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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2026 노벨 과학상 | 화학상 거울상 분자

생명이 한쪽 손만 쓰게 된 수수께끼, 그 실마리를 찾다

 

▲Nobel Prize Outreach
 

 

 

대칭이지만 서로 다른 성질의 두 분자, 생명체가 한 쪽만 가지는 이유를 밝히다

 

Q. 노벨 화학상의 주인공, ‘거울상 분자’가 뭘까?
“올해는 거울상과 관련된 분야가 상을 받게 됐습니다.” 10월 7일, 모두가 숨죽이며 노벨 화학상 발표를 기다리던 그 순간, 엘렌 몬스 스웨덴 과학아카데미 사무총장은 ‘거울상’이라는 말을 꺼냈습니다. 수상자는 거울상 분자를 연구해 온 앙리 보리스 카간 프랑스 파리사클레대 화학과 교수와 소아이 겐소 일본 도쿄이과대 응용화학과 교수였죠.

 

 

거울상 분자가 뭘까요? 왼손과 오른손은 똑같이 생긴 것처럼 보이지만, 두 손을 함께 포개면 온전히 겹쳐지지 않습니다. 한쪽 손 장갑에 다른 손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쉽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분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분자를 이루는 원자의 종류와 수는 물론 원자가 연결된 순서까지 같지만, 거울에 비친 것처럼 좌우가 대칭인 모습으로 존재해 서로 겹쳐지지 않는 분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자를 ‘카이랄(키랄) 분자’라고 하고, 반대로 이런 성질이 없으면 ‘비카이랄 분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거울상 관계인 두 분자를 ‘거울상 이성질체’라고 부릅니다. 조금 쉽게는 거울상 분자라고 하죠.

 

Q. 생명체는 한쪽 손 분자만 지니는 이유가 뭘까?
거울상 분자는 서로 다른 성질을 보입니다. 아미노산 종류인 알라닌은 L-알라닌과 D-알라닌, 두 종류의 거울상 분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인체는 단백질을 만들 때 L-알라닌만 사용합니다. D-알라닌은 세균이 세포벽을 만들 때 쓰죠.

 

알라닌의 예처럼, 생명체는 보통 생명 활동에 한쪽 이성질체만을 사용합니다. 이렇게 한쪽 이성질체만 모여 있는 상태를 ‘호모 카이랄성(homochirality)’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호모 카이랄성이 평범하지 않은 화학 반응이라는 데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실험실에서 카이랄 분자를 합성하면 왼손형과 오른손형 이성질체가 반반씩 만들어집니다. 대칭인 걸 제외하고 차이가 없으니 두 이성질체가 만들어지는 데 필요한 에너지도 똑같죠.

 

그런데 생명체는 어떻게, 왜 한 가지 거울상 분자만 선택하고 사용할까요? 1857년 프랑스의 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가 생명체의 호모 카이랄성을 발견한 이후로 과학자들은 이 의문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100년 가까이 풀리지 않던 화학계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데 핵심적으로 기여한 연구자가 카간 교수와 소아이 교수입니다.

 

▲The U.S. Food and Drug Administration(W)
1957년 입덧 완화제로 출시된 탈리도마이드에는 서로 거울상 대칭이지만 성질이 다른 두 분자가 들어 있었다. 당시 두 분자가 분리되지 않은 채 제조되면서 부작용으로 기형아가 1만 명 넘게 태어났다.

 

Q. 한 쪽 손 분자만 많아질 방법, 어떻게 찾았을까?
두 교수가 호모 카이랄성을 연구하기 전부터, 비카이랄 분자의 화학 반응 촉매로 카이랄 분자를 넣으면 한쪽 거울상 분자를 다른 쪽 거울상 분자보다 더 많이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습니다. 1904년, 독일의 화학자 빌리 마르크발트가 밝혀낸 연구 결과죠. 여기서 단순히 한쪽 거울상 분자가 조금 많아지게 만드는 것이 아닌, 훨씬 더 많아지게 만드는 원리를 밝힌 사람이 카간 교수입니다.

 

카간 교수는 원하는 한쪽의 거울상 분자를 기존보다 더 효율적으로 더 많이 얻을 방법을 연구하다가 두 거울상 분자의 미세한 양적 차이를 증폭할 방법을 찾기 시작합니다. 이전까지 왼손형 이성질체와 오른손형 이성질체를 3:1 비율로 넣어 카이랄 촉매를 만든다면, 화학 반응이 끝난 뒤 생성물도 왼손형과 오른손형의 이성질체 비율이 3:1로 유지된다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1986년 카간 교수는 생성물의 왼손형, 오른손형 이성질체 비율이 3:1보다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을 밝혀냈습니다. doi: 10.1021/ja00269a036

 

원인은 카이랄 촉매 자체에 있었습니다. 카이랄 촉매는 주로 금속 원자에 카이랄 분자를 합성해 만듭니다. 그런데 카간 교수가 연구한 촉매는 금속에 카이랄 분자 두 개가 결합하는 구조였습니다. 그러면 왼손형 이성질체 두 개나, 오른손형 이성질체 두 개, 혹은 왼손형과 오른손형 이성질체가 한 개씩 붙을 수 있습니다. 왼손형과 오른손형 이성질체를 3:1 비율로 넣어 촉매를 만들어봅시다. 간단한 곱셈을 통해 왼손형 이성질체 두 개가 붙은 촉매, 왼손형과 오른손형 이성질체가 섞인 촉매, 오른손형 이성질체 두 개가 붙은 촉매는 각각 9:6:1 비율로 생성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카간 교수는 실험을 통해 왼손형과 오른손형 이성질체가 함께 붙은 카이랄 촉매는 화학 반응을 거의 일으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러면 화학 반응은 사실상 9:1 비율인 왼손형-왼손형 촉매와 오른손형-오른손형 촉매에서만 일어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화학 반응의 생성물에서 왼손형, 오른손형 이성질체 비율도 9:1에 가까워집니다. 왼손형과 오른손형 이성질체의 비율이 증폭되는 원리죠.  

