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 깜짝이야.
놀랐잖아. 피조아 공주는 하필 공포의 숲에서 만나자고 한담? 축축하고 어둡고, 사람 하나 없는 이 곳에서 무슨 데이트냐고~. 하여간 겁이 없는 건 알아 줘야 해.
“피조아 공주~. 거기 있소? 공주~, 나 후덜덜 왕자가 왔소!”
“으흐흐흐흐…. 캬르릉…. 끼끼끼끼….”
후덜덜~, 방금 무슨 소리가 나지 않았어?
“으아아악! 귀…, 귀신이다!”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손발이 오들오들!
니야옹~!
뭐야…. 고양이었어? 깜짝 놀랐잖아! 이런, 온 몸이 땀에 젖었잖아. 심장도 벌렁거리고. 앗! 피다! 언제 다친 거지?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설마, 귀신의 장난? 꺄아악~!
냐옹냐옹, 진정해요. 귀신이 한 일이 아니에요! 뇌 속에 있는 편도체가 공포를 인식하고 몸을 빨리 도망갈 수 있는 상태로 만든 거예요.
뇌가 느끼는 공포
이걸 보세요. 귀신을 봤다고 느꼈을 때의 왕자님의 뇌예요. 왕자님이 들은 이상한 소리와 희뿌연 물체에 대한 정보는 가장 먼저 뇌의 시상으로 전해져요.(❶)
신경핵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지요. 시상은 곧장 편도체와(➋) 시각피질로 정보를 전달해요(➌). 편도체는 공포를 느끼게 하는 자극과 공포 반응을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해요. 시각피질은 눈으로 본 물체의 모양이나 위치, 운동 상태를 분석해서 놀란 대상이 무엇인지 판단해요. 그 때 희뿌연 것이 고양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안심을 하게 되지요. 하지만 이런 합리적인 사고는 즉각적인 반응보다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우리 몸은 이보다 먼저 비명을 지르게 된답니다.
눈은 휘둥그레~, 땀이 삐질삐질 입 안은 바싹!
눈은 동공을 크게 해 빛을 많이 들어오게 한다. 공포 대상을 정확히 알아보기 위해서다. 순간 들어온 많은 빛 때문에 시야가 흐려질 때도 있다. 땀도 많이 난다. 땀은 몸을 미끄럽게 해서 공포 대상으로부터 쉽게 붙잡히지 않게 한다.
반면 침의 양은 줄어 입 안이 마른다.
쿵쾅거리는 심장에 가빠지는 호흡
심장 박동이 빨라지면서 숨을 깊고 빨리 쉬게 된다. 피가 빨리 돌아 몸이 활발히 움직일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 쉽게 도망갈 수 있도록 한다.
창백한 얼굴에 몸은 바들바들!
땀이 식으면서 서늘함을 느낀 몸은 체온을 높이기 위해 몸을 떨고 털을 세운다. 또 땀구멍과 피부 근처의 혈관을 닫는데, 이 때문에 피부에 핏기가 없어져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거북한 속, 마려운 오줌
위가 묵직하거나 메스꺼울 수 있다. 도망가는 것에 온 힘이 집중되면서 소화 활동이 잘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방광이 수축해 오줌도
마렵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소변을 배출하면 몸이 가벼워져 도망가기 쉽고 동물의 경우, 지저분한 냄새를 풍겨 공포대상을 쫓기 위해 이렇게 진화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잘 듣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긴장한 몸
근육 쪽으로 피가 몰려 근육도 수축한다. 수축한 성대 근육은 무서운 것을 봤을 때 소리를 지르게 하지만, 너무 긴장하면 아예 ‘억’소리조차 못 내게 한다. 또한 공포를 느낄 때 뇌는 마치 잠을 자는 것처럼 의식을 차단하는 쪽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불러도 잘 듣지 못한다. 이 때 의식이 너무 많이 차단되면 기절할 수도 있다. 게다가 잘 도망갈 수 있게 감각이 무뎌져 고통을 쉽게 느끼지 못한다. 산에서 곰을 만나 도망가다 가시에 찔렸을 때, 머뭇거리다가는 곰에게 잡아먹히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보기만 해도 오싹!
귀신의 장난이 아니라 뇌가 우리 몸에 보낸 신호였구나! 빨리 도망가라고 말이야. 근데 넌 누구니?
저는 숲의 정령이에요. 제가 공주님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 드릴게요. 그러려면 우선 귀신을 무서워하지 말아야 해요. 사람은 눈으로 가장 많은 정보를 얻어요. 그런데 귀신 이나 괴물들의 모습에는 사람들이 공포를 느낄 만한 요소들이 많이 있지요. 하지만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어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왜 귀신이 보기만 해도 무서운지 자세히 알려 드릴게요!
해칠 것 같은 생김새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생존 확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공포심도 그 중 하나. 우리 뇌는 자신의 생존에 위협이 되는 존재나 자신을 해칠 수 있는 대상에 공포를 느끼고 주저 없이 도망갈 수 있도록 진화했다. 늑대인간이나 구미호에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우리가 곰이나 호랑이에게 공포를 느끼는 이유와 같다. 날카로운 손톱과 이빨, 큰 덩치와 사나운 성격, 화난 표정은 사람을 해칠 수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죽음을 연상시키는 이미지
모든 생명체는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사람은 죽음을 연상시키는 이미지에 공포를 느낀다. 좀비, 귀신, 강시, 드라큘라는 모두 죽은 사람, 시체다. 게다가 입가에 묻힌 피는 고통이라는 이미지를 더한다. 귀신의 하얀 소복과 저승사자의 검은 두루마기는 장례식을 떠올리게 하면서 죽음을 연상시켜 공포감을 극대화한다.
