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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월드컵 D-7일

나는 축구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과학자


먼저 내 소개를 하지. 나는 동아사이언스 뇌과학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어. 전문분야는 인간의 뇌와 관련된 행동을 분석하는 거야. 가장 좋아하는 것은 축구, 자나 깨나 축구 생각뿐이지. 친구들은 나를 축구 박사라고 불러.
2002년 6월 우리나라를 뜨겁게 달군 월드컵을 지켜보며 열광하는 가운데 한편으로는 고민에 빠졌어. 축구경기를 하는 선수들의 마음을 읽을 수 없을까?우연히 떠오른 아이디어가 4년간의 쉼 없는 연구 끝에 결국 실현되었어. 인간의 마음을 낱낱이 읽어 낼 수 있는 심리투시경을 개발했거든. 이제 심리투시경을 쓰고 축구 선수들이며 응원단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볼까?

전지훈련장, 그 뜨거운 열기 속으로

월드컵이 시작되기까지 딱 일주일 남았어. 지금 선수들은 어떤 마음일까? 가슴이 몹시 두근거리겠지? 한창 우리나라 선수팀이 전지훈련을 하고 있는 유럽으로 향했어. 혼자 가면 훈련장에 들어가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아서 체육과학연구원의 구해모 박사와 함께했지. 구 박사는 내 초등학교 동창생이야. 현재 스포츠심리학에 관해 연구하고 있지.
드디어 여기는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 머레이 파크야. 푸른 잔디밭에서 선수들이 팀을 나누어 미니게임을 하고 있잖아! 와우! 박지성이 이영표와 공을 다투고 있어. 뒤로 패스~! 좋아! …앗~! 조심해! 연습 경기에서 몸을 다치면 안된다고~! 결정적인 찬스다! 슛~!
옆에 구 박사가 있다는 것도 잊은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는 나, 정말 축구광인가 봐. 미니게임이 끝나고 선수들은 모두 숙소로 돌아가고 있어. 아~! 잊을 뻔했군. 나의 심리투시경! 심리투시경을 쓰고 한 선수를 쫓아가 봤어. 아까 슛에 실패한 선수군. 저렇게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가다니….

문제는 결국 마음!

심리투시경을 쓰고 바라본 그의 마음 속은 매우 복잡했어.
‘여전히 슬럼프인 게 아닐까? 감독님은 잘 한다고 늘 칭찬해 주시지만 그게 더 부담스러워. 국민들의 지나친 기대도…. 아까 몸싸움으로 발목을 약간 삐었는데 큰 부상이 아니어야 할 텐데. 이제 월드컵도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구나.’
나는 깜짝 놀랐어. 요 몇 해 동안 국민적인 스타로 떠오른 축구 천재에게도 저런 고민이 있었구나! 월드컵을 앞두고 주위의 지나친 관심도 부담으로 느껴졌던 거야.
구 박사,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구해모 박사 : 자신감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해

주변 사람들의 기대가 커질수록 선수는 부담을 느끼게 되지. 부상을 당하거나 실수를 해서 자신감이 줄어들면 모든 것이 어려워져. 집중력을 발휘할 수 없고 흥분해서 기회를 놓치기도 하지. 이 때 선수들이 슬럼프에 빠지기 쉬워.
어떤 습관적인 행동을 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해진다거나 나쁜 예감에 사로잡히는 징크스에 시달리기도 해. 행운을 가져다 주는 양말이 따로 있다는 이천수 선수나 경기 전에는 절대 머리를 감지 않는다는 안정환 선수도 일종의 징크스를 갖고 있는 거지. 또 흥분 잘하는 이탈리아 선수들은 승부차기에서 실패를 많이 한다는 징크스도 있어.

