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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탐독] 서로의 몸을 이해하다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

어느 순간 우리 주변에 개와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매일 달라지는 동물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은 과학을 철학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과학과 동물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 여전히 실험동물인 쥐부터 떠올리곤 합니다. 과학지식은 실험동물을 통해서만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닌데도 말입니다. 동물을 연구하는 과학 분야는 행동을 연구하는 동물행동학부터 야생동물의 생활을 연구하는 생태학까지 다양합니다. 특히 우리가 동물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는 많은 사실이 동물행동학(ethology)에서 밝혀지고 있습니다.


동물행동학자들은 어떤 동물이 어떤 상황에서 얼마나 고통을 느끼는가, 동물들은 어떻게 소통하고, 학습하는가와 같은 질문의 답을 찾아 나섭니다. 이렇게 쌓인 답은 그저 지식으로 남지 않고 ‘사회에서 우리가 동물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라는 실질적인 문제를 푸는 단서가 됩니다. 

 

인간과 동물 관계의 핵심
몸에서 그 답을 찾다


이번에 소개할 논문은 동물행동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철학적으로 고찰하고 있습니다. 2004년 뱅시안 데스프레 벨기에 리에주대 교수가 발표한 논문으로,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다루는 논문에서 분과에 관계 없이 폭넓게 인용되고 있습니다. 동물행동학자들은 인간과 전혀 다른 존재인 동물을 어떻게 연구했을까요? 우리는 그로부터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동물에 관한 어떤 새로운 통찰을 끌어낼 수 있을까요?


저자가 먼저 꺼낸 사례는 20세기에 동물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었던 말 ‘한스’를 관찰한 독일의 심리학자 오스카 풍스트의 연구입니다. 한스는 다른 말과 달리 특별한 능력이 있었습니다. 바로 곱하기와 나누기 같은 간단한 산수를 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제곱근을 구하고, 특정 색의 물건 수나 음악 속 특정 음정의 수를 묻는 문제에 정확한 답을 내놓았던 것입니다. 인간이 질문을 던지면 한스는 발굽으로 바닥을 두드리는 횟수로 답을 표현했습니다. 


1904년 그 능력을 검증하기 위해 모인 학자들은 한스가 꼭 주인이 아닌 사람이 문제를 내도 정답을 맞힌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문제를 푸는 능력은 인간의 속임수가 아니라 한스 스스로에게서 나온다고 본 것입니다.


풍스트는 당장 한스가 사는 곳을 찾아가 이 천재적 능력을 그저 신비한 현상이 아닌 충분히 설명 가능한 과학적 문제로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풍스트는 한스가 인간이 의도하지 않은 채 보내는 미세한 신호를 읽어내는 것이라는 가설을 설정했습니다. 가설이 맞다면, 문제를 내는 인간이 그 답을 모를 때 한스도 답을 알아맞힐 수 없을 겁니다. 풍스트의 예상처럼 문제를 내는 인간이 답을 알지 못했을 때 한스는 답을 맞히지 못했습니다. 그의 가설은 참으로 드러납니다.


풍스트에 따르면 한스는 문제를 내는 인간이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할 아주 미세한 ‘몸의 움직임’을 읽어냅니다. 상황은 구체적으로는 이렇습니다. 인간은 말에게 문제를 내자마자 곧장 머리와 상체를 아주 약간 숙여 곧 움직일 한스의 발굽에 집중합니다. 이때 문제를 낸 인간의 몸에는 미세한 긴장이 발생합니다. 문제를 낸 인간들은 한스가 본인이 낸 문제의 답만큼 발굽을 내려치는 그 순간 몸의 긴장을 풀고, 이는 인간의 머리와 상체의 미세한 움직임으로 나타납니다. 


한스는 이와 같은 미세한 움직임을 보고 발굽치기를 멈춘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한스는 인간이 낸 문제를 이해하고 풀어낸 것이 아니라 인간의 미세한 움직임을 읽을 줄 알았던 것입니다.


풍스트는 한스의 사례를 통해 말이 인간의 역사에서 운송, 전쟁, 스포츠와 같은 다양한 목적 아래 인간과 한몸처럼 움직여 왔다고 설명했습니다. 말이 인간과 한몸처럼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특별히 말이 인간 근육의 움직임에 흥미를 가진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길들이기? 아니!
동물과 함께 변해야 한다

 

동물행동학자 장 끌로드 베리는 인간과 능숙하게 협력하는 말의 능력을 오랫동안 연구해 왔습니다. 그는 말들이 인간 몸의 미세한 움직임을 감지하고 그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말을 잘 타는 기수는 말과 가장 비슷한 방식으로 몸을 움직일 줄 아는 인간입니다. 능숙한 기수가 되는 과정은 단지 말을 통제하는 일이 아닙니다. 말의 몸에 따라 인간의 몸도 말처럼 움직일 줄 알게 되는 과정입니다. 그러니까 승마 훈련은 일방적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저자는 장 끌로드 베리의 연구를 빌어 승마란 말이 인간에게 말처럼 움직이는 법을 가르치는 과정이라 말합니다.

