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동아가 떠난 첫 과학 여행의 테마는 ‘식물’입니다. 7월 1일, 기자는 강원 대관령 국립한국자생식물원으로 떠났습니다. 맨몸으로 식물만 보다오는 게 아닙니다. 기자의 손에는 과학 여행을 윤택하게 만들어줄 비장의 무기, ‘미션맵’이 들려있습니다. 깽깽이풀의 비밀부터 전나무에 담긴 이야기까지, 일곱 가지 미션이 담긴 지도를 들고 돌아다니며 여행지에서 과학 지식을 쏙쏙 빼먹어 봤습니다.

전국에서 과학 여행지 30선을 고르다
눈이 시원해질 만큼 푸릇푸릇한 풀잎 사이로 화려하게 펼쳐진 꽃잎들. 온갖 식물이 즐비한 ‘옹달샘정원’에서 기자는 뜬금없이 독미나리를 애타게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곳, 국립한국자생식물원의 과학 여행을 특별하게 만들어줄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서죠. 한참을 못 찾던 기자가 답답했던지 이재현 국립한국자생식물원 고객교육팀 대리가 살짝 힌트를 줍니다. “작고 흰 꽃을 찾아보세요.” 아하, 구석에서 자란 독미나리를 마침내 찾았습니다! 흰꽃이 우산처럼 핀 독미나리 꽃은 아무리 예뻐 보여도 따거나 먹으면 안 됩니다. 뿌리와 줄기에 독성이 있거든요.
과학동아는 지난 4월 29일부터 6월 11일까지, 한국관광공사와 선정위원회와 함께 과학을 테마로 ‘과학 여행지’ 30곳을 선정했습니다. 과학에 관심있는 초심자부터 과학을 아주 사랑하고 즐기는 ‘과학 덕후’를 위한 여행지를 5가지 테마별로 전국에서 찾아봤습니다. 5가지 테마는 천문과 동물, 식물, 에너지, 공룡이었죠.
우선 선정위원회 10명에게 9개 권역별로 5가지 테마별 과학 여행지를 일주일 동안 추천 받았습니다. 김성수 경희대 우주과학과 교수, 과학 커뮤니케이터 ‘항성’으로 활동 중인 강성주 모어사이언스 이사, 임종덕 국립문화유산연구원장, 박진영 아시아공룡협회 부사무국장, 문현지·정민경 성신여대 식물계통학실 연구원, 장이권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 배윤혁 이화여대 행동생태연구실 연구원, 문경수 과학탐험가, 박기태 건국대 화학공학과 교수가 선정에 참여했습니다. 이들에게 추천 받은 여행지로 다시 두 주에 걸쳐 투표를 진행했습니다. 선정위원회 10명과 과학동아 편집부 9명이 투표에 참여해 줬습니다. 그렇게 테마별로 6곳씩, 총 30곳의 과학 여행지가 선정됐습니다. 진수성찬처럼 차려진 30곳 중 처음으로 기자가 찾은 곳이 식물 테마에 속하는 국립한국자생식물원입니다.
꽃창포 앞에서 인생 사진 건지고 미션도 풀고
7월 1일, 서울에서 강원 오대산자락까지 차를 타고 3시간 가까이 이동해 국립한국자생식물원에 도착했습니다. 멀리서 보면 언뜻 숲의 일부처럼 보였지만, 깊숙이 들어가니 구석구석 각양각색 꽃들이 잔뜩 핀 정원이 펼쳐졌습니다. 국립한국자생식물원은 한국의 자생식물로만 조성된 식물원입니다. 자생식물은 특정 지역에서만 자라나는 토착 식물을 의미하죠. 국립한국자생식물원은 총 1409종의 자생식물을 보전하고 있습니다. 벌개미취 등 한국에만 사는 특별한 식물을 볼 수 있습니다.
기자는 식물 테마 미션맵을 챙겨 국립한국자생식물원으로 들어갔습니다. 미션맵은 과학동아의 형제 잡지, 어린이과학동아가 만들었습니다. 5가지 여행 테마별 한 미션맵씩, 총 5곳의 미션맵을 만들었죠. 미션맵에 쓰인 퀴즈를 풀면, 여행하며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와 지식을 알고 훨씬 재밌게 여행을 즐길 수 있습니다.