플라시보 효과는 환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가짜약을 줬는데도, 그 사실을 모르는 환자의 몸에서 약의 효
과가 나타나는 현상이야. 긍정적인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 주는 거지. 전 세계가 지켜보는 월드컵 경기에 나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선수들은 가슴이 두근거릴 거야.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컨디션을 잘 조절해야겠지. 경기 전부터 실제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 보는 것도 좋아.

펠레 씨, 제발 내 얘기는 하지 마세요!

축구에는 펠레의 저주라는 무시무시한 징크스가 있다. 브라질의 축구 황제인 펠레가 칭찬한 선수나 팀은 반드시 그 해 월드컵 성적이 나쁘다니, 과연 사실일까? 1994년 미국 월드컵 때 펠레가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은 콜롬비아는 예선 명단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2002년 펠레의 저주를 받은 프랑스도 마찬가지였다. 펠레가 실제로 저주를 내리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펠레의 입에 오르내린 선수나 팀은 엄청난 부담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런 부담감은 경기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펠레는 우승후보국으로 브라질, 잉글랜드, 독일을 점찍었다. 믿거나 말거나 과연 펠레의 저주가 실현될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독일월드컵 D-day

힘든 전지훈련과 평가전도 성공적으로 마친우리 선수들, 드디어 월드컵의 첫 상대와 맞붙게 됐어. 심리투시경을 쓴 채 필드에 초점을 맞추고 100배로 당기니 마치 경기가 눈 앞에서 펼쳐지는 듯해. 어디 선수들과 응원단의 마음을 읽어 볼까?

골키퍼 : 공의 방향이 골문 앞에서 갑자기 바뀌다니 이해할 수 없어.

공격수 : 바로 지금이다! 몸을 날리며 오버헤드킥~!

감독 : 침착하게 슛~! 그래, 좋았어!

관중 : 슛~! 골인! 가슴이 터질 것 같아!

심판 : 반칙 같은데…. 관중의 응원 소리가 너무 커!

어떤 슛이라도 막아 주마, 든든한 골문 지킴이

시속 110㎞가 넘는 속도로 날던 공이 갑자기 휘어져 골문으로 빨려들어간다. 하늘로 치솟다가 갑자기 골대로 꽂히는 슛도 있다. 공의 회전력과 저항을 이용한 과학적인 슈팅이 쏟아지는 이 때 골키퍼는 어떤 작전으로 공을 막아 내야 할까? 승부차기에서 골키퍼가 날아오는 공을 보고 몸을 움직이는 데 걸리는 시간은 0.6초다. 하지만 공이 골라인을 통과하는 시간은 이보다 짧은 0.4초, 이론적으로 슈팅이 성공할 확률이 100%라는 얘기다. 골키퍼가 공을 막기 위해서는 공을 차는 선수의 동작을 보고 공의 방향을 미리 예측해서 몸을 날려야만 한다. 종종 골키퍼는 상대방의 주의를 흩트리기 위해 몸을 흔들거나 손발을 휘젓기도 한다. 공을 차는 선수의 경향을 미리 파악해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슈팅스타의 몸에는 아드레날린이 치솟는다!

고도의 집중력으로 결정적 찬스를 놓치지 않고 슛을 성공시킨 공격수. 득점의 순간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이 온몸을 타고 흐른다. 좋아서 펄쩍펄쩍 뛰거나 미리 준비한 골세레모니를 펼쳐 보이기도 한다. 동료 선수들이 달려와 머리를 쓰다듬는다. 비로소 귓가에 응원 소리도 들려온다. 뜨거운 열기로 가득한 축구경기장, 몸과 몸의 거친 맞부딪힘은 아드레날린을 펑펑 쏟아 낸다. 아드레날린은 감정을 지배하는 호르몬으로 콩팥 윗부분에 있는 부신에서 분비된다. 사람의 몸이 극도의 긴장이나 흥분을 느끼면 대뇌피질-두뇌에서 생각을 담당하는 부위-에서 시상하부로 신호를 보낸다. 시상하부는 스트레스에 반응하여 몸에 변화를 일으키는데, 아드레날린의 분비도 그 가운데 하나다. 몸 속 아드레날린 수치가 높아지면 혈액이 빠른 속도로 흐르고 심장박동이 급해진다. 호흡이 거칠어지지만 몸의 감각은 되레 예민해진다. 또 근육이 팽팽하게 긴장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두 배 가량 순발력이 높아진다. 컴퓨터로 치면 중앙처리장치인 대뇌피질의 명령에 몸이 반응하는 것이다. 득점에 성공하는 순간 아드레날린 분비는 최고조에 이른다.

