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조선 역사상 최악의 재앙, 경신대기근입니다. 매주 조선으로 회귀해 산신령의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 대학원생 공구성은 이제 17세기 조선에 닥칠 기근을 대비해야 합니다. 4주차 과제는 배고픈 이들을 구할 구황작물, 바로 고구마를 키우는 겁니다. 고구마는커녕 콩나물 하나도 제대로 키워본 적 없는 구성이 잘 해낼 수 있을까요?


시간을 되돌려 조선시대에 떨어진다고 해도, 설계도만 있다면 증기기관차를 만들 수 있을까요? 현재환 한양대 철학과 교수의 소설 ‘내 손으로 조선에서 과학혁명?!’을 통해 이 물음에 답해보려 합니다. 서양과학사 전공자인 대학원생 공구성이 조선시대로 떠난 강제 현장실습 이야기입니다
예습
소빙하기가 조선에 미친 영향을 서술하시오
“다음엔 무조건 먹을 겁니다! 구황작물 치트키 간다니까요!”
공구성의 귀엔 자신이 불과 일주일 전에 내지른 소리가 여전히 울리는 듯했다. “너 요새 왜 이렇게 멍하니 있어? 무슨 일 있냐?” 저도 모르게 한숨을 깊게 내쉬었더니, 눈앞에서 맥스파이시 상하이 버거를 우적거리던 친구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어왔다.
둘 다 국제학술강연에 강제로 동원됐다 풀려난 참이라 시장할 시간이었다. 친구의 노트에는 미국의 기술사학자 새라 프리처드가 열변을 토하며 말했던 내용이 적혀 있었다. “2011년 발생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오롯이 쓰나미라는 자연재해 때문이거나, 핵 발전소의 기술적 결함 때문만은 아닙니다. 지진이라는 자연과 원자로라는 기술, 그리고 방사능 물질이라는 환경적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 발생한 환경기술적 재난(Envirotechnical Disaster)으로 봐야 합니다.”
환경기술적 재난이라니, 알 게 뭐람. 매주 조선시대로 회귀해야 하는 구성의 운명이야말로 재난이었다. 그는 대충 손사래를 치며 스마트폰 화면에 집중했다. 지난주 산신령은 “조선 땅에 추위와 굶주림이 닥칠 것”이라고 예고했었다. 그의 머릿속은 오직 다음 회귀 퀘스트를 완벽하게 공략할 벼락치기로 꽉 차 있었다.
“산신령 영감탱이가 흘린 ‘추위와 굶주림’… 명백히 경신대기근을 말하는 거야.” 구성의 전공이 서양과학사라지만, 조선 역사상 최악의 재앙으로 꼽히는 경신대기근을 어찌 모르겠는가. 꺼무위키에 경신대기근을 검색해 읽어보던 구성의 얼굴이 점차 하얗게 질렸다.
“경신대기근은 현종 11년(1670)과 12년(1671)에 한반도 전역에 발생한 재난으로, 17세기 태양 활동의 저하로 인한 소빙하기의 도래와 국지적 기상이변이 전염병 유행과 결합하여 100만 명을 상회하는 아사자가 발생했던 사건이다…?”
17세기, 전세계의 겨울 평균 기온은 1961~1990년 겨울 평균 기온보다 약 1℃ 더 낮았다. 이 시기를 ‘소빙하기’라 부른다. 기온이 낮아진 이유로는 태양 활동의 저하, 화산 폭발 등 다양한 추측이 나온다. 분명한 건, 소빙하기는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등 전 지구에 한파와 기근, 사회 혼란을 가져온 전 세계적 재난이었다는 점이다. 이때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게 뭘까? 햄버거를 다 먹은 친구는 이제 감자튀김을 야무지게 케첩에 찍어먹고 있었다. 가만, 감자? 그래, 답은 감저(감자와 고구마)다.
