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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B터뷰] 다친 문화재, 진단부터 치료까지....이태종 문화재보존가

    지난해 12월 경복궁 서십자각 터 주변 담벼락에 커다란 스프레이 낙서가 생겼어요. 문화재보존가들이 빠르게 복구한 덕분에 담벼락은 다행히 8일 만에 원래 모습을 되찾았죠. 훼손된 문화재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문화재 의사’ 이태종 문화재보존가를 1월 23일 국립문화재연구원에서 만났습니다.

     

    급박했던 현장, 과학의 힘으로 극복?

     

    “낙서로 인한 생채기는 몇백 년이 지나도 남습니다. 다시 일어나선 안 될 안타까운 일이죠.”

     

    경복궁 담벼락에 생긴 낙서를 지우기 위해 달려갔던 이태종 문화재보존가는 그때의 심정을 전했습니다. 돌로 만들어진 석재 문화재를 연구하는 이 문화재보존가는 당시 낙서 제거 팀을 이끌었어요.

     

    “급히 꾸려진 팀을 이끌고 낙서 현장에 도착했을 땐 막막했습니다. 스프레이 같은 얼룩을 지울 때는 주로 화학 반응을 이용하는데, 당시 기온이 영하여서 화학 반응을 쓸 수 없었거든요. 차선책으로 레이저 제거기를 투입했어요. 석재로 된 담벼락에는 손상을 가하지 않고 스프레이만 제거할 수 있는 레이저 주파수를 찾은 뒤, 작업자들이 일일이 손으로 낙서를 다 지워냈습니다. 8일간 총 234명이 투입된 고된 작업이었어요.”

     

    경복궁 담벼락은 1월 4일 낙서가 제거된 모습으로 공개됐습니다. 이 문화재보존가는 과학의 힘 덕분에 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 설명했어요.

     

    “옷에 튄 음식 얼룩처럼 낙서도 오래 놔두면 지우기가 까다로워져요. 다행히 최신 레이저 장비는 오염물만 지울 수 있도록 다양한 파장을 끊김 없이 분사할 수 있지요. 하지만 아무리 잘 복원해도 흔적이 남을 수밖에 없어요.”

     

    이처럼 문화재를 보존하는 일에는 과학이 빠질 수 없다는데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Q&A 궁금해요

    “의학의 힘으로 환자를 치료하듯, 과학의 힘으로 문화재를 수리해요”

     

    Q문화재보존가는 어떤 일을 하나요?

    국립문화재연구원은 세 부서로 나뉘어요. 문화재의 상태를 진단하는 보존과학연구실, 문화재 재료를 연구하는 복원기술연구실, 그리고 문화재를 수리하는 문화재보존과학센터가 있죠. 문화재 재질에 따라서도 팀이 나뉩니다. 의류를 연구하는 직물 팀, 실록을 연구하는 지류 팀 등이 있어요. 저는 석재 팀이에요. 금속 소재와 목재 장식이 함께 있는 복합 유물의 경우는 금속 팀과 목재 팀이 같이 연구한답니다.

     

    Q가장 기억에 남는 문화재가 있나요?

    625 전쟁 때 1만 조각 이상으로 부서진 지광국사탑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1957년에 시멘트로 복원됐지만 당시 복원 기술이 미흡해 시멘트에 균열이 갔어요. 2016년 제가 속한 석재 팀이 최신 과학 기술을 이용해 다시 복원했죠. 5년 넘게 복원 과정을 거쳤고, 지광국사탑은 올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고된 작업이었지만, 문화재 보존에 뛰어든 이후 20년 동안 가장 보람된 문화재였어요.

     

    Q5년이요? 정말 오래 걸렸네요.

    문화재 복원은 레고를 조립하는 것과 비슷해요. 부서지고 손상된 부분을 레고 조립하듯 끼워 넣어야 하거든요. 하지만 완성품이 어떤 모양인지 아는 레고와 달리 문화재는 원래 모습을 알 수 없다는 점이 가장 어렵습니다. 지광국사탑을 복원할 때, 일제강점기 시절 남은 흑백 사진과 도면을 최대한 참고했어요. 전국을 뒤져서 탑에 쓰인 석재와 비슷한 돌을 찾고, 세세하게 다듬었죠. 이후엔 표면에 묻은 오염물을 없애고, 군데군데 균열로 빈 부분은 주사기로 접착제를 채워 넣었어요. 복원한 부분이 원래 재료와 어우러지도록 미술 작업을 마치면 복원이 마무리됩니다.

     

    Q문화재 보존에 있어 과학의 역할이 중요한가요?

    문화재를 분석할 때 다양한 과학 장비가 쓰입니다. X선을 이용해 눈에 보이지 않는 오물을 찾아내는가 하면, 초음파를 쏘아 건축물 내부 중 어디가 부실한지 판단하는 일도 모두 과학을 통해서 알아내는 거죠. 3D 프린터도 활발히 사용됩니다. 문화재는 참고할 만한 견본이 없기 때문에 3D 프린터로 실제 크기와 동일한 견본을 만들어요. 지광국사탑 복원 때도 마찬가지였죠.

     

    Q문화재는 최근의 기후 위기에 괜찮나요?

    제가 다루는 석재는 극한 환경에 큰 영향은 안 받는 편입니다. 다만 산사태나 태풍이 잦아지면 물리적 타격을 입을 수도 있고, 퇴적암 건축물은 기온의 급격한 차이로 손상을 입는 경우가 있어요. 반면 목조는 환경 변화에 취약해요. 나무를 갉아먹는 흰개미는 추워지면 활동이 뜸한데, 기후 위기로 겨울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지요. 변화하는 기후에 대응하기 위한 연구도 꾸준히 하고 있답니다.

     

    Q문화재보존가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가요?

    제가 속한 문화재보존과학센터의 처음 명칭이 문화재종합병원이었어요. 우리에게 오는 문화재는 손상된 상태니까 문화재를 치료해준다는 의미에서 붙은 별명이었죠. 사람이 아닌 문화재를 치료하는 의사인 셈입니다. 다만 저희는 문화재에 지나치게 손을 대기보다는 후대에 온전하게 물려줄 수 있는 정도로만 작업해요. 지광국사탑도 지금 보면 부실한 점이 있는 것처럼 다음 세대에 더 좋은 재료나 기술이 나올 수 있으니까요. 문화재 속 켜켜이 쌓여온 역사의 흔적을 볼 수 있는 점도 이 직업의 매력이에요.

     

    Q어린이 독자에게 한 마디 해줄 말이 있다면요?

    문화재는 역사를 대변합니다. 저희가 하는 일은 모두 역사에 기록되지요. 여러 세대를 거치며 교과서에서 보던 문화재를 후대에 온전하게 보존하고 물려준다는 생각을 하면 무척 뿌듯한 직업이에요. 문화재 보존에는 수학, 과학이 많이 쓰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문화유산에 대한 애정도 중요해요. 역사에서 출발해 과학 지식을 덧입히는 거죠. 저처럼 석재에 관심이 있으면 지구과학을, 문화재 오염물 처리에 관심 있다면 화학에 관심을 기울여 보는 걸 추천합니다.

     

    2024년 2월 15일 어린이과학동아(4호) 정보

    • 박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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