기괴한 모습과 동작
꺾인 두 팔과 두 손으로 계단을 기어 내려오는 모습이나 눈, 코, 입이 보통 사람들과 다른 위치에 있는 기괴한 모습도 공포를 일으킨다. 처음 보는 모습이기 때문에 정보가 없고, 이는 나를 해칠지도 모르는 불안감을 만들기 때문이다. 뿔이 달린 도깨비, 녹색 피부의 괴물, 불에 휩싸여 있는 얼굴이 등이 그 예다.
일부분만 보이는 얼굴
영화에서 처녀 귀신은 왜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을까? 이유는 공포감을 더하기 위해서다. 우리 뇌에는 얼굴만 전문으로 인식하는 세포가 있다. 이 세포는 눈앞에 있는 대상이 사람인지 아닌지, 나를 해칠 것인지 아닌지를 재빨리 판단해서 대처하려고 한다. 그런데 반쯤 가린 얼굴은 뇌 세포의 판단을 방해해 얼굴에서 정보를 읽어내지 못한다. 정보가 부족하면 답답해지고 결국 공포감으로 발전한다.
한편, 뇌는 눈을 통해 들어오는 사물의 정보가 불완전하더라도 그것을 바탕으로 사물을 모두 본 것처럼 인식하는 능력이 있다. 어두운 곳에 있는 옷걸이가 귀신처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렇게 세포가 느끼는 답답함이 뇌의 상상력과 더해지면서 사람들은 귀신을 실제보다 더 무서운 얼굴로 인식하게 된다.
잠깐! 엄한 부모님의 아이는 낯선 얼굴이 더 무서워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엄한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낯선 얼굴에 더욱 공포감을 느끼는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칼 슈바르츠 박사팀은 사람들을 두 집단으로 나눠 모르는 사람의 얼굴 사진을 보여 주는 실험을 했다. 이 때 자기기공명영상장치로 뇌의 편도체를 찍어 비교했다. 편도체는 뇌에서 공포를 인식하는 역할을 한다. 실험결과, 엄한 부모 아래서 자란 사람들의
편도체가 그렇지 않은 사람의 편도체보다 더 활발하게 반응했다.
분위기에 후덜덜~
그런데 나는 공포의 숲에 있는 것만으로도 무서워. 귀신이 나타나지 않아도 말이야. 공주를 찾아야 하는데…, 어쩌지?
공포의 숲은 분위기만으로도 공포감을 갖게 하지요. 좁고 어둡고 막혀 있기 때문이에요. 조용하기 때문에 동물들의 발자국 소리도 공포를 느끼게 하지요. 하지만 분위기는 분위기일뿐 진짜 왕자님을 해치지는 않아요. 공포의 숲 분위기가 왜 왕자님을 두렵게 하는지 알려 드리지요.
어둡고 온도가 낮으며 좁은 곳
영국 허트퍼스셔대학교 심리학과 리처드 와이즈먼 교수팀은 귀신 체험과 관련해 실험을 진행했다. 와이즈먼 교수팀은 참가자 462명에게 귀신이 출몰하는 것으로 유명한 잉글랜드 햄프턴 궁전에서 이상한 존재가 느껴지는지, 느껴진다면 어디서 그런지 물었다.
그 결과 참가자의 46.5%인 215명이 이상한 존재를 느꼈다고 대답했고, 그들이 지목한 장소는 옛날부터 사람들이 귀신을 봤다고 주장하는 지점과 대부분 일치했다. 그 곳은 온도가 낮으며 어둡고 좁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어둡고 싸늘한 지하실이 왠지 무섭고, 공포영화
배경이 늘 음침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막힌 공간
베란다는 공포감을 줄인다. 밖이 잘 보이면 침입자가 오는지를 빨리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외부에 도움을 청할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해 공포감을 줄여 준다.
반면에 엘리베이터와 같이 창이 없고 막힌 공간은 공포를 더욱 크게 느끼게 한다. 공포의 대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높은 톤의 소리
사람은 주파수가 2~3khz인 소리에 특히 예민하다. 이 주파수는 소프라노 가수의 목소리 정도다. 학자들은 비명처럼 높은 소리를 위험 신호로 인식할 수 있게 사람의 청각 시스템이 진화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또 포식자의 움직임을 잘 읽기 위해 살금살금 걸어오는 소리나, 늑대나 여우 등의 우는 소리에 무서움을 느끼게끔 진화했다고 보고 있다.
잠깐! 슈렉이 무섭지 않은 이유
녹색 피부에 커다란 코, 잎이 말린듯한 귀에 희번덕거리는 눈까지 무서운 공룡을 닮은 슈렉. 하지만 슈렉을 무서워하는 사람은 없다.
이유는 슈렉이 나타나는 공간의 분위기 때문. 아무리 무서운 괴물도 밝고 탁 트인 공간에서 사람들과 마주하면 공포심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조건 형성’이라고 한다. 그만큼 공포도 생김새와 분위기가 잘 어우러져야 느낄 수 있다.
공포야 물럿거라
후덜덜 왕자님! 오셨군요! 사실은 왕자님이 좀 더 용감해지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공포의 숲에서 데이트를 하자고 한 거였답니다. 그런데 왕자님 옆에 혹시…, 제 가 유일하게 무서워하는 고양이? 꺅~!
니야옹! 나는 공포심을 먹고 크는 냥이 괴물이다. 피조아 공주는 내가 데려가겠다. 냥냥!
아…, 안 돼! 공주를 구하러 가야겠어. 하…, 하지만 난 괴물이 아직도 무서운 걸! 어떻게 극복하지?
공포를 극복해 보자!
1.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자.
귀신과 괴물을 직접 만나본 적이 있나요? 귀신과 괴물이 진짜 존재할까요?
그리고 보니, 공포 영화나 귀신의 집에서 가짜 귀신을 본 적은 있지만, 진짜 귀신은 본 적이 없어! 귀신을 봤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긴 했지만 나중에는 희뿌연 물체나 불을 보고 귀신이나 도깨비 불로 착각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지.