 

한눈에 보는 노벨상

한쪽 손 분자만 늘어나는 과정을 밝히다

카간 교수와 소아이 교수는 서로 대칭이지만 성질이 다른 거울상 분자의 비율이 다를 때, 이 비율이 증폭되는 원리를 밝혔다. 카간 교수는 촉매의 특성 때문에 왼손형과 오른손형 이성질체 비율 차이가 커지는 원리를 밝혔고, 소아이 교수는 많아진 한쪽 이성질체가 혼자서 다시 증식하는 원리를 알아냈다.
 카간, 왼손형과 오른손형 분자 차이가 증폭되는 원인 밝히다
▲Johan Jarnestad/The Royal Swedish Academy of Sciences
 
 

 

Q. 많아진 한쪽 손, 혼자서 증식할 수 있을까?
카간 교수 이후 한쪽 이성질체가 월등히 많아지는 화학 반응을 연구하던 소아이 교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됩니다. ‘카이랄 촉매로 생성된 카이랄 분자가 다시 카이랄 촉매가 될 수 없을까?’라는 발상이죠. 결론은 간단했습니다. 카이랄 촉매의 반응으로 생성된 분자가 카이랄 촉매와 같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화학 반응이 진행됨에 따라,  카이랄 촉매의 양 차이가 급격히 벌어지겠죠.

 

소아이 교수는 1995년 ‘5-피리미딜 알칸올’이라는 카이랄 분자를 재료로 삼아 아연 알콕사이드라는 촉매를 만들고, 이 촉매로 다시 5-피리미딜 알칸올을 만드는 데 성공합니다. doi: 10.1038/378767a0 단순히 같은 분자를 만드는 것이 아닌 같은 방향의 거울상 분자를 만들었죠. 처음 왼손형과 오른손형 이성질체의 비율 차이는 2%에 불과했지만, 생성물을 다시 촉매로 쓰는 반응을 4번 반복하자, 비율 차이는 87%까지 늘어났습니다.

 

2003년에는 더 미세한 차이도 100%에 가까운 비율로 증폭시켰습니다. doi: 10.1002/anie.200390105 반응 시작 전 촉매에 사용된 왼손형과 오른손형 이성질체 비율의 차이는 0.00005%였습니다. 생성물을 다시 촉매로 사용하는 실험을 3번 거친 결과 최종 생성물의 왼손형과 오른손형 이성질체 비율 차이는 약 99.5%였습니다. 거의 없던 차이가 사실상 한쪽만 남는 수준까지 벌어진 셈입니다. 생성물이 다시 카이랄 촉매가 돼서 한쪽 거울상 분자 비율을 늘려나가는 이 반응을 ‘자기 촉매’ 반응, 또는 ‘소아이 반응’이라고 부릅니다.

 

▲Académie des sciences
생명체는 서로 대칭이지만 성질이 다른 거울상 분자 중 하나만 가진다. 앙리 카간 프랑스 파리사클레대 교수는 거울상 분자의 비율이 다를 때 이 비율 차이가 증폭되는 원리를 밝힌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Q. 호모 카이랄성 연구, 의약품에도 활용될 수 있을까?
두 거울상 분자의 균형을 깨뜨리는 호모 카이랄성 연구는 먼저 의약품과 향료, 농약 등을 제조하는 데 활용될 수 있습니다. 왼손형과 오른손형 이성질체는 서로 성질이 전혀 다른 경우가 있어 왼손형 이성질체가 질병 치료 효과가 있더라도 오른손형 이성질체는 아무런 효과가 없거나 오히려 독성을 띨 수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57년 임산부 입덧 완화제로 출시됐다가 5년 만에 판매 금지된 ‘탈리도마이드’입니다. 탈리도마이드의 한쪽 거울상 분자는 입덧 완화 효과가 있었지만, 다른쪽 거울상 분자는 태아의 팔다리 성장을 억제하는 부작용이 있었죠. 분리되지 않은 두 이성질체 때문에 1950년대 말~1960년대 초 전 세계에서 1만 명이 넘는 기형아가 태어났습니다. 이러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 한쪽 이성질체로만 이루어진 의약품을 만드는 기술이 중요합니다.

 

거울상 분자 연구자들은 2001년과 2021년에도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촉매를 활용해 한쪽 거울상 분자가 더 많이 생성되는 반응을 유도한 연구자들이었죠. 반면, 이번 노벨상 수상자들은 한쪽 거울상 분자를 더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두 거울상 분자의 비율 차이가 어떻게 ‘증폭’되는지 밝혔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돌아가서, 그렇다면 소아이 반응을 통해 생명체의 호모 카이랄성 메커니즘을 완벽히 밝혔다고 볼 수 있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소아이 반응이 생명체에서 일어나는 화학 반응과 동일하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죠.

 

하지만 소아이 반응은 생명의 기원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습니다. 여전히 과학자들은 소아이 반응에서 출발해, 생체 분자에서 호모 카이랄성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재현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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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글

    장효빈
  • 디자인

    박주현
  • 기타

    감수 류도현 성균관대 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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