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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기기관 vs 대기압 철도

성급한 기술 상용화로 결점만 드러나

18세기 산업혁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증기기관이다. 증기기관은 철도 열풍을 타고 19세기의 대표적인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한때 새로운 철도 시스템이 바람을 일으키며 나타나 증기기관을 위협했다. 바로 1844년 초 아일랜드 더블린의 킹스타운과 돌키 사이의 1.75마일(약 2.82km)을 잇는 대기압 철도가 그것이었다. 대기압 철도는 당시 전 세계로 뻗어가며 철도 붐을 일으키던 증기기관 철도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움직였다. 증기기관 철도는 이름 그대로 기관차가 증기기관으로 돼 있어 실린더와 피스톤이 움직이며 기차에 동력을 공급해 뒤에 달린 객차를 움직였다.

대기압 철도에는 이런 증기기관이 없었다. 대신 선로 사이에 지름 15인치(약 38cm)가 넘는 쇠로 된 실린더를 설치하고, 기관차에는 이 파이프(실린더)에 딱 맞는 피스톤만 놓았다. 실린더를 따라 피스톤이 움직이며 기차에 동력을 공급했다. 대기압 철도에서는 피스톤을 움직일 때 비싼 증기력 대신 대기압을 사용했다. 선로를 따라 2~3마일 간격으로 엔진 하우스를 세우고, 증기로 움직이는 공기 펌프를 설치한 뒤 이 공기 펌프로 실린더에 공기를 넣어 기차를 움직였다. 기차가 도착하기 직전에는 다시 실린더에서 공기를 빼내 피스톤이 압력이 낮은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해 기차를 세웠다.

당시 대기압 철도는 증기기관 철도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증기기관의 경우 기차가 왕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하행 복선으로 선로를 깔아야 했기 때문에 선로 건설에 들어가는 비용이 엄청났다. 하지만 대기압 철도는 선로가 하나만 있어도 됐기 때문에 훨씬 경제적이었다. 또 증기기관은 경사가 급한 길에서 안정성도 떨어졌고, 운행할 때마다 내뿜는 시커먼 연기와 소음도 문제였지다. 반면 공기로 움직이는 대기압 철도는 깨끗하고 소음도 없었다.

대서부철도(Great Western Railway) 건설로 명성을 얻고 있던 영국의 브루넬은 앞으로 기차 수송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증기기관 철도를 대신할 새로운 철도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선택한 것은 대기압 철도였다.

브루넬은 1844년 8월 사우스 데본 철도의 15마일에 이르는 구간을 대기압 철도로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증기기관 철도는 엄두도 못 낼 만큼 경사가 심한 경로도 선로에 포함시켰다. 3년에 걸친 공사 끝에 마침내 당시로서는 가장 긴 대기압 철도 노선이 1847년 9월 개통됐다.
하지만 개통된 지 1년도 채 안돼 브루넬은 대기압 철도를 포기하고 말았다.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브루넬뿐만이 아니었다. 1844년부터 대기압 철도 붐을 타고 웨일스,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에서 대기압 철도가 100대 이상 건설되기 시작했지만 실제로 완공된 것은 네 곳 뿐이었다. 건설 계획이 있던 곳은 모두 증기기관 철도로 대체됐다. 1854년 이후로는 아예 대기압 철도에 관한 논의가 사라졌다.

당대 유명한 엔지니어들을 매료시키며 등장했던 대기압 철도의 짧은 운명은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기술적 요인이 크다. 대기압 철도에는 기관차가 없어 생각처럼 운행을 제어하기가 쉽지 않았다. 기차를 세우기 위해 실린더에서 공기를 모두 빼면 피스톤이 실린더 속으로 급속히 빨려 들어가 제동 장치를 있는 힘껏 조작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속도 조절기가 없어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기도 힘들었다.

경제적일 것으로 예상했던 단일 선로 시스템은 실제로 대기압 기차가 운행에 들어가자 오히려 큰 걸림돌이 됐다. 어느 구간에서든 기차가 한번에 한 대밖에 운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신체계가 덜 발달돼 기차 도착 시간에 맞춰 진공 펌프를 조작하기도 힘들었다. 이렇게 기술적인 결함들이 드러나면서 사람들은 점차 대기압 철도에 의구심을 갖게 됐고 결국 투자자들도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만일 엔지니어들이 증기기관 철도처럼 충분히 실험하고 기술을 개선한 뒤 대기압 철도를 부설했다면 그렇게 실패했을까. 철도 붐이 불면서 엔지니어들은 하루라도 빨리 신기술을 선보여서 투자자를 끌어들이고 싶어 했고, 이로 인해 대기압 철도에는 충분한 시험도 거치지 않은 기술이 사용될 수밖에 없었다. 엔지니어들의 조급함이 대기압 철도의 운명을 앞당기고 말았다.

경쟁 관계에 있던 증기기관 철도의 기술이 급속히 개선되면서 대기압 철도는 특별히 매력을 지닐 수 없게 됐다. 게다가 대기압 철도는 전기 기술이 발전해 철도에 전기시스템이 도입되면서 등장한 전기 철도에도 밀릴 수밖에 없었다. 전기 철도는 대기압 철도와 비슷하게 외부 발전소에서 차량 위에 설치된 전선에 전기를 공급하면서 철도가 동력을 얻어 움직이는 것이었다. 전기 철도는 증기기관 철도의 장점에 대기압 철도의 장점까지 있어 새로운 수송 수단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해서 대기압 철도가 설 자리는 더욱 없어지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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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박진희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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