“역시 답은 구황작물 치트키다! 구황작물 테크트리에 대해 미리 공부해야 해!” 구성은 친구에게 자신의 햄버거를 줘버리고 구황작물에 대해 검색하기 시작했다. 16~18세기는 해외의 작물이 조선으로 활발히 전래되던 시기였다. 16세기엔 옥수수가, 임진왜란 전후엔 고추가 전래됐고, 17세기 초엔 담배를 들여와 키우기 시작했다. 구황작물의 대표 격인 감자와 고구마도 그렇다.
“찾았다!” 구황작물 검색에 전력을 다하던 공구성은 감자와 고구마 중에 조선에 먼저 들어온 작물이 고구마임을 확인했다. “그래, 영조 39년(1763) 조엄이 대마도에서 고구마 종자를 가져왔지. 나도 통신사가 돼서 쓱싹 가져오면…! 잠깐, 경신대기근이 1670년의 일이라고? 그럼 고구마 전래는 대기근이 터지고 무려 100년 뒤에 일어난 일인데… 내가 회귀할 때 주변국에 고구마가 있기는 한 거야?” 당황한 구성이 뒷머리를 긁적이는 순간, 갑자기 시야가 일그러지고 어지럼증이 찾아왔다. 친구가 당황해하면서 물어봤다. “야, 너 왜 이래? 저녁 안 먹더니 현기증 나는 거 아냐?” 구성이 눈을 감기 전에 마지막으로 외친 단말마의 비명은 이것이었다.
“아, 아직 공략법 준비 안 끝났다고!”
과제
신대륙 작물 확보로 재난 극복하기

정신을 차려보니 구성은 파도가 험하게 일렁이는 배 위였다. 난간에 푹 꺾여 구역질을 하는 구성 주변에서 사람들이 혼비백산해 외치고 있었다.
“정사 영감! 정신 차리시옵소서!”
“영감께서 해운(뱃멀미)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셨다! 뭣들 하느냐, 어서 의관을 모셔오지 않고!” 선상에서 울려퍼지는 “영감”과 “나리”라는 외침들 가운데 익숙한 시스템 창이 허공에 떠올랐다.
구성은 잘 몰랐지만, 조형은 나중에 고구마를 들여올 조엄과 같은 풍양 조씨 가문의 인물이었다. 현재 조형의 몸에 빙의한 구성은 1655년 4월 한양을 출발해 에도(도쿄)에서 막부 쇼군의 즉위를 축하하는 통신사 임무를 마치고, 귀국길에 쓰시마(대마도)로 향하던 참이었다.
“내가 일본 통신사인데다, 마침 대마도로 가는 중이라고? 고구마 종자를 구해오라는 천명이구나! 이번에야말로 영웅 대접받고 A 학점 좀 받아보자고. 크크큭… 우웩!” 구성은 뱃멀미로 위액을 토해내면서도 미소를 지었다.
쓰시마에 도착하자마자 구성은 눈에 불을 켜고 현지 상인들을 닦달했다. “스미마센, 혹시 감저(甘藷)라고 아시오? 아카이모(赤芋)? 고우꼬우이모(孝行芋)? 가라이모(唐芋)라도 좋소! 붉은 껍질에 달착지근한 맛이 나는 구황작물 말이오!”
“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류큐(오키나와) 쪽에서 남만(서양)의 붉은 마 같은 게 들어왔다는 소문은 들었스무니다만, 쓰시마에는 그런 귀한 건 없스무니다.” 상인의 대답에 구성은 이마를 짚었다. ‘아뿔싸. 1650년대면 아직 사쓰마(규슈)에도 고구마가 안 퍼졌을 때잖아! 예습을 덜 하고 회귀하게 된 대가인가….’ 대마도에서 종자를 구하려던 계획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하지만 구성은 좌절하지 않았다. “일본이 아니라면 중국이다!” 5년 뒤인 1660년(현종 1년), 구성은 동지사(동지를 전후에 중국에 파견된 사절)로 청나라 연경(베이징)에 갈 기회를 낚아챘다. 그는 연경에 도착하자마자 은이 가득 든 전대를 풀며 역관을 다그쳤다.
