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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의 발견 숫자 가문의 영광

 

0의 발견 숫자 가문의 영광



여기는 17세기 조선시대 과거 시험장. 딩~ 하는 징소리와 함께 문제가 발표됐다.

시험장에 모인 선비들은 한지 위에 문제를 단숨에 써 내려갔다. ‘六千七百八十九(육천 칠백 팔십 구), 三千四百五十(삼천 사백 오십)’. 이어서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덧셈과 곱셈을 하려다가 잠시 머뭇거린다. 어떤 선비는 쉽지 않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자리를 맞춰 덧셈을 해냈다. 그 다음 곱셈을 해결하려는 순간! 머리에서 식은땀이 나오기 시작하고 도무지 풀 수가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덧셈부터 막막해 하는 선비도 보인다. 이런! 조선에 수학 꽤나 한다는 선비들이 다 모여도 덧셈과 곱셈을 못하다니! 

 

0의 발견 숫자 가문의 영광



현재 우리는 오른쪽부터 차례로 일, 십, 백, 천, 만 등의 자리를 정하고 여기에 열 개의 숫자 0, 1, 2, 3, 4, 5, 6, 7, 8, 9를 알맞게 배열해서 수를 나타내고 있다. 아무리 큰 수라도 알기 쉽고 간단히 나타낼 수 있다. 이런 ‘자릿값 기수법’또는 ‘위치 기수법’은 인도에서 서기 800년경에 완성돼, 아랍을 거쳐 유럽으로 그리고 전 세계로 보급됐다. 그래서 이것을 인도·아라비아 수 체계라고 한다.

지금처럼 인도·아라비아 수 체계로 수를 간편하게 나타내거나 여러 가지 계산을 종이 위에서 간편하게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자릿값 기수법이 들어오면서부터다. 그리고 자릿값 기수법은 숫자 가문의 늦둥이 ‘0’의 발견으로 등장했다.

아직 숫자 0이 우리나라에 들어오지 않았던 100년 전만 해도 우리 조상은 23,045를 ‘二萬三千四十五(이만 삼천 사십 오)’라고 적었다. 더 큰 수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億(억), 兆(조)와 같은 또 다른 한자를 써야 했다.

그렇다면 0은 누가 발견했을까? 언제, 누가 0을 발견했는지 정확히 알수는 없지만 학자들은 6세기경부터 인도에서 0이 발견돼 자릿값 기수법을 사용했다고 추측하고 있다. 인도·아라비아 수 체계를 흔히 아라비아숫자라고도 하는데 그 이유는 아라비아인들이 인도에서 들여온 자릿값 기수법을 유럽과 전 세계에 전파했기 때문이다.
 
0이 발견되기 이전에는 다른 나라 사람도 셈을 종이 위에 직접 하기가 쉽지 않았다. 수를 나타낼 때는 위와 같이 한자 또는 알파벳을 이용했지만 계산할 때는 별도의 보조 도구를 이용했다. 

동아시아에서는 수천 년 전부터 대나무 등으로 만든 ‘산대’ 또는 ‘산가지’ 를 계산 보조 도구로 이용했다. 막대를 가로 또는 세로로 놓으면서 숫자를 만들어 내고 계산하는 것이다. 아래와 같이 일, 백, 만 등의 자리에서는 세로로 놓은 산가지 하나가 1을 나타내고 가로로 놓은 산가지는 5를 나타낸다. 반면에 십, 천, 십만 자리에서는 이것이 반대다.
 

산가지



산가지로 세 수 6437과 8201 및 7610을 나타내면 차례로 그림과 같다.
 

산가지로 나타낸 6437, 8201, 7610



이렇게 산가지로 수를 나타내고 이리저리 움직여서 계산도 했다. 중국에서는 15세기 중반까지, 우리나라에서는 19세기까지 계산에 산가지를 이용했다. 그 뒤 주판이 사용됐는데, 이는 서양에서 전해 들어왔다. 중동과 서양에서는 옛날부터 계산을 할 때 주판을 사용했다. 산대와 주판으로 수를 나타내는 방법이 인도·아라비아 수 체계와 본질적으로 같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산가지에서 빈자리와 주판에서 움직임이 전혀 없는 자리를 나타내기 위한 적절한 기호, 이를테면 ○와 같은 기호를 누구나 자연스럽게 생각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수를 ‘234○, 2○34, 23○4’와 같이 간편하게 쓸 수 있었다. 학자들 사이에서는 인도 사람들이 주판을 이용하면서 ○기호와 비슷한 0을 발견했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
 

주판



이렇게 숫자 0은 빈자리를 채워 수를 간편하게 나타내 주고 계산을 손쉽게 해 줬다. 따라서 사람들은 큰 수를 다루며 과학문명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0의 발견이 엄청나게 중요한 이유다. 또, 그 어떤 언어보다도 가장 많은 나라에서 함께 쓰고 있다는 점에서 자릿값 기수법은 매우 효율적인 수 체계다. 

서양에서는 자릿값 기수법이 도입되고 얼마 뒤 주판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한다. 지금 우리처럼 여유롭게 종이 위에다 직접 셈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숫자 0 덕택이다. 오늘 이후, 숫자 0이 조금은 새로워 보일 것이다.


불편함을 해결한 인도인의 지혜

인도인들이 ‘0’을 발견하게 된 계기는 자릿값 기수법의 필요성을 인식한 뒤부터다. 인도인들이 자릿값 기수법을 생각해 내는 데는 수를 읽는 방법이 불편했다는 점이 한몫 했다. 예를 들어, 인도에서는 3,694,666,976을 ‘3파드마스6비알푸다스9코티스4프류타스6락사스6아유타스6사하스라9시아타7다샨6’이라고 읽었다. ‘36억 9466만 6976’이라고 읽는 우리나라 방법보다 훨씬 복잡하다. 자릿값 기수법으로 이 수를 읽으려면 결국 0처럼 빈자리를 나타내는 말이 자연스럽게 필요했을 것이다.


기호 ‘0’은 어디에서 처음 발견됐을까?

인도보다 더 빨리 ‘0’을 발견한 사람들이 있었다. 첫 번째는 기원전 3세기에 멕시코 남부와 과테말라의 마야문명이다. 마야인은 독자적으로 ‘비어 있음’을 뜻하는 표시로 굴껍데기를 사용했다고 한다. 모양이 눈처럼 둥그런 것이 꼭 0을 닮았다.

또 기원전 2세기경 바빌로니아인은 60진법을 이용해 자릿값 기수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들이 만든 달력을 보면 0에 해당하는 기호를 썼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두 곳에서 발견된 0을 의미하는 기호는 단순히 빈 자리를 나타내는 표시에 그쳤고 다음 세대나 다른 문명에 전해지지 못했다. 결국, 이들은 수학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이다. 마야인이나 바빌로니아인이 먼저 0이란 개념을 생각해 냈더라도 숫자로서 0을 쓴 것은 바로 인도인이다. 인도인들은 이로부터 새로운 계산법을 발명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0을 발견한 영예는 인도인에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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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9월 수학동아 정보

  • 허민 교수
  • 진행

    이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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