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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잡터뷰] 국내 1호 해양 보전 수의사, 이영란

반려동물이 아프면 동물병원에 가는 것처럼, 고래 같은 해양 동물도 아프면 치료를 해야 해요. 특히 해양 동물은 바닷속 환경이 어떤지 알려주는 중요한 메시지를 몸에 담고 있어, 죽고 나서도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죠. 
국내 1호 고래 부검의 이영란 수의사를 만났습니다.

 

 

고래가 좋아 전 세계 바다를 찾아다니며 다이빙했다. 고래와 함께 있는 수의사가 되기 위해 직업을 개척했다.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자


“저는 아마 전생에 고래였을 수도 있어요.”


3월 25일, 서울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이영란 수의사가 말했어요. 이 수의사는 해양 동물을 전문으로 치료하는 수의사예요. 동시에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에서 고래의 죽음 원인을 밝히고 연구한 우리나라 최초의 고래 부검의이기도 하죠. 


이 수의사는 수의학과를 졸업한 뒤 9년 동안 동물병원에서 임상 수의사로 일하다, 줄곧 동경하던 해양 동물 전문 수의사가 되기 위해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에 직접 문을 두드렸어요. 수의사를 따로 채용하고 있지 않았던 고래연구소는 비정규직 연구보조원 자리를 제시했어요. 


이 수의사는 “내가 고래연구소를 찾아가 일을 하게 해달라고 한 거니까 시간이 지나도 내 자리가 생기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고 말했어요. 이어 “두려운 마음은 너무 작고, 고래 가까이서 일하고 싶다는 마음은 너무 커서 두려움을 무시할 수 있었다”고 웃으며 회상했어요. 


좋아하는 일을 시작했지만, 막상 고래 부검은 결코 쉽지 않았어요. 부검할 장비도, 고래 부검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가진 동료 수의사도 없었죠. 이 수의사는 부검대가 없어 큰돌고래 사체를 연구소 바닥에 눕히고 미국 해양대기청에서 내려받은 매뉴얼을 자료 삼아 공부했어요. 


이후 이 수의사는 고래 부검 연구가 활발한 일본과 미국을 오가며 적극적으로 부검 기술을 배웠어요. 그리고 2022년, 우리나라에도 해양환경 보전을 위한 수의학 연구를 하는 기관을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공익법인 ‘플랜오션’을 설립했죠.

 

“바다는 인간과 생물이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에요.”

 

 

Q.해양 동물 수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계기는요?

동물병원에서 일하다 어느 순간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일이 맞나?’ 하는 생각이 맴돌았어요. 답을 내리지 못하고 계속 고민하던 때에 스쿠버 다이빙을 시작했는데, 고작 5m 깊이의 수영장에 들어갔는데도 너무 좋았어요. 원래 바다와 해양 생물에 대한 동경이 있었는데, 이게 정말 잘 맞았던 거죠. 결국 재미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결심이 서면서 해양 동물 수의사 자리를 찾기 시작했어요.

 

Q.고래 부검은 왜 하는 건가요?

고래 부검은 크게 세 가지 이유로 실시됩니다. 첫째는 고래가 왜 죽었는지 정확한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해서예요. 또 부검을 하면, 생명체의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DNA를 분석해 죽은 고래가 어떤 개체인지, 어떤 종인지 알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죽은 고래의 몸을 통해 바다 환경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도 부검을 해요. 예를 들어, 고래의 위장에서 플라스틱 쓰레기가 발견된다면 바다의 오염 수준을 파악할 수 있고, 질병이 발견된다면 그 질병이 사람에게도 전염될 가능성이 있는지 등을 분석할 수 있어요.

 

Q.Q우리나라에서 고래가 많이 죽는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공식적인 통계자료는 아니고요, 제 경험에 비추어 말씀드리자면 부검했던 고래 대부분이 어업 활동에 쓰이는 그물에 걸려 익사했어요. 포유류인 고래는 물밖에서 숨을 쉬어야 하는데 그물에 걸려 물밖으로 가지 못해 죽은 거예요. 이걸 혼획이라고 해요. 호기심이 많은 어린 개체가 걸리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아요. 국립수산과학원에서는 고래가 싫어하는 소리를 내거나 고래 몸에 잘 감기지 않는 줄 같은 기술을 개발하고 있어요. 하지만 기술이 있어도 쓰지 않으면 소용없으니 사회적인 인식 개선이 필요해요.

 

Q.해외 연구기관에서 일하며 바다를 바라보는 관점에 새로운 시각이 생겼다고요?

2017년 고래 구조와 치료 기술을 배우기 위해 미국 해양포유류센터에 갔어요. 그런데 막상 가 보니 그건 일부에 불과했어요. 실제로는 바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기록하고, 그 데이터를 분석해서 정부의 환경정책에 반영하는 일이 주된 업무더라고요. 해양 동물 한 마리를 치료하는 것을 넘어, 바다 생태계 전체를 지키려면 연구자로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계기가 됐어요.

 

 

Q.해양 생태계를 보전하는 데 고래 부검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요?

해양 동물들이 왜 죽었는지 알면, 과학적 데이터를 근거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정책을 제안할 수 있어요. 바다가 어떤 위험에 처해있는지 분석해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사람들에게 알리는 거예요.  예를 들어 그물에 걸려 죽은 해양 동물이 많다면, 무분별한 혼획이 발생하지 않도록 어업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고, 플라스틱을 먹고 죽은 해양 동물이 많다면 플라스틱 생산 자체를 줄여야 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거죠. 또 연구 결과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교육 및 홍보함으로써 시민과 기업, 전문가에게 바다를 함께 지켜나가자는 공감대를 만들고 싶어요. 사람과 해양 동물이 함께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바다를 만들기 위해서요.

 

수의사로서, 다이버로서, 수의학과 겸임교수로서, 플랜오션의 대표로서 다양한 직업을 갖고 살아가는 이영란 수의사에게 가장 자신을 잘 나타내는 정체성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해양 보전 수의사라고 불리고 싶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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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15일 어린이과학동아(8호) 정보

  • 박현선
  • 디자인

    최은영
  • 사진

    플랜오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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