한번 볼까요. 식물맵의 첫 번째 미션은 ‘천선과나무의 주머니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아내라’입니다. 수수께끼 같은 문장을 읽고 어리둥절한 기자를 보던 이 대리가 기자를 데리고 ‘전시온실’로 들어갔습니다. 국립한국자생식물원은 희귀종이나 멸종위기종, 또는 특정 지역에서만 서식하는 토종 식물을 수집해 전시온실에서 기르고 있습니다. “전시온실에서 자라는 대표적인 토종 식물이 ‘천선과나무’예요. 천선과나무를 보시면, 무화과 열매를 닮은 동그란 주머니가 달려있죠?” 미션의 질문은 저기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아내라는 것이었습니다.
궁금해하는 기자에게 이 대리가 “주머니 속에 든 것은 수많은 ‘꽃’”이라 설명했습니다. 꽃이 들어있는 주머니라 화낭이라 부릅니다. 이 화낭이 익고 나면, 무화과처럼 은은하게 달콤한 맛이 납니다. 이 대리는 화낭을 가리키며 “천사가 먹는 과일이라는 의미로 이름이 ‘천선과’”라고 설명했습니다. 미션을 풀며 설명을 들으니 천선과나무라는 이름이 훨씬 각별하게 다가옵니다.
이처럼 국립한국자생식물원 여기저기에 미션맵의 수수께끼가 흩어져 있습니다. 희귀종과 멸종위기종, 그리고 식물 유전자원으로서 가치가 높은 식물이 전시된 ‘희귀식물원’에는 두 번째 수수께끼의 주인공, 깽깽이풀이 한국 최대 규모로 자랍니다. “4월 말~5월 초가 되면 깽깽이풀에서 연보랏빛의 꽃이 피어나요. 농부들이 바쁜 시기에 한가롭게 깽깽이(바이올린의 방언)를 켜는 것 같다고 해서 ‘깽깽이풀’이라는 이름이 붙었죠.” 이름의 유래를 듣고 바람에 흔들리는 깽깽이풀을 보니, 절로 웃음이 지어졌습니다.
깽깽이풀은 이름만 재밌는 게 아닙니다. 깽깽이풀의 종자는 다른 곤충이 아닌 개미가 옮긴다는 특징이 있죠. 이때 개미가 깽깽이풀 종자를 옮기도록 유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것이 다음 미션의 질문이었습니다. 정답은 바로 개미가 좋아하는 달콤한 물질, 엘라이오솜입니다. 엘라이오솜 향에 이끌려 개미는 깽깽이풀 종자에 접근하고 종자를 옮긴 뒤 엘라이오솜만 떼서 가져갑니다.
“여기 포토 스팟이네요!”
여러 미션 중에서도 가장 기자의 마음에 들었던 미션은 ‘비안의 언덕’에 있었습니다. 비안의 언덕은 식물원의 대표적인 야생화 재배단지입니다. 이날은 보라빛의 꽃창포가 드넓게 펼쳐져 있었죠. 언덕을 수놓는 꽃은 계절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 대리는 “6월 말부터는 꽃창포가 지고, 열매가 바늘 모양으로 달린 분홍바늘꽃이 피기 시작합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다음 8월에 피는 꽃의 종은 무엇일까요? 이것이 또 다른 미션이었습니다. 8월에 비안의 언덕을 뒤덮을 종은 바로 벌개미취입니다. 벌개미취는 한국 중부 이남에만 서식하는 식물종으로 연보라색 꽃을 피웁니다.
꽃창포, 분홍바늘꽃, 벌개미취. 계절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 바로 국립한국자생식물원이었습니다. 이 대리는 “계절별로 가장 잘 피어있는 자생식물을 주인공으로 삼는 축제, 꽃주간도 함께 즐겨 보라”고 추천했습니다. 예를 들어 산수국이 피는 6~7월에는 산수국을 주인공으로 한 꽃주간이 열리고, 페이스 페인팅과 플리 마켓 등의 행사가 진행됩니다. 미션맵과 함께한 식물원 과학여행은 아름다운 벌개미취가 가득 핀 8월 언덕을 상상하며 마무리됐습니다.

