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우리 돼지의 변신을 얘기하자면 우선 공통 조상인 멧돼지님의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군. 우리가 이렇게 다양한 모습을 갖게 된 건 유럽과 아시아에서 멧돼지님이 가축으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거든.
유럽 돼지, 아시아 돼지, 따로 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가축 돼지는 대부분 멧돼지(Sus scrofa)의 후손이에요. 가축으로 기르는 돼지 중 인도네시아 티모르섬과 파푸아뉴기니의 가축 돼지를 빼곤 모두 멧돼지로부터 갈라져 내려온 품종이지요.
멧돼지는 지금으로부터 약 170~500만 년 전인 플라이오세 초기, 동남아시아에서 등장했어요. 당시엔 해수면이 25m 정도로 낮았기 때문에 대만이나 일본 등의 섬 지역까지도 육지로 연결돼 있었지요. 덕분에 멧돼지는 아시아 지역은 물론, 유럽, 아프리카까지도 영역을 확장할 수 있었답니다.
하지만 78만~180만 년 전인 플라이스토세 칼라브리안 시기에 춥고 건조한 기후가 이어지면서 대륙간 이동이 어려워졌지요. 이는 돼지가 가축화된 것으로 알려진 9000년 전보다도 훨씬 더 이른 시기로, 돼지가 가축화되기 전부터 이미 유럽과 아시아 멧돼지가 달라졌다는 뜻이지요. 결국 유럽과 아시아에서는 서로 다른 종류의 멧돼지를 가축화하면서 다른 종류의 가축 돼지를 얻게 됐답니다.
우리나라 돼지는 어떤 돼지?
아마 대부분의 친구들이 ‘돼지’란 단어를 들으면 분홍색 가축 돼지를 떠올릴 거예요. 그런데 사실 이 분홍색 돼지들은 모두 유럽이나 미국에서 건너온 외국 돼지들이랍니다.
우리나라 재래 돼지는 약 2000년 전, 중국의 동북 지역인 만주에서 들어왔어요. 연구자들은 고구려 시대 한민족이 기르던 소형 재래종이 한반도로 들어온 것으로 추측하고 있지요. 이후 1904년에 쓰여진 <;조선농업편람>;을 보면 조선 말기까지도 재래 돼지를 키웠다는 기록이 남아있답니다.
하지만 1910년대 일제강점기 때, 외래 품종을 들여오면서 재래 돼지와 교잡*이 일어났어요. 덩치가 작은 재래 돼지를 더욱 크게 만들어 살코기를 많이 얻기 위해서였죠. 이후 우리나라 재래 돼지는 찾아보기 어려워졌지요. *교잡 : 계통이나 품종이 다른 개체끼리 교배하는 것.
이에 국립축산과학원에서는 1988년부터 한국 재래 돼지를 복원하기 위해 나섰어요. 고전 문헌을 바탕으로 재래 돼지의 외모를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교잡종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 돼지를 전국에서 선발했어요. 그리고 약 20여 년 동안 이 돼지들끼리만 교배해 순종 재래 돼지를 복원해 냈지요. 2008년엔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별도의 품종으로 등록하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재래 돼지는 다 컸을때도 80kg 정도로 덩치가 작아 일반 농민들이 잘 키우지 않으려 하는 문제가 남아 있어요. 국립축산과학원 양돈과 조은석 농업연구사는 “재래 돼지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재래 돼지의 특징을 살리면서도 몸집을 키울 수 있는 우리나라만의 품종을 개발하고 있다”며 “앞으로 더 많은 농가에서 재래 돼지를 키울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고 말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