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장애자라 하면 '신체적장애'만을 떠올린다. 그러나 학교생활에 적응 못하는 학습문제장애아도 의외로 많다. 이들 중에는 영재아가 간혹 눈에 띄는데, 에디슨 아인슈타인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장애영재아(handicapped gifted)는 우리에게 참으로 생소한 용어다. 이들은 장애자(handicapped)이면서 동시에 영재(gifted)다. 영재교육이 활성화된 미국 등 서방국가에서는 영재교육을 특수교육의 한 범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장애영재는 두가지 특수성을 지닌 독특한 그룹이다.
장애영재의 종류에는 학습문제장애영재(learning disabled gifted), 신체적장애영재(physically disabled gifted), 청각장애영재와 시각장애영재, 언어장애영재 등이 있다.
이들은 영재교육분야에서 영재의 하위집단(sub-population)으로 불리는데 최근 이들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적어도 장애자의 2~3%가 영재로 추정된다. 발명왕 에디슨이나 천체물리학계의 거두 아인슈타인은 학습문제 장애영재의 대표적인 경우이고 최근에 내한한 바 있는 스티븐 호킹은 신체적장애 영재라 할 수 있다. 과학분야 외에는 헬렌 켈러가 심한 장애자로서 큰 공적을 남긴 경우이고, 음악적으로 뛰어난 팝송가수 스티브 원더, 바이올린의 대가 이차크 펄만 등이 장애아 영재로서, 장애를 극복하고 재능을 발휘한 대표적 사례다.
1962년 괴첼은 4백명의 뛰어난 남성과 여성의 삶을 분석해 본 결과, 그중의 약 4분의 1정도가 핸디캡을 극복했다고 발표했다. 이런 현상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 아니다. 영재교육이나 특수교육 쪽에서도 잘 다루어지지 않고 있는 영역이다. 아직도 사회는 장애영재의 '장애'쪽에만 주시하고, 그들의 재능이나 능력을 등한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들의 장점을 더욱 보강하고, 단점을 치료함으로써 영재로서의 잠재력을 개발하도록 해야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바보천치와 천재의 차이
영재는 스스로 알아서 학습하고 모든분야에 걸쳐서 능력이 뛰어나리라고 흔히들 생각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근거없는 신화에 불과하다고 학자들은 주장해왔다.
과학분야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에디슨과 아인슈타인은 탁월한 능력과 재능을 소유한 천재(genius)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들은 학습문제장애영재였다. 그 당시에는 학습문제장애(learning disabilities)라는 연구가 전혀 없었으므로,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어린이'라고 주위사람들의 놀림을 받았고 심할 경우는 바보 천치로 불리기도 했다. 만약 그들이 오늘날 살고 있다면 학습문제장애 영재아로 판별됐을 것이다.
철자법이나 쓰기 등을 제대로 못하고 말도 더디게 배웠던 에디슨과 아인슈타인은 장애를 극복하고 위대한 업적을 이룩한 과학세계의 귀감이라 볼 수 있다. 이들은 학창시절에 교사로부터 환영 받지 못했고,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한 어린 과학자였다.
특수 학습문제를 가진 아동이란, 미국 교육청의 장애아동을 위한 국가자문위원회(The National advisory Committee on Handicapped Children)에서 다음과 같이 정의되고 있다.
언어를 말하고 글을 구사하는데, 또는 어떤 사물을 이해하는 데 관련되는 기초적 심리과정(psychological process)에 한가지 이상의 장애를 보이는 아동을 뜻한다. 심리과정의 장애란 듣기 말하기 사고하기 필기 철자법 셈하기 등에 장애를 가졌다는 것이다. 여기서 지각장애 뇌상 실어증 등이 포함되기도 한다. 단 환경적 결핍이나 정서장애, 정신박약 등에 기인하는 학습문제는 여기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이런 학습문제를 지닌 아동은 지능적인 면에서는 정상 또는 아주 우수할 수도 있다. 지능이 높은 영재 또는 천재일지라도 쓰기와 철자법을 제대로 못하는 학습문제아 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영재란 어떻게 정의되는지 알아보자. 학자에 따라 정의는 각양각색이지만, 1972년에 미국 교육부(USOE)에서 발표된 것을 보면 영재아와 재능아(gifted & talented)란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어서 높은 성취를 보일 가능성이 있는 자로서 자신과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서 정규학교가 제공하는 것 이상의 특별한 교육프로그램이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고 정의돼 있다. 또한 영재성을 6개의 영역으로 구분했다. 일반적 지적능력, 특수학습 영역에서의 능력, 창의력, 지도력, 시각예술 능력, 정신운동 능력이 그것이다.