전나무의 비밀을 찾다
식물원 여행은 끝났지만, 미션은 아직 두 개 남았습니다. 이를 풀기 위해 차로 10분을 이동해 오대산국립공원으로 이동했습니다. 여행지 선정에 참여한 문현지 성신여대 식물계통학실 연구원은 “국립한국자생식물원을 탐방할 때 오대산에도 들러 여행하면 좋다”고 추천하기도 했습니다. 홍천과 강릉, 평창에 걸쳐 있는 오대산은 약 327km²(축구장 4200개 면적)에 6000종이 넘는 동식물이 서식하는 국립공원입니다.
월정대가람(月精大伽藍). 오대산 초입으로 들어서자 기자 앞에는 월정사의 입구임을 알리는 일주문이 우뚝 서 있었습니다. 뒤로 일주문부터 월정사 앞 금강교까지 가는 길에는 약 1km 거리의 전나무숲길이 있습니다. 사람 키의 10배가 넘는 전나무들이 만든 그늘막 때문에 숲길은 선선했습니다.
“수백 년에 걸쳐 만들어진 생태계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종의 나무를 심어 후계목(자손 나무)이 빈약한 조림지와 달리, 나이와 크기가 제각각인 나무들이 경쟁과 세대교체를 반복하면서 만든 복잡한 생태계죠.” 오대산에서 기자를 반갑게 맞은 민지홍 오대산국립공원사무소 자원보전과 계장이 전나무숲길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습니다. 전나무가 숲길에서 잘 자라는 이유는, 그늘진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음수’이기 때문입니다. 키가 큰 나무들이 햇빛을 가려도 전나무 후계목은 잘 자라나죠. 그리고 잘 자란 후계목이 다시 큰 전나무가 되기를 반복하면서 지금과 같은 형태의 전나무숲길이 만들어졌습니다.
민 계장은 “전나무숲길의 전나무 나이는 주로 200년 정도”라며 “가장 나이가 많았던 약 600살 된 전나무가 20년 전 쓰러졌다”고 말했습니다. 오대산에서의 미션인 ‘쓰러진 전나무’를 찾으러 민 계장을 따라갔습니다.
걷다 보니 성인 두세 명의 몸통만 한 두께의 전나무가 두 동강 나 있었습니다. 속은 텅텅 비었습니다. “죽은 나무 아닌가요? 왜 그대로 두는 건가요?” 기자의 질문에 민 계장은 “나무는 죽어서도 수십 종의 생물의 서식지 역할을 한다”고 답했습니다. “하늘소 같은 곤충의 애벌레가 죽고 나서 속이 빈 나무에서 살고, 딱따구리는 이런 애벌레를 잡아먹고 죽은 나무에 둥지를 틀기도 합니다.” 숲에서의 삶과 죽음이 반복되는 현장이죠.
마지막 미션을 풀러 20분 동안 차를 타고 상원사로 이동했습니다. 두 번째 미션은 남한에서 가장 오래된 ‘잎갈나무’ 찾기입니다. 상원사 입구에서 주인공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수령 250년인 잎갈나무입니다. 소나무처럼 뾰족한 바늘잎을 가졌지만,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와 달리 가을에 낙엽이 지고 봄에 새잎이 나서, 즉 ‘잎을 갈아서’ 잎갈나무입니다.
오대산국립공원은 토종식물이자 평창군 보호수인 잎갈나무를 복원하고 있습니다. 일본잎갈나무에 잎갈나무 가지를 접목해 2025년 96본의 잎갈나무 증식에 성공했습니다. 기자 역시 민 계장을 따라 오대산국립공원이 접목해서 기르고 있는 잎갈나무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식물 미션맵을 따라 여행해 보니, 푸르른 배경으로만 느껴졌던 숲이 색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정원에서 가까이 다가가야 보이는 희고 작은 꽃을 보고, 깽깽이풀의 이름 유래를 알아냈습니다. 선선하고 걷기 좋은 평지라고 생각한 전나무숲길 너머로 쓰러진 전나무가 수백 년을 걸쳐 일궈낸 생태계도 감각할 수 있었죠. 아마 미션맵이 없었다면 놓쳐버렸을 생태 지식일 겁니다.
희귀 식물, 더 보고 싶다면?
사계절 전시 온실에서 지중해 지역과 열대 지역 식물을 볼 수 있고, 난과식물 및 희귀특산식물 전시온실에서 희귀 자생식물을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