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도 백신으로 ‘기억’하게 만들 수 있을까. 2026년 8월 20일, 미국의 제약회사 모더나와 머크는 개인맞춤형 메신저RNA(mRNA) 암 백신의 흑색종 3상 임상시험이 주요 목표를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환자마다 다른 암의 유전체를 분석해 맞춤형 백신을 만드는 시대가 열릴 수 있다는 신호탄이었다. 이제 ‘암 정복’의 시대가 온 걸까. mRNA 암 백신의 원리와, 암 백신이 바꿀 미래의 모습에 관해 구본경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이 직접 해설한다.
지난 8월 20일, 미국의 제약회사 모더나와 머크는 개인맞춤형 메신저RNA(mRNA) 암 백신 ‘인티스메란 오토진(Intismeran Autogene)’의 흑색종 3상 임상시험이 주요 목표를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흑색종은 피부색을 만드는 멜라닌 세포가 악성화돼 발생하는 암이다.
모더나 연구팀은 수술로 눈에 보이는 암을 모두 제거한 2B(1기보다 암의 크기가 크거나, 암의 주변 조직 침범 정도가 2A기보다 심한 상태)기에서 4기(암 세포가 다른 신체 장기나 전신으로 퍼진 말기 상태)까지의 피부 흑색종 환자 1137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글로벌 제약회사 머크가 개발한 3세대 면역항암제로 암 치료에 흔히 쓰이는 ‘키트루다’만 투여한 환자와, 키트루다에 개인맞춤형 mRNA 암 백신을 함께 투여한 환자를 비교했다. 그러자 암이 다시 생기지 않은 기간, 재발 및 사망 위험을 49%, 원격 전이 및 사망 위험을 59%까지 낮췄다.
암 백신 3상 성공. 이 말만 들으면 이제 주사 한 대로 암을 예방하는 시대가 온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암 백신은 독감이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처럼 사전에 암 발생을 막는 백신이 아니다. 이미 암 수술을 받은 환자에게 남아 있을지 모르는 암세포를 면역계가 찾도록 훈련해 ‘재발을 예방’하려는 치료다.
더 중요한 것은 이번 성과가 백신 하나만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개인맞춤형 암 백신은 ‘수술’ ‘면역관문억제제’ ‘암 백신’이라는 3중의 치료 과정 중 한 단계다. 수술은 눈에 보이는 적(종양)을 제거하고, 암 백신은 몸에 남아 있을지 모르는 적의 얼굴을 면역계에 알려주며, 면역관문억제제는 그 적을 발견한 T세포(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나 암세포를 직접 파괴하는 핵심 백혈구)가 제대로 싸울 수 있도록 브레이크를 풀어준다.
암은 왜 백신으로 다루기 어려웠을까
이번 결과의 의미와 한계를 이해하려면 암이 왜 백신으로 다루기 어려웠는지부터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가 아는 백신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적을 면역계에 미리 보여줘 대비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때 바이러스나 세균은 우리 몸 속 세포와 상당히 다르게 생겨서 면역계가 적으로 구분하기 비교적 쉽다. 자궁경부암을 예방하는 HPV 백신 역시 엄밀히 말하면 암세포가 아니라 암세포를 만드는 원인인 사람유두종바이러스(HPV)에 감염되지 않도록 막는 백신이다.
암은 다르다. 암세포는 원래 내 몸의 세포였다. 정상세포가 돌연변이를 하나둘 축적하면서 성장과 증식을 통제하는 규칙에서 벗어난 것이 암이다. 면역계 입장에서 암세포는 낯선 침입자가 아니라 ‘나와 아주 비슷하지만 조금 달라진 세포’이므로, 암세포만 공격하고 정상세포는 건드리지 않을 표적을 찾기가 훨씬 어렵다.
이 문제를 푸는 열쇠가 ‘신생항원(neoantigen)’이다. 암세포의 DNA에 생긴 여러 돌연변이 가운데 일부는 정상세포에는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신생항원을 만들어낸다. 정상세포에는 없고 암세포에만 있다면 면역계가 암을 구별하는 일종의 ‘수배 전단’이 될 수 있다.
모더나의 개인맞춤형 암 백신은 환자의 종양과 정상세포의 유전체 정보를 비교해 어떤 돌연변이가 생겼는지 찾고, 그 가운데 환자의 면역계가 잘 알아볼 가능성이 높은 신생항원을 최대 34개까지 고른다. 이렇게 고른 항원 정보를 하나의 mRNA에 담아 그 환자만을 위한 백신을 만든다. 백신이 투여되면 mRNA 정보를 바탕으로 신생항원이 만들어져 면역계에 제시되고, T세포는 이런 단백질을 가진 세포가 공격해야 할 암세포라고 학습한다. 환자의 암을 분석해 개인별 수배 전단을 만든 뒤 면역세포에 나눠주는 셈이다.
여기서 키트루다의 역할도 중요하다. T세포가 암세포를 알아본다고 해서 암세포를 항상 잘 죽이는 것은 아니다. 암세포는 T세포의 표면에 존재하는 단백질 수용체인 PD-1에 ‘브레이크’를 걸어 공격을 멈추게 할 수 있다. 키트루다는 이러한 암세포의 방해 공작을 차단해 T세포가 다시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돕는다.
