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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익! 끼익! 쓱싹쓱싹, 쿵~!”
이 곳은 한반도의 남쪽 지방에 위치한 경남 진주. 슬슬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지난 해 10월 말, 나는시끄러운 소리에 오랜 단잠에서 깨어났다. 달콤한 잠을 방해한 게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눈을 뜬 순간, 나는 믿지 못할 광경을 보고 말았다. 덩치가 내 친구 *알로사우루스쯤 되고, 머리에 얼굴 대신 커다란 주걱 같은 걸 단 이상한 괴물이 눈 앞에 보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괴물은 어렸을 적 내가 뛰어 놀던 땅을 마구 파헤치고 있었다. 백악기를 주름잡던 육식공룡인 나의 고향을 말이다!



 
1억 1000년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다!

나는 비록 몸 길이가 3m로 저 괴물보다는 작지만, 이래 봬도 백악기 전기를 주름잡던 자랑스러운 수각류 공룡이었다. 그런데 내 땅을 함부로 파헤치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화가 난 나는 그 자리에서 그 괴물을 공격해 내쫓으려고 했다. 하지만 아차! 나는 이미 1억 1000만 년 전에 죽었고, 아무도 내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뒤늦게 생각났다.
그런데 바로 그 때, 마치 티라노사우루스를 보고 겁에 질린 초식공룡처럼 그 괴물이 갑자기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는 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괴물 속에서 *데이노니쿠스보다 키가 조금 작고, 두 발로 걷는 다른 괴물들이 튀어나온 것이다. 이 괴물은 두런두런 말도 했는데, 가만히 들어 보니 포유류 의 일종인 사람인 게 분명했다.
“이게 뭐지? 아무래도 화석 같은데?”
“어서 전문가에게 알리자!”
사람들이 뭘 보고 있나 궁금해서 나도 가서 살펴봤다. 그건 내가 살아 있을 때 뛰어놀다 찍힌 발자국 이었다. 나는 웃음이 났다.
‘내가 바로 눈 앞에 서 있는데, 겨우 발자국을 보고 흥분하다니!’
그 때 갑자기 머리 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발자국만 가지고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아 낼 수 있을까? 한 번 끝까지 지켜보자!’


* 알로사우루스 : 쥐라기 후기인 약 1억 5000만 년 전 살았던 육식 공룡의 이름. 몸 길이 약 8.5m~10m.
* 데이노니쿠스 : 백악기 초기인 1억~1억 1000만년 전에 살았던 육식 공룡의 하나. 몸 길이는 약 3m.

진주 공룡 발자국 화석 발굴 일지

최초 발견일 : 2009년 10월 29일
발굴 일시 : 2010년 2월 1~5일(발굴 사전작업), 2010년 2월 22~26일(발굴 작업), 2010년 3월 9~10일(운반 작업)
발굴 장소 : 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사봉면사무소 부근 공사장
발굴 내용 : 초식공룡(용각류) 및 육식공룡(수각류) 발자국 화석 100개 이상, 새발자국 화석


뚝딱뚝딱~, 발자국 화석 발굴 현장

“후다다닥, 끼이익~, 우당탕~!”
아이고…. 1억 1000만 년 만에 고향 땅을 밟으니 어찌나 기쁜지, 나이를 잊은 채 뛰어놀다 그만 넘어졌다. 하지만 이렇게 혼자 논 지도 어언 3개월. 발굴을 위해 공사도 중단돼 주변에 사람도 없고 심심하다. 내 발자국을 보고 흥분했던 사람들은 언제 오나….
2월 초, 드디어 사람들이 장비를 가득 싣고 왔다. 그 전에도 사람들이 종종 와서 심각한 표정으로 내 발자국을 바라보기도 하고 다정하게 쓰다듬기도 했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뭔가 작업을 하려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 보니, 이 사람들은 국립문화재연구소 천연기념물센터의 학예연구관과 연구사, 연구원들로 이뤄진 발굴팀이었다. 발굴팀은 진주교육대학교의 교수님과 함께 이 곳에서 나온 발자국을 발굴한 뒤, 내가 누구이며 어떻게 살았는지를 연구할 예정이라고 했다.
내 발자국이 전문가들이 연구를 할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는다니 기분이 좋았지만, 한편으론 조금 아쉽기도 했다. 사진도 찍고 그림도 그리던데, 이럴 줄 알았으면 발자국이 예쁘게 나오도록 발도 잘 닦고 발톱 관리도 할걸!


공룡 발자국 화석 발굴 과정


사람들은 이후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세 차례에 걸쳐서 발굴 작업을 했다. 나는 사람들이 매서운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성껏 발자국을 발굴하는 데 크게 감동했다. 발굴은 크게 두 단계로 이뤄졌다.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 보니, 이렇게 발굴 작업을 마친 화석은 연구 시설이 있는 곳에서 본격적으로 연구된다고 한다.
발자국으로 뭘 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지만, 나도 연구실까지 따라가기로 했다. 사람들은 내 발자국이 찍힌 돌 조각과 하얀 실리콘 본을 트리케라톱스처럼 크고 튼튼해 보이는 네발 짐승의 뱃속에 넣었다.
트럭이라는 이 짐승은 무척 빨랐다. 공룡계의 육상선수인 나도 시속 30㎞밖에 못 달리는데, 이 짐승은 그 세 배 이상 빨랐다.
그렇게 간 곳은….


