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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PART2] 일본의 중성미자 연구 30년, 멈춰선 한국의 중성미자

9월 1일, 도쿄대에서 만난 가지타 다카아키 우주선연구소 교수는 푸근한 첫인상으로 다가왔다. 목전에 바투 대면한 이 인물은, 알고보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이자 30년 동안의 일본 중성미자 연구 풍토를 쌓은 사람 중 한 명이다. 1987년 초신성 폭발에서 방출된 중성미자를 인류 최초로 검출하는 데 성공한 일본의 1세대 중성미자 검출기 카미오칸데부터 내후년인 2028년 가동할 3세대 하이퍼카미오칸데까지, 일본의 중성미자 연구는 30년 연구 계보로 커왔다. 일본은 어떻게 이런 역량을 갖추게 됐을까. 가지타 교수는 뜻밖의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University of Tokyo

일본의 2세대 중성미자 검출기 ‘슈퍼카미오칸데’의 내부 전경. 일본은 3세대 검출기인 ‘하이퍼카미오칸데’ 가동을 앞두고 있다.

 

“저희(일본)에게 노벨상을 두 차례나 안겨줬지만, 중성미자는 사실 처음엔 연구 목표가 아니었어요.”

9월 1일 도쿄대에서 만난 가지타 다카아키 우주선연구소 교수는 예상 외의 말로 인터뷰의 문을 열었다. 가지타 교수는 1998년 세계 최초로 중성미자의 진동을 측정해 중성미자에 질량이 있음을 알아낸 공로로 201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카미오칸데는 실은 양성자, 정확히는 양성자의 붕괴 현상을 보기 위해 지었던 검출기였습니다. 그러다 중성미자로 확장했더니, 지구 반대편에서 오는 우주선 속 중성미자를 우연히 카미오칸데가 잡아낸 거죠.” 그는 박사과정 1년 차였던 1982년, 양성자 붕괴를 찾기 위해 지하 검출기를 짓는 연구진에 합류했다.

 

배하진

 

카미오칸데는 양성자가 아주 긴 시간에 걸쳐 다른 입자로 붕괴할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처음 건설됐다. 양성자의 대표적인 붕괴 과정은 양전자와 중성 파이온으로 변하는 것이다. 하지만 양성자 붕괴 현상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대신 가지타 교수가 속한 연구팀은 새로운 발견의 문을 열었다. 카미오칸데를 양성자 붕괴 현상 대신 중성미자를 검출할 수 있는 장비로 목적을 바꿔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굴착한 지하 공동에 거대한 물탱크가 들어서고 광검출기가 설치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물리학자의 길을 결심한 가지타 교수는 스승인 고시바 마사토시 도쿄대 물리학과 교수와 함께 연구를 이어갔다. 목적이 바뀐 카미오칸데는 1987년 초신성에서 날아온 중성미자를 관측하는 데 성공했고, 고시바 교수는 이 공로로 2002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이후 카미오칸데는 본격적인 중성미자 연구의 거점으로 발전했다. 1996년에는 5만 t(톤) 규모의 2세대 슈퍼카미오칸데가 가동됐다. 이전 세대의 17배 규모였다. 슈퍼카미오칸데는 1990년대 중성미자 물리학의 핵심 질문 가운데 하나인 ‘중성미자에 질량이 있는가’에 답했다. 중성미자의 성질과 우주의 모습이 질량의 존재 여부에 따라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1998년, 슈퍼카미오칸데 연구팀은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뮤온 중성미자가 예상보다 훨씬 적게 검출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지구를 통과하는 동안 일부 뮤온 중성미자가 다른 종류의 중성미자로 바뀐 것이다.

이를 ‘중성미자 진동’이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이 진동이 일어나려면 중성미자가 질량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서로 다른 질량을 가진 상태들이 섞여 있는 중성미자가 공간을 이동하면서 서로 다른 속도로 진행하고, 그 결과 관측되는 중성미자의 종류가 주기적으로 바뀌는 것이다. 슈퍼카미오칸데의 관측은 결국 중성미자가 질량을 가진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됐다. 가지타 교수는 “중성미자 진동 없이는 모든 데이터를 설명할 수 없었지만, 진동을 가정하면 모든 데이터가 이해됐습니다.”고 회상했다. 내색은 하지 않았으나, 그의 얼굴에 은은히 비친 미소에서 자부심을 족히 엿볼 수 있었다.