2. 객관적인 자료를 놓고 생각해 보자.
귀신이나 괴물로부터 공격을 당해 다치거나 죽은 사람이 있다는 기사나 자료를 본 적이 있나요? 주변에 귀신이나 괴물에게 다친 사람이 있나요?
그리고 보니, 공포의 숲에서 사람들이 귀신에게 공격당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어.
3. 실제 대상과 마주해 보자.
무서워하는 대상이 더 이상 위험하지 않다는 판단이 서면 직접 대상을 만나 보세요.
귀신이나 괴물은 모두 내 마음 속의 두려움이 만들어 낸 가짜에 불과해! 환영으로부터 공주를 구하러 가겠어!
첨단으로 극복하는 공포
가상현실로 이겨 내는 고소공포증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김선일 교수팀은 가상현실을 이용해 고소공포증을 치료하고 있다. 환자가 큰 선글라스가 달린 헬멧을 머리에 쓴 뒤 컴퓨터를 켜면, 환자 눈앞에는 밖에 훤히 보이는 엘리베이터가 나타난다. 환자가 엘리베이터를 타면 한 층씩 올라가고, 고개를 숙이면
땅이 멀어지고, 들면 하늘이 가까워진다. 환자가 딛고 선 판도 높이에 따라 흔들거리고, 귀에는 바람소리가 심하게 들리면서 속도감도 느껴져 진짜 엘리베이터에 탄 느낌을 준다. 공포증 치료의 핵심은 공포 대상과 직접 자주 마주하는 것이기 때문에 환자가 진짜처럼 느껴야 치료에 효과가 있다.
증강현실로 치료하는 벌레 공포증
현실 세계에 디지털 문자와 정보를 겹쳐서 보여 주는 증강현실 기술이 벌레 공포증 치료에도 쓰여 화제다. 지난 달 스페인 하우메 대학교 연구팀은 바퀴벌레 공포증에 시달리는 6명의 환자에게 눈 앞에 컴퓨터 그래픽으로 가상의 바퀴벌레가 돌아다니도록 했다. 환자가 책상에 손을 올려놓으면 바퀴벌레가 그 위를 지나가고, 심지어 가상의 파리채로 때려잡을 수도 있다.
실험 결과는 대성공. 처음에 바퀴벌레 1마리에서 시작해 나중에는 60마리까지 대거 등장시켜 환자들이 익숙해지게 만든 뒤, 실제 바퀴벌레가 들어 있는 플라스틱 통에 손을 집어넣도록 하자 6명 모두가 두려워하지 않고 손을 넣었다.
알약으로 치료하는 거미 공포증
스위스 취리히대학교 도미니크 드 퀘르벵 교수팀은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이 든 알약으로 거미 공포증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다. 코르티솔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해 인체에서 자연스럽게 분비되는 호르몬이다.
연구팀은 이전 연구를 통해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나오는 코르티솔이 고통스러운 기억이나 감정을 사라지게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를 이용해 약으로 코르티솔의 농도를 높인다면 두려움에 떠는 환자들을 도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외에도 음악과 조명을 이용한 치료 등 첨단 과학을 이용한 공포증 치료가 계속되고 있다.
공포, 극복을 넘어 즐겨라!
겁 많던 왕자님이 저를 구해 주시다니! 그럼 이제 우리 함께 공포를 즐겨 볼까요?
고…, 공포를 즐긴다구요?
공포를 즐기는 심리 김은정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공포, 오히려 안정과 만족을 준다?
위험을 감수하면서 스릴을 추구하는 건 인간에게만 나타나는 독특한 심리예요. 명확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보상심리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어요. 공포를 체험한 뒤 우리 몸에서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나오거든요. 도파민이 주는 안정과 행복, 그리고 공포를 끝까지 잘 이겨냈다는 자기만족감이 무서운데도 계속해서 공포물을 찾게 하는 이유라는 거죠.
고통 = 행복이라고?
최근 ‘두렵다’와 ‘재미있다’는 정반대의 감정이 사람 마음속에서는 아주 가깝다는 연구 결과가 소비자 연구저널 8월 호에 나왔어요.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에두아르도 안드레이드 교수팀은 특정 사건에서 가장 기쁜 순간의 뇌와 두려움을 크게 느낄 때의 뇌 반응이 비슷하다고 발표했어요. 공포를 통해 행복을 느낀다는 거지요. 실제 뇌를 기분 좋게 하는 엔돌핀은 고통을 느낄 때도 많이 나온답니다.
고통으로 스트레스를 확~!
숙제하라는 엄마의 잔소리, 친구와의 다툼 등은 우리에게 작지만 스트레스를 줘요. 하지만 매번 그 스트레스를 풀기란 쉽지 않지요. 심리학에서는 이를 ‘잔여 긴장’이라고 해요. 잔여 긴장을 해소하는 방법 중 하나는 더 큰 긴장감을 만드는 거예요. 큰 긴장이 해소되는 순간 잔여 긴장도 함께 사라지지요. 공포영화는 큰 긴장감을 주어 영화가 끝남과 동시에 잔여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는 효과를 낸답니다.
귀신이다! 그런데 디지털?
하얀 소복을 입은 귀신이 붉은 피를 뚝뚝 흘리며 병원 복도를 걷고 있다. 갑자기 관객 쪽으로 고개를 휙 돌리더니 가위 날을 쫙 벌리고 달려들어 관객의 몸을 찌르고 통과한다.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눈을 감거나 비명 소리와 함께 귀신을 피하려는 몸짓으로 상영관은 아수라장이 됐다.
