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에버랜드 주토피아기획그룹의 송혜경입니다. 최근 우동수비대 3기가 시작됐어요! 그래서 이번 호부터 15일 자마다 행복한 동물원이란 무엇인지 소개하려고 합니다. 국내외 동물원과 그곳에 사는 다양한 동물들의 모습을 살펴보며 어떻게 행복한 동물원을 만들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요.
펭귄이 둥지를 지을 때 필요한 것은?
먼저 행복한 야생동물의 모습을 마음속에 한 번 떠올려 보세요. 저는 햇볕 아래 한가로이 낮잠을 자다가 배고플 때가 되면 사냥을 떠나는 사자, 온종일 나무 위를 뛰어다니며 나뭇잎과 열매를 따 먹는 긴팔원숭이의 모습이 떠올라요. 하지만 동물원은 야생과 다르게 먹을 것을 찾아 먼 거리를 돌아다닐 필요도 없고, 포식자와 피식자가 서로 잡아먹거나 먹히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사육사들은 동물들이 동물원에서도 야생에서처럼 다양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동물 행동 풍부화’라는 방법을 생각해냈어요.
동물들도 사람처럼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할지 직접 선택하는데, 그러려면 동기와 필요한 자원이 있어야 해요. 예를 들어, 둥지를 짓는 습성이 있는 펭귄을 위해 사육사들은 펭귄이 사는 서식지 한쪽에 둥지의 재료가 되는 나뭇가지와 동그란 자갈들을 살며시 놓아둡니다. 그러면 펭귄들은 각자 마음에 드는 재료를 골라 자신만의 둥지를 꾸미죠. 이렇게 동물들이 야생에서 하는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동기를 미리 파악하고, 행동에 필요한 자원을 마련해 주는 활동이 바로 동물 행동 풍부화예요.
동물은 종류에 따라 행동이 매우 다양하고, 인간의 행동과도 아주 달라요. 그래서 사육사들은 담당하는 동물이 원래 야생에 있을 때는 어떤 자극을 받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공부하고 연구합니다. 그리고 동물원에 있는 동물이 하고 싶은 행동을 야생에서처럼 충분히 하는지 파악한 뒤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죠. 이를테면 자갈과 나뭇가지 같은 자원 말이에요. 동물이 다양한 행동을 하며 즐겁게 지낼수록 동물의 신체와 정신 건강이 모두 좋아지고, 동물의 복지 수준도 높아지는 거랍니다.
동물 행동 풍부화, 어떤 종류가 있을까?
동물 행동 풍부화는 크게 다섯 가지 종류로 나눕니다. 먼저 동물들이 생활하는 공간인 서식지를 동물의 특성에 맞게 조성하는 것을 환경 풍부화라고 해요. 땅을 파는 것을 좋아하는 미어캣이나 프레리독에게는 굴을 팔 수 있도록 흙을 넉넉히 깔아줍니다. 바닥의 재질이나 나무, 돌의 종류를 바꿔주는 것만으로도 동물이 새로운 곳으로 이동한 것 같은 효과를 줄 수 있어요.
두 번째로 인지 풍부화는 동물이 지능을 활용할 수 있도록 도전적인 과제를 제공하는 활동입니다. 여러분이 학교 체육 시간에 어려운 동작을 성공하며 재미를 느끼는 것처럼, 동물들도 새로운 시도를 하며 재미있게 지낸답니다. 다양한 종류의 자극을 접하게 하는 감각 풍부화도 중요해요. 사람보다 후각과 청각이 훨씬 발달한 동물들은 새로운 냄새와 소리를 탐구하고 싶어 하거든요.
먹이 풍부화는 동물이 마치 야생에서처럼 먹을 것을 얻도록 하는 활동이에요. 원래 동물은 먹이를 구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그런데 먹이를 쉽게 얻으면 동물은 먹이를 찾는데 쓰던 시간이 남아 심심해져요. 야생에서 기린은 긴 혀를 손처럼 사용해 나무에 있는 가시와 개미를 피해서 나뭇잎을 하나씩 어렵게 따먹어요. 그런데 동물원 기린은 너무 먹이를 쉽게 얻은 뒤, 혀를 쓰고 싶은 나머지 아무것도 없는 공중을 향해 의미 없이 혀를 날름거리는 정형행동●을 하기도 해요. 그래서 동물원에서는 높이 매단 그물망에 먹이를 넣고 기린이 혀로 하나씩 빼먹게 하고 있어요. 동물에 따라 먹이를 숨기거나 넓게 뿌려 야생과 비슷한 먹이 섭취 시간을 보내도록 하기도 하죠.
마지막으로 놀이 풍부화는 말 그대로 동물들이 직접 조작할 수 있는 장난감을 주어 스스로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활동입니다. 장난감에 먹이를 넣으면 더욱 좋겠죠? 좋은 동물원에서는 동물 행동 풍부화를 매일매일 조금씩 새롭게 바꿉니다. 동물원의 제한된 공간에서 이뤄지는 여러 행동의 한계를 풍부화 프로그램으로 극복하려는 거죠. 동물 행동 풍부화는 동물원에서 시작됐지만, 이제는 개와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 소나 돼지 같은 가축에게도 적용되고 있어요. 다음 시간에는 사육사들이 동물들과 어떻게 소통하는지 알아볼게요. 기대해 주세요!
●정형행동 : 스트레스 등의 요인으로 동물이 의미 없는 행동을 비정상적으로 반복하는 증상.
○필자소개
송혜경
(에버랜드 주토피아기획그룹 프로)
미국 조지메이슨대학교에서 동물원수족관학을 공부하고 현재는 에버랜드 동물원(주토피아)에서 동물 복지와 보전을 담당합니다. 동물원을 통해 사람들이 야생동물과 자연의 매력을 발견하고 함께 보호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