“발견은 예측할 수 없어요. 예측할 수 없어서 경제성을 평가할 수도 없고요. 기초과학에 적극적인 지원과 도전이 뒷받침돼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제는 3세대 카미오칸데로 더 많은 비밀을 풀어낼 거예요.” 가지타 교수는 중성미자 연구의 지난 30년을 돌아보며 이렇게 요약했다.

 

Takaaki Kajita

2015년 가지타 다카아키 도쿄대 교수(정중앙)와 슈퍼카미오칸데 연구팀 모습. 가지타 교수는 “노벨상을 받은 후 인터뷰도 쏟아지고, 연구 추진에도 힘을 받는 등 인생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고 회상했다.

 

3세대 카미오칸데로 3번째 노벨상 노린다

‘3세대 카미오칸데’는 2028년에 완공될 ‘하이퍼카미오칸데’다. 슈퍼카미오칸데보다 5배 커진 26만 t의 물을 담는다. 크기만 달라진게 아니다. 하이퍼카미오칸데는 일본 도카이의 양성자가속기연구소(J-PARC) 가속기에서 만든 중성미자 빔을 검출한다.

도카이에서 만든 중성미자 빔은 약 295㎞ 떨어진 기후현 가미오카의 하이퍼카미오칸데로 쏜다. J-PARC에는 ‘근거리 검출기’를 설치해 출발할 때의 중성미자를 측정하고, 하이퍼카미오칸데에서는 중성미자가 이동 후 어떻게 변한지를 살핀다.

핵심은 ‘변화’다. 예를 들어 뮤온 중성미자를 쏘았는데 하이퍼카미오칸데에서 전자 중성미자가 더 많이 발견된다면, 중성미자가 이동하는 동안 다른 종류로 변한 것이다. 이 변화를 추적하면, 입자와 반입자가 대칭을 이루지 않고 미세한 차이를 보이는 ‘CP 대칭성 깨짐’ 현상을 검증할 수 있다. 입자와 반입자의 특성이 완벽히 동일하다면 우주 탄생 당시, 입자와 반입자가 같은 양으로 만들어졌어야 한다는 게 물리학자들의 추측이다. 그러나 현재 우주는 거의 물질로만 구성돼있다.

중성미자와 반중성미자를 번갈아 쏘면 이 미스터리가 풀릴 길이 열린다. 두 입자 사이 중성미자 진동의 변화 차이를 정밀하게 비교하면, 두 입자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진동하는지 알 수 있다. 즉 중성미자에서 CP 대칭성 깨짐을 확인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것이 하이퍼카미오칸데가 궁극적으로 ‘왜 우주에는 반물질보다 물질이 많은가’라는 질문에 접근하는 방법이다. 세계 입자물리학계는 카미오칸데가 노벨상 하나, 슈퍼카미오칸데가 또 노벨상 하나를 배출했던 것처럼, 하이퍼카미오칸데 역시 노벨상을 배출할 것으로 강력히 예상한다.

 

| 중성미자의 ‘은밀한 변신’ 꿰뚫는 하이퍼카미오칸데

양성자가속기연구소(J-PARC)에서 방출된 뮤온 중성미자()는 298km 떨어진 하이퍼카미오칸데를 향하며 일부가 전자 중성미자()로 변한다. 근거리 검출기와 하이퍼카미오칸데에서 검출된 데이터를 비교하면 중성미자의 조용한 변화를 검출할 수 있다.

 

자료: Kamioka Observatory ICRR, AI 생성 이미지(ChatGPT)

 

흔들리지 않는 신뢰와 제도... 일본 중성미자

중국과 일본과 달리, 한국의 중성미자 연구는 순탄치 못하다. 한국은 2011년 원전중성미자실험(RENO)을 통해 중성미자 혼합각(서로 다른 상태의 중성미자가 바뀌는 비율을 나타내는 수치)을 측정하는데 성공했고, 국제 공동연구를 통해 상당한 경험과 인력을 축적했다. 하지만 그다음 세대의 대형 실험으로 이어지지는 못했고 현재는 거의 중단 상태다.

일본에선 노벨상이 있었기에 ‘돈 안 되는’ 기초과학에서도 3세대까지 이어지는 장기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었던 걸까. 가지타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대신 간단히 답했다. “우리는 단순히 과학적 중요성을 말했습니다. 그게 전부예요.” 그는 곧 덧붙였다. “

많은 프로젝트가 산업계 응용 가능성을 근거로 승인받지만, 일본 정부 내에는 순수 과학을 순수하게 지원하는 부서가 있어요.” 중요성을 판단하고 곧바로 예산으로 옮겨줄 창구가, 애초에 정부 안에 마련돼 있었다는 뜻이다.