시킨대로 하지 않는다.
에디슨과 아인슈타인은 특수학습영역에서 능력과 창의력이 매우 뛰어난 영재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학습문제에 관한한 '지진아'였다. 그러면 지능은 높지만 일반 학교공부는 못하는(학습문제가 있는)영재의 특성을 살펴보자.
① 다방면에 관심은 갖고 있으나 심리적과정(psychological process)과 학습에 곤란을 겪기 때문에 목적을 추구하기가 어렵다.
② 집에서는 많은 관심을 보이지만, 학교활동은 흥미가 없어하고 지루해한다.
③ 기계적인 암기를 요구하는 수업활동은 싫어하고, 토론과 같은 종류의 활동을 좋아한다.
④ 정규 교육과정에 잘 견뎌내지 못하고, 특히 교과서 중심이나 학습장(workbook)형태의 학습활동을 지루해한다.
⑤ 폭넓은 어휘는 구사하지 않아도, 동년배에 비해서 훨씬 높은 수준의 의미를 설명할 수 있다.
⑥ 사회과목을 싫어한다.
⑦ 과제를 창의적으로 수행하지만, 지시사항대로 따라하지 않는다.
⑧ 창의력은 뛰어나지만, 문제해결방식 때문에 교사나 동료들에게 조롱을 산다.
에디슨과 아인슈타인같은 과학자외에도 유명한 윈스턴 처칠이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학습문제 장애영재다. 학습장애는 ㄱ ㄴ ㄷ한글을 거울에 비친 것처럼 뒤집어 읽고, b를 d로 p를 q로 읽기 때문에, 철자 습득에 곤란을 겪는다. 또한 셈하기에 있어서도 31+21=25, 즉 52를 25로 거꾸로 읽게된다. 또는 기억력이 심하게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런 학습문제 장애는 여러영역에서 나타나고, 그 종류와 형태도 다양하다.
19살까지 철자법을 모른 에디슨
에디슨은 어렸을때 부터 '저능아' '바보천지'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학교를 다니다, 학교에서 쫓겨난 후 집에서 어머니의 도움으로 발명왕이 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국민학교 1학년때, 담임선생님은 에디슨보고 엉터리 질문만 한다고 '저능아'로 불렀다. 이 때문에 에디슨의 어머니는 그를 집에서 가르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당시에 그를 바보취급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19살까지 철자법과 쓰기를 제대로 못익혔기 때문이다. 에디슨은 특히 난독증(dyslexia)을 갖고 있어, 학교생활을 지루하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이런 역경을 극복한 것은 부모가 그의 재능과 능력을 인정해주고, 실험실도 갖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에디슨은 10살때부터 지하실에 실험실을 마련해놓고, 각종 실험을 하면서 숱한 실패를 겪었다. 그러나 끈질긴 노력의 결과로 마침내 '발명왕'에 등극했던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천재란 99%의 노력과 1%의 영감을 가진자'라는 명언을 남겼다.
1931년 10월18일, 발명왕 에디슨은 84살의 나이로 이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장례식날 밤 10시, 미국 사람들은 1분동안 어느집이고 일제히 전등을 끄고 에디슨의 명복을 빌었다고 한다. 1천여가지의 발명특허를 얻었고, 1882년에는 세계 최초로 발전소를 설립해 과학세계에 커다란 이정표를 남긴 에디슨은 학습문제장애를 극복한 영재의 대표적인 경우다.
기계적으로 외우는 것을 거부
아인슈타인의 자서전을 보면 그가 학교에 다닐 때 '바보샌님'으로 불렸음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틀린 말을 하지 않으려고 차분히 생각한 다음 말을 해, 친구들 눈에는 반응이 느린 멍청한 아이로 보여졌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3살때까지 말을 제대로 못했다. 또한 학교에서 쓰기와 철자법에 문제가 있는 학생으로 지적당했다.
그는 학교가 자신의 생각이나 연구에 몰두하는 데 장애물이 된다고 여겼다. 학교에서는 기계적으로 외우는 것을 강요했고, 이유에 대해서 토론하거나 발표할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의 학습장애는 학교생활에 재대로 적응하지 못하게 했고 자연히 학교성적은 점점 떨어졌다. 학교에서는 점점 말수가 줄어들고(학습문제장애영재는 언어구사력이 부족하고, 심리과정에 어려움이 있음) 친구들과 사귀지도 않았다.
