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범고래의 지느러미에 굵은 흉터가 있다. 다른 범고래의 이빨 자국이다. 범고래의 상처는 다른 범고래와 놀거나 싸울 때 발생한다. 자연에서 범고래를 이길 포식자는 없기 때문이다.
대런 크로프트 영국 엑시터대 연구원 등 공동연구팀은 50년에 걸쳐 북아메리카 부근 태평양에 서식하는 범고래 103마리를 관찰했다. 범고래를 찍은 사진 약 5000장을 분석한 결과, 어떤 무리에 폐경 후 나이든 어미 범고래가 살아있는 경우, 해당 무리 수컷 범고래의 흉터가 다른 무리 수컷들보다 35% 더 적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반대로 무리 내 어미 범고래가 젊거나 없는 경우, 해당 무리의 수컷 범고래들은 흉터가 더 많았다. 한편 나이든 어미 범고래의 자식이 딸인 경우에는 흉터가 더 적은 경향이 관찰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이를 통해 어미 범고래가 나이가 들어 폐경이 된 이후에도 아들 범고래를 다른 수컷 범고래와의 싸움에서 보호한다는 연구 결과를 7월 20일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발표했다. doi: 10.1016/j.cub.2023.06.039
폐경은 암컷의 생식능력이 사라지는 상태를 의미한다. 폐경의 진화는 과학자들의 오랜 연구 대상 중 하나였는데, 폐경으로 자식을 더 낳을 수 없는 상태의 암컷이 왜 계속 사는지를 설명하기 어려웠다. 실제로 폐경 후에도 자연 수명을 이어가는 포유류는 인간과 이빨고래 5종 정도에 불과하다.
이전 연구에서는 나이든 어미 범고래가 물고기를 잡아와 가족에게 먹이는 모습이 관찰된 적 있다. 이번 연구에서 연구팀은 폐경 후의 어미 범고래가 오랫동안 무리 생활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아들 범고래를 보살피는 사회적 역할 또한 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했다. 연구를 주도한 찰리 그림스 엑시터대 연구원은 “나이가 들면서 고급 사회지식이 생길 수 있다”며 “긴밀한 모자 관계를 고려해보면 폐경 후 어미는 아들에게 사회적 갈등상황에 처할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을 주의하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