공룡 발자국으로 알 수 있는 것들!

내가 도착한 곳은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천연기념물센터! 이 곳에서는 벌써 우리 발자국을 컴퓨터라는 기계로 그려놓고 연구 중이었다. 나는 연구 내용을 엿듣다가 깜짝 놀랐다. 발자국만 가지고 내가 어떤 공룡이며, 내가 살던 1억 1000만 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딱 알아맞혔기 때문이다!

1억 1000만 년 전 내 고향은 물가!

내가 살던 백악기 때만 해도 이 곳은 물가였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이 곳은 지금 모래 바람만 부는 높은 언덕이 됐다.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현장을 보자마자 이 곳이 물가였다는 사실을 알아 냈다. 내 발자국이 찍힌 돌이 진흙과 고운 모래가 굳은 ‘셰일’이라는 점과, 근처의 돌에 남아 있는 물결무늬를 보고 추리를 한 것이다.


 

짹짹짹~, 공룡시대의 새 발자국!

발굴에 참여한 진주교육대학교 김경수 교수님은 우리 공룡발자국 화석 사이에서 새의 발자국 화석도 찾아 냈다. 그러고 보니 살아 있을 때 새 소리를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설명을 들어 보니, 중생대, 특히 백악기 지층에서는 공룡과 새 발자국 화석이 흔히 함께 나온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그 동안 6종의 새 발자국 화석이 알려져 있었는데, 크기가 5㎝가 채 안 되는 이 발자국도 ‘코리아나오르시스 함안엔시스’ 등 기존에 알려진 것과 비슷한 새의 발자국으로 추정된다.


 

걸었을까 뛰었을까?

복잡하고 어지럽게 뒤섞인 발자국이지만, 잘 보면 왼발, 오른발, 왼발, 이렇게 순서대로 찍힌 발자국을 찾을 수 있다. 이렇게 공룡 한 마리가 남긴 연속적인 발자국들을 ‘보행렬’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발굴 때 얻은 발자국 분포 자료를 컴퓨터로 분석해서 보행렬을 찾았는데, 이를 통해 내가 걷는 속도와 방향을 계산할 수 있다고 했다.

발자국의 주인공은 육식 공룡과 초식 공룡!

사람들은 발자국만 보고도 내가 육식 공룡인 수각류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뿐만 아니라 이 곳에 나 말고도 최소 두 마리 이상의 용각류 초식 공룡이 있었다는 사실도 알아 냈다. 사람들은 이 발자국이 용각류 가족이 물가로 걸어가다 찍힌 거라고 추측했다. 근데…, 내가 용각류랑 도대체 뭘 하고 있었지? 잡아 먹으려고 했나? 너무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


 
▲ 날씬하고 섬세한 육식 공룡 발자국
발가락이 가늘고 사이가 벌어져 있다. 가장 짧은 왼쪽 부터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발가락이며, 오른발이다. 앞발을 들고 두 발로 걷기 때문에 수각류의 발자국은 모두 뒷발의 발자국이다. 보통 발가락이 3개 찍히지만, 벨로키랍토르 같은 일부 랩터는 2개만 찍힌다. 이번에 발견된 발자국은 길이 12~13㎝, 폭 8~10㎝로, 전체 몸 길이는 3~6m 정도로 추정된다.



 
▲ 통통하고 커다란 초식 공룡 발자국
네 발로 걷는 초식 공룡인 용각류의 발자국은 타원형 모양이며, 뒷발이 앞발보다 크다. 이번에 발견된 발자국 중 뒷발의 발자국은 길이가 80㎝가 넘고, 폭도 60㎝ 가까이 된다. 이 정도 발자국을 가진 공룡은 몸 길이가 최소 5~6m에서 최대 12~14m 정도다.


나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발자국 화석만 가지고 내가 살았을 때의 동작, 특징, 주변 환경을 족집게처럼 맞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직 연구가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도 이 정도니, 연구가 끝나 학회에서 발표될 올해 10월에는 어떤 내용이 또 밝혀질지 정말 궁금하다.
…그나저나 한 가지 걱정이 생겼다. 고향인 진주에는 어떻게 돌아가지? 아무래도 연구가 다 끝날 때 까지 연구실에서 사람들하고 같이 살아야겠다. 눈에는 안 보일 테니까 공룡 유령하고 산다고 너무 무서워하진 말았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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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7호 어린이과학동아 정보

  • 윤신영 기자
  • 도움

    공달용 학예연구사
  • 도움

    김경수 교수
  • 도움

    김태형 연구원
  • 도움

    임종덕 학예연구관
  • 도움

    정성수 계장
  • 사진

    윤신영 기자
  • 사진

    임종덕 학예연구관
  • 진행

    박순구
  • 진행

    Nobu Tamu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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