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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더듬는 이유 밝혀졌다

단어선택, 문장편집 등 언어 메커니즘에 이상

대화 중 말을 더듬거나 엉뚱한 표현이 튀어나오는 이유가 밝혀졌다. 조만간 언어를 지배하는 두뇌영역이 해부학적으로 드러날 전망이다.

"세상에 이럴수가! 친구와 얘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것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거야. 아무리 애를 써도 입에서 나올듯 나올듯 하면서 안되는 것 있지. 더욱 미치겠는 것은 내가 그것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야. 그것은 남미에 사는 동물이고 그 털로 스웨터도 만들어. 작년에 그것을 사육하는 사람도 만났는데, 그것은 에… 그러니까 음…."

뇌 연구자들은 누구나 한번쯤 경험했을만한 이 증상을 '혀 더듬증' (tip-of-the-tongue)이라고 부른다. 수화(手話)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때는 '손 더듬증'(tip-of-the-finger)이라고 표현한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좋아한다. 우리 대부분은 하루의 많은 시간을 대화하는데 소비한다.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지 않으면 자신에게라도 얘기한다." 네델란드 막스플랑크 심리언어학연구소 소장 레벨트(Willem Levelt) 박사의 말이다.
 

빌어먹을! 저게 뭐였지?


단어 하나 생각할 때도 치열한 경쟁

레벨트 박사의 관심은 사람이 생각을 어떻게 말로 옮기느냐는 데 있다. 그는 단어가 막혀 말이 안나올 때 뇌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이론을 정립했다.

그의 연구는 인간의 뇌에 생각을 언어로 가공하는 별개의 장치가 있다는 가설을 바탕으로 한다. 이 가설은 심리언어학자들에게 널리 인정되고 있다.

레벨트 박사는 "이 장치의 정확한 해부학적 구조는 아직 모르지만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실험으로 증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특정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시간을 정확히 맞춰 협동작업을 수행하는 뉴런의 상호연결 네트워크다.

이 장치는 3부분으로 구성되는데, 어휘망(lexical network) 포엽망(苞葉網, lemma network) 어휘항목망(lexeme network) 등이 그것이다. 어휘망은 생각을, 포엽망은 문장 구조를, 어휘항목망은 말소리를 담당한다.

말을 할 때 첫번째로 활동하는 장치는 어휘망이다. 일단 메시지를 생각해내면 우리는 그것을 어휘 개념으로 포착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저장된 어휘, 즉 뉴런에 의해 암호화된 수만개의 낱말들을 찾는다. 각 낱말은 곳곳에 광범위하게 분포한 네트워크(결절, node)에 저장돼 있다. 이때 화자(話者)는 1초에 10-15개의 음절을 가진 단어 두세개를 찾을 수 있다.

만일 당신이 미국의 낙타인 라마(llama)라는 단어를 말하려 한다고 생각해보자. 당신은 라마의 사진을 보았을 수도 있고, 친구와 얘기하는 동안 그 동물을 생각했을 수도 있다.

먼저 당신은 라마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담은 어휘 결절(lexical node)을 활성화시킨다(그것은 긴 목을 가진 동물이고 짐 싣는 데 이용된다 등). 이때 비슷한 의미를 갖는 단어 결절도 자극된다.

이는 양이나 염소에 대한 결절일 수 있고 발굽달린 동물에 대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당신은 아직 라마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못한다.
다음 단계는 포엽망이 주관한다. 이때 라마에 대한 어휘 개념과 활성화된 유사 개념에 두가지 현상이 발생한다.

먼저 각각의 개념에 대해 적당한 문장구조가 배정된다. 문장구조란 단어 순서, 단어의 성이나 격(불어나 독어 경우), 기타 문법적 특징 등 화자가 사용하는 언어의 법칙이다. 또한 동사 명사 형용사 등이 문장순서에 따라 적절히 배열된다.

둘째 활성화된 여러 개의 어휘 개념들 사이에 경쟁이 발생하는데, 대개는 가장 많이 활성화된 개념이 승리한다. 그러나 때로는 다른 어휘 개념이 방해해서 원하는 단어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 사실은 레벨트 박사의 실험에서 밝혀졌다.
 

집단 토론에서 혼자 다른 생각을 하면 엉뚱한 말이 튀어나오기 십상.


친숙하면 더듬지 않는다

레벨트 박사는 피실험자들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그 이름을 말하도록 요구했다. 이때 소요된 평균 시간은 1백분의 7초였다.

다음에는 피실험자에게 소의 사진을 보여 주고 옆에서 말이라고 중얼거리는 등 피실험자의 주의를 흩어놓는다. 레벨트 박사에 따르면 말이라는 어휘 개념이 활성화될 때 소라는 정답을 말하기까지 1백분의 8초가 걸렸다. 그러나 전혀 관계가 없는 어휘 개념을 중얼거리면 시간 차이가 발생하지 않았다.

전체 과정에서 세번째 단계는 선택된 어휘 개념을 단어로 표현하는 단계(어휘항목망 단계)다.

우리의 뇌는 수천 개의 음소를 저장하고 있다. 여기서 음소란 우리가 수없이 연습한 언어의 소리로, 라마라는 단어를 구성하는 '라'와 '마' 소리를 의미한다. 이외에도 운율 억양 어조 등 언어의 소리패턴도 어휘항목망에 저장돼 있다. 레벨트 박사는 "어휘항목망 단계에 접근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고 말한다. 두뇌는 적당한 소리를 찾아 그것을 포엽망을 거친 문장구조 요소와 연결해야 한다. 바로 이 시점에서 말을 잘못 만들기 쉽다.

