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불빛과 시커먼 연기가 시야를 가립니다.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광경입니다. 이곳은 지난 3월 4일 경북 울진군에서 처음 발생해 강원 삼척시까지 번진 산불 현장입니다. 화재가 발생한 지 9일이 지난 3월 13일 오전 9시, 213시간 만에 화재가 끝이 났어요. 같은 기간 발생한 강릉 산불까지 합쳐 서울시 면적 41%를 태워버린 역대 최대 규모, 최장 시간 지속된 산불이었죠.
✔최대, 최장 기록 세운 울진·삼척 산불, 원인은?
강풍
산불이 시작된 지 4시간이 지났을 무렵, 기상청은 경북 울진에 강풍주의보를 내렸다. 강풍주의보는 평균풍속이 초당 17m 이상이거나 순간풍속이 초당 25m 이상으로 예상될 때 발령된다. 이번 산불은 태풍급으로 강한 바람을 타고 빠르게 퍼져나간 탓에 사람이 화재를 진압하는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며 진화 작업에 애를 먹었다.
바람의 방향
바람의 방향도 수시로 바뀌어 바람을 등져야 하는 진화 작업에 어려움이 컸다. 바람이 불지 않을 때도 문제가 됐다. 산불은 이미 대형 화재로 번져 막대한 양의 새카만 연기를 발생시켰는데, 바람이 불지 않아 연기가 대기에 그대로 머물렀기 때문이다. 결국 연기가 소방 헬기와 소방차의 시야를 가리며 야간 진화에 방해물이 되었다.
심각한 가뭄
기상청은 작년 12월부터 올 2월까지의 전국 평균 강수량이 13.1mL(밀리리터)라고 밝혔다. 이는 지난 30년 동안의 겨울철 평균 강수량인 89mL의 7분의 1 수준이다. 산림청은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발생한 산불은 261건으로, 126건이었던 작년의 같은 기간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2월 15일부터 경북 울진에 내린 건조경보●가 산불 이후까지 이어지고 있다.
●건조경보: 실효습도가 25% 이하인 상황이 이틀 이상 계속될 경우 내려진다. 실효습도는 나무 등이 얼마나 메말랐는지 보여주는 지표로, 50% 이하면 큰불이 나기 쉬운 상태로 본다.
침엽수림
한국의 수목은 침엽수인 소나무가 가장 많으며, 전체의 37%를 차지한다. 소나무는 불이 잘 붙는 송진을 품고 있으며 내부가 건조하다. 화재가 난 동해안 숲은 소나무가 50% 가량으로 전국 평균보다 더 많고, 나무 주변에 쌓인 마른 낙엽 등이 불을 쉽게 붙여주는 역할을 했다. 산림청 산림과학원 권춘근 박사는 “산불에 취약한 침엽수가 그야말로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라고 전했다.
기후위기로 커지는 위험
광주과학기술원 윤진호 교수는 “지구 평균 기온이 0.5℃ 오르면 대형 산불 위험이 두 배 이상 잦아질 수 있다”고 전했다. 또한 유엔환경계획(UNEP)은 2월 23일 기후위기로 전 세계에 강한 산불이 더욱 빈번하게 발생할 것이라 발표했다. 이는 지금 추세의 온난화가 지속되면 2030년까지 전 세계에서 산불이 최대 14%, 2050년 말까지 30%, 2100년까지 50% 증가한다는 예측이다.
비상! 원전과 문화재로 향하는 산불을 막아라!
3월 4일 오전 11시, 경북 울진군 북면 두천리 야산에서 하얀 연기가 처음 피어났습니다. 작은 불에서 시작된 산불은 동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진행하며 10일에 걸쳐 축구장 3만 개에 달하는 산림을 불태웠습니다.