열광적인 함성은 심판을 기죽게 한다?

독일월드컵을 위해 힘겨운 지역예선을 거친 이들은 비단 32개국의 대표팀만은 아니다. 검정색 옷을 입고 호루라기를 불며 경기장을 누비는 심판들, 5개의 까다로운 관문을 통과해 선발된 만큼 누구보다도 공정해야 하지만 가끔은 흔들린다. 영국 월버햄프턴대학교의 앨런 네빌 교수는 축구 심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한 그룹에게는 응원 함성이 들리는 태클 장면을 보여 주고, 다른 한 그룹에
게는 영상만을 보여 줬다. 그러자 응원함성을 들은 심판들은 반칙으로 판정하는 정도가 그렇지 않은 심판들에 비해 15%나 낮았다. 관중의 함성이나 야유가 심판 판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열두 번째 선수, 함께 뛰는 서포터

2002년 시청 앞 광장이며 야구경기장, 거리와 도로까지 붉은 물결로 출렁이던 우리나라의 월드컵 열기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 열정적인 응원에 힘입은 걸까? 우리 대표팀은 4강 진출이라는 신화를 이뤄 냈다. 그 후 4년, 다시 월드컵이 돌아왔다. 벌써부터 축구팬들은 가슴 설레며 우리나라의 경기를 기다린다. 8시간이라는 만만치 않은 시차로 대부분의 중계방송을 새벽에나 볼 수 있는데도 말이다. 축구라는 단순한 스포츠에 우리는 왜 이토록 열광하는 걸까?

황상민 교수와의 통화 ) ) ) ) )

축구 박사: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에게 물어 봐야겠군. 우리는 자주 사람의 마음에 대해 얘기를 나누곤 하지. 여보세요? 아~! 황 교수, 나야 나~!

황 교수: 축구 박사! 오랜만이야. 사람들이 월드컵에 열광하는 이유는 다양하네. 일단 축구라는 경기는 과거에 벌이던 전쟁과 비슷한 면이 많아. 성을 지키는 영주가 골키퍼, 전쟁에 나가 싸우는 기사들이 수비수와 공격수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까? 골문을 지키는 골키퍼는 마지막까지 성을 지켜 내는 사람이야. 그만큼 책임감도 크지. 전쟁에서 여러 부족들이 서로의 성을 공격하고 지켜 내는 과정을 축구 경기라고 보면 축구를 응원하는 관중은 백성쯤 되겠지. 전쟁에 직접 참가하지 않는 백성들도 자기 나라를 열렬히 응원하잖아. 마찬가지야. 축구의 열성적인 팬들은 운동장에서 뛰는 선수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빠져들지. 축구를 통해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풀 수 있고 잠시 동안이라도 짜증나고 복잡한 현실을 잊을 수 있어.

축구 박사: 반대로 월드컵에 무관심해지는 사람들은 어떤가?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는 여성들이나 다른 종목의 선수들, 외국인 같은….

황 교수: 축구 열기가 방송과 신문을 뒤덮고, 거리가 온통 붉은색이라고 해도 무덤덤한 사람들이 있지. 축구로 인해 자신의 일이 방해받거나 집단적으로 휩쓸리는 게 싫을 수도 있거든. 월드컵을 싫어한다고 해서 애국심이 없는 것이 아니야. 보통 남아메리카나 아프리카의 일부 나라에서는 축구 열기를 틈타 나쁜 정치인들이 자기 마음대로 정책을 결정하기도 했어. 월드컵 기간에도 다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지나친 열기에 휩쓸리지 않는 침착함도 필요하다는 거야.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서 도저히….

