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서양에선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하며 우주의 중심을 완전히 바꿔 놓았습니다. 이걸 계기로 기존 사고 방식이 혁명적으로 전환됐죠. 매주 조선시대로 회귀해 과학혁명을 이루려 고생하는 대학원생 공구성은 이런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뼛속까지 유학자인 조선 선비들 앞에서 펼쳐야 하는 운명에 처했습니다.


편집자 주
예습
조선에도 자생적인 과학혁명이 있을 뻔했다고?
공구성의 눈앞에서 17세기 조선 천문학자인 김석문이 소환한 유교 드래곤이 이빨을 드러내며 포효했다. 아니 뭐, 실제로 용이 나왔단 건 아니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구성에겐 김석문과 함께 손을 잡고 조선에 지동설을 전파하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맞서 싸워선 안 된다. 잘 구슬려 보자. 그러기 위해서 구성은 비장의 무기를 챙겨왔다. 바로 망원경이다.
구성이 난생 처음 보는 아저씨와 함께 낭만적인 천체 관측을 하려고 마음 먹은 이유는 하나였다. 김석문은 매주 반복되는 산신령의 현장실습 속에서 구성을 구원해 줄 구세주, 그 비슷한 거였다. 그와 함께라면 이번 현장실습 과제에서 A 학점을 받는 건 따 놓은 당상이다.
구성이 그를 알게 된 건 대학원 학과 MT에서였다. 남양주 실학박물관에 방문한 공구성은 전시를 둘러보며 입이 댓 발이나 나왔다. 낡고 닳은 물건들을 보고 있자니 선조들이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서양 과학 수용을 왜 이리 지리하게 못했어? 빨리빨리 받아들여서 과학혁명을 일으켰어야지!”
과학혁명은 16~17세기 유럽에서 벌어진 지식 체계의 전환을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에서 벗어나, 자연의 작동 원리를 발견하고 통제하며 수학적·기계적으로 설명하려는 움직임이 생겼다. 이 과정에서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은 무거운 물체가 우주의 중심인 지구를 향해 자연스럽게 떨어진다는 기존 이론을 뒤집었다. 결국 지동설이 기존의 세계관을 해체하고, 갈릴레이와 케플러, 뉴턴으로 이어지는 근대적인 과학을 열었다는 것이다.
툴툴대며 동기들과 걷던 그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17세기의 천문학자 김석문에 대한 설명이었다. 지구가 움직인다는 ‘지전론(地轉論)’을 주장한 조선의 코페르니쿠스라고?
“아니, 왜 이런 보물 같은 분이 잊혀졌대?” 구성은 전시된 ‘역학이십사도총해’의 우주론 그림을 뚫어지게 뜯어보았다. 수성과 금성 등 여러 위성이 태양을 중심으로 돌지만, 결국 태양이 다시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하며 이 모두를 이끌고 돈다는 체계였다. 티코 브라헤의 우주 체계와 얼추 비슷했다. “여기에 지전설까지 도입한 체계라면 뉴턴 역학 같은 근대 과학을 받아들이는 데 훨씬 쉽지 않겠어?”
구성의 머리가 또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만약 조선에서 지동설이 받아들여지고 과학혁명을 먼저 일으킨다면? 그러면 과학의 진보로 기술도 진보하지 않았을까? 유럽을 제치고 강대국이 되지 않았을까?
“흐흐…으흐흐… 으억?!” 그림을 너무 뚫어지게 들여다본 탓인지, 갑자기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 금방 눈앞이 깜깜해졌다. 또! 조선으로 가려나 보다. 한숨을 쉬고 다시 눈을 떠보니, 사극에서나 볼 법한 으리으리한 기왓집 안이다. “오, 이번 실습은 제법 고상하게 진행되려나 보군.” 허공에 익숙한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과제]
혁명적 과학자인 줄 알았는데, 실은 뼛속까지 성리학자
“그래, 지금까지 인쇄술, 은광, 염초, 그리고 구황작물까지… 죄다 기술과 관련된 것들 뿐이었잖아!”