김나지움에 입학해서도 무조건 외우는 식의 군대식 교육에 정나미가 떨어졌다. 그중에서도 라틴어와 그리스어는 정말로 질색을 했다고 한다. 한 라틴어 선생은 아인슈타인에게 "넌 훌륭한 인물이되기 틀렸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치를 따져가며 연구하는 수학과 과학은 재미가 있었고 성적도 좋았다. 몇몇 수학 선생님은 그의 수학실력을 인정했다. 실제로 그의 수학실력은 대학생 수준을 넘는 정도였다.
그러던중 1894년 아인슈타인 가족은 모두 이탈리아로 이사를 갔다. 아인슈타인은 김나지움 기숙사에 혼자남게 됐고, 점점 말이 없는 아이로 변했다. 수업시간에 질문을 하면 선생은 가르쳐주기는 커녕, 질문이 엉뚱하다고 벌을 주기가 일쑤였다. 그래서 그는 휴학계를 냈고, 끝내 김나지움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후 그는 김나지움 졸업장이 필요없는 공과대학(그당시 종합대학은 김나지움 졸업장이 필요했지만, 공과만 있는 단과대학에서는 졸업장을 요구하지 않았다)에 입학했다. 다른 점수가 형편없어 입학이 불가능했으나, 수학시험 답안지가 워낙 훌륭해 불합격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후 전학을 한곳이 스위스의 취리히에 있는 국립연방공과대학이었다. 이 학교의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이 학교의 교수가 되기로 마음먹었고 세계적인 수재들과 함께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물리실험을 할 때면 선생이 지시한대로 하지않고 언제나 엉뚱하고 독창적인 방법으로 실험을 해서 꾸지람을 듣곤했다.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자기 나름대로의 방법을 강구하는 버릇이 훗날 독창적인 이론을 완성해 노벨상을 수상케 한 결정적인 원인이 됐던 것이다.
그의 소원에 따라 그의 몸은 죽은 후 의학자에 의해서 해부됐고, 그의 위대한 뇌도 역시 연구자료로 쓰여지게 됐다.
마비 상태에서도 연구에 몰두
블랙홀(black hole)이론에 전기를 마련한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박사의 이론은 매우 새로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신체장애자이고 언어장애자이며 동시에 천재다. 호킹 박사는 지난해 9월10일 우리나라를 방문해 두차례의 강연을 마치고 돌아갔다. 그의 방문 이래 국내에서는 우주론에 대한 관심이 날로 고조돼 가고 있다.
우주의 탄생 및 그 미래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호킹은 대학원시절부터 약 27년동안 몽의 운동신경이 점점 마비되는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색 경화증)에 시달려왔다. 그는 아직도 케임브리지의 교수로서 우주론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몸이 거의 마비된 상태에서도 자신의 연구테마에 몰두하고 있어, 앞으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견줄만한 새로운 이론을 완성할 수 있을지 기대해 볼만하다.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폐렴수술 이후 목소리도 잃어버리고 겨우 손가락을 조금씩 움직일 따름인 그가 휠체어를 타고 음성합성기를 사용해, 강의와 강연을 하는 모습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런 호킹이 정상적인 사람 이상으로 과학적 재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을 보면 천재는 어떤 어려움도 견뎌내고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어진다.
장애영재는 그들의 장애때문에 영재프로그램의 선발대상에서 제외돼 왔고, 그들의 재능은 선생이나 부모에게 까지도 발견되기 쉽지 않다. 지능테스트는 추상적사고(abstract reasoning)를 요구한다. 이런 테스트에서 시각장애영재나 청각장애영재가 높은 점수를 얻지 못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시각과 청각장애자들은 사고력이 추상적이기 보다는 구체적(concrete)이므로 낮은 점수를 얻게된다. 그러므로 지능점수를 고려하는 영재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할 기회를 애초부터 박탈당하게 된다. 교사는 학교생활에 순응하는 학생을 영재아로 지명하는 경우가 많지만, 장애아를 영재로 지명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렌줄리의 영재아 행동 특성 연구 결과를 보면, 실제로 많은 장애아중에서 영재아들이 있다고 했다. 교사뿐만 아니라 동료에 의한 추천으로도 충분히 장애영재아를 선발할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장애를 갖고 있는 아이들이 영재이든 평재이든 사회성이 낮다는 점이고, 사회성이 결여된 영재는 미래의 지도자로서 역량을 발휘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장애영재의 단점을 보완하고 그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계발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