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삑삑, 39℃’. 아이들과 스키장에 놀러 간 날이었습니다. 스키장 입구의 온도측정기 앞에 서자 이런 무시무시한 숫자가 나왔지요. 아이들이 혹여 코로나19에 걸렸을까 봐 크게 놀랐어요. 조금 기다렸다가 다시 찍었더니, 휴! 36.5℃로 정상 체온이 나왔답니다.
빛을 보면 온도도 보인다!
코로나19의 대표적인 증상은 평소보다 높은 열이에요. 학교에서도 누가 감염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체온을 측정하는 온도측정기를 설치했죠. 귀에 직접 끝을 대서 체온을 재는 평범한 체온계와는 달리, 온도측정기는 신체 부위에 직접 대지 않아도 체온을 잴 수 있어요.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사람은 모두 바깥으로 빛을 내뿜고 있거든요. 온도측정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이 빛을 감지해요. 그리고 빛이 주기적으로 움직이는 길이인 파장의 범위, 스펙트럼을 재서 온도를 확인합니다.

온도를 가진 물체는 바깥으로 빛을 내뿜어요. 이러한 현상을 ‘흑체복사’라고 합니다. 흑체는 모든 빛을 완전하게 흡수한 뒤 완전하게 방출하는 물질이에요. 완벽한 흑체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흑체와 비슷한 성질을 갖는 물체는 많아요.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태양이죠. 복사는 바깥으로 빛을 내뿜는 것을 뜻해요. 그래서 ‘흑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을 흑체복사라고 합니다.
과학자들은 흑체복사가 물체의 성질이 아닌 온도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아냈어요. 나무 공과 쇠 공이 똑같은 온도로 달구어졌을 때, 두 공이 내뿜는 빛의 스펙트럼은 똑같아요. 따라서 어떤 물체의 온도가 얼마인지 정확히 알면, 이 물체가 내뿜는 빛의 파장의 양상, 즉 흑체복사 스펙트럼의 모양도 정확히 알 수 있어요.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죠. 온도측정기는 이러한 원리를 통해 멀리서도 사람의 몸이 내뿜는 빛의 파장을 분석하고, 그 온도인 체온을 바로 나타낸답니다.

따끈따끈한 우주? 우주배경복사!
그런데 열이 나서 흑체복사를 내뿜는 건 사람뿐만이 아니에요. 우리 우주 전체가 매 순간 흑체복사를 내뿜고 있죠.
1964년, 미국의 천문학자 아노 펜지아스와 로버트 윌슨은 전파망원경을 이용해서 다른 관측기기로부터 오는 약한 신호를 잡아내는 일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망원경을 이리저리 조정하던 중, 아무리 노력해도 사라지지 않는 잡음을 발견했죠.
처음에는 당시 미국과 사이가 좋지 않던 소련(지금의 러시아)에서 비밀 신호를 보낸 것으로 의심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조사를 계속해 보니, 이 잡음은 우리은하 바깥 쪽의 우주에서 오고 있었어요. 또, 하늘 어느 방향에서든 똑같이 오며 일정한 흑체복사 스펙트럼을 보였죠. 이것을 우주배경복사라고 해요. 우주배경복사는 우주에 생긴 최초의 빛으로, 우주 전체를 가득 채우며 고르게 퍼져 있습니다.
우주배경복사의 스펙트럼을 분석해서 알아낸 우주의 온도는 영하 270℃였어요.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온도인 절대영도보다 겨우 2.7℃ 높죠. 하지만 과학자들은 우주배경복사가 처음 우주에서 만들어졌을 때는 약 4000℃의 빛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우주 전체의 크기가 계속 늘어나면서 빛의 온도가 떨어진 거예요.
오늘날 과학자들은 우주배경복사가 빅뱅 이후 약 38만 년이 지났을 때 일어났다는 사실과, 이후 138억 년이 지나는 동안 우주의 크기가 약 1100배 늘어났다는 사실을 밝혀냈어요. 우주배경복사를 자세히 연구하면 이처럼 우주의 역사에 대한 많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우리 아이들의 열을 걱정했듯, 여러분에게 심한 열이 난다면 주변 사람들이 크게 걱정할 거예요. 하지만 옛날에 난 우리 우주의 열은 우리가 우주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줬죠. 우주의 열도 이제는 많이 식었으니, 여러분은 우주를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필자소개
홍성욱(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한국천문연구원에서 우주론과 외계생명 등을 연구하는 천문학자로, 우주의 가장 큰 구조물인 우주거대구조를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인공지능을 이용해 연구하고 있다. 현재 한국천문연구원 이론천문센터의 책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