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세브란스병원이야. 이곳은 독립운동가들을 도왔던 중심기관 중 한 곳이지. 내가 비밀문서를 줄 사람도 이곳에서 일하고 있어. 그게 누구냐고?
의학ㅣ비밀 정보 기관의 역할을 한 세브란스병원 간호부양성소
1919년 3월 1일을 시작으로 일본의 식민지배에 저항하는 독립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기까지 일제의 의심을 사지 않고 비밀리에 정보를 주고받는 일이 중요했어요. 세브란스병원 간호부양성소는 기독교 선교기관이면서 의료기관이었기 때문에 외부인들이 자연스럽게 드나들 수 있었어요.
덕분에 이곳은 독립운동을 하며 다친 사람을 치료하고 간호하는 역할은 물론, 3.1운동의 핵심 인물들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비밀 정보 기관의 역할을 할 수 있었지요. 그 중 특히 정종명, 박자혜, 탁명숙 선생 등 당시 간호부 학생들의 활약이 매우 컸어요. 정종명 선생은 독립을 선언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이갑성 선생이 준 3·1운동 문서를 몰래 전달하려다 발각돼 모진 고문을 받았어요.
또, 이정숙 선생은 3.1운동 이후 옥에 갇힌 애국지사와 그 가족들을 후원하기 위해 ‘혈성단 애국부인회’를 조직하고 임시정부의 자금을 모집하는 데 앞장섰답니다.
건강해야 독립도 한다
임시정부 대한적십자회 소속 간호원 양성소. 김세창 박사는 독립운동을 할 간호원들을 교육시켰다. 대한적십자사, 연세대의과대학 동은의학박물관 제공
국민의 건강이 독립을 위해 필수라고 주장한 사람도 있어요. 바로 안창호 선생의 동서인 김창세 박사지요.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보건학 박사로 1913년 세브란스 의학교를 졸업한 후, 의료활동뿐 아니라 교육에도 집중했어요. 1920년 2월, 임시정부의 대한적십자회 내에서 독립군을 치료하며 독립운동에 앞장설 간호원들을 가르쳤지요.
1922년, 김창세 박사는 미국 토마스제퍼슨 의과대학교에서 만난 빅터 하이저 박사를 통해 공중위생학을 알게 됐어요. 공중위생학은 질병의 전염이나 세균 번식을 막아 사람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연구하는 학문이에요. 김창세 박사는 국가가 독립하려면 민족이 건강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위생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았지요. 그래서 1925년 미국 존스홉킨스 보건대학원에서 보건학 박사 학위를 받고, 국내로 돌아와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조교수로 취임해 위생학 교실을 만들었답니다.
당시 조선에서는 경찰을 중심으로 강압적인 위생 활동이 진행되고 있었어요. 김창세 박사는 이러한 경찰의 강압적인 활동이 조선인의 반감을 불러 위생 활동이 널리 보급되지 못했다고 생각했어요. 이에 김창세 박사는 각종 강습회에 참가해 위생 강연을 하며 위생 교육에 앞장섰어요. 대표적으로, 간호부협회에서 개최한 건강강습회에서는 한 살부터 여섯 살까지의 어린아이가 위생상 조심해야 할 점을 알렸고, 인천부인의원 영아부가 주최한 영아위생에 대한 행사에서는 ‘어린이 양육에 가장 필요한 가정 위생’에 대해서 교육했답니다.
김창세 박사의 위생학 교실은 현재의 연세대학교 예방의학교실로 약 100년 이상 이어지고 있어요. 이 외에도 많은 의사들은 공중위생에 앞장섰고, 그 결과 평균수명이 33.7세(1926~30년)에서, 37.4세(1931~35), 45.1세(1941~45년)까지 점점 높아졌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