분의 1은 무엇입니까?"

'6'이라는 대답에 배 교수는 '왜?'라고 물었다. 뒤이어 '분수의 나눗셈은 역수를 곱하면 된다'는 교과서적인 대답이 나오자 그는 고개를 설레절레 저었다.

"분수의 나눗셈은 역수를 곱하면 된다는 건 방법일 뿐이죠. 답이 왜 6인지를 밝히는 과정이 논리적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사과가 세 개 있는데 반쪽짜리를 여섯 번 빼면 다 없어진다거나, 좀 더 나아가서 3에서 2분의 1을 여섯 번 빼면 다 없어진다거나. 이런 논리적인 과정이 있어야지요."


서울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7년 동안 초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한 배 교수는 현장 경험을 통해 우리나라 수학 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학 교육을 정상화시키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 공부하기 시작한 그는 1984년 모교인 서울교육대학교에 부임했다. 그 뒤 제5차 교과서 편찬 책임교수로 활동했고, 지난 2000년에는 제7차 교과서 편찬위원장을 맡았다. 그 결과 현재 쓰이고 있는 교과서에는 배 교수의 철학이 반영된 문제가 담겨 있다.

"저는 강의를 적당히 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청중이 몇 명이든. 나로 인해 우리나라의 수학 교육이 확실하게 변한다는 생각으로 강의를 즐겼습니다. 그러면 듣는 사람들도 즐겨요. 열심히 하는 사람은 진정으로 즐기는 사람을 못 따라갑니다. 수학도 마찬가지예요. 수학을 열심히 하는 어린이는 수학을 즐기는 어린이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오늘날의 배 교수를 있게 한 것은 초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이 건넨 한 마디였다. 이유는 생각이 나지 않지만 담임선생님이 당시 학생이던 배 교수를 '수학 박사'라고 불렀던 것이다
.
"선생님의 말을 듣자 '그래, 나는 수학 박사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말을 계기로 수학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지요. 그런데 나중에 어른이 된 뒤에 선생님을 만나 보니 선생님께서는 그런 말씀을 하신 것도 기억 못 하시더라고요. 허허."
 

미국 신문에 실린 배종수 교수의 기사



배 교수는 삐에로 복장과 무언극을 이용한 독특한 강의로 잘 알려져 있다. 삐에로 복장을 어떻게 생각해 냈냐는 질문에 그는 논리성과 창의성을 길러 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중에 마침 집에 있던 삐에로 복장이 떠올랐다고 했다. 그래서 삐에로 복장을 하고 강의를 시작했는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이다.

"삐에로 복장을 하면 아이들이 집중하게 됩니다. 그러면 저는 무언극으로 상황을 보여 주죠."

배 교수는 이야기하던 중간에 막대 사탕 몇 개를 들고 강연 중에 하던 무언극을 잠시 보여 주었다. 먼저 막대 사탕 두 개를 꿀꺽 삼키는 시늉을 한 뒤에 다시 두 개를 더 삼키는 시늉을 했다.

"이렇게 행동으로만 수학 문제의 상황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그 상황이 무슨 뜻이었는지를 묻죠. 직접 설명을 안 해 주니까 오히려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수학을 즐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아이들이 즐겁게 수학을 공부하도록 설득할 수 있을까? 배 교수는 수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로 두 가지를 들었다.

"수학을 공부하는 첫 번째 이유는 논리성과 창의성을 기르기 위해서입니다. 살면서 부딪치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려면 논리성과 창의성이 필요한데, 수학만큼 이걸 기르는 데 좋은 과목이 없습니다. 이건 수학의 고귀한 목표지요. 두 번째로, 수학은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되며 생활 구석구석에 쓰입니다. 수학자들이 만든 컴퓨터가 좋은 사례지요."

인터뷰 내내 배 교수가 강조한 것은 수학에 이런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걸 알아야 수학을 공부할 이유가 생긴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수학의 중요성을 알고 공부하도록 만들려면 전문가들이 수학의 가치를 알려 줘야 합니다. 좋은 대학교에 가려면 해야 한다? 이런 말은 어린이들에게는 통하지 않습니다. 수학이 어떤 면에서 굉장히 중요하고 수학을 함으로써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잘 알려 줘야 합니다. 어디에 쓰이는지도 모르고 수학을 배운다면 그건 수학이 아닙니다. 단지 문제 풀이일 뿐이죠."
 

방학을 맞아 현직 초등학교 교사들이 배종수 교수의 강의를 듣고 있다. 그의 강의는 언제나처럼 활기가 넘친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배 교수는 자신이 쓴 책 '생명을 살리는 수학'을 보여 주었다. 이 책은 영문판으로도 나와 있다. 그는 조만간 미국에서도 출판사를 세워 자신의 교육 방법이 담긴 책을 출판할 예정이다. 그런데 수학이 생명을 살린다는 표현은 과장이 아닐까? 하지만 배 교수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
"과장이 아닙니다. 전 수학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살릴 수 있고, 마음을 살리는 것이 곧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이걸로 장차 노벨 평화상을 받는 게 꿈이지요."

배 교수는 지금도 전국의 초등학교를 찾아다니며 학생, 학부모, 선생님을 대상으로 공개강연을 열고 있다. 수학 교육 정상화를 위한 시민운동도 이끌고 있다. 연구와 시민운동으로 바쁜 일정 속에서도 언제나 수학 교육의 미래에 대한 고민만큼은 한결같다. 언젠가는 '생명을 살리는 수학'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겠다는 그의 꿈이 꼭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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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9월 수학동아 정보

  • 고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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