구성은 무릎을 탁 쳤다. 기술은 지역적이고 상황 의존적이다. 그래서 유럽에서 성공적이었던 인쇄기도, 중국에서 잘 자라던 구황작물도 조선의 환경과 충돌하며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나 구성은 과학은 시공간을 초월해 보편적이라 생각했다. 이번에야말로 진짜 조선에서 보편적인 과학혁명을 일으켜 볼 절호의 기회였다. 과학혁명을 일으키면, 이를 통해서 조선의 기술을 끌어올릴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김석문의 혁명적 사고를 퍼뜨려야 한다.
김석문의 사고가 널리 퍼지지 않은 것은 그가 몰락한 노론 가문이었기 때문이라 판단한 구성은, 현재 자신이 가장 잘나가는 노론의 동년배 기수 이이명이라는 사실에 환호했다. 김석문은 1697년(숙종 23년)에 ‘역학이십사도총해’ 집필을 완료했지만 돈이 없어 책을 찍어내지 못했다. 구성이 지금, 김석문의 고향 경기 포천으로 직접 찾아간 이유였다. “원래대로라면 이이명이 죽고난 뒤인 1726년(영조 2년)에 출판하지만, 지금 난 돈도 권력도 모두 갖고 있다고! 다만 위대한 현대인의 특권으로 출간 전에 김석문의 책을 더 완벽한 혁명서로 만들어주지. 흐헷헷헷!” 남의 집 앞에서 웃음을 흘리고 있자니, 그 소리를 들은 집주인이 문을 열고 나왔다. 허름한 도포가 눈에 띄었다.
“뉘신데 남의 집 앞에 계시오?”
“나는 한양에서 온 이이명이라고 하오.”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인사를 건넸더니, 김석문이 황급히 허리를 굽혔다. 구성의 권세가 김석문에게도 통하는 것이렷다.
“다름 아니라, 김 선생의 역학이십사도총해에 대한 소문을 듣고 찾아왔소. 내, 역학이십사도총해를 전국에 알려 선생을 개천의 용으로 만들어보고자 하는데. 어디, 함께 하겠소이까?”
“오오…! 이 생각을 알아본 분은 대감이 처음이오. 아니 어찌 소생의 미진한 학문에 관심을 가졌소이까?”
“아 그것이, 내가 연행사(청나라로 보낸 조선의 사절단)로부터 은밀히 확보한 책이 하나 있었소. 영길리(英吉利, 영국)의 내단(奈端, 뉴턴)이라는 자가 밝혀낸 것인데….”
김석문의 현대적 관점에서 지전설의 오류를 살짝 수정해주려던 구성은 예상치 못한 첫 번째 장애물과 마주했다. “지체(地體, 지구)는 관성에 의해 지전(地轉, 자전)하고, 중력에 의해 사유(四遊, 여기서는 공전의 의미)하는 것이오.” 구성이 넌지시 뉴턴 역학을 들이밀자, 김석문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오. 대감. 잘못 이해하셨구려. 우주의 가장 바깥인 태극(太極)은 절대 정지해 있고, 그 중심부로 갈수록 태극의 움직임의 원리가 격렬하게 실현되는 것이라오.”
광대한 우주가 하루에 한 바퀴 도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구성의 반박에도 김석문은 흔들림이 없었다. “우주의 가장 바깥인 태허천(太虛天)은 하루에 겨우 9만 리밖에 움직이지 않는 미동(微動) 상태요.” 답답해진 구성이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1년에 한 바퀴 공전한다고 설명하자, 김석문은 한술 더 뜬다. “내 계산에 따르면 소옹(邵雍)이 말한 원회운세(元會運世)의 우주 주기는 6배 더 길어야 하오. 그래야 2만 5440년에 걸친 지체의 느린 사유(공전) 주기가 우주의 개벽과 소멸을 이끄는 완벽한 톱니바퀴로 들어맞기 때문이오!”
조선 시대의 전통 우주론은 우주 생성의 근원적 출발점을 형상이나 움직임이 없는 궁극의 본바탕, 태극으로 보았다. 우주를 형성하는 형이상학적 원리인 태극의 ‘리(理)’가 작동함에 따라 물질적 속성을 띤 ‘기(氣)’가 함께 움직이고 결합하면서 천지와 만물이 생성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우주 역시 하나의 사물과 같아서 태극에서 시작해 생장했다가 마침내 소멸하여 다시 태극으로 되돌아간다는 순환적인 우주관을 특징으로 하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구성도 마찬가지였다. 확실한 건, 김석문은 새로운 우주론을 만들고 받아들였으나, 어디까지나 유교적 우주론 내에서였다는 점이었다.
