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201123/C201123N007_img_99.jpg)
차디찬 겨울날. 북한산 중턱. 한 멧돼지 가족이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올 여름에 태어난 아기 멧돼지 ‘도니’와 가족들입니다. 도니는 노란빛을 띤 세로줄무늬가 아직 몸에 남아있습니다. 도니 오른쪽은 어미 멧돼지. 어미는 몸무게 100kg이 넘는 큰 덩치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일까요? 방금까지 나무 아래 널브러져 있던 도니의 아빠가 갑자기 일어나 산 아래로 뛰어내려갑니다.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요?
멈춘 곳은 진흙 목욕탕
돌연 산 아래로 내려가 버린 도니의 아빠. 도니 형제와 어미도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입니다. 함께 산 아래로 내려가려는 걸까요? 예상과 달리, 발걸음이 멈춘 곳은 깊은 산속 진흙탕. 그리고는 검은 진흙을 사방으로 튀기며 진흙탕에서 마구 뒹굴기 시작합니다.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201123/C201123N007_img_01.jpg)
진흙 목욕이 좋아~!
꿀꿀. 아~, 시원해~! 역시 진흙에서 하는 목욕이 최고야! 우린 하루에 1kg씩 살이 찌는데다가 땀샘도 적어서 열이 많이 나거든. 그런데 진흙 목욕을 한 번 하고 나면 체온이 2℃씩이나 떨어져서 무지 시원하다구.
진흙 목욕을 하면 자외선을 차단하는 효과도 있고, 진드기나 기생충도 없어져요. 그래서 우리 멧돼지들은 하루에도 몇 번이나 진흙 목욕을 즐긴답니다.
도시로 내려간 이유는?
진흙 목욕을 즐기던 도니 가족이 이젠 먹이를 찾아 숲을 헤집고 다닙니다. 먹이를 찾기 위해 길쭉한 코로 흙을 파헤치는 행동은 흙속 깊이 묻혀있는 식물 종자가 싹을 틔우는 데 도움을 줍니다. 열심히 먹이를 찾던 도니네 가족, 이번엔 도니가 가족들을 떠나 산 아래로 뛰어 내려갑니다.
신도시 개발, 서식처 축소
경기도 양주시 부근에 살던 멧돼지들이 북한산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음. 양주는 서울만큼 개발이 많이 되지 않은 지역이지만, 신도시 개발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멧돼지가 살 곳이 줄어듦.
둘레길 개방, 등산객 증가
40년 동안 사람의 통행이 금지됐던 북한산 우이령 길. 하지만 2010년 8월 북한산 둘레길이 개방되면서 하루 평균 1만 명의 사람들이 북한산을 찾음. 사람이 많아지자 겁이 많은 멧돼지는 서울 번화가 쪽으로 이동.
"원래 살던 곳이 평평한 초원이에요. 산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멧돼지의 본능이죠. 그나마 지금 살고 있는 산림도 매년 줄고 있어요"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201123/C201123N007_img_02.jpg)
우리도 살 곳이 필요해요~
우리 가족은 원래 산과 들이 많은 경기도 여러 지역에 살았어요. 하지만 어느 날부터 큰 트럭들이 오더니 우리가 살던 곳을 마구 헤집는 거예요. 겁을 먹은 가족들은 열심히 달리고 달려서 북한산까지 오게 됐지요. 하지만 여기도 갈수록 사람이 많아져서 맘이 편치 않아요. 결국 우리
아빠는 산 아래로 내려갔고, 저도 아빠를 따라서 새로운 살 곳을 찾아 내려가기로 결심했답니다.
사실 멧돼지는 원래 풀이 많은 들판에 사는 동물이에요. 들에 많이 자라는 초본식물을 즐겨 먹는 멧돼지의 식성이 그 증거지요. 또한 지금도
외국에는 초원에 사는 멧돼지들이 많아요. 원래 살던 산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멧돼지의 본능이랍니다. 인간 입장에서는 멧돼지가 마을과 도시를 습격했다고 생각하지만, 멧돼지 입장에서 보면 인간이 자신들의 집을 모두 빼앗은 거죠.
한상훈 (국립생물자원관 동물자원과 과장)
두 발의 총소리
아직 체구도 작고 어린 티가 나는 도니가 혼자 산 아래로 뛰어 내려갑니다. 이 때 어디선가 총소리가 울립니다. ‘탕탕’ 멧돼지 전문 사냥꾼이 도니를 발견하고 총을 쏜 것입니다. 다행이 총알이 빗겨갔습니다. 놀란 도니는 산 밑으로 죽을 힘을 다해 달립니다.
잠깐! 만약 멧돼지를 만났다면?
*정부는 2011년 11월, 멧돼지 피해 대처 요령을 정부 대표 블로그 ‘정책공감’에 발표했다.
① 등을 보이지 말고 달아나지 않는다.
② 소리를 크게 지르거나 놀라게 하지 않는다.
③ 나무나 바위 등에 숨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린다.
함께 살 순 없나요?
산 아래로 내려온 도니. 어느덧 높은 건물이 빽빽이 들어 선 서울 도심 한복판에 도착했습니다. 너무 놀라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 위로 돌진하는 도니. 자동차 불빛이 너무 밝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이 멈춰 섭니다. 과연 도니는 차가운 도시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201123/C201123N007_img_03.jpg)
멧돼지는 시각이 발달하지 않은 대신 후각과 청각은 뛰어나요. 그래서 총이나 포획틀로 잡기란 쉽지 않죠. 가까운 나라인 일본에서도 멧돼지가 마을이나 도심에 나타나는 일이 많아요.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총이나 포획틀로 멧돼지를 잡기도 하지요. 하지만 멧돼지를 잡지 않고도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다양한 방법도 시도하고 있답니다.
이우신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 대학 산림과학부)
너른 들판을 달리고 싶어서 산 아래로 내려왔는데 제가 달릴 곳은 없었어요. 그리고 사람들은 자꾸 우리들을 잡으려고만 해요. 우리와 사람들이 사이좋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