맞춤형 암 백신, 남은 한 조각 암까지 걸러낸다
코로나로 급성장한 mRNA 백신 기술, 숨은 암 찾는다
개인맞춤형 암 백신이 처음 자리 잡을 분야는 거대한 종양을 없애는 치료보다 수술 후 재발을 막는 치료일 가능성이 크다. 수술로 종양을 아무리 잘 제거해도 몸속에 아주 적은 수의 암세포가 남을 수 있다. 영상검사로도 보이지 않는 이런 ‘미세잔존암’이 시간이 지나 다시 증식하면 암의 재발과 전이가 일어난다. 암수술을 받았음에도 재발이 자주 일어나는 이유다. 암 백신에게 수십억 개의 암세포가 만들어 놓은 거대한 종양을 없애라고 하는 것보다, 수술 뒤 숨은 소수의 암세포를 찾아내라고 하는 편이 면역계에게는 훨씬 유리한 싸움이다. 개인맞춤형 암 백신의 강점이 가장 잘 발휘되는 상황이다.
이 기술이 가능해진 데는 코로나19를 거치며 크게 발전한 mRNA 기술도 한몫했다. mRNA 기술 자체는 팬데믹 이전부터 암 백신 개발에 쓰이고 있었지만, 팬데믹을 계기로 mRNA를 안정적으로 만들고 대량 생산하는 기술, mRNA를 세포 안으로 전달하는 지질나노입자(LNP) 생산 기술, 백신의 생산 관리 인프라까지 급격히 발전했다.
동시에 유전체 분석 비용과 시간이 크게 줄었고, 수많은 돌연변이 중 어떤 것이 좋은 면역 표적이 될지를 컴퓨터로 예측하는 기술도 함께 성장했다. 유전체를 빠르게 읽는 기술, 좋은 신생항원을 찾는 기술, 그 정보를 mRNA로 빠르게 만드는 기술이 만나면서 개인맞춤형 암 백신이 실제 치료에 가까워진 것이다
아직 넘어야 할 벽들, 임상과 비용
그렇다고 이번 3상 결과를 ‘암 정복’이라 부르기에는 갈 길이 멀다. 우선 이번에 발표된 것은 상세 논문이 아니라 중간 분석의 결과다. 재발과 원격전이를 막는 지표는 양호했다. 하지만 환자가 실제로 더 오래 사는지를 보여주는 전체생존기간(OS)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고, 재발 위험이 얼마나 줄었는지도 정식 데이터 공개를 기다려야 한다. ‘암으로 인한 사망을 크게 줄였다’고까지 말하는 건 지나치다.
암마다도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흑색종에서의 성공이 다른 암에서 그대로 반복된다는 보장도 없다. 이번 임상의 대상인 피부 흑색종은 자외선 노출로 DNA 돌연변이가 많이 생기는 대표적인 암이고, 돌연변이가 많다는 것은 면역계가 구별할 수 있는 신생항원 후보도 많다는 뜻이다. 원래부터 면역관문억제제가 잘 듣는 암이기도 하다. 반대로 췌장암처럼 돌연변이가 적고 면역세포가 종양 안으로 잘 들어가지 못하는 암에서는 암 백신이 효과를 보기가 어려울 수 있다.
암세포가 백신이 표적으로 삼은 항원을 잃어버리거나 면역계에 항원을 보여주는 장치 자체를 망가뜨리고 도망갈 수도 있다. 신생항원을 찾아내는 기술도 아직 완벽하지 않다. 돌연변이가 모두 좋은 백신 표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 단백질로 만들어져야 하고, 환자의 면역계가 인식할 수 있어야 하며, 충분히 강한 T세포 반응을 일으켜야 한다. 수많은 후보 가운데 진짜 중요한 신생항원을 얼마나 정확하게 골라내냐가 앞으로의 기술 목표가 될 것이다.
현실적으로 매우 중요한 마지막 문제는 돈이다. ‘개인맞춤형’이라는 말은 의학적으로는 정밀함을 뜻하지만, 생산 측면에서는 환자 한 명마다 별도의 백신을 설계하고 제조해야 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모더나와 머크가 공동 개발 중인 맞춤형 암 백신 V940의 실제 판매가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므로 ‘억 원대 백신’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한 사람을 위해 별도로 분석하고 제조하는 치료가 대량생산 백신보다 비쌀 가능성은 충분하다. 개인맞춤형 암 백신의 성공은 ‘얼마나 효과가 좋은가’뿐 아니라 ‘얼마나 빨리, 얼마나 싸게, 얼마나 많은 환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가’에도 달렸다.
암을 ‘읽고’ 치료하는 시대 열릴까
그럼에도 이번 결과가 중요한 이유는 암 치료의 방향이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제는 환자 한 명의 암 조직에서 유전체를 읽고, 그 환자의 암에만 있는 특징을 찾아내고, 그 정보를 다시 mRNA로 제작해 환자의 면역계를 교육한다.
‘암 백신의 시대가 암이 없는 시대를 이끌 것인가’라는 질문. 아직은 단정하기에 이르다. 전체생존 데이터를 기다려야 하고, 다른 암종에서의 효과를 확인해야 하며, 무엇보다 비용과 접근성이라는 현실적인 장벽도 넘어야 한다. 그럼에도 암을 수술로 제거한 뒤, 남은 암세포의 정보를 읽고, 그 정보로 자기 면역계를 훈련시켜 재발을 막는 시대는 분명 가까워지고 있다. 이번 3상 결과의 진짜 의미는 ‘암 정복’이라는 거대한 선언 뒤에서 다가오는 치료 패러다임의 변화에 놓여 있다.
용어 설명
세포핵 속의 DNA 유전 정보를 리보솜으로 전달해 단백질 합성을 돕는 분자. 바이러스의 일부를 만드는 mRNA를 체내에 주입하면, 세포가 지시에 따라 항원 단백질을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