‘아 미치겠네…어떻게 설득하지?’ 결국 구성이 김석문을 설득하기 위해 꺼낸 것이 어렵사리 수입해 온 망원경이었다. 갈릴레오가 그랬던 것처럼, 목성의 위성들을 직접 눈으로 보여주어 천문학 혁명의 불씨를 살리려 한 것이다. “오호라! 태극의 동(動)하는 원리가 저 작은 별에도 깃들어 있구려. 저 별이 도는 속도는 내가 계산한 인간의 덕성이 순환하는 속도와 정확히 일치하오!” 구성은 기-승-전-성리학으로 환원되는 숨 막히는 광경을 보며 좌절했다. 김석문은 혁명적 사상가가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 거대한 유교 드래곤을 품고 있는 진정한 성리학자였던 것이다.
[보고서]
기술만큼이나 과학 또한 다양할 수 있다
한숨도 잠시, 공구성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 코페르니쿠스 본인도 자신을 고대 천문학의 계승자로 생각했지 혁명가로 생각하지는 않았잖아? 일단 지전설을 널리 퍼뜨려 이를 신봉하는 학문 공동체가 생겨나면 결국 조선의 갈릴레오나 뉴턴도 알아서 등장할 거야!”
구성은 곧바로 예조판서이자 노론의 실세인 이이명의 막강한 권력과 인맥, 두둑한 재력을 풀가동했다. ‘역학이십사도총해’를 최고급 목판본으로 번듯하게 찍어내고, 이를 노론 엘리트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최신 학술 트렌드로 포장해 한양의 내로라하는 사대부들에게 쫙 뿌렸다. 나아가 구성은 자신의 사랑방에서 연일 대규모 학술 연회를 열고 김석문을 상석에 앉혔다. “보시오, 제현들! 김석문이야말로 고대 요순시대의 천문학을 완벽하게 복원한 우리 노론의 자랑이오!”
예조판서가 밀어주는 데다, 책에 담긴 역학과 우주론의 결합은 사변적 논쟁을 즐기는 사대부들의 지적 허영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구성의 의도대로 김석문의 지전설은 노론 내부에서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사랑방마다 갓을 쓴 선비들이 모여 앉아 ‘역학이십사도총해’를 펼쳐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구성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래! 이거야! 조선판 코페르니쿠스 혁명이 일어나는 건 시간문제다!”
하지만 구성이 엿들은 그들의 토론 내용은 어딘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허허, 지구가 돈다는 김석문의 이치는 실로 오묘하오. 움직이는 것은 오직 뿐이니, 저 거대한 지구가 하루에 한 바퀴를 도는 역동성이야말로 기(氣)가 극성하게 발(發)한 증거 아니겠소?” “지당하신 말씀이오! 지전이라는 거대한 기의 움직임이 어긋남 없이 춘하추동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시오. 이는 곧 우주의 보편적 법칙인 이(理)가 그 기위에 완벽하게 올라타 있음(乘)을 보여주는 것이오. 우리 노론의 기발이승(氣發理乘)이 저 우주에서 증명된 셈이지요!”
구성은 뒷목을 잡았다. 유학자들은 밤을 새워가며 지전설을 논했지만, 아무도 망원경을 들고나가 밤하늘의 별의 궤적을 관측하거나 수학적 계산을 하려 들지 않았다. 당연히 새로운 과학도, 기술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구성이 김석문의 책을 찍어낸 지 20년이 지나도록 과학혁명의 낌새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구성은 피를 토하듯 외쳤다.
“아니, 판을 다 깔아줬는데 어째서 혁명이 안 일어나는 건데! 지전설이라는 씨앗을 심어주고, 학문 공동체까지 만들어 줬잖아. 코페르니쿠스가 나왔으면 갈릴레오랑 뉴턴이 뒤따라 나와야 할 것 아니야!”
그때, 얄미운 산신령이 스르륵 나타났다. 산신령은 혀를 쯧쯧 차며 지팡이로 구성의 이마를 톡 쳤다. “이 녀석아, 네놈한테는 아무래도 특강이 필요하겠어. 에헴.”