사람이 귀신으로 분장을 하고 발목을 잡던 귀신의 집에서 한층 진화한 디지털 귀신이 나타났다. 3D 영화보다 더 실감난다. 스크린에서 튀어나온 물체가 내 몸을 관통해 실제 귀신이 나에게 달려드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비밀은 방의 구조다. 360˚로 둥글게 둘러싼 스크린에 12개의 영사기가 귀신 이미지를 쏘기 때문에 어느 각도에서 바라봐도 서로 다른 모습의 입체 영상을 즐길 수 있는 것. 또 둥글게 싸여 있는 스크린은 평면과 평면이 만나는 모서리 부분이 없어, 디지털이지만 형태의 왜곡이 없는 사실감 넘치는 귀신을 만들어 낸다.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201016/C201016N001_img_05.jpg)
▲12개의 영사기는 360˚로 둘러싸인 스크린에 각기 다른 영상을 쏜다. 그래서 앉는 자리에 따라 매번 다른 귀신을 만날 수 있다. 또 입체 영상이 눈앞까지만 오는 기존 3D 상영관과는 달리 귀신이 내 몸을 통과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잠깐! 디지털 귀신, 가짜인 걸 알면서도 왜 놀랄까?
갑자기 내 눈앞으로 귀신이 튀어 나온다고 가정해보자. 우리 몸은 이게 뭔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일단 놀란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눈동자가 커지며 몸이 움츠러든다. 그런 다음 튀어나온 것에 대한 시각정보가 대뇌피질로 전달돼 형태와 특성을 보고 디지털 귀신이라는 사실을 인식한다. 그제서야 편도체는 위험하지 않은 존재, 가짜 귀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때문에 공포 영화에 나오는 괴물은 영화일 뿐이고 귀신의 집의 귀신이 가짜라는 것을 알아도 일단 분위기나 생김새 등 공포를 느낄 만한 요소가 있으면 깜짝 놀라고 보게 되는 것이다.
공포 vs 과학
후덜덜 왕자님, 어때요? 롤러코스터도 타고 디지털 귀신까지 만나 봤어요. 이제 마지막으로 다양한 종류의 공포영화로 더위를 날려 볼까요? 공포 영화 속 귀신이나 괴물의 모습이 과학과 함께 어떻게 변해 왔는지도 살펴보 자구요. 어린이과학동아’ 친구들도 함께해요!
신화를 본 뜬 괴물의 출현
공포영화가 처음 나왔을 때는 신화 속 인물을 본 뜬 괴물이 공포의 대상으로 등장했다. 당시 공포 소재로 삼을 수 있는 유일한 자료는 신화. 신화 속 괴물을 실체화 해 공포감을 불러 일으킨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미노타우르스를 본 뜬 늑대인간으로 지금도 공포 영화의 인기 소재다.
우주개발과 함께 시작된 외계 생명체에 대한 공포
1980년대 인류의 우주탐사가 본격화되면서 우주에 대한 공포, 특히 외계인은 공포 영화의 단골 소재로 등장했다.
미지에 대한 공포
인간이 점점 알려지지 않은 오지를 탐험하면서 땅과 바다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생물 그리고 극지에 대한 공포가 생겨났다.
인간의 욕심이 불러온 환경파괴에 대한 경고
산업화에 따라 환경 파괴는 물론, 자연으로 오염물질이 퍼지면서 환경오염으로 인한 돌연변이 생물이 공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생명공학과 함께 등장한 괴생명체
인간이 과학을 이용해 창조한 생명체가 공포의 대상이 된 경우다. 대표적인 예가 프랑켄슈타인과, 유전공학을 이용해 만든 영화 ‘스플라이스’의 드렌.
생물 무기의 도래에 따른 좀비 영화
2000년대 들어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사스), 탄저병, 신종플루 등 원인도 잘 모르고 대책도 마땅치 않은 신종 전염병이 많이 등장했다. 인류가 대비를 못하고 당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좀비 영화의 인기로 나타나고 있다.
첨단 장치와 기술에 대한 공포
휴대전화, 엘리베이터 등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첨단기계나 안구 이식 등 의료 기술의 발달을 주제로 한 공포 영화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201016/C201016N001_img_13_.jpg)
한 눈에 이해가 쏙쏙 특집 한 걸음 더!
그런데 아까 보니 고양이를 무서워하던데…, 피조아 공주도 무서워하는 것이 있었소?
고양이가 유일해요. 어렸을 적부터 고양이는 요물이라며 절대 근처에도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들으며 자랐어요. 고양이는 마녀가 시킨 나쁜 일을 하거나 마녀가 변신한 것이라면서요. 어머니도 고양이를 아주 무서워하셨고요. 그러 다 고양이와 만났는데 보는 순간 무서워 돌을 던졌고, 그 돌에 맞은 고양이는 저 를 심하게 할퀴었답니다. 그 뒤로 고양이만 보면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아요.
피조아 공주의 고양이공포증 Why?
➊ 공포도 유전된다?
부모님의 특정 공포증이 자식에게까지 똑같이 전해지지는 않는다. 다만 다른 사람에 비해 두려움을 잘 느끼고 잘 놀라는 등의 기질은 유전된다고 볼 수 있다.
캐나다의 몬트리올 대학교 연구팀은 출생 후 곧바로 헤어져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일란성 쌍둥이들을 추적했다. 그 결과 쌍둥이 중 한명이 공포증을 가지면 다른 한명도 같은 공포증으로 시달릴 확률이 50%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공포증이 사람의 머리카락 색처럼 유전될 수 있다는 이론도 있다.
➋ 과거가 만드는 공포?
공포심은 경험에 의해 생기는 경우가 많다. 어렸을 때 물에 빠져 죽을 뻔했던 기억이 있다면 물을 무서워할 가능성이 높다. 또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물은 위험하고 빠지면 죽을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하는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자랐다면, 자연스레 물만 봐도 공포를 느낄 수 있다. 간접적으로 경험한 셈이기 때문 이다.
또한 공포심은 속한 사회의 문화에도 영향을 받는다.