한가지 예가 혀 더듬증 현상이다. 당신은 말하고 싶은 것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 심지어 그 단어가 두 음절로 돼 있고 두번째 음절에 강세가 있다는 것까지 기억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말은 입안에서 맴돌 뿐이다. 한 예로 프랑스어처럼 남성형과 여성형 단어가 있을 때 사람들은 어떤 단어를 떠올리지 못해도 그 단어의 성은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문장에서 단어를 뒤바꿔 말하거나(내 기름에 자동차를 가득 채워 주세요) 발음을 혼동해 뒤섞는 실수(자랑스러운 스승을 사랑스러운 저승이라고 표현)도 포엽망과 어휘항목망 사이의 연결이 잘못돼 발생한다.

수화를 사용하는 농아들도 비슷한 체험을 한다. 그들은 종종 어떤 단어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아도 적절한 손모양을 만들지 못하거나 어느 방향으로 손을 움직여야 하는지 결정하지 못한다.

왜 갑자기 말이 막히는 것일까? 레벨트 박사는 "아직 확실히 모르지만 단어에 대해 친숙한 정도가 혀 더듬증 현상에 한 몫 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자주 쓰지 않는 단어는 종종 입밖에 내는데 시간이 더 걸린다. 예를 들어 나방 사진을 보고 'moth'(나방)라고 말하려면 입 모양의 사진을 보고 'mouth'(입)라고 말할 때보다 1백분의 2초가 더 걸린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은 일상적인 대화에서 흔히 쓰지 않는 이름을 떠올리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반면 '베이커'(Baker) 같이 흔한 이름은 머리 속 네트워크에 널리 저장돼 있으므로 쉽게 생각난다.
 

노화에 따른 기억력 감퇴는 뇌 연결망 수의 감소 때문.


'에…' 하며 문장 편집도

사람들은 또 나이가 들면서 이름과 단어에 대한 기억력이 떨어진다고 불평한다. 레벨트 박사는 이 현상이 뇌의 전달 속도가 늦어져서가 아니라 활성화된 연결망의 수가 줄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한편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는 말할 때 실수하는 것은 깊이 내재된 성적 욕구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은 좀더 순진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 레벨트 박사의 의견이다. 사람들은 종종 말을 하는 도중 다른 생각을 하는데, 이때 대화와 상관 없는 어휘 결절이 활성화된다. 그 결과 전혀 엉뚱한 단어가 대화에 끼어들어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를 놀라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수 없이 모든 과정이 잘 진행돼 원하는 단어를 찾더라도 발음 단계가 남아있다. 발음은 혀 입 입술 후두 폐 등의 운동을 거쳐 발생한다.

레벨트 박사에 따르면 이 단계에서는 사람들이 실수를 고칠 수 있다. 때로 우리는 '에…' 나 '음…' 이라고 하면서 할 말을 '편집' 한다. 그리고 정확한 문장 구조를 갖추고 다시 얘기한다. 따라서 사람은 "창밖에 구름이 옵니까? 에… 비가 옵니까?"라고 하지 "창밖에 구름이 옵니까? 에… 비가?"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처럼 사람은 말 실수를 교정할 때 단어 순서에 맞게 말하려고 한다. 이 때문에 우리는 녹음된 방송 테이프에서 실수한 부분을 쉽게 없애며 편집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레벨트 박사는 생각에서 말로 이어지는 과정이 뇌 안의 어떤 장소에서 발생하는지에 대해 실험할 계획이다.

이 실험에서 자주 쓰이는 낱말고 그렇지 않은 낱말의 그림을 피실험자에게 보여주고 뇌 영상화 기계(뇌자기도, magnetoencephalograph)를 사용, 그들의 뇌 상태를 조사할 예정이다.

빌어먹을! 저게 뭐였지?
어떤 대상에 대해 생각하고 그 이름을 말하는 과정에서 뇌 속의 한 장치가 난관에 봉착하면 단어가 입에서 나올듯 하면서도 나오지 않는다. 이 장치들의 해부학적 구조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실험으로 증명됐다.

이미지 : 개념을 단어로 전환하는 경로의 첫 단계는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대상의 이미지를 생각하거나 눈으로 보는 것이다. 라마를 예를 들어보자. 알고는 있지만 흔히 쓰지 않는 단어를 떠올릴 때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

어휘망 혹은 개념 : 이미지는 라마에 대한 어휘장치 혹은 결절을 활성화시켜 우리의 뇌가 저장하고 있는 라마에 대한 모든 정보를 꺼내오게 한다. 결절이란 뇌 속에 널리 분포한 뉴런들이 서로 연결돼 네트워크를 이룬 것. 이때 인접한 어휘결절 즉, 라마와 연관이 있는 양, 염소, 등에 대한 어휘 결절도 활성화된다.

포엽망 단계 : 활성화된 모든 개념은 각자에게 알맞는 문장 구조를 배정받는다. 문장구조에 관한 언어의 규칙으로는 단어의 순서, 단어의 성과 격 등이 있다. 한편 활성화된 개념들이 경쟁할 때 대개는 가장 활성화가 많이 된 개념이 우세한 위치를 점한다.

어휘항목망 단계 : 원하는 개념을 직접 말로 옮기기 위해서는 포엽망 단계에서 넘어온 문장구성요소가 소리와 연결돼야 한다. 소리에는 음절, 운율, 억양 등이 모두 포함된다. 혀 더듬증은 이 단계에서 발생한다. 어휘 결절이 충분히 활성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96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산드라 블라케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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