“이 은덩이들을 보시오. 당장 복건성에서 올라온 상인들을 샅샅이 뒤져서라도 ‘감저’ 종자를 무조건 구해오시오! 천조의 대유(大儒) 서문정공(徐文定公)께서 남기신 ‘농정전서(農政全書)’에도 기록된 천하의 영약이오!”
“아니, 정사 영감. 어찌 그리 이름 모를 풀뿌리에 집착하시옵니까? 하지만 은이 이리 두둑하니, 까짓 것 구해보지요.”
돈의 힘은 위대했다. 며칠 뒤, 구성은 마침내 복건성 상인에게서 흙이 잔뜩 묻은 고구마 종자 몇 알을 손에 쥐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첫 번째 시도는 혹독한 요동의 겨울 앞에 무너졌다. 압록강을 넘기도 전에 매서운 추위에 종자가 썩어버린 것이다.
절치부심한 구성은 평산으로 귀양을 다녀왔다 복직하자마자 1663년에 다시 동지사로 연경에 파견됐다. 이번에는 온도와 습도를 치밀하게 관리해 고구마 종자를 품에 안고 조선 땅을 무사히 밟았다. 정사대로 귀국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려 관직을 박탈당했으나, 구성은 고구마 재배에 집중할 수 있겠다고 오히려 신나했다.
보고서
누가 농사를 쉽다 했단 말인가
농사는 쉽지 않았다. 한성(서울)에선 춥고 습한 기후 때문에 고구마의 싹조차 틔우지 못했다. 구성은 서광계의 ‘농정전서’를 펼쳤다. “해안의 고지대, 제방과 포구 주변의 모래 진흙땅이 최적이라.” 서광계가 중국의 경험을 토대로 쓴 글을 읽으며 서해안 일대에서 재배를 시도했으나 번번이 썩어 문드러졌다. “아니, 서광계 이 양반아! 해안가 모래 진흙이 최적이라며! 왜 조선 흙에선 다 썩는 건데!” 연이은 실패에 머리를 쥐어뜯던 구성에게 문득 지난 3주차 실습이 뇌리를 스쳤다. 서구의 수식만 들이밀다 똥물을 뒤집어쓰고, 결국 장인들과 흙바닥을 구르며 ‘현장 중심의 시험 전통’을 깨달았던 뼈아픈 기억이었다. 생각해보면 21세기의 구성은 농사의 ‘농’ 자도 지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 그가 한반도에 처음 들어온 개량도 덜된 고구마를 잘 키울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 또 책상머리 지식에 갇힐 뻔했어. 책은 덮고 당장 현장으로 가자!” 그는 조엄의 사례를 떠올리며 동래(부산)로 내려갔다. 그는 체면을 버리고 흙투성이가 된 채 동래 농부들과 무릎을 맞댔다. “나리, 이래 흙맥을 포슬포슬하이 흩어놔야 뿌리가 숨통이 트이가 쭉쭉 안 뻗겠능교? 거름도 단디 깔아주고예.” “오호, 과연! 책에는 없는 현장의 지혜로군. 당장 그대로 해봅시다!” 구성은 흙의 성질과 거름의 양을 조절하며 수십 번의 시험을 거듭했다. 마침내 뿌리가 뻗기 쉽도록 흙맥을 성글게 만든 모래흙에 비옥한 거름을 듬뿍 깔아주는 조선 맞춤형 재배법을 찾아냈고, 까다로운 종자 보관법까지 발견해냈다.
1666년(현종 7년), 마침내 정2품 공조판서의 자리에 오른 구성은 어전회의에서 승부수를 띄웠다. 그는 탐스러운 고구마를 어전에 바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전하! 이 감저야말로 척박한 땅에서도 거뜬히 자라 기근을 구제할 하늘의 선물이옵니다. 마땅히 호조(戶曹)와 팔도의 관찰사에게 명하시어, 이를 새로운 구황작물로 널리 보급하시옵소서!”