동양에 비해 서양 사람들은 구미호나 처녀귀신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이유는 공동체 의식이 동양문화보다 약하기 때문. 구미호나 처녀귀신은 대부분 누군가의 잘못으로 인해 죽음을 당해 원한이 맺혀 있다. 공동체에 누군가가 나를 원망하고 있다는 사실은 공동체 의식이 강한 동양 사람들에겐 두려움을 가져다 준다. 하지만 개개인의 삶이 더 중요한 서양 문화에서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놀랐잖아. 피조아 공주는 하필 공포의 숲에서 만나자고 한담? 축축하고 어둡고, 사람 하나 없는 이 곳에서 무슨 데이트냐고~. 하여간 겁이 없는 건 알아 줘야 해.
“피조아 공주~. 거기 있소? 공주~, 나 후덜덜 왕자가 왔소!”
“으흐흐흐흐…. 캬르릉…. 끼끼끼끼….”
후덜덜~, 방금 무슨 소리가 나지 않았어?
“으아아악! 귀…, 귀신이다!”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201016/C201016N001_img_99.jpg)
니야옹~!
뭐야…. 고양이었어? 깜짝 놀랐잖아! 이런, 온 몸이 땀에 젖었잖아. 심장도 벌렁거리고. 앗! 피다! 언제 다친 거지?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설마, 귀신의 장난? 꺄아악~!
냐옹냐옹, 진정해요. 귀신이 한 일이 아니에요! 뇌 속에 있는 편도체가 공포를 인식하고 몸을 빨리 도망갈 수 있는 상태로 만든 거예요.
뇌가 느끼는 공포
이걸 보세요. 귀신을 봤다고 느꼈을 때의 왕자님의 뇌예요. 왕자님이 들은 이상한 소리와 희뿌연 물체에 대한 정보는 가장 먼저 뇌의 시상으로 전해져요.(❶)
신경핵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지요. 시상은 곧장 편도체와(➋) 시각피질로 정보를 전달해요(➌). 편도체는 공포를 느끼게 하는 자극과 공포 반응을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해요. 시각피질은 눈으로 본 물체의 모양이나 위치, 운동 상태를 분석해서 놀란 대상이 무엇인지 판단해요. 그 때 희뿌연 것이 고양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안심을 하게 되지요. 하지만 이런 합리적인 사고는 즉각적인 반응보다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우리 몸은 이보다 먼저 비명을 지르게 된답니다.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201016/C201016N001_img_01.jpg)
눈은 동공을 크게 해 빛을 많이 들어오게 한다. 공포 대상을 정확히 알아보기 위해서다. 순간 들어온 많은 빛 때문에 시야가 흐려질 때도 있다. 땀도 많이 난다. 땀은 몸을 미끄럽게 해서 공포 대상으로부터 쉽게 붙잡히지 않게 한다.
반면 침의 양은 줄어 입 안이 마른다.
쿵쾅거리는 심장에 가빠지는 호흡
심장 박동이 빨라지면서 숨을 깊고 빨리 쉬게 된다. 피가 빨리 돌아 몸이 활발히 움직일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 쉽게 도망갈 수 있도록 한다.
창백한 얼굴에 몸은 바들바들!
땀이 식으면서 서늘함을 느낀 몸은 체온을 높이기 위해 몸을 떨고 털을 세운다. 또 땀구멍과 피부 근처의 혈관을 닫는데, 이 때문에 피부에 핏기가 없어져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거북한 속, 마려운 오줌
위가 묵직하거나 메스꺼울 수 있다. 도망가는 것에 온 힘이 집중되면서 소화 활동이 잘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방광이 수축해 오줌도
마렵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소변을 배출하면 몸이 가벼워져 도망가기 쉽고 동물의 경우, 지저분한 냄새를 풍겨 공포대상을 쫓기 위해 이렇게 진화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잘 듣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긴장한 몸
근육 쪽으로 피가 몰려 근육도 수축한다. 수축한 성대 근육은 무서운 것을 봤을 때 소리를 지르게 하지만, 너무 긴장하면 아예 ‘억’소리조차 못 내게 한다. 또한 공포를 느낄 때 뇌는 마치 잠을 자는 것처럼 의식을 차단하는 쪽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불러도 잘 듣지 못한다. 이 때 의식이 너무 많이 차단되면 기절할 수도 있다. 게다가 잘 도망갈 수 있게 감각이 무뎌져 고통을 쉽게 느끼지 못한다. 산에서 곰을 만나 도망가다 가시에 찔렸을 때, 머뭇거리다가는 곰에게 잡아먹히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보기만 해도 오싹!
귀신의 장난이 아니라 뇌가 우리 몸에 보낸 신호였구나! 빨리 도망가라고 말이야. 근데 넌 누구니?
저는 숲의 정령이에요. 제가 공주님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 드릴게요. 그러려면 우선 귀신을 무서워하지 말아야 해요. 사람은 눈으로 가장 많은 정보를 얻어요. 그런데 귀신 이나 괴물들의 모습에는 사람들이 공포를 느낄 만한 요소들이 많이 있지요. 하지만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어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왜 귀신이 보기만 해도 무서운지 자세히 알려 드릴게요!
해칠 것 같은 생김새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생존 확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공포심도 그 중 하나. 우리 뇌는 자신의 생존에 위협이 되는 존재나 자신을 해칠 수 있는 대상에 공포를 느끼고 주저 없이 도망갈 수 있도록 진화했다. 늑대인간이나 구미호에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우리가 곰이나 호랑이에게 공포를 느끼는 이유와 같다. 날카로운 손톱과 이빨, 큰 덩치와 사나운 성격, 화난 표정은 사람을 해칠 수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죽음을 연상시키는 이미지
모든 생명체는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사람은 죽음을 연상시키는 이미지에 공포를 느낀다. 좀비, 귀신, 강시, 드라큘라는 모두 죽은 사람, 시체다. 게다가 입가에 묻힌 피는 고통이라는 이미지를 더한다. 귀신의 하얀 소복과 저승사자의 검은 두루마기는 장례식을 떠올리게 하면서 죽음을 연상시켜 공포감을 극대화한다.
