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물빛이 정말 아름다워요!”
지난 2월 26일, 사진을 찍던 이창욱 기자가 신이 나 소리쳤습니다. 이곳은 제주도 동쪽 성산 일출봉 너머의 작은 섬, 우도의 서빈백사해수욕장. 소가 누운 모습을 닮았다고 한자 ‘소 우(牛)’를 써서 우도(牛島)라 부르지요. 눈부시게 흰 모래로 유명한 이 해수욕장에는 비밀이 하나 있습니다. 사실, 이 흰 모래는 모래가 아니에요. 굴러다니며 자라는 돌, ‘홍조단괴’가 부서져 만들어진 퇴적물이거든요!
산호가 아니라 홍조단괴라고요?
제가 우도의 홍조단괴를 알게 된 것은 제주도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추진을 위해 일하던 2000년대 초였습니다. 제주도청의 공무원 한 분이 제가 지질학자라는 얘기를 듣고는, 우도에 부서진 산호가 모래처럼 쌓인 특별한 해수욕장이 있다고 소개해주셨어요. 저는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제주도는 수온이 낮아 산호초가 자라지 않습니다. 그래서 산호 조각으로만 만들어진 퇴적물도 생길 수 없거든요. 우도에서 가져온 모래를 확인하니, 이 모래는 산호가 아니라 홍조단괴가 쌓이고 부서져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우도에는 ‘산호사(산호모래)’라는 이름의 음식점이 남아 있어요. 지난 20년 동안 잘못된 이름을 써왔던 셈입니다.
우도의 모래가 산호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제 설명을 듣고 공무원은 크게 실망한 눈초리였습니다. 저는 전혀 실망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우도처럼 퇴적물의 95% 이상이 홍조단괴로 이뤄진 지역은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들거든요. 그러자 그분은 홍조단괴가 뭔지 물어봤습니다.
홍조단괴를 만드는 주인공은 얕은 바다에서 광합성을 하는 해조류 중 하나인 홍조류입니다. 우리가 자주 먹는 김도 홍조류에 속하지요. 홍조류 중에서는 산호나 조개처럼 딱딱한 탄산칼슘(CaCO3) 성분의 광물을 만들어서 자신을 보호하는 ‘석회조류’가 있습니다. 동해안이나 제주도 해안가에 가면 볼 수 있는 붉은색 바위가 바로 홍조류인 석회조류가 암석에 붙어 자라는 모습이지요.
홍조류가 돌에 붙어 자라며 축적한 탄산칼슘이 나중에 돌멩이처럼 단단하게 굳어진 것을 ‘홍조단괴’라 부릅니다. 홍조류가 살아있을 때는 붉은색이다가, 홍조류가 죽으면 색소가 사라져 흰색이 되지요. 홍조단괴는 석회암 속에서 많이 발견되고, 지금도 전 세계의 얕은 바다에서 흔하게 자랍니다.
지름 10cm의 홍조단괴에 수천 년의 세월이!
홍조단괴로만 이루어진 우도 해수욕장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2003년, 저는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한 방송사의 촬영팀과 함께 우도 앞바다에 뛰어들었습니다. 물속에 펼쳐진 경치는 너무도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수심이 20m도 안 되는 얕은 바다 바닥에 홍조단괴가 잔뜩 깔려있었던 겁니다. 지금도 자라는 붉은색의 홍조단괴와, 홍조류가 죽어 성장이 멈춘 흰색의 홍조단괴로 가득했지요. 지름이 10cm가 넘는 커다란 홍조단괴도 보였습니다. 홍조단괴가 이렇게나 많다니! 왜 우도 해수욕장이 홍조단괴로만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지 단번에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우도에는 왜 이렇게 많은 홍조단괴가 자랄까요? 그 이유는 우도와 성산 일출봉 사이 바다가 수심이 얕고 조류●가 매우 빠르게 흐르기 때문입니다. 홍조단괴를 만드는 홍조류는 포자를 통해 번식하는데, 포자가 물속 암석 위에 붙으면 자라기 시작합니다. 이때, 만약 암석이 땅에 박혀 있다면 홍조류는 햇빛을 받는 방향으로만 자랄 거예요. 그렇지만 암석이 작고 가벼워 굴러다닐 수 있다면, 홍조류는 암석 전체를 덮고 사방으로 자랍니다. 암석 전체를 덮은 홍조류가 자라면서 석회 광물을 만드니, 돌도 눈덩이가 커지듯 점점 커지는 것입니다. 우도 앞바다는 수심이 얕아 해조류가 광합성을 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다 겨울에는 바람이 세서, 여름에는 태풍이 와서 돌들이 계속 굴러다니니 홍조단괴가 자라기에 딱 적합하지요. 구르는 돌이 계속 자라는 것입니다.
●조류 : 밀물과 썰물 때문에 생기는 바닷물의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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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홍조단괴들이 어떻게 자랐을지 궁금해져서 몇 개를 채집했습니다. 홍조단괴를 매우 얇게 잘라 유리에 붙인 박편을 만든 후 현미경으로 관찰했습니다. 그러자 홍조단괴가 자라면서 그린 나이테 비슷한 모양이 나타났습니다. 나무처럼 홍조단괴도 여름에는 빨리 자랐고, 겨울에는 천천히 자랐다는 점을 알 수 있었죠. 시료를 채취해 연대를 분석하니 10cm 크기의 홍조단괴는 지난 수천 년 동안 자라왔다는 점도 알 수 있었어요.
저는 정부에 우도의 퇴적물은 아주 귀한 것이니 함부로 가져갈 수 없도록 보호해야 한다고 건의했습니다. 그 결과 이곳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고, 귀한 홍조단괴도 가지고 나갈 수 없도록 법으로 금지되었죠. 그 뒤로도 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도 앞바다에서 홍조단괴를 구경했습니다. 저보다도 몇십 배 오래 자란 돌들이 굴러다니는 모습이라니, 이 정도면 산호모래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귀한 광경 아닐까요?
필자소개
우경식(강원대학교 지질지구물리학부 지질학 교수)
해양지질학을 공부하고 1986년부터 강원대학교 지질학과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제동굴연맹 회장을 역임했으며, IUCN 세계자연유산 심사위원으로 세계의 지질유산을 심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