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3일 찾은 한국중부발전의 충남 보령 신보령발전본부. 보령은 과거 한국 석탄 화력발전의 거점으로, 한때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으로 불리며 전국에 에너지를 공급하던 곳이다.
최근 불어오는 탄소 중립의 바람과 함께, 보령에도 노후 석탄발전소를 폐쇄하면서 탈석탄 발전의 기조가 들어서고 있다. 시꺼먼 연기를 뿜어내던 그 자리엔 물에서 수소를 뽑아내는 기술인 수전해 기반 수소생산기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궁극의 청정에너지 생산 방식으로 불리는 수전해 기술의 최전선을 다녀왔다.
┃ 화력발전소 자리에 수소의 꿈을 품다 ┃
충남 보령 신보령발전본부. 주변을 둘러싼 발전소 사이로, 초여름 더위에도 공사 작업이 한창인 곳이 있다. “이곳이 한국중부발전과 현대엔지니어링이 협업해 짓고 있는 수전해 기반 수소생산기지 건설 현장입니다. 2027년까지는 완공해 하루 1000kg의 수소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고요.” 생산기지 건설 현장에 나와 있는 나재범 한국중부발전 수소사업실 차장이 설명했다.
“여기가 원래 대형 화력발전소 유휴부지였어요. 이곳에다 청정 수소를 생산하는 시설을 짓겠다는 겁니다. 단순한 부지 활용을 넘어, 화석연료 인프라를 청정에너지 인프라로 전환하려는 시도죠.” 현재 보령에는 다양한 발전 인프라가 들어서 있다. 이곳에 수소 생산기지를 지으면 인허가, 계통 연계 등 복잡한 절차도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과거의 유산을 미래의 자산으로 바꾸는 현장인 셈이다.
나 차장의 설명대로, 한국중부발전과 현대자동차그룹이 구축하는 수소 생산기지는 완공되면 앞으로 보령 지역에 청정수소를 공급할 수 있다. 인구 10만 남짓의 보령시에선 이미 수소 버스 40여 대가 시내를 누비고 있다. 신보령발전본부의 출퇴근용 버스도 모두 수소 버스다. 수소 생산기지는 하루 400kg에 달하는 보령시의 수소 수요를 충족시키고, 나아가 청정수소발전의 핵심 거점으로 지금의 2.5MW급 설비를 대용량으로 확대해 발전소 운영에도 수소를 활용할 계획이다. 그렇다면 화석 연료 발전소에서 어떻게 수소를 캐낸다는 걸까. 비결은 발전소를 둘러싼 서해의 풍광처럼, ‘물’에 있다.
수전해 기술의 양대 산맥, 알칼라인과 PEM 기술
수전해 기술 중 알카라인(Alkaline) 방식과 고분자 전해질막(PEM) 방식이 산업을 선도하고 있다. 두 방식 모두 물을 넣고 전류를 흘려보내면 음극(-)에서 수소가, 양극(+)에서 산소 기체가 발생하는 점은 같다. 각 기술의 가장 큰 차이는 사용하는 전해질의 종류, 그리고 둘 사이를 이동하는 이온의 종류다.

설명 : 음극과 양극을 알칼리성 액체 전해질로 채우고 전류를 흘린다. 그러면 수산화 이온(OH-)이 이동하며 수소와 산소가 만들어진다.
전해질 : 액체 알칼리 용액(KOH, NaOH)
촉매 : 니켈, 철 등 비귀금속
특징 :
˙ 기술 성숙도 높음
˙ 초기 투자 비용이 낮고 비귀금속 촉매 사용해 가격 경쟁력 높음

설명 : 액체 전해질 대신 양극과 음극 사이에 수소 이온(H+)만 통과시키는 고분자 전해질막을 삽입한다. 그리고 양극으로 물을 넣어 수소와 산소를 만든다.
전해질 : 고분자 전해질막
촉매 : 이리듐, 백금 등 귀금속
특징 :
˙ 고순도 수소 생산 가능
˙ 빠른 응답성으로 재생에너지 연동에 최적
˙ 소형화 및 고압 생산 용이
┃ 물을 분해해 수소를 캔다, 수전해 ┃
물은 말 그대로 수소의 보고다.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물(H2O)은 수소 원자(H) 2개와 산소 원자(O) 하나가 이어져 만들어진다. 수전해 기술은 이 물 분자에 전기를 가해 수소와 산소로 분리하는 과정이다. 앞서 산소와 수소가 합쳐지면 물과 에너지가 나왔다고 설명한 것과 정확히 반대의 과정이다.
