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8일,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팀과 함께 강원도 동해시의 한 농장을 찾았어요. 농장의 곰들에게 깜짝 선물을 주기 위해서였지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오자 철장에 양손을 대고 궁금한 듯 쳐다보는 두 곰. 과연 곰들은 준비한 선물을 맘에 들어 했을까요?
▲ PDF에서 고화질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반달곰이 철창 안을 빙글빙글
농장에 도착하자 대문 한 귀퉁이에 붙어있는 ‘반달곰댁’이라는 명패가 눈에 뜨였어요. 대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자 하얀 반달을 가슴에 품고 있는 곰 두 마리가 보였지요. 이들은 한 평 남짓한 철창에 갇혀 있었어요. 그중 한 마리는 사육장을 계속 빙글빙글 돌고 있었지요.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최태규 수의사가 두 곰을 소개했어요.
“여기 있는 두 곰은 10살 미만이에요. 이들보다 나이가 많은 20여 마리의 곰들은 이곳에서 1km쯤 떨어진 곳에 모여 있지요. 두 곰은 사육장을 돌거나 머리를 휘젓는 등 이따금 정형행동을 보이긴 하지만, 다른 농장의 사육곰과 비교하면 건강한 편이에요. 이 농장에서 사육곰을 많이 키웠을 때는 300마리가 넘었다고 해요.”
1981년 정부는 농가의 소득을 높이기 위해 곰을 수입해 사육하는 걸 독려했어요. 당시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서 곰의 쓸개(웅담)가 건강에 좋다는 이유로 인기가 높았거든요. 곰을 수입해 사육하고, 그 수를 늘려 다시 외국에 팔면 돈을 벌 수 있다는 계산이었죠. 그 결과 4년 동안 말레이시아, 일본 등에서 493마리의 곰이 수입됐어요. 그러나 멸종위기종인 곰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며 정부는 1985년 7월 곰 수입을 금지했어요. 1993년 7월에는 우리나라가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가입하면서 수출도 할 수 없게 됐지요. 사육곰의 수는 2005년 1454마리까지 증가했다가, 현재는 479마리만이 남아있어요(2019년 6월 기준). 이들은 모두 중성화한 상태이기 때문에 더 이상 그 수가 늘어나진 않지요.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가 조사한 결과, 농장주 28명 중 25명이 정부가 사육곰을 산다면 팔 의사가 있다고 답했어요. 웅담에 대한 수요도 줄고, 수출길도 막힌 현재 농장주들도 사육곰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인 거예요. 이는 사육곰의 환경이 점점 더 열악해지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정부는 2014년 사육곰 중성화 사업 이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어요.
사육곰에게 놀잇거리가 생겼어요!
‘와그작~, 와그작~.’
급식구에 사과를 두자, 곰들은 철창 사이로 손을 뻗어 사과를 집더니 맛있게도 쪼개먹었어요.
“정말 잘 먹죠? 원래 곰들은 과일이나 벌레, 어린 나뭇잎을 먹고 살아요. 하지만 사육곰들은 주로 개 사료나 음식물 찌꺼기 등을 먹어요. 게다가 야생에서 곰은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먹이를 찾으며 보내요. 사육곰은 하루에 한 번, 짧은 시간 안에 먹이활동이 끝나기 때문에 많은 시간 지루하게 보내야 하지요.”
해먹과 같은 놀잇거리는 사육곰의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도움이 돼요. 좁은 철창에서 바깥을 쳐다보는 게 전부인 사육곰에게 물어뜯고, 올라타며 다양한 행동을 할 기회가 생기는 거죠.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팀은 버려진 소방호스를 엮어서 해먹을 만들었어요. 소방호스는 질기고 단단해 곰의 무게와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을 견딜 수 있지요.
“자, 그럼 해먹 설치를 시작해 볼까요?”
작업할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두 곰을 한 철창으로 옮겼어요. 따로 지내던 곰이 싸우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두 곰은 서로의 냄새만 맡을 뿐 공격하진 않았어요. 팀원들은 철창 네 귀퉁이에 구멍을 뚫고 나사를 조여 해먹을 고정시킨 후, 직접 해먹에 누워 단단한지 확인했지요. 작업이 끝나고, 곰들을 다시 원상태로 돌려놓았어요. 사과 조각을 던지자, 곰들은 양손으로 해먹을 잡고 머리를 뻗어 해먹 한 가운데 있는 사과 냄새를 맡았어요.
“저기! 올라가려고 해요!”
곰이 다리를 허우적거리며 해먹을 올라가려는 듯한 자세를 취했어요. 몇 번의 시도 끝에 한쪽 다리를 해먹에 걸치는 데는 성공했지요.
“관심도 없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마음이 놓이네요. 내일 쯤 해먹에 오를 수 있을 거예요.”
사육곰 생츄어리를 꿈꿔요!
이날 반달곰댁 농장에서 해먹을 선물 받은 곰은 두 마리 뿐이었어요. 나머지는 훨씬 비좁은 ‘뜬장’에 살아서 해먹을 달 공간이 충분하지 않거든요. 뜬장은 바닥이 창살이라 배설물 청소가 훨씬 편리하다는 이유로 일부 농장에서 사용하고 있지요. 최태규 수의사의 안내를 따라 나머지 곰이 살고 있는 뜬장 농장도 찾았어요. 농장 입구가 보이기도 전에 악취가 먼저 코를 찔렀어요. 농장은 천막이 덮여 대낮에도 어두웠고, 사람 한 명이 지나갈 수 있는 복도 양 옆으로 뜬장이 길게 늘어서 있었지요.
“뜬장에 사는 사육곰은 대부분 발바닥이 갈라지고 털이 듬성듬성 빠지는 피부병을 앓고 있어요. 흙을 딛고 사는 곰에게 시멘트 바닥도 적절한 환경은 아니지만, 창살 바닥은 그야말로 최악이에요.”
자연에서 곰의 수명은 25년 정도예요. 남아있는 479마리 중 10살이 넘지 않은 사육곰은 20% 정도지요. 이들은 15년 이상 이처럼 좁고 영양분도 충분치 않은 환경에서 살아야 하는 거예요.
“베트남도 한때 사육곰 수가 4000마리에 이를 정도로 웅담 사업이 번성했어요. 현재는 국립공원 자투리땅에 사육곰을 옮겨오고 있지요.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 사는 동물들을 죽을 때까지 보호하는 시설을 ‘생츄어리’라고 불러요. 농장주 입장에서 더 이상 수익을 얻을 수 없는 사육곰은 점점 더 방치될 거예요. 우리나라에도 하루 빨리 생츄어리가 생겨야 하는 이유지요.”
현재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와 동물자유연대는 곰 사육정책을 폐지하고 생츄어리를 지어 이들을 보호하는 사육곰 특별법을 만들고 예산을 따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