기괴한 모습과 동작
꺾인 두 팔과 두 손으로 계단을 기어 내려오는 모습이나 눈, 코, 입이 보통 사람들과 다른 위치에 있는 기괴한 모습도 공포를 일으킨다. 처음 보는 모습이기 때문에 정보가 없고, 이는 나를 해칠지도 모르는 불안감을 만들기 때문이다. 뿔이 달린 도깨비, 녹색 피부의 괴물, 불에 휩싸여 있는 얼굴이 등이 그 예다.
일부분만 보이는 얼굴
영화에서 처녀 귀신은 왜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을까? 이유는 공포감을 더하기 위해서다. 우리 뇌에는 얼굴만 전문으로 인식하는 세포가 있다. 이 세포는 눈앞에 있는 대상이 사람인지 아닌지, 나를 해칠 것인지 아닌지를 재빨리 판단해서 대처하려고 한다. 그런데 반쯤 가린 얼굴은 뇌 세포의 판단을 방해해 얼굴에서 정보를 읽어내지 못한다. 정보가 부족하면 답답해지고 결국 공포감으로 발전한다.
한편, 뇌는 눈을 통해 들어오는 사물의 정보가 불완전하더라도 그것을 바탕으로 사물을 모두 본 것처럼 인식하는 능력이 있다. 어두운 곳에 있는 옷걸이가 귀신처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렇게 세포가 느끼는 답답함이 뇌의 상상력과 더해지면서 사람들은 귀신을 실제보다 더 무서운 얼굴로 인식하게 된다.
잠깐! 엄한 부모님의 아이는 낯선 얼굴이 더 무서워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엄한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낯선 얼굴에 더욱 공포감을 느끼는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칼 슈바르츠 박사팀은 사람들을 두 집단으로 나눠 모르는 사람의 얼굴 사진을 보여 주는 실험을 했다. 이 때 자기기공명영상장치로 뇌의 편도체를 찍어 비교했다. 편도체는 뇌에서 공포를 인식하는 역할을 한다. 실험결과, 엄한 부모 아래서 자란 사람들의
편도체가 그렇지 않은 사람의 편도체보다 더 활발하게 반응했다.
분위기에 후덜덜~
그런데 나는 공포의 숲에 있는 것만으로도 무서워. 귀신이 나타나지 않아도 말이야. 공주를 찾아야 하는데…, 어쩌지?
공포의 숲은 분위기만으로도 공포감을 갖게 하지요. 좁고 어둡고 막혀 있기 때문이에요. 조용하기 때문에 동물들의 발자국 소리도 공포를 느끼게 하지요. 하지만 분위기는 분위기일뿐 진짜 왕자님을 해치지는 않아요. 공포의 숲 분위기가 왜 왕자님을 두렵게 하는지 알려 드리지요.
어둡고 온도가 낮으며 좁은 곳
영국 허트퍼스셔대학교 심리학과 리처드 와이즈먼 교수팀은 귀신 체험과 관련해 실험을 진행했다. 와이즈먼 교수팀은 참가자 462명에게 귀신이 출몰하는 것으로 유명한 잉글랜드 햄프턴 궁전에서 이상한 존재가 느껴지는지, 느껴진다면 어디서 그런지 물었다.
그 결과 참가자의 46.5%인 215명이 이상한 존재를 느꼈다고 대답했고, 그들이 지목한 장소는 옛날부터 사람들이 귀신을 봤다고 주장하는 지점과 대부분 일치했다. 그 곳은 온도가 낮으며 어둡고 좁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어둡고 싸늘한 지하실이 왠지 무섭고, 공포영화
배경이 늘 음침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막힌 공간
베란다는 공포감을 줄인다. 밖이 잘 보이면 침입자가 오는지를 빨리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외부에 도움을 청할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해 공포감을 줄여 준다.
반면에 엘리베이터와 같이 창이 없고 막힌 공간은 공포를 더욱 크게 느끼게 한다. 공포의 대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높은 톤의 소리
사람은 주파수가 2~3khz인 소리에 특히 예민하다. 이 주파수는 소프라노 가수의 목소리 정도다. 학자들은 비명처럼 높은 소리를 위험 신호로 인식할 수 있게 사람의 청각 시스템이 진화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또 포식자의 움직임을 잘 읽기 위해 살금살금 걸어오는 소리나, 늑대나 여우 등의 우는 소리에 무서움을 느끼게끔 진화했다고 보고 있다.
잠깐! 슈렉이 무섭지 않은 이유
녹색 피부에 커다란 코, 잎이 말린듯한 귀에 희번덕거리는 눈까지 무서운 공룡을 닮은 슈렉. 하지만 슈렉을 무서워하는 사람은 없다.
이유는 슈렉이 나타나는 공간의 분위기 때문. 아무리 무서운 괴물도 밝고 탁 트인 공간에서 사람들과 마주하면 공포심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조건 형성’이라고 한다. 그만큼 공포도 생김새와 분위기가 잘 어우러져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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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덜덜 왕자님! 오셨군요! 사실은 왕자님이 좀 더 용감해지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공포의 숲에서 데이트를 하자고 한 거였답니다. 그런데 왕자님 옆에 혹시…, 제 가 유일하게 무서워하는 고양이? 꺅~!
니야옹! 나는 공포심을 먹고 크는 냥이 괴물이다. 피조아 공주는 내가 데려가겠다. 냥냥!
아…, 안 돼! 공주를 구하러 가야겠어. 하…, 하지만 난 괴물이 아직도 무서운 걸! 어떻게 극복하지?
공포를 극복해 보자!
1.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자.
귀신과 괴물을 직접 만나본 적이 있나요? 귀신과 괴물이 진짜 존재할까요?