전기 에너지를 투입해 안정한 분자인 H2O를 쪼개면 물이 분해돼 음극에서는 수소 기체가, 양극에서는 산소 기체가 나온다. 그 말인즉슨 수전해를 통해 수소를 만들기 위해서는 전기가 필요하다는 말이 된다.
“이것이 수전해 수소 생산기지가 보령에 지어지는 이유입니다. 수소 생산에 활용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가 풍부하기 때문입니다.” 보령 현장에서 만난 허이준 현대엔지니어링 에너지시스템연구팀 책임연구원이 설명했다. 최근 보령에는 소수력, 태양광은 물론 해상풍력발전 등 다양한 재생에너지 발전소가 세워졌거나 지어질 예정이다. 이렇게 늘어가는 재생에너지 발전의 든든한 뒷받침이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수전해 기술로 만들어지는 수소다.
“태양광이나 풍력과 같은 재생에너지는 날씨와 시간에 따라 발전량이 크게 변하는 특성을 지닙니다. 가령 태양광 발전의 경우, 한낮에는 소비 전력 이상의 에너지를 만들어 냅니다. 반면 해가 지면 에너지 생산이 중단되죠.” 허 책임연구원의 말처럼, 에너지가 간헐적으로 만들어지는 상황에서 전력을 활용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이 수전해다. 낮에 생산하고 남는 전력으로 물을 분해해 수소의 형태로 에너지를 저장하고, 전력이 필요한 밤에는 생산한 수소를 사용해 다시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다. 에너지 전문가들이 “‘수소에너지’보다는 ‘에너지 캐리어(energy carrier)로서의 수소’가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설명하는 이유다.
특히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력으로 만든 수소는 생산과 소비 과정에서 탄소 배출이 없어 진정한 의미의 친환경 에너지가 될 수 있다고 평가받는다. 수전해가 이러한 청정수소 생산의 핵심 기술이 되려면 재생에너지의 출력 변동에 민첩하게 반응하고 효율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이는 수소 생산의 경제성과 직결되는 문제다.
┃ 물 분해의 연금술, ‘PEM’ 수전해 ┃
정규 과학 교과과정 실험으로도 다뤄질 정도로 명료한 수전해 원리를 이용해 효율적으로 수소를 생산하는 것은 첨단 과학 기술의 집약체다.
허 책임연구원은 “현재 상용화됐거나 연구 개발 중인 수전해 기술에는 크게 네 가지가 있다”면서, “그 중 양대 산맥은 알카라인 수전해와 고분자 전해질막(PEM) 수전해”라고 설명했다. 각 기술들의 중요한 차이는 음극과 양극 사이에 무엇이 들어가느냐, 그 사이를 어떤 이온이 이동하냐, 더 적은 에너지로 빠르게 수소를 만들기 위해서 어떤 촉매를 사용하느냐다.
우선 오랫동안 대표적으로 쓰여온 방법은 알카라인 수전해다. 이미 100년 넘게 쓰였을 정도로 오래된 기술이라 믿음직하고, 쓰이는 촉매가 니켈, 철 등 비싸지 않은 금속이다. 이같은 경제성과 기술적 안정성 덕분에 알카라인 수전해는 현재 전 세계 수소 생산 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중국은 정부 주도로 대규모 알카라인 수전해 설비를 빠르게 상용화하며 글로벌 수소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단점도 명확하다. 설비의 단위면적당 생산되는 수소의 양이 적고 순도가 낮다. 즉, 수소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서는 더 넓은 부지에 더 큰 설비를 설치해야 한다는 뜻이다.
“더 중요한 점은 재생에너지의 간헐적인 출력 변동에 빠르게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넓은 운전 범위에서 유연하고 안전하게 수소를 생산하기 어려운 데다, 수소 생산을 시작하거나 정지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발전량이 시시각각 변하는 재생에너지와 연동하기엔 효율이 떨어진다.
그래서 최근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 PEM 수전해 방식이다. PEM은 액체 전해질 대신 수소 이온(H+)만 통과시키는 고분자 전해질막을 이용해 물을 전기분해하는 방식이다. 양극과 음극 사이에 전해질막을 둔다. 이후 양극에 물을 공급하고 전기를 가하면 물 분자가 분해된다. 이때 분리된 수소 이온은 전해질막을 통과해 음극으로 이동한 후 전자와 결합해 수소 기체가 된다. 산소 원자는 기체 상태로 양극에서 배출된다.
