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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Go!고고학자] 경주 고분을 외국인이 발굴했다고?!

 

경주를 가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낮은 건물들 사이로 봉긋하게 솟은 오래된 무덤인 ‘고분’을 본 적 있을 거예요. 그런데 경북 경주시 노서동에는 특이하게 생긴 고분이 있어요. 다른 무덤들과는 달리, 낮고 평평한 모습이 마치 누군가 무덤 위를 뭉텅 잘라낸 것처럼 생겼죠. 봉황이 새겨진 금관이 발견된 이 ‘서봉총 고분’에는 사실 안타까운 이야기가 숨겨져 있답니다.

 

 

스웨덴 황태자, 경주 고분을 발굴하다!


1926년 경주시 노성동, 웬 서양 사람이 바닥에 엎드려 흙을 파헤치고 있었어요. 그의 정체는 바로 스웨덴의 황태자 구스타프 아돌프. 황태자 옆에서는 일본인 고고학자들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죠. 이윽고 발굴이 끝나자, 황태자가 현장에서 발견된 신라 시대의 금관을 상자에 담았어요. 천년도 넘게 잠들어있던 금관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자, 황태자 일행과 일본인들이 손뼉을 쳤지요.


스웨덴 황태자가 일본인들과 함께 경주의 고분을 발굴한 이유는, 이때가 일제강점기였기 때문이에요. 당시 일본인들은 기차를 보관하는 창고를 짓는 데 필요한 흙을 고분에서 파냈어요. 이때 고분을 조사한 건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일본인 학자 ‘고이즈미 아키오’. 그가 고분을 발굴할 무렵, 스웨덴의 구스타프 아돌프 황태자가 일본을 방문했어요. 황태자가 고고학에 조예가 깊다는것을 알고 있던 일본 수행원 측은 황태자에게 조선에 들러 경주 고분을 발굴해달라고 부탁했죠.


일본인들은 황태자가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발견된 유물을 파내지 않고 흰 천을 덮어두었어요. 이윽고 경주에 도착한 황태자는 금제 허리띠를 발굴하고, 이곳에서 발견된 금관을 직접 수습했지요. 나중에 이 무덤에는 황태자의 방문을 기념하여, 스웨덴의 한자식 표현인 ‘서전(瑞典)’의 ‘서’와 금관 봉황 장식의 ‘봉’을 따와 ‘서봉총’이라는 이름이 붙었답니다.

 

 

 

 

 

납작한 서봉총이 봉분을 잃어버린 슬픈 사연은?


약 천 년 동안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 시내에는 약 200기에 달하는 고분이 있어요. 특히 신라의 왕이나 왕족이 묻힌 커다란 무덤은 4~6세기 초에 만들어졌어요. 그런데 경주의 고분들은 고려나 조선 시대의 왕‘릉’과 달리 주인이 밝혀지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이렇게 주인을 모르는 고분을 ‘총’이라 불러요. ‘서봉총’이나 ‘황남대총’, ‘천마총’처럼요.


언뜻 보면 산처럼 보이는 왕들의 무덤은 시대에 따라 만드는 방법이 달라요. 그중 경주 시내에 만들어진 거대한 고분들은 ‘적석목곽분’이에요. ‘돌무지덧널무덤’이라고도 불리는 이 무덤은 지상이나 지하에 판 구덩이에다 나무 덧널*을 두었어요. 덧널 내부에 관과 부장품을 넣고 밖에는 돌을 쌓았죠. 그 위에 다시 흙을 쌓아 크게 만들었어요. 이렇게 크고 튼튼하게 쌓았으니 허물어지거나 쉽게 도굴당하지 않고 천 년 이상 유지될 수 있었어요.

 


지금이야 무덤인 것이 잘 알려졌지만, 몇백 년 전만 해도 경주 사람들은 시내 여기저기 흩어진 것이 고분이 아니라 작은 산이라고 생각했어요. 오랜 시간이 지나 신라 시대의 무덤이었다는 사실이 잊힌 것이지요.


이 경주의 고분을 처음 본격적으로 발굴한 것이 바로 일제강점기의 일본 학자들이었어요. 일본 학자들은 경주의 언덕이 오래된 무덤이라는 것을 알고 발굴을 진행했어요. 하지만 대부분 조사가 날림으로 진행되었지요. 심지어는 한국인이 일본인의 후손이라는 근거 없는 조작을 정당화하기 위해 출토한 유물의 의미를 왜곡하기도 했고요.


서봉총의 발굴도 이런 아픈 역사의 장면 중 하나예요. 고이즈미 아키오는 서봉총을 겨우 50일 만에 발굴한 데다, 보고서를 제대로 작성하지 않았어요. 그러니 가치 있는 기록이 남아있을 턱이 없죠. 심지어 일본인들이 창고를 지으려 봉분의 흙을 퍼가는 바람에, 지금 남아있는 서봉총은 경주 시내의 다른 고분들과 달리 납작한 모습으로 남았답니다. 신라의 왕과 찬란한 금관이 묻힌 무덤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봉분마저 잃어버린 처지가 된 거예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경주 아닐까요. 다행히 국립중앙박물관은 2016년부터 서봉총을 재발굴하여 조사하고 있어요. 만약 경주에 방문해서 신라 고분 앞에 서게 된다면 서봉총의 이야기를 기억해주길 바랄게요. 

 

 

 

 

 

용어정리

*덧널 : ‘곽’이라고도 하며, 시체를 넣는 관 따위를 넣기 위해 나무 등으로 만든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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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0호 어린이과학동아 정보

  • 고은별
  • 에디터

    이창욱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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