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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기사] 한국 기후 활동가, ‘환경 노벨상’ 받다

    ▲김보림

     

    “2026년 골드만 환경상 수상자는 대한민국의 김보림입니다!” 4월 20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인의 이름이 울려 퍼졌다. 환경 단체 ‘청소년기후행동’의 김보림 활동가였다. 그는 한국 정부를 상대로 기후 소송을 제기해 아시아 최초로 승소를 이끌어낸 장본인이다. 이 공로로 그는 ‘환경 노벨상’으로 알려진 골드만 환경상을 한국에서 두 번째로 수상했다. 5월 4일 김 활동가를 만나 기후 소송과 골드만 환경상의 수상 순간, 그리고 앞으로 계획에 대해 물었다.

     

    ▲Goldman Environmental Prize
    4월 20일, 김보림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가 기후 소송 승소의 공로를 인정받아 골드만 환경상을 수상했다. 골드먼 환경상은 매년 6개 대륙 환경 운동가들에게 주는 상이다.

     

    폭염에 시달리던 청소년들과 기후 소송에 나서다

     

    “집에 에어컨이 없었지만, 늘 그랬듯 2018년 여름도 밤까지만 견디면 선선해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5월 4일, 동아사이언스 사옥에서 만난 김보림 활동가(31세)는 8년 전 여름밤을 회상하며 말문을 열었다. “예상과 달리 선풍기를 틀어도, 창문을 열어놓아도 새벽까지 집안 열기가 가시지 않았어요. 처음으로 우리 가족이 자다가 죽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며칠 뒤 김 활동가는 본인과 비슷한 구조의 집에 살던 사람이 폭염에 뇌가 익어 사망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읽었다.


    해결책은 없었다. 김 활동가가 폭염 시 대응책을 인터넷에 검색했지만, 실내에 머무르라는 지침만 나올 뿐이었다. “더우면 집에 머물러야 한다는데, 오히려 집에 머물렀다가 죽을 수 있다니, 모순적이죠.”


    폭염에 시달린 그날 밤을 기점으로 김 활동가가 기후위기를 바라보는 관점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전까지 김 활동가는 기후위기를 막연히 북극곰에게 닥친 문제 정도로 여겨 왔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당장 눈앞의 사람이 죽을 수 있는 문제였다.


    김 활동가는 이런 재난이 닥쳐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에 충격받았다. ‘우리 집에 다시 폭염이 닥친다면, 나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김 활동가는 비슷한 고민을 한 사람들을 만나 해결책을 논의하기에 나섰다. 동참한 이들은 모두 청소년이었다. 환경 단체 ‘청소년기후행동’이 만들어진 순간이다.


    논의 끝에 이들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함께 외치기로 결심했다. “여러 목소리가 한날한시에 울려 퍼지면 어떤 변화라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2019년 3월 15일, 김 활동가는 청소년들과 함께 학교에 결석하고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결석 시위’를 광화문에서 진행했다. 청소년기후행동의 첫 활동이었다.


    이후로도 이들은 청와대 앞에서, 그리고 여의도 퇴근길 직장인들 앞에서 피켓을 흔들었다. 교육감을 찾아가 기후 관련 교육을 강조하거나 채식 급식에 대한 선택권을 요구했다. 교육청을 찾아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은행을 주거래 은행으로 선정하도록 교육청의 금고 선정 관련 조례 개정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청소년들의 움직임은 실질적 변화로 이어지지 못했다.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그들이 기대한 방향은 아니었다. 김 활동가는 “미래세대의 주장이 소비되는 방식에 한계를 느꼈다”고 말했다. “많은 기관이 청소년들을 성인과 동등한 사회 주체로 여기기보다는 ‘기특하다’고 여겼어요. 기껏해야 ‘한국의 그레타 툰베리가 나왔다’고 환호하는 수준에 머물렀죠.”


    정책을 바꾸려면 의사 결정자들의 자발적 의지에 기댈 수밖에 없었지만, 선거마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잘 아는 사람이 나오기를 마냥 기다리기만 할 수도 없는 상황. “정책 의사 결정자를 바꿀 수 없다면 기후위기 정책을 바꿀 다른 방법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떠올린 게 ‘기후 소송’이었어요. 헌법재판소에 기후위기가 국민의 권리와 안전을 위협하는 문제임을 주장해 국가의 책임을 물어야겠다 결심했죠.” 

     

    ▲김보림
    2024년 8월 29일, 기후 소송에 대한 최종 선고가 나온 날 헌법재판소 앞에 기후 소송에 관심을 가진 시민들이 모였다.
    청소년들의 주도로 시작된 기후 소송은 결국 시민 5200명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19명의 목소리가 기후 정책을 바꾸기까지

     

    먼저 한국 정부의 기후 정책이 기후위기 극복에 제대로 기여하지 못했다는 증거는 명확했다. 정부는 2009년부터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세워왔지만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의 목표와 이행 여부 자체가 기후 소송의 근거가 됐다.

     


    여기에 더해 승소를 위해선 기후위기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근거가 필요했다. 생명권과 재산권, 직업 선택의 자유처럼 살아가는 데 요구되는 기본적인 권리가 기본권에 해당한다. 김 활동가는 기사를 통해 기후위기의 피해 사례를 찾아본 뒤 현장에 찾아갔다. 고수온으로 물고기가 집단 폐사한 가두리 양식장, 한파로 양배추가 얼어 죽은 농장 등지였다. 피해를 겪은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의 재산 손해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직업을 잃어버린 사연도 들었다. 이 이야기들이 소송의 탄탄한 디딤돌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0년 3월, 정부를 상대로 한 기후 소송이 시작됐을 때 원고는 청소년기후행동 소속 청소년 19명이 전부였다. 기후위기 피해자들은 소송의 필요성에 공감하긴 했지만, 원고로 소송에 참여하는 것에는 부담을 느꼈다. 그래서 청소년기후행동은 청소년들이 직접 당사자가 돼 ‘기후위기가 미래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정의해 정부를 상대로 헌법 소원을 제기했다.


