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도 열심히, 노는 것도 열심히 하는 나 일리는 요즘 더없이 알찬 일상을 보내고 있어. 휴식 시간이 되면 스마트폰으로 나만의 영상을 편집해 공유하고 있지. 그런데 내가 사실 일을 한 거라고?
‘그림자 노동’이 무엇인가요?
스마트기기로 게임을 하거나, 메신저로 친구들과 이야기하거나, 또 영상을 보면서 여가 시간을 보내는 활동이 사실은 놀이가 아니라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 해본 적 있나요? 디지털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기업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을 ‘디지털 그림자 노동’이라고 해요.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요?
‘그림자 노동’은 보상을 받지 않고 자신도 모르게 하게 되는 일을 말해요. 어떤 일을 하면 원래 그에 대한 대가를 받지만, 때로는 보상을 받지 않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하게 되는 일도 있어요. 예를 들어 자신이 직접 청소하지 않는데 깨끗한 방에서 생활한다거나 요리할 줄 모르는데 맛있는 식사를 누리고 있다면, 거기엔 나 이외의 가족이 보이지 않는 일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요. 이것이 ‘그림자 노동’이지요.
그런데 이러한 그림자 노동이 디지털 세계에서도 일어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유튜브에서 영상을 보고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달고, 광고를 보는 것이 모두 그림자 노동의 한 형태예요. 이용자가 콘텐츠를 소비하고 반응을 남기면, 기업은 이를 이용해 알고리즘을 더 효과적으로 만들고 수정해요. 그러면 더 많은 사용자에게 서비스가 추천되고, 기업은 더 많은 이익을 얻게 되지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틱톡 등 수많은 소셜미디어가 직접 사용료를 받지 않으면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유예요.
그밖에도 무료라고 생각했던 많은 앱 역시 다양한 방법으로 이용자들의 그림자 노동을 유도해요. 예를 들어 무료 영상 편집 앱을 사용하면 내가 만든 영상에 기업의 로고가 붙어요. 기업 대신 이용자가 광고 일을 하도록 만든 거랍니다.
그림자 노동 당하지 않으려면?
디지털 그림자 노동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곳곳에 스며들어 있어요. 예를 들어 온라인 주문 서비스는 편리해 보이지만, 이용자가 스스로 주문부터 결제까지 모든 일을 스스로 처리하게 만들어요. 그리고 실제로 그 일을 해야 하는 직원의 수를 줄이고 있지요. 요즘 많이 늘어나는 무인 가게, 영화관이나 놀이공원에서 쓰이는 다양한 예매 시스템도 마찬가지예요.
디지털 그림자 노동의 문제는 이용자가 일을 하고 있다는 인식조차 없이 기업에 이익을 제공한다는 점이에요. 우리는 스마트폰을 가지고 놀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기업을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있는 거지요.
기업 대신 일한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면서도 많은 시간을 쏟는 경우도 있어요. 팬덤 활동을 할 때 좋아하는 가수가 상을 받을 수 있게 링크를 끊임없이 공유하며 열심히 투표하거나, 뮤직비디오 같은 특정 영상을 반복 스트리밍해서 순위를 올리는 행동 등이 이에 해당해요.
팬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아이돌과 기획사의 수익을 위한 노동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그럼에도 좋아하는 가수가 다른 가수에게 밀릴까 봐 자발적으로 스트리밍이나 투표를 하지요. 시상식이 많은 연말이 되면 X나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에 특정 해시태그가 달린 홍보글이 경쟁하듯 올라와요. 이런 서비스는 대부분 중복 참여가 가능해 투표 기간 피로감을 느끼는 팬들이 많아요.
그렇다면 이용자가 스스로 하는 일이라면 디지털 그림자 노동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걸까요? 일을 한 사람에게 적절한 보상을 하지 않고,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지도 않은 채 점점 더 많은 일을 시키는 것은 개인의 권리를 해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어요. 심지어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하는 디지털 그림자 노동은 법적 보호의 사각에 놓일 수 있지요. 또 이용자가 더 많은 시간을 미디어에 쓰도록 설계되어 있어, 자칫 미디어에 빠져 시간을 낭비하게 될 수도 있어요.
물론 디지털 미디어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에요. 다 함께 디지털 미디어 세계의 자원과 환경을 만들어 간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어요. 일이란 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요.
하지만 디지털 미디어 활동을 할 때 우리의 권리와 보상이 어디로 가는지, 또 나의 미디어 활동이 실은 일하는 시간을 늘리기 위한 설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면, 디지털 세상을 더 건강하게 누릴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