그리고 보니, 공포 영화나 귀신의 집에서 가짜 귀신을 본 적은 있지만, 진짜 귀신은 본 적이 없어! 귀신을 봤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긴 했지만 나중에는 희뿌연 물체나 불을 보고 귀신이나 도깨비 불로 착각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지.
2. 객관적인 자료를 놓고 생각해 보자.
귀신이나 괴물로부터 공격을 당해 다치거나 죽은 사람이 있다는 기사나 자료를 본 적이 있나요? 주변에 귀신이나 괴물에게 다친 사람이 있나요?
그리고 보니, 공포의 숲에서 사람들이 귀신에게 공격당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어.
3. 실제 대상과 마주해 보자.
무서워하는 대상이 더 이상 위험하지 않다는 판단이 서면 직접 대상을 만나 보세요.
귀신이나 괴물은 모두 내 마음 속의 두려움이 만들어 낸 가짜에 불과해! 환영으로부터 공주를 구하러 가겠어!
첨단으로 극복하는 공포
가상현실로 이겨 내는 고소공포증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김선일 교수팀은 가상현실을 이용해 고소공포증을 치료하고 있다. 환자가 큰 선글라스가 달린 헬멧을 머리에 쓴 뒤 컴퓨터를 켜면, 환자 눈앞에는 밖에 훤히 보이는 엘리베이터가 나타난다. 환자가 엘리베이터를 타면 한 층씩 올라가고, 고개를 숙이면
땅이 멀어지고, 들면 하늘이 가까워진다. 환자가 딛고 선 판도 높이에 따라 흔들거리고, 귀에는 바람소리가 심하게 들리면서 속도감도 느껴져 진짜 엘리베이터에 탄 느낌을 준다. 공포증 치료의 핵심은 공포 대상과 직접 자주 마주하는 것이기 때문에 환자가 진짜처럼 느껴야 치료에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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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세계에 디지털 문자와 정보를 겹쳐서 보여 주는 증강현실 기술이 벌레 공포증 치료에도 쓰여 화제다. 지난 달 스페인 하우메 대학교 연구팀은 바퀴벌레 공포증에 시달리는 6명의 환자에게 눈 앞에 컴퓨터 그래픽으로 가상의 바퀴벌레가 돌아다니도록 했다. 환자가 책상에 손을 올려놓으면 바퀴벌레가 그 위를 지나가고, 심지어 가상의 파리채로 때려잡을 수도 있다.
실험 결과는 대성공. 처음에 바퀴벌레 1마리에서 시작해 나중에는 60마리까지 대거 등장시켜 환자들이 익숙해지게 만든 뒤, 실제 바퀴벌레가 들어 있는 플라스틱 통에 손을 집어넣도록 하자 6명 모두가 두려워하지 않고 손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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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취리히대학교 도미니크 드 퀘르벵 교수팀은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이 든 알약으로 거미 공포증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다. 코르티솔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해 인체에서 자연스럽게 분비되는 호르몬이다.
연구팀은 이전 연구를 통해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나오는 코르티솔이 고통스러운 기억이나 감정을 사라지게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를 이용해 약으로 코르티솔의 농도를 높인다면 두려움에 떠는 환자들을 도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외에도 음악과 조명을 이용한 치료 등 첨단 과학을 이용한 공포증 치료가 계속되고 있다.
공포, 극복을 넘어 즐겨라!
겁 많던 왕자님이 저를 구해 주시다니! 그럼 이제 우리 함께 공포를 즐겨 볼까요?
고…, 공포를 즐긴다구요?
공포를 즐기는 심리 김은정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공포, 오히려 안정과 만족을 준다?
위험을 감수하면서 스릴을 추구하는 건 인간에게만 나타나는 독특한 심리예요. 명확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보상심리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어요. 공포를 체험한 뒤 우리 몸에서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나오거든요. 도파민이 주는 안정과 행복, 그리고 공포를 끝까지 잘 이겨냈다는 자기만족감이 무서운데도 계속해서 공포물을 찾게 하는 이유라는 거죠.
고통 = 행복이라고?
최근 ‘두렵다’와 ‘재미있다’는 정반대의 감정이 사람 마음속에서는 아주 가깝다는 연구 결과가 소비자 연구저널 8월 호에 나왔어요.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에두아르도 안드레이드 교수팀은 특정 사건에서 가장 기쁜 순간의 뇌와 두려움을 크게 느낄 때의 뇌 반응이 비슷하다고 발표했어요. 공포를 통해 행복을 느낀다는 거지요. 실제 뇌를 기분 좋게 하는 엔돌핀은 고통을 느낄 때도 많이 나온답니다.
고통으로 스트레스를 확~!
숙제하라는 엄마의 잔소리, 친구와의 다툼 등은 우리에게 작지만 스트레스를 줘요. 하지만 매번 그 스트레스를 풀기란 쉽지 않지요. 심리학에서는 이를 ‘잔여 긴장’이라고 해요. 잔여 긴장을 해소하는 방법 중 하나는 더 큰 긴장감을 만드는 거예요. 큰 긴장이 해소되는 순간 잔여 긴장도 함께 사라지지요. 공포영화는 큰 긴장감을 주어 영화가 끝남과 동시에 잔여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는 효과를 낸답니다.
귀신이다! 그런데 디지털?
하얀 소복을 입은 귀신이 붉은 피를 뚝뚝 흘리며 병원 복도를 걷고 있다. 갑자기 관객 쪽으로 고개를 휙 돌리더니 가위 날을 쫙 벌리고 달려들어 관객의 몸을 찌르고 통과한다.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눈을 감거나 비명 소리와 함께 귀신을 피하려는 몸짓으로 상영관은 아수라장이 됐다.