    소송은 4년 넘게 이어졌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김 활동가는 재판소 밖에서 활발히 활동을 이어 나갔다. 캠페인을 통해 기후위기가 특정 사람들에게만 위협이 되는 일이 아니라 누구나 안전권과 생명권이 침해될 수 있는 문제라는 걸 알리는 데 힘썼다. “기후위기로 피해받은 당사자들이 ‘약자’로 소비되지 않게 노력했어요. 기후위기를 약자들만의 문제로, 또 불쌍한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막아줘야 하는 문제로 여기는 인식이 퍼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재판소 밖에서의 노력은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됐다. 청소년에게서 시작된 기후 소송은 성인들과 영유아까지 확장됐다. 원고는 19명에서 255명까지 늘어났고, 시민 5200명의 기후위기 경험 관련 증언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할 수 있게 됐다.

     

    ▲김보림
    2025년 11월, 김보림 활동가는 일본 청소년, 청년들에게 기후 소송 전략을 공유하는 워크숍을 열었다. 한국의 기후 소송은 아시아에서 첫 승소 사례인 만큼,  다른 아시아 지역에도 참고 사례가 될 수 있다.&

     

    기후 소송, 결국 국민의 승리로

     

    2024년 8월, 헌법재판소는 정부 기후 정책이 국민의 안전권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했다며 정부 정책에 대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시민들의 승소였다. 재판부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할 수 있는,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마련하라고 국회에 요구했다. 이번 승소는 한국의 첫 기후 소송 승소이자, 아시아 최초 국가 대상 기후 소송 승소 사례다. 이전에는 네덜란드와 독일, 아일랜드, 스위스 등에서 시민들이 국가를 대상으로 기후 소송에 승소한 바가 있다.  

     


    기후 소송 결과를 긍정적으로 기대했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 활동가는 “승소할 거라는 장담은 없었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이 안 될 거라고 단언했어요. 기후 소송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후위기가 명확히 권리를 침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믿음을 고수하며 소송을 준비해 나갔어요.”


    김 활동가는 이후 국회와 시민들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 설정 과정에서 기후 소송 승소를 실감했다. 이전보다, 기대보다 진보적인 의견이 나왔기 때문이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기 위해 국회에는 기후위기특별위원회가 설치됐다. 기후위기특별위원회는 지역별로, 무작위로 시민을 선출해 공론화 위원회를 만든 뒤 온실가스 감축 목표 설정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공론화 위원회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제시한 ‘산업화 이전 대비 1.5℃ 상승’ 목표보다 더 강력한 목표 설정이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다. “그동안 많은 사람이 기후위기는 사회적 합의가 안 돼서 해결되지 못한다고 봤는데, 시민들의 참여 기회를 만들었더니 바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는 순간을 활동 8년 만에 처음으로 목격했습니다.”


    기후 소송 승소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 강화에만 기여한 게 아니었다. 기후 정책과 관련해 하나의 ‘전제’가 생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국가가 기후위기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전제다. 김 활동가는 “이번 판례는 앞으로 다른 기후 관련 소송에서 계속 인용이 되겠죠. 한번 국민의 권리 보호가 인정받은 이상, 앞으로 기후 소송에서 더 나은 판례가 나올 수밖에 없을 거예요. 아시아 최초 기후 소송 승소인 만큼, 아시아 다른 나라에서도 참고 사례가 되겠죠.”

     

    기후 우울증 시대, 함께 모이자

     

    기후 소송 승소가 미친 사회 변화를 인정받아 김 활동가는 4월 20일 골드만 환경상을 수상했다. 골드만 환경상은 매년 6개 대륙 환경 운동가들에게 주는 상이다. 1995년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 이후로 두 번째 한국인 수상자다. 김 활동가는 “누구나 기후위기 대응에 목소리를 내는 주체가 되게끔 도와서 상을 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후 소송의 다음 단계인 김 활동가의 목표는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사람들의 효능감을 높이는 일이다. “선거철만 되면 사람들은 무력감을 느낍니다.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감정이죠. 사람들이 무력감을 극복하고 효능감을 느낄 수 있게 이루기 쉬운 작은 변화부터 만들어보려고 해요.” 김 활동가는 “지역의 문제를 발굴해 기후위기 관련 조례 규칙을 바꾸려고 시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활동가의 꿈은 기후위기라는 문제로부터 누구나 안전한 사회다. 집에서 자다가 뜨거운 열기에 위협받을 수 있는 엄마, 야외 노동 중 폭염에 고통받는 오빠처럼 개인이 버티기 힘든 규모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모두 지켜주는 사회의 모습이다.


    김 활동가는 기후위기에 무력감을 느끼는 청소년들에게 “혼자 고민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저 역시 기후 활동가로 살다 재난을 목격하다 보면 지치는 순간이 많아요. 혼자 대응하기 어려운 문제죠. 이럴 땐 사람들과 모여서 얘기하다 보면 변화를 만들 수 있어요. 애초에 여러분이 무력감을 느낀다는 건 기후위기를 외면하지 않고 감각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니 무작정 비관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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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효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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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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