하지만 조정의 공기는 구성의 기대와 달리 싸늘했다. 국가의 재정과 구휼을 책임지는 호조판서가 즉각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이다. “전하, 불가하옵니다. 구황의 근본은 흉년을 대비한 비축에 있사온데, 저 남만의 풀뿌리는 겨울을 나면 쉽게 썩어버려 환곡으로 쌓아둘 수가 없사옵니다. 또한, 조상 대대로 구황에는 교맥(메밀)과 상실(도토리)이 으뜸이라 검증되었거늘, 어찌 농민들에게 출처도 모를 기이한 작물을 심으라 강요하시어 혼란을 초래하려 하시옵니까?”
“호조의 말이 일리가 있소. 정 그리 신통하다면 우선 내의원이나 종묘의 제상에나 올려보도록 하라.” 명분과 관례, 그리고 당장의 행정적 편의만 따지는 사대부들의 탁상공론에 임금마저 뜻을 꺾자 구성은 헛웃음을 삼켰다. “아쉬운 놈이 우물을 파야지. 꽉 막힌 국가 시스템이 안 움직이면 민간 네트워크로 간다!” 말싸움에 질린 구성은 양반 관료사회를 우회하기로 결심했다. 훗날 고구마를 널리 퍼트릴 인물(강필리 등)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선수를 쳐 ‘조씨감저보(趙氏甘藷譜)’라는 실전 재배 매뉴얼을 펴냈다. 농민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언해본(한글)까지 곁들인 파격적인 행보였다. 구성은 자신이 구축해 둔 동래와 경상도 일대의 향촌 사족, 상인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종자와 매뉴얼을 남부 지방 전체에 맹렬히 뿌리기 시작했다.
결론
강연은 열심히 듣고 봐야: 고구마가 가져 온 생태기술적 재난
1670년, 역사가 경고하던 경신대기근이 기어이 조선을 덮쳤다. 우박, 서리, 가뭄에 전염병까지 휩쓸며 지옥도가 펼쳐졌지만, 구성이 미리 뿌려둔 고구마 덕분에 경상도와 전라도 일대의 아사자 수는 원래의 역사보다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 척박한 땅에서도 불룩불룩 자라나는 고구마는 그야말로 생명의 뿌리였다.
“해냈어! 내가 조선의 수십만 백성을 살렸다고!” 구성은 환희에 차 허공을 향해 소리쳤다. 이제 로그아웃 창이 뜨고, 그리운 관악산 옥탑방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완벽했다. 하지만 하루, 이틀, 한 달이 지나도 현실로 돌아가는 문은 열리지 않았다.
“왜? 퀘스트 다 깼잖아! 수십만 명을 살렸는데 뭘 더 어쩌라고!”
그때, 허공에서 익숙한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허허, 세상 이치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만 돌아가더냐. 기술 하나 도입하는 데 성공했다고 만사가 해결될 줄 아는 오만함은 여전하구나. 네가 구한 세상이 100년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 보거라.” 산신령이 지팡이를 휘두르자, 허공에 18세기 후반 조선의 참혹한 풍경이 홀로그램으로 펼쳐졌다. 대기근의 타격을 비껴간 조선의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있었다. 이들이 먹고 살기 위해 선택한 것은 단 하나, 산을 깎아 밭을 만드는 것(화전)이었다.
“저, 저게 뭐야?”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고구마의 도입은 산림 경작의 한계선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울창했던 산림이 모조리 파헤쳐져 고구마 밭이 되어 있었다. 숲이 사라지자 서식지를 잃은 호랑이와 늑대 무리가 민가로 내려와 매일같이 끔찍한 호환(虎患)이 끊이지 않았다. 더 큰 재앙은 땅 아래에 있었다. 나무를 모조리 베어내고 흙을 성글게 파헤쳐 놓으니, 장마철마다 흙더미를 붙잡아줄 뿌리가 없었다. 수백만 톤의 토사가 그대로 강으로 쓸려 내려갔고, 강바닥이 얕아지면서 조금만 비가 와도 대홍수가 조선을 집어삼켰다. 구황작물이라는 ‘기술’이 생태계 붕괴라는 끔찍한 나비효과를 부른 것이다.