사람이 귀신으로 분장을 하고 발목을 잡던 귀신의 집에서 한층 진화한 디지털 귀신이 나타났다. 3D 영화보다 더 실감난다. 스크린에서 튀어나온 물체가 내 몸을 관통해 실제 귀신이 나에게 달려드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비밀은 방의 구조다. 360˚로 둥글게 둘러싼 스크린에 12개의 영사기가 귀신 이미지를 쏘기 때문에 어느 각도에서 바라봐도 서로 다른 모습의 입체 영상을 즐길 수 있는 것. 또 둥글게 싸여 있는 스크린은 평면과 평면이 만나는 모서리 부분이 없어, 디지털이지만 형태의 왜곡이 없는 사실감 넘치는 귀신을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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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개의 영사기는 360˚로 둘러싸인 스크린에 각기 다른 영상을 쏜다. 그래서 앉는 자리에 따라 매번 다른 귀신을 만날 수 있다. 또 입체 영상이 눈앞까지만 오는 기존 3D 상영관과는 달리 귀신이 내 몸을 통과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잠깐! 디지털 귀신, 가짜인 걸 알면서도 왜 놀랄까?
갑자기 내 눈앞으로 귀신이 튀어 나온다고 가정해보자. 우리 몸은 이게 뭔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일단 놀란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눈동자가 커지며 몸이 움츠러든다. 그런 다음 튀어나온 것에 대한 시각정보가 대뇌피질로 전달돼 형태와 특성을 보고 디지털 귀신이라는 사실을 인식한다. 그제서야 편도체는 위험하지 않은 존재, 가짜 귀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때문에 공포 영화에 나오는 괴물은 영화일 뿐이고 귀신의 집의 귀신이 가짜라는 것을 알아도 일단 분위기나 생김새 등 공포를 느낄 만한 요소가 있으면 깜짝 놀라고 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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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덜덜 왕자님, 어때요? 롤러코스터도 타고 디지털 귀신까지 만나 봤어요. 이제 마지막으로 다양한 종류의 공포영화로 더위를 날려 볼까요? 공포 영화 속 귀신이나 괴물의 모습이 과학과 함께 어떻게 변해 왔는지도 살펴보 자구요. 어린이과학동아’ 친구들도 함께해요!
신화를 본 뜬 괴물의 출현
공포영화가 처음 나왔을 때는 신화 속 인물을 본 뜬 괴물이 공포의 대상으로 등장했다. 당시 공포 소재로 삼을 수 있는 유일한 자료는 신화. 신화 속 괴물을 실체화 해 공포감을 불러 일으킨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미노타우르스를 본 뜬 늑대인간으로 지금도 공포 영화의 인기 소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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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인류의 우주탐사가 본격화되면서 우주에 대한 공포, 특히 외계인은 공포 영화의 단골 소재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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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점점 알려지지 않은 오지를 탐험하면서 땅과 바다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생물 그리고 극지에 대한 공포가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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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에 따라 환경 파괴는 물론, 자연으로 오염물질이 퍼지면서 환경오염으로 인한 돌연변이 생물이 공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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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과학을 이용해 창조한 생명체가 공포의 대상이 된 경우다. 대표적인 예가 프랑켄슈타인과, 유전공학을 이용해 만든 영화 ‘스플라이스’의 드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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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들어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사스), 탄저병, 신종플루 등 원인도 잘 모르고 대책도 마땅치 않은 신종 전염병이 많이 등장했다. 인류가 대비를 못하고 당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좀비 영화의 인기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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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엘리베이터 등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첨단기계나 안구 이식 등 의료 기술의 발달을 주제로 한 공포 영화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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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눈에 이해가 쏙쏙 특집 한 걸음 더!
그런데 아까 보니 고양이를 무서워하던데…, 피조아 공주도 무서워하는 것이 있었소?
고양이가 유일해요. 어렸을 적부터 고양이는 요물이라며 절대 근처에도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들으며 자랐어요. 고양이는 마녀가 시킨 나쁜 일을 하거나 마녀가 변신한 것이라면서요. 어머니도 고양이를 아주 무서워하셨고요. 그러 다 고양이와 만났는데 보는 순간 무서워 돌을 던졌고, 그 돌에 맞은 고양이는 저 를 심하게 할퀴었답니다. 그 뒤로 고양이만 보면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아요.
피조아 공주의 고양이공포증 Why?
➊ 공포도 유전된다?
부모님의 특정 공포증이 자식에게까지 똑같이 전해지지는 않는다. 다만 다른 사람에 비해 두려움을 잘 느끼고 잘 놀라는 등의 기질은 유전된다고 볼 수 있다.
캐나다의 몬트리올 대학교 연구팀은 출생 후 곧바로 헤어져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일란성 쌍둥이들을 추적했다. 그 결과 쌍둥이 중 한명이 공포증을 가지면 다른 한명도 같은 공포증으로 시달릴 확률이 50%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공포증이 사람의 머리카락 색처럼 유전될 수 있다는 이론도 있다.
➋ 과거가 만드는 공포?
공포심은 경험에 의해 생기는 경우가 많다. 어렸을 때 물에 빠져 죽을 뻔했던 기억이 있다면 물을 무서워할 가능성이 높다. 또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물은 위험하고 빠지면 죽을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하는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자랐다면, 자연스레 물만 봐도 공포를 느낄 수 있다. 간접적으로 경험한 셈이기 때문 이다.
또한 공포심은 속한 사회의 문화에도 영향을 받는다.
동양에 비해 서양 사람들은 구미호나 처녀귀신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이유는 공동체 의식이 동양문화보다 약하기 때문. 구미호나 처녀귀신은 대부분 누군가의 잘못으로 인해 죽음을 당해 원한이 맺혀 있다. 공동체에 누군가가 나를 원망하고 있다는 사실은 공동체 의식이 강한 동양 사람들에겐 두려움을 가져다 준다. 하지만 개개인의 삶이 더 중요한 서양 문화에서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