헛기침한 산신령은 허공에 둥근 지구와 태극 무늬를 띄우며 설명을 이어갔다. “동아시아에서는 지구가 돈다는 관념 자체가 서양만큼 큰 금기나 충격이 아니었다. 전통 우주론에도 이미 땅이 사방으로 움직인다는 사유(四遊) 같은 개념이 있었기 때문이지. 정작 이들에게 진짜 위협적이었던 건 땅이 둥글다는 지구설이었다.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원칙이 깨지고, 황제가 다스리는 중화(中華)가 우주의 중심이 아닐 수도 있다는 세계관적 충격 말이다.”
“그러면 더더욱 기존 세계관을 뒤엎는 혁명이 일어났어야죠!” 구성이 악을 썼다. “서양식 잣대로만 보려 하니 답이 안 나오는 게지. 동아시아에서 역법과 천문학은 길흉화복을 점치는 수술(數術)이자 국가의 통치 권력을 뒷받침하는 도구였다. 중국과 조선의 학인들에게 서양 과학은 성리학적 세계관이나 점성술을 정교하게 합리화하는 땜질 도구로 쓰였단 말이다.”
산신령의 지팡이가 다시 한번 구성의 이마를 탁 쳤다.
“결국 양반들의 우주론은 그저 우주론일 뿐이고, 조정의 실무자들이 하는 천문역산은 천문역산일 뿐이었다. 외래의 지식이 당대의 세계관과 체제로 얌전히 흡수됐는데, 대체 어떤 혁명을 기대한 것이냐? 오히려 김석문과 그 후학들이 보여주는 저 정교하게 성리학화된 천문학을 보면서, 과학 지식이 그 사회의 토양에 맞춰 얼마나 다원주의적으로 구성되는지에 감탄해야 하지 않겠느냐? 기술사에서 배운 것들을 다 까먹다니, 거꾸로 F로다!”
다시 현대로 돌아가던 구성은 남은 힘을 쥐어짜 소리질렀다. “아니 영감탱이야! 이럴 거면 수강편람에 과학사가 아니라 비교문화사 연구라고 적어놓든가! 사기결제 아니냐고오오!”
현재환 교수와 소설 뜯어보기
흔히 김석문은 조선의 코페르니쿠스라고 불리지만, 과학사학자 전용훈의 연구에 따르면 그의 진정한 독창성은 서양 지식의 적극적인 수용보다는 이를 활용해 유가적 우주론의 새로운 지평을 연 데 있었습니다. 김석문은 서양의 지식으로 기존 세계관을 부정하는 대신, 이(理), 기(氣), 태극(太極) 같은 형이상학적 원리를 물리적으로 확증하는 도구로 삼았습니다. 그는 서양 과학을 지렛대 삼아 태극의 원리에 따라 끊임없이 성쇠를 거듭하는 자기완결적 순환 우주론을 구축했으며, 조선 최초로 우주론적 원리를 천체 운동의 물리적 구조로 환원하여 설명하는 혁신적인 논의 방식을 선보였습니다.
다원주의적 과학으로서의 성리학적 우주론
현대 과학철학에서 활발히 논의되는 ‘과학적 다원주의’는 과학이 단 하나의 보편적 방법론이나 절대적 진리만을 추구하는 활동이 아님을 지적합니다. 즉, 과학은 수많은 학문 분과로 얽혀 다양한 방법론과 이질적인 개념을 활용하며, 각 연구 공동체의 여러 목표와 가치가 상호작용하는 복잡한 실천 과정이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조선의 우주론자들 역시 당대 지식인들의 관심사와 사회적 가치를 반영해 성리학이라는 고유한 틀 안에서 그 시대에 유효한 우주 체계를 세워냈습니다. 과거의 과학 지식을 평가할 때는 오늘날의 서양 과학만을 유일한 보편적 잣대로 들이대기보다는, 해당 지식이 당대의 사회문화적 토양과 결합해 어떤 의미 있는 세계관을 구축했는지 입체적으로 조망하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 공구성이 공략을 위해 봤으면 좋았을 글들
김영식, “조선 후기의 지전설 재검토”, 동방학지 133, 2006.
임종태, 17, 18세기 중국과 조선의 서구 지리학 이해, 창비, 2012.
전용훈, “『역학이십사도해(易學二十四圖解)』에 나타난 김석문(金錫文)의 우주론”, 정신문화연구 41, 20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