“쯧쯔… 수업을 잘 들었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거늘…. ”
학술대회에서 흘려 들었던 새라 프리처드의 목소리가 구성의 귓가에 맴돌았다. “자연, 기술, 그리고 환경적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 발생한 환경기술적 재난….” 탁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초가집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구성은 그 자리에 또 주저앉았다. 은 제련을 위해 숯을 만들다 산사태에 무너져버린 함경도가 생각났다. 단기적인 생존 기술의 도입이 사회를 구원할 거라 믿었지만, 그것이 장기적으로 환경 시스템 전체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방아쇠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산신령의 서늘한 목소리와 함께 구성의 눈앞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아니, 수십만 명을 살려놨는데 왜 또 C야…! 내가 100년 후를 어떻게 알아! 사전에 공지도 없던 걸로 감점하는 게 어딨어! 억까라고!”
“성적 부여는 오롯이 채점자 마음 아니더냐… 허허허!”
산신령의 얄미운 웃음소리와 함께 눈앞이 다시 흐릿해지며 짙은 어둠이 밀려왔다. 21세기로 돌아가면 감자는 몰라도 절대로 고구마는 먹지 않을 것이라는 공구성의 다짐과 함께, 그의 처절한 강제 현장실습은 아직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현재환 교수와 소설 뜯어보기
고구마가 쏘아 올린 환경기술적 재난
공구성이 마주한 비극적인 결말은 환경사학자 로버트 B. 마르크스가 저서 『호랑이, 쌀, 비단, 그리고 진흙』에서 파헤친 청나라 시대 남중국의 생태 재난에 기초해 서술된 내용입니다. 18세기 중국은 고구마 등 신대륙 작물을 적극 도입해 대기근을 극복하고 폭발적인 인구 증가를 이뤄냈습니다. 하지만 늘어난 인구를 감당하기 위해 평야에서 밀려난 농민들이 산으로 올라가 숲을 태우고 밭을 일구면서 비극이 시작됐습니다. 마르크스는 고구마 재배를 위한 무분별한 삼림 파괴가 끔찍한 대홍수로 이어졌다고 말합니다. 즉, 단기적인 식량 위기를 구원한 구황작물이라는 혁신이 장기적으로는 자연의 수용력을 초과해, 생태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환경기술적 재난의 이해
역사학자 새라 프리처드가 제시한 환경기술적 재난이라는 개념은 재난이 단순히 자연재해나 기계적 결함만으로 발생하지 않음을 지적합니다. 자연(집중호우), 기술(고구마와 개간 기술), 그리고 사회(인구 증가와 토지 개간)가 상호작용해 만들어낸 결과라는 것이죠. 산사태와 홍수, 생태계 교란으로 인한 야생동물의 습격은 이 세 가지 요소가 얽혀 만들어낸 전형적인 환경기술적 재난의 모습입니다. 기술을 도입할 때는 그 기술이 사회와 환경이 연결된 시스템에서 어떤 연쇄 반응을 일으킬지를 고민하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 공구성이 공략을 위해 봤으면 좋았을 글들
Sarah B. Pritchard, “An Envirotechnical Disaster: Nature, Technology, and Politics at Fukushima”, Environmental History, 2012.
Robert B. Marks, Tigers, Rice, Silk, and Silt: Environment and Economy in Late Imperial South China, 2009.
노성환, “조선통신사와 고구마 전래”, 동북아문화연구 23, 2010.
저자 소개
한양대 철학과(사학과 겸직) 부교수. 전공은 과학사철학 및 과학기술학(STS)이다. 과학기술과 사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한국 사회에 뿌리내리기를 희망하며 과학사철학과 STS의 대중화를 시도하고 있다. jhwanhyun@hany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