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는‘찍찍’하는 울음소리가 물체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시간을 통해 물체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가늠한다. 어떤 소리가 물체에 반사되어 다시 들려오는 현상을 메아리, 즉 반향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왜 성당에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는 긴 여운을 남길까? 성당에서 힙합을 연주하면 어떻게 될까? 파인만 씨 가족을 만나 소리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해 보자.
등장인물 소개
오늘은 첼로 연주회가 있는 날이다. 파인만 씨 가족은 예술의전당 근처에서 저녁을 먹은 뒤 연주회장 안으로 들어갔다. 연주회 안내장을 뒤적이던 파장이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왜이분이 연주하는 첼로는 제가 연습하는 첼로랑 달라요?”
“오늘 연주하는 안너 빌스마는 바흐가 첼로 곡을 작곡했던 시대의 첼로를 가지고 연주해. 그 시대의 첼로
연주곡이 어땠는가를 들려주기 위해서야. 작곡자의 의도를 제대로 해석하고 그 음악이 만들어진 시대의 분위기 그대로 연주하려는 것을 좀 어려운 말로‘정격연주’라고 하지.”
“아! 요즘 유행하는 리바이벌 말고 오리지널이란 말씀이죠?”
“그래, 그거 참 좋은 비유구나.”
파랑이 어리광을 부리듯 엄마 어깨에 기대며 물었다.
“그런데 엄마, 첼로를 옛날 것으로 연주하면 옛날 음악처럼 들리나요?”
“내가 활약할 때가 또 온 것 같군. 파랑아, 아빠가 이제부터 반향 시간에 대해 설명해 줄게. 파랑이가 저 무대 위에 올라가서 연주회장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게 말하려면 어떻게 해야겠니?”
“당연히 아주 큰 목소리로 이야기해야겠지요.”
“물론 연주회장 안의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게 하려면 큰 소리로 말해야겠지. 하지만 중요한 것이 또 한 가지 있단다. 바로 반향 시간이야. 반향 시간이란 소리를 지른 후에 그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말한단다.”
“그러면 반향 시간은 처음에 소리를 얼마나 크게 지르느냐에 따라 결정되겠네요. 소리를 크게 지르면 더 오랫동안 소리가 들릴 테니까요.”
파장이 자신 있게 끼어들었다.
“연주회장을 설계할 때는 쓰임새에 따라 반향 시간을 조절하는 일이 아주 중요하단다. 예를 들어 사람이 연설할 때와 악기를 연주할 때는 소리의 크기가 다르지? 연설할 때는 말하는 속도를, 그리고 연주할 때는 음악의 속도를 고려해야 하고.”
“연주회장은 그냥 크고 멋지게 지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파장이 중얼거렸다.
“옛날 사람들은 소리가 전달되는 현상을 잘 몰랐기 때문에 대충 튼튼하게만 지었단다.”
“그럼 음악 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연주회장도 있겠네요?”
“그럼! 지금도 반향 시간을 고려해서 지은 연주회장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적은걸. 우리 파장이가 반향 시간에 대해 관심이 아주 많은가 보구나. 아까 좋은 연주회장을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해 얘기했지? 최근에는 건축 기술이 발전하면서 건물 안의 반향 시간을 더 짧게 만들 수 있게 됐단다.”
“왜 반향 시간을 짧게 만들죠? 그럼 뭐가 좋은데요?”
“예를 들어…. 짧은 간격으로‘풀-렸-다’라고 소리를 낸다고 해 보자. 만약 첫 번째 소리인‘풀’이 빨리 작아지지 않으면 두 번째, 세 번째 소리와 겹쳐서 들리겠지? 그러면 사람들이 소리를 구별해서 들을 수 있을까?”
“아, 그러니까 아빠 말씀은 반향 시간이 짧을수록 연달아 나는 소리를 구별해서 듣기가 쉽다는 거군요. 그 말은 곧 빠른 음악도 잘 알아들을 수 있다는 뜻이고요.”
“우리 파랑이 제법인걸.”
“옛날 성당에서 부르던 그레고리 합창단의 성가나 오르간 연주곡들은 반향 시간이 긴 성당에서나 적당한 음악이란다. 만약 파이프오르간 연주곡을 명동성당이 아닌 좁은 강당에서 듣는다면 어떨까?”
“웅장한 느낌을 받기 어려울 것 같아요.”
“그래, 맞아. 음악의 색깔도 전혀 다르게 느껴질 거야.”
“그럼 옛날 작곡가들이 반향 시간에 대해서 알았다는 말인가요?”
“당연하지. 사실 바흐의 오르간 연주곡들은 반향 시간을 시험하기 위해서 만들었단다. 여보, 그것에 대해선 당신이 더 잘 알지?”
파인만 씨는 평소 음악에 조예가 깊은 아내에게 물었다.
“12세기 페로틴이란 음악가는 프랑스의 노트르담성당에 맞는 음악을 작곡했어. 17세기 이탈리아 작곡가인 가브리엘리도 메아리 현상을 이용하여 베니스에 있는 성 마르크성당에서 연주할 수 있는 곡을 특별히 작곡했지.”
“웅장한 연주로 유명한 바그너는 연주 공간을 생각하면서 100여 명 규모의 오케스트라가 연주할 때 가장 효과적으로 들리도록 작곡을 했단다.”
“아빠, 우리가 좋아하는 힙합곡을 옛날 성당에서 연주했으면 어땠을까요?”
“글쎄, 아주 좋지 않은 연주가 되었을 것 같구나. 성당은 반향 시간이 길기 때문에 빠른 음악은 서로 뒤엉켜 버려서 제대로 된 연주를 할 수 없었을 거야. 연주회장의 반향 시간을 짧게 만드는 건축 기술이 없었다면 너희들이 좋아하는 힙합이나 댄스 가요를 접하기 쉽지 않았겠지.”
“그런데 아빠, 도대체 반향 시간이 얼마나 긴 건데요?”
“반향시간은 소리가 한번 난 다음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을 때까지의시간으로정하지. 그래서 야외에서는 반향 시간이 0초, 즉 없다는 말이야. 보통 거실이나 침실 같은 집 안에서는 약 0.4초, 연설을 할 수 있는 극장 같은 곳은 약 0.9초, 이런 큰 연주회장은 2초~2.5초 정도 란다. 옛날 성당과 같은 곳은 반향 시간이 13초 정도로 아주 길지. 성당에서는 우리 아들이 좋아하는 힙합이나 댄스 음악은 엄두도 못 낼 거야.”
“여보, 곧 연주가 시작돼요. 이제부터 쉿!”
신기한 씨는 아이를 다루듯 집게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대며 주의를 주었다. 파인만 씨는 알겠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고, 파랑과 파장도 질문을 멈추고 빌스마의 첼로 독주곡을 감상했다. 아빠의 설명을 듣고 나니 빌스마의 연주가 색다르게 느껴졌다.
최준곤 교수는 고려대학교에서 물리학을 가르치고 있어요. 어려운 과학을 대중이 쉽게 느끼도록 노력하고 있지요.
장경애 박사는‘과학동아’편집장으로 일하며 과학을 재미있게 접할 수 있는 책을 쓰기 위해 애쓰고 있어요. 최근에 엄마, 아빠가 들려주는 것처럼 쉽고 친근하게 소리를 공부할 수 있는 책‘소리를 질러봐’를 함께 펴냈어요.‘사이렌 소리는 나만 쫓아다녀!’,‘목욕탕에서는 나도 가수왕’등 소리에 대한 궁금증을 시원하게 풀어 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