축구도 보고 건강도 챙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 응원할 때 크게 소리 지르지 말자
흥분하여 소리를 너무 크게 지르면 목에 있는 후두 혈관에 무리를 준다. 심한 경우 원래의 목소리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2. 지나친 간식이나 음료수는 먹지 말자
응원을 하며 음식을 먹다가는 목에 걸릴 수도 있다. 간식을 먹더라도 열량이 낮고 위에 부담이 적은 과일이나 야채로~!

3.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자
경기장을 달리는 선수들보다 더 긴장된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본다면 건강에 좋을 리 없다. 잠깐 화장실 가는 시간이나 전반전이 끝났을 때에는 굳은 몸의 근육을 풀어 주는 체조를 해 보자. 잠깨는 데에 도움이 되고 두근거리는 마음도 진정시킬 수 있다.

독일월드컵 D+7일

2006년 6월 9일부터 7월 9일까지 한 달간 전 세계를 들뜨게 했던 월드컵이 막을 내렸어. 선수들도 최선을 다 해 주었고 특히 심리투시경 덕분에 더 재미있게 경기를 볼 수 있었어. 훈련캠프가 있던 스코틀랜드에서 시작하여 월드컵이 열린 독일에서 보낸 한 달여의 시간은 추억이 되었지.
월드컵을 준비하는 동안 선수들은 체력 조절뿐만 아니라 심리적 압박과 불안감을 잘 극복해야 했어. 어디 그뿐이겠어. 지나치게 흥분하면 경기를 그르칠 수도 있으니 침착해야 하고, 상대팀을 분석하여 과학적인 작전을 짜야하고…. 이제 월드컵이 끝났으니 조금 쉬어도 되겠지?
그런데 저길 봐! 붉은악마 응원단이었던 친구가 왜 저렇게 한숨을 쉬고 있지? 어디 심리투시경을 쓰고 볼까? 황 교수에게 또 도움을 청해야겠군.

월드컵이 끝나 버렸어. 내 인생도….

잠 못 드는 밤, 에어컨을 켜고 수박을 먹으며 경기를 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마음이 텅 빈 것 같아.
우리나라 팀이 활약했던 경기를 녹화해 두고 벌써 열 번째 다시 보고 있어.
공부도 할 수 없고 기분도 우울해. 밥도 먹기 싫어.

월드컵 증후군 이겨내기

황상민 교수: 열광적인 응원이 끝나면 우리 몸에는 변화가 생기지. 흥분했을 때 뇌가 온몸에 분비하던 위험신호들이 서서히 사라지거든. 그러나 흥분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몸에 문제가 생기고 말아. 몸이 긴장했을 때 분비되는 아드레날린은 소화를 방해하고 면역을 약화시켜. 심장병의 위험도 커지고 쉽게 피곤해지지.
게다가 우울증에 걸리기도 쉬워. 한동안 월드컵이 내 전부였는데 그게 사라졌다고 생각해 봐. 무척 허무하겠지? 축구를 보는 것이 살아가는 이유였고 우리 팀이 이기는 것이 삶의 목표였는데 말이야. 이럴 때는 빨리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리는 게 좋아. 새벽마다 축구를 보느라 잠을 설쳤다면 몸의 생활리듬을 원래대로 돌려놓아야 해. 낮잠을 피하고, 가벼운 운동으로 땀을 흘리는 것이 좋아. 또 월드컵 기간에 있었던 이야기를 친구들과 함께 나누는 것도 우울함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지. 거리 응원을 하며 찍은 사진을 인화하여 앨범정리를 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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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호 어린이과학동아 정보

  • 신방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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