가장 큰 우려는 원전이었어요. 울진에 위치한 한울 원자력발전소에는 한울 1호~6호와 신한울 1호, 2호로 총 8기의 원전이 밀집되어 있습니다. 산불은 3시간 만에 원전과 불과 1km 떨어진 덕천리까지 다가왔습니다. 산림청은 산불경보●를 가장 높은 ‘심각’ 단계로 올렸어요. 소방청 또한 소방동원령● 1호를 발령하고 1분에 1만 750L를 쏟아붓는 ‘대용량방사포시스템’을 출동시키며 총력을 다했습니다.
원전 방어에는 성공했지만, 산불은 하루도 안 돼 강원 삼척시까지 번졌어요. 삼척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액화천연가스(LNG) 생산기지가 있습니다. 산불은 바람을 타고 빠른 속도로 LNG 생산기지 인근 2km까지 접근했습니다. 소방당국은 울진 산불 지원에 투입하려던 소방대원 225명과 장비 90여 대를 되돌려 삼척 LNG기지 주변에 화재 저지선을 둘러 화재를 막았습니다.
위기는 또 한 번 찾아왔어요. 울진 산불은 바람을 타고 서쪽으로도 퍼졌습니다. 울진 서쪽 소광리에는 금강송● 8만 그루가 모여 사는 군락지가 있습니다. 또한 이 지역에는 신라 시절 때 지어진 불영사가 있지요. 문화재청은 ‘영산회상도’ 등 국가등록 문화재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로 급히 옮기고 불영사 주변에 물을 뿌리며 대비를 했어요. 소방당국 또한 금강송 군락지로 산불이 확산되지 않도록 초대형 헬기를 동원해 진화했습니다.
●산불경보: 산불의 진행 상황에 따라 ‘관심’부터 ‘심각’까지 4단계로 분류한다. 울진 산불은 가장 높은 단계인 ‘심각’으로 발령됐다.
●소방동원령: 화재 관할 지역이 아닌 소방대까지 화재 현장에 긴급히 투입하는 명령.
●금강송: 국보 1호인 숭례문 복원을 비롯해 각종 문화재 복원에 쓰이는 최고급 소나무
산불,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정부는 산불이 난지 이틀째인 지난 3월 6일 삼척과 울진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어요. 이번 산불을 막기 위해 소방관뿐만 아니라 경찰, 해경, 군인, 공무원 등 7만 명에 달하는 인력이 힘을 모았습니다. 또한 시민이 자원해서 모인 의용소방대, 열화상 드론과 초대형 헬기 같은 최첨단 소방 장비 등도 곳곳에서 활약했죠. 모두의 노력으로 산불 10일째에 마침내 진화할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자연과 재산 등 막대한 피해는 막을 수 없었습니다. 울진 산불과 동시에 발생한 강릉과 동해 산불을 합쳐 3월에만 서울 면적의 41%에 달하는 2만 4000ha(헥타르●)의 산림이 소실되었어요. 또한 주택과 공장 등 총 643곳의 시설물이 파괴되어 주민의 피해도 컸지요. 소방청은 화재가 끝난 13일 소방동원령을 해제했지만, 재발화의 우려가 있어 전국 소방서의 긴급 출동과 대응 테세를 계속 유지했습니다. 동해안 근처에서 일어났던 산불은 타고 남은 재 등이 주변 강을 타고 바다로 흘러들어 해양생태계를 오염시킬 우려도 있어요. 강릉시는 화재가 진화되자마자 바다로 흘러가는 오염 물질을 막기 위해 강둑을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산불의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경찰은 달리던 차에서 나온 담배꽁초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어요. 행정안전부는 “최근 10년간 발생한 산불의 76%는 실화●, 소각 등 사소한 부주의였다”고 밝히며 예방을 강조했습니다.
●특별재난지역: 대통령이 재난으로 큰 피해를 입은 지역에 긴급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시 임시로 지정하는 지역.
●ha(헥타르): 토지 면적 단위 중 하나. 1ha는 총 1만 m2(제곱미터)의 면적을 나타낸다.
●실화: 사람의 부주의나 실수로 발생한 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