“일본학술회의(Science Council of Japan)라는 게 있어요. 저명하고 경험 많은 학자들이 모여 대형 프로젝트를 결정합니다.” 일본학술회의는 전후인 1949년 설립돼 과학자들이 평화적 신념을 지키며 과학에 관한 중요 사항을 심의하고, 정부 정책에 제언하는 국가 특별기관이다. 그에 따르면 일본에선 3~4년마다 4~5개의 연구 프로젝트를 선정해 예산을 배정한다. 특히 학술회의에서 결정된 사안은 최대한 지원한다. 과학자의 결정을 정부도 국민도 효용을 따지지 않고 믿고 따른다는 것이다.

일본의 제도는 경쟁국과 비교하면 더 뚜렷해진다. 하이퍼카미오칸데와 목적이 같은 미국의 중성미자 검출기 ‘듄(DUNE)’은 계획상 이미 데이터를 냈어야 했지만, 완공이 계속 밀려 2030년이 지나도 가동되지 못할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결국 일본의 중성미자 30년 계보는 신뢰와 제도라는 기틀에서 자라난 것이었다.

 

 

원사 한 사람 말이 현실로... 중국 중성미자

중국의 방식은 일본과 다르지만 결론은 비슷하다. “중국에서는 권위 있는 과학자의 말이 곧 현실이 됩니다.” 김수봉 중국 중산대 물리학과 교수가 현지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2017년 입자물리학 분야의 국제적 권위 있는 상인 ‘브루노 폰테코르보상’을 한국인 최초로 수상한 인물이자, 서울대 물리학과에서 현재는 중국으로 적을 옮긴 세계적 대가다.

김 교수는 2012년 RENO가 세계적 성과를 낸 직후 한국형 후속 프로젝트 ‘RENO-50’ 공모에 지원했다가 탈락한 뒤, 2022년 중국의 인재 유치 프로그램, ‘천인계획’을 통해 자리를 옮겼다. “중국을 이끌어 나가는 지도자들 중 상당수가 과학자나 기술자예요. 과학기술의 중요성에 대한 관심이 큽니다. 적극적으로 믿어주고 투자도 일어나죠.”

그가 현장에서 목격한 것은 원사(院士)라는 제도였다. 과학, 기술, 공학 분야에서 국가가 수여하는 최고 수준의 종신 학술 직함이자 가장 명예로운 호칭이다. “중국에서 원사의 위치는 절대적이에요. 원사가 과학기술부나 예산 지원 기관에 ‘특정 연구에 빨리 투자해야 한다’고 추천하면 대부분 지원을 해줄 정도로 권위가 있는 자리죠.” 다야 베이 실험으로 2017년 김 교수와 함께 브루노 폰테코르보상을 수상한 왕이팡 중국과학원 고에너지물리연구소(IHEP) 소장도 원사가 된 후 JUNO를 추진하는 데 성공했다.

한국에도 한림원과 학술원 등의 과학기관과 국가과학자 등의 제도가 있지만, 예산 배정에 실질적인 권한을 갖는 자리는 미약하다. “한국에는 원사 제도도, 일본학술회의 같은 시스템도 없으니까, 지금은 대형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선 복마전처럼 물밑작업까지 해야 하는 거죠.” 이어 제도의 부재는 구체적인 실패로 이어졌다. 후속 연구 ‘RENO-50’는 실행되지 못했다. “0에 수렴하는 기초과학의 경제적 효용성으로는 기획재정부의 높다란 벽을 넘지 못한 것이죠”.  

 

중성미자 ‘골든타임’ , 빔은 이미 한국을 향한다

아이러니한 점은, 차기 프로젝트가 멈춘 한국이 중성미자 검출에 있어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일본이 가속기를 통해 하이퍼카미오칸데로 쏠 예정인 중성미자 빔은 지리적으로 한국을 바라본다.

“좀 더 상세한 중성미자 전환 데이터를 수집하려면 일본의 입자가속기와 하이퍼카미오칸데 사이 거리보다 4배 정도 되는 거리에 검출기를 설치해야 합니다. 그게 마침 한국에 해당하는 거리죠. 심지어는 중성미자 빔까지 한국 방향으로 날아오고 있어요. 일부로 이렇게 설계하기도 힘든 우연한 기회가 한국에 온 겁니다.” 유종희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가 말했다.