“PEM 방식은 알카라인 방식에 비해 여러 면에서 차별화된 강점을 지녀요. 가장 큰 장점은 빠른 응답성입니다. 풍력이나 태양광처럼 출력이 불규칙한 재생에너지의 변동에 신속하게 반응해 안정적으로 수소를 생산할 수 있죠.” 재생에너지 기반인 청정수소 생산에 최적화돼 있다는 뜻이다. 이는 고분자 전해질막의 구조적 안정성과 수소 이온의 빠른 이동성 덕분이다. 알카라인 방식에서 수산화 이온(OH-)이 액체를 타고 느리게 이동하는 것과 달리, 수소 이온의 이동 속도는 상대적으로 빠르다. 재생에너지 전력이 급증하는 찰나의 순간에도 즉각 반응하면서 수소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것이다.
또한, PEM 방식은 알카라인 수전해와 반대로 높은 전류 밀도를 가진다. 이로 인해 설비의 소형화가 가능하며, 고순도 수소를 직접 생산할 수 있어 상황에 따라 추가 정제 과정이 불필요하다. 한국처럼 부지 면적이 제한된 곳에서 유리한 요인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이 보령에 설치할 수소생산기지에 1.0MW 규모의 PEM 수전해기를 도입하려는 이유다.
물론 PEM 방식에도 약점은 혼재한다. 가장 큰 과제는 비용이다. PEM에서 양극 촉매로 사용되는 이리듐은 금이나 백금보다도 비싼 귀금속으로, 수소 생산 단가를 높이는 주요 원인이다. 또한 PEM 방식은 낮은 pH(수소 이온 농도), 즉 산성 환경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부식 문제가 발생하기도 쉽다.
허 책임연구원은 “PEM 수전해의 산소 발생 반응을 견딜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금속인 이리듐이 수소 생산 단가를 높이는 주요 원인”이라며, “이리듐 사용량 저감 기술 개발과 촉매 내구성 확보를 위한 연구에 집중하며 경제성 확보와 기술적 한계 극복에 힘쓰고 있다”고 전략을 설명했다.
기술적 특성과 시장 상황을 고려할 때, 보령에서 PEM 수전해 기술에 집중하는 것은 단순한 기술 선택을 넘어선 전략적 의미를 지닌다. 현대자동차는 약 30년간 축적해 온 수소연료전지 개발 노하우를 기반으로, 연료전지와 그 역반응 기술인 수전해 분야까지 기술 역량을 확보했다. 이를 통해 핵심 기술과 부품의 공용화를 실현하며 차별화된 경쟁력을 강화하고, 글로벌 수소 시장의 주도권 확보를 추진하고자 한다.
이는 중국이 알카라인 수전해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그린수소 공급망을 구축하고 외부 기술 의존도를 낮춰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는 핵심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 청정수소, 2040 향한 새로운 이정표 ┃
현대자동차그룹은 보령뿐 아니라 광주, 제주, 새만금 등 여러 지역에서 수소 생산기지 실증 및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이중에서도 보령에 세워질 수소 생산기지가 중요한 이유는 화석연료 발전소 부지를 청정에너지 생산 거점으로 바꾸는 에너지 전환을 견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가 보령을 수소도시로 지정함에 따라, 보령시는 현재의 수소 인프라를 확장해 2040~2050년까지 가정과 산업 전반에 수소를 공급·활용할 계획이다.
지금 청주와 보령에서 선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수소 전환은 단순히 수소를 생산하려는 목적을 넘는다. 재생에너지와 수소가 조화롭게 섞여 탄소 중립을 이끄는 에너지 정책과, 에너지 분야 이외에서 수소를 사용하려는 움직임을 시작하는 포괄적인 수소 사회를 향한 첫 발걸음에 가깝다.
기존의 폐기물 처리 부산물인 바이오가스를 수소로 전환하는 자원 순환의 지혜, 가장 흔한 물질인 물에서 무한한 동력을 끌어내는 수전해의 혁신은 인류가 화석 연료의 굴레를 벗어나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 궁극의 해법을 찾아감을 의미한다.
나지막한 도시에서 청정수소의 심장으로 거듭나고 있는 청주와 보령의 풍경은, 가장 가벼운 수소 분자들이 만들 청정하고 강력한 미래가 이미 우리 곁에 현실로 성큼 다가와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