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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가 내리면 목숨을 걸고 튀어라! 호주 개구리 탐사기

▲ PDF에서 고화질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슬리퍼 생태연구자’ 배윤혁입니다. 지구사랑탐사대의 어벤저스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현장교육과 탐사를 할 때마다 슬리퍼를 신고 다녀 이런 별명이 붙었지요. 저는 지난 1월 호주 맥쿼리대학교 인턴연구원으로 일하며 숲속 곳곳에서 개구리를 탐사하고 왔습니다. 호주의 생태연구부터 시민과학까지, 인턴 생활기를 들려드릴게요!

 

 

개구리 탐사에 목숨을 걸다

 

이곳은 소나기도 위험합니다. 슬리퍼를 신고도 비바람을 이겨내던 제가 호주에서는 꾸물꾸물한 하늘을 보면 바짝 긴장했습니다. ‘스톰’이라 불리는 호주의 소나기는 수 초에 한 번씩 치는 벼락을 동반하거든요. 같은 연구실의 그랜트 웹스터 연구원과 저는 내리치는 벼락 사이로 숲 밖에 세워둔 차를 향해 전력으로 질주한 날이 여럿이었습니다. 벼락이 눈앞에서 큰 나무를 쓰러트린 것을 봤을 땐 제가 그 나무 아래 있지 않았단 사실에 가슴을 쓸어내렸죠.


그러나 급한 마음과는 달리, 숲에는 인간을 위한 길이 정비돼 있지 않았으므로 미리 꺾어 놓은 나뭇가지를 확인하며 돌아갈 길을 더듬어야 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개미와 독사도 비를 피해 숨었다는 사실일까요? 독사에 물리면 죽을 것이고, 독개미에 물리면 아주 아프거든요. 저도 무언가에 물려 1~3일간 피부가 부어오른 일이 허다했는데, ‘마메시아’라 불리는 독개미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호주에서는 슬리퍼를 포기하고 장화를 신은 이유입니다.


차까지 도착한다고 해도 끝이 아니었습니다. 비의 양이 무지막지한 탓에 15~30분이면 물이 1m까지 차올랐습니다. 전속력으로 차를 몰아 숙소에 도착한 뒤에야 안도의 숨을 내뱉을 수 있었죠.

 


왜 이렇게 위험한 곳에 갔냐고요? 물이 깊이 차올랐다가 빠지는 환경은 사람에게는 위험천만하지만, 우리가 찾던 개구리 ‘마호니스 토들렛’에게는 환상의 서식지입니다. 큰 비가 내려 깊이 1m 이상의 늪이 생기면 번식에 나서거든요. 마호니스 토들렛은 2017년 처음 발견된 종으로, 이를 연구하던 그랜트 연구원이 한국에 왔을 때 만난 인연으로 저는 한 달간 탐사를 도와 연구에 참여했습니다.


연구 주제는 마호니스 토들렛의 생태와 분포였습니다. 발견된 지 3년이 채 안 된 신종이라 언제 짝짓기를 하고, 어디에 알을 낳으며, 구애 소리는 어떻고, 어디에 분포하는지 제대로 알려진 게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호니스 토들렛이 좋아하는 식물 등을 토대로 토들렛이 살만한 예상 지역을 찾았습니다. 그중 탐사 지역을 무작위로 정해, 길도 나지 않은 숲속으로 들어가야 했지요.


목표는 탐사 지역에 마호니스 토들렛이 실제로 사는지 확인하는 거였습니다. 넓은 지역을 모두 조사하기는 힘드니, 가로와 세로가 50m인 표본 지역 ‘방형구’를 정했습니다. 나무를 줄로 이어 방형구를 표시해둔 뒤 일정한 기간마다 와서 내부를 수색해 개구리가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동시에 녹음기를 설치해 개구리가 짝을 찾을 때 내는 울음소리도 녹음했지요. 녹음기가 1년간 잘 작동한다면 번식기를 알 수 있을 겁니다. 

         
이같은 연구 방법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연구 환경이 호주가 훨씬 위험하다는 것만 빼면요. 다만, 수 년간 이뤄지는 장기 생태 연구는 호주에서 더 많이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장기 생태 연구를 하면 야생생물을 보호하는 방법도 알 수 있지요. 그랜트 연구원도 지난해부터 시작한 마호니스 토들렛 연구를 3~4년간 이어갈 예정입니다. 이들의 연구 과정을 보며 한국에서도 장기 생태 연구가 많이 이뤄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호주에도 ‘지구사랑탐사대’가 있다?

 

인턴연구원으로 일하기 직전인 1월 5일부터 10일까지 저는 뉴질랜드에서 열린 ‘세계 양서파충류 학회’에 참가했습니다. 이곳에서 시민과학용 앱 FrogID를 만든 호주 자연사박물관의 조디 롤리 연구원을 만났습니다. 2017년에 개발된 FrogID는 시민들이 개구리의 사진과 울음소리 정보를 자유롭게 올릴 수 있는 앱입니다. 개구리와 같은 생물이 낯설다는 이유로 징그럽게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죽이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롤리 연구원은 발표에서 이런 일을 방지하려면 “시민과학을 통해 사람들이 양서류를 이해하고, 좋은 관계를 맺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호주에서는 시민과학이 수십 년 째 활발히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랜트 연구원이 소개해준 ‘뉴사우스웨일스의 개구리·올챙이 연구 모임’이 대표적인 사례였습니다. 1990년대 만들어진 이 모임에는 은퇴한 연구자와 현역 연구자, 시민들이 100여 명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오랜 역사 덕에 모임은 전문가를 배출할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참여한 그랜트 연구원도 그중 하나입니다.


시민들의 연구 수준 역시 상당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발표는 개구리 ‘스포티드 그래스 프로그’의 울음소리가 지역마다 어떻게 다른지 분석한 연구였습니다. 이를 발표한 시민은 FrogID에 저장된 데이터를 이용했습니다. 데이터 자체의 한계로 온도와 습도를 고려하지 못한 단점이 있지만, 학술지에 발표할 수 있을 정도의 분석이었습니다.

                                 
이는 연구자가 보기 좋게 처리한 데이터를 시민이 FrogID에서 받아볼 수 있어 가능했습니다. 지사탐 앱이 지원하지 않는 기능이기에, 본받을 만했습니다. 반면 지사탐 앱은 개구리 외에 다양한 생물 데이터를 모을 수 있고, 어디서 어떤 정보를 모아야 하는지 연구자가 시민에게 알려준다는 장점이 있지요. 롤리 연구원도 “지사탐 앱은 연구자가 주도해 특정 연구에 필요한 데이터를 시민들이 모으는 것이 놀랍다”고 평가했습니다. 


한편, 호주에는 개구리 외에도 기후변화와 조류 등 다양한 시민과학 모임이 오래도록 지속되고 있었습니다. 이런 모습이 부러워서 어떻게 해야 우리나라에서도 생태에 대한 관심이 많아질 수 있을지 고민이 들었습니다. 호주에서조차 “아이들이 자연 대신 유튜브와 게임, 넷플릭스를 더 좋아하게 될 것이 큰 문제”라고 말했던 롤리 연구원의 말이 머릿속에 맴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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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7호 어린이과학동아 정보

  • 글 및 사진

    배윤혁
  • 에디터

    이다솔 기자 기자
  • 디자인

    최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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