 

동물행동학자들이 밝힌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우리에게 흥미로운 사실을 알려 줍니다. 풍스트는 한스에게 문제를 냈던 인간 중에 어떤 인간들은 일정한 연습을 거쳐야만 한스로부터 정확한 정답을 얻어낼 수 있었다는 데에 주목합니다. 문제를 내는 인간이 한스의 흥미를 끌만한 몸짓을 익힌 후에야 한스는 문제를 맞히는 똑똑한 말이 될 수  있었습니다.


논문의 후반부에서는 몸이 변화하는 문제에 관한 철학적 이론을 더 깊이 탐구합니다. 저자는 인간과 동물의 몸이 서로 변화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이 동물을 훈련시킨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더 깊이 있게 다룹니다. 여기서 핵심은 인간과 동물의 몸이 함께 변화하는 과정의 끝에서 인간과 동물은 새로운 정체성을 지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과 동물이 관계 맺는 과정은 그 둘의 몸이 동시에 변화하는 과정이라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동물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 


동물행동학자들이 오랜 기간 밝혀 온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오늘날 더 넓은 학문 영역에서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일방적인 통제와 억압의 관계로만 바라보는 것이 정말 옳은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물론 금지해야 하는 잔인한 억압의 관계도 존재합니다). 동물행동학의 철학자인 데스프레의 연구는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 동물의 밀접한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는 출발점을 보여 줍니다. 


이번에 소개한 논문은 지금까지 독자들이 읽어 본 논문과는 형태가 다릅니다. 동물행동학이라는 과학 분야를 다루고 있지만, 이 논문은 다른 과학 논문처럼 초록, 서론, 실험방법을 설명하는 순서를 따르지 않습니다. 대신 이 논문의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논문을 다른 더 큰 질문들과 연결해 이해하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하나의 논문을 선택해 읽어 내려가는 일은 그 학자들이 탐구해 온 질문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 학문 분야의 질문을 잘 모르더라도 이 논문을 읽을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 질문해 보세요. 여러분이 인간과 동물에 관해 이미 알고 있었던 내용은 무엇인가요? 저자의 주장은 그 알고 있었던 내용에 비해 어떤 점이 새롭나요? 이렇게 내가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을 정리하면서 지식은 자라나게 됩니다. 언제나 새롭게 접한 논문은 나의 지식의 세계에 위치시켜야 의미가 있습니다. 

 

●성한아 연구원의 논문 읽기 노하우
          

과학철학, 과학기술학 논문은 어디에 실리나요?
‘소셜 스터디즈 오브 사이언스’ ‘사이언스 테크놀로지 & 휴먼밸류’ 등 국제학술지가 대표적입니다. 국내 학술지로는 ‘과학기술학연구’가 있습니다.

 

과학기술학에 대해 더 설명해 주세요.
현대사회에서 과학과 기술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관점에서 시작된 다학제적 학문입니다. 우리가 맞닥뜨린 사회의 문제나 현상을 과학기술과 연관해 생각해 보는 거죠.

 

우리는 왜 과학기술학을 공부해야 할까요?
최근 많은 대학에서 과학기술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배우고 발전시켜나갈 과학기술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찰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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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학 논문을 잘 읽는 방법은?
우선 본문의 개요를 파악하고 어떤 주제를, 어떤 질문으로 다루는지 이해합니다. 가능하면 인용된 논문을 이어 읽고, 저자의 연구에 밑거름이 된 다른 학자들의 연구를 이해해 봅시다. 그리고 논문에서 다른 주제에 대해 자기 생각을 정리해 보길 권합니다.

 

과학기술학 연구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한국의 학문 분류에서 과학기술학은 문과와 이과의 중간 지대에 서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혀 다르다고 생각하는 두 학문이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듯이 사고의 유연함을 가지길 권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관심 있는 사회 현상과 과학지식을 연결해 보고 의견을 정리해 보세요. 과학기술학의 첫 걸음이 될 것입니다.

글 : 성한아 KAIST 인류세 연구센터 연수연구원

과학동아 2022년 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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