중성미자가 날아가는 동안 세 가지 형태 사이를 오가는 진동은, 거리가 길어질수록 여러 차례 반복되며 그 패턴이 뚜렷해진다. 이는 CP 대칭성 깨짐을 측정하는 데 결정적이다. 하이퍼카미오칸데가 활용하는 기준 거리는 약 295km. 영남 지역의 높이 1000m 산 지하에 건설될 것으로 계획 중인 이론 상의 한국 중성미자 검출 장비, ‘KNO’의 거리는 때마침 이보다 4배가량 길다. 이에 일본은 한국에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한국에서 검출기를 하나 더 지었을 때, 측정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아지는 거죠. KNO 건설이 순탄히 진행되지 않는 걸 보며 심지어는 미국과 유럽 등 세계 물리학회가 의문을 보낼 정도였고요.” 유 교수가 설명했다.

한국에게 천재일우의 기회가 왔다지만, 시간은 많지 않다. 골든타임은 2년으로 점쳐진다. “올해와 내년, 두 해 정도가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고 판단하고 있어요.” 유종희 교수가 말미에 씁쓸한 미소를 머금으며 답했다.

 

 

한중일 삼국이 ‘중성미자 메카’로 거듭나려면

가지타 교수에게 한국의 현실을 설명하자, “일본도 예전같지 않다”며 웃어보였다. 이어 “그래도 일본에서는 과학계에 보내는 신뢰의 문화가 여전히 강하다”며 “한국에서도 여타 분야와 달리 과학에서는 관료들이 조금 다른 제도를 채택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전했다.    

다음번 노벨물리학상이 답할 질문, CP 대칭성 깨짐은 홀로 완성되지 않는다. JUNO가 질량 순서를, 하이퍼카미오칸데가 첫 신호를 잡더라도 그 신호를 가장 정밀하게 들여다볼 자리는 한국에 있다. 문제는 그 신호를 잡을 그릇을, 이번에는 정말로 지을 수 있느냐다. 한중일이 힘을 합친다면 우주의 비밀이 또 한 겹 풀릴 수 있다. 가지타 교수는 향후 세계 중성미자 연구를 이끄는 3대 프로젝트 중 일본의 하이퍼카미오칸데와 중국의 JUNO, 둘이 아시아에 있다는 사실을 짚으며 “이제 아시아가 이 분야의 중심”이라고 말했다. 그 중심에서 한국의 자리가 비어 있다는 사실은 그도, 취재진도 굳이 다시 말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이렇게 끝을 맺었다.

“같이 힘내 봅시다.” 

 

 

| 한중일 중성미자 연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일본은 카미오칸데에서 슈퍼카미오칸데, 하이퍼카미오칸데로 이어지는 세 세대의 검출기를, 중국은 다야 베이 실험에서 축적한 역량을 JUNO로 연결하며 중성미자 연구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한국 또한 RENO 실험으로 세계적 성과를 냈지만, 아직 독자 대형 관측소 건설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 흐름을 한눈에 정리했다.

1982년 일본은 양성자 붕괴 현상을 관측하기 위해 검출기를 착공했다.

다야 베이 실험 관측기. 중국은 2011년 중성미자 혼합각을 최초로 발표했다.

 

2015년, 중성미자 질량 증거를 찾은 일본은 또다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2026년 첫 측정 결과를 발표한 JUNO는 전 세계 연구자들을 한데 모으고 있다.

 동아 DB      

2011년 가동된 한국형 중성미자 검출기 ‘RENO’. 

 

 

일본은 1949년 출범된 ‘일본학술회의’라는 뼈대 있는 기구와 제도를 통해 기초과학의 선도국을 유지하고 있다. 거기에 과학자를 믿는 신뢰의 문화에 힘입어 중성미자 연구를 3세대까지 이어가는 중이다.  

 

김수봉

일본 양성자가속기연구단지(J-PARC)는 중성미자 빔을 만들어 하이퍼카미오칸데를 향해 쏜다. 이 빔은 한반도 남쪽으로 계속 날아오며 2.5의 입사각(입자가속기에서 발생한 중성미자가 검출기로 들어오는 각도)일 때 가장 민감하게 검출된다. 김수봉 중국 중산대 교수는 “J-PARC에서 1000km가량 떨어진 곳, 그리고 2.5의 입사각이란 두 조건이 모두 남한을 향한다”며 “한국이 중성미자 검출에서 엄청난 기회를 얻은 격”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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