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생성 이미지(Midjourney)
편집자 주
과학동아 창간 40주년을 맞아 2026년 상반기, 짐리원 작가의 중편 SF 소설 ‘한여름의 투명 도감’을 연재합니다. 재건축을 앞둔 서울의 아파트 단지에서 투명한 생물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과학이 반드시 바라봐야 할 생명의 섬세함을 SF로 확장합니다.
엘리베이터가 닫히자마자 모아는 계단으로 내달렸다. 서둘러야 했다. 트럭이 세끝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가기 전에 그들의 기중기에 꾸엥이 붙어 있다는 걸 알려야 했다. 꾸엥을 되찾아야 했다.
하지만 모아 마음속의 목소리는 꾸엥을 내려달라고 아무리 소리쳐도 트럭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그들이 꾸엥을 볼 수 없어서 꾸엥이 끌려간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며칠 전 ‘윤리와 사상’ 시간에 선생님이 공유해 준 화면이 떠올랐다. 계몽주의. 그 밑에는 Enlightenment라고 써 있었다. 선생님은 계몽주의가 우리 사회를 떠받치는 기본적 믿음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리고 light에는 커서로 동그라미까지 쳤다.
“다른 거 모르겠으면 이거만 외워. light, 빛.”
빛이 핵심이라는 것이었다. 계몽주의를 믿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안 보이는 어둠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고 믿었다. 나쁜 일이 벌어지는 건 우리가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못 보기 때문이라고. 볼 수 없어서 모르니까 하는 짓이라고.
하지만, 적어도 그들 중 몇 명은 분명히 꾸엥을 볼 수 있었다. 신경 쓰지 않았을 뿐이다. 그렇지만 그러면? 그러면 어떻게 하지?
모아를 태운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을 때는 다행히도 아파트 뒤쪽에서 트럭 꽁무니가 아직도 붉게 깜빡이고 있었다. 6동 옆 좁은 골목을 빠져나가다가 쓰레기통 하나를 들이받은 것 같았다. 봉고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트럭 뒤를 살피고 손으로 지시하고 있었다. 멀리서도 팀장님을 외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모든 것 위로 돛대 같은 크레인이 하늘까지 목을 뻗고 있었다. 크레인에는 밤하늘이 고스란히 비친 담쟁이의 투명한 몸이 감겨 있었다. 소리를 내는 건 꾸엥뿐으로, 담쟁이는 이미 생명이 떠난 것만 같았다.
그때 익숙한 모습이 눈앞을 스쳤다. 7동과 6동 사이 주차장으로 멋진 커브를 그리며 들어오는 자전거. 아침마다 저렇게 출근하는 부동산 사장님이었다. 아저씨는 6동 비상계단 앞에 자전거를 세우려는 것 같았다. 왜 이 시간에 출근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상관없었다.
“정말… 정말, 죄송한데….”
모아는 자전거 핸들을 덥썩 잡았다. 아저씨가 놀란 듯 돌아봤다. 어디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다행히 모아 엄마의 오랜 친구인 아저씨가 모아를 바로 알아본 듯했다.
“저, 잠깐만. 제가요.”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했는데도 아저씨는 자전거 자물쇠를 잠그던 손을 멈추고, 안장에서 손을 내렸다.
“감사합니다!!!!”
모아는 자전거 페달에 발을 올렸다. 아주 작은 힘으로도 균형을 되찾은 자전거는 소리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아주 미세한 곡선을 그리면서. 모아의 몸이 과속방지턱 위에서 점프했다가 다시 가볍게 착지했다.
‘나, 뭐 하자는 거지.’ 세끝아파트 정문 차단기를 지날 때 그 생각이 드디어, 기다렸다는 듯 모아의 머리를 스쳤다. 왜 이때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오르는지. 모아의 지난번 시험 성적에 대고 했던 말이다. “엄마가 엄마를 위해서 하는 말이겠어? 그냥 네가 후회할 일은–두고두고 후회할 일은– 안 했으면 좋겠단 거지!” 그랬다. 후회할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아파트 입구 너머는 별이 가득한 바다였다. 모아가 큰길로 나섰을 때 이미 트럭은 한참 앞서가고 있었지만, 어두운 하늘을 가로질러 누워 있는 크레인은 놓치려야 놓칠 수 없었다. 그 위의 이무기가 강 건너 롯데타워처럼 원하지 않는 표지판이 됐다. 꾸엥은 이제 그네에 탄 것처럼, 아니 놀이 기구에 매달린 것처럼 흔들렸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다. 날개가 걸려서, 그걸 떼어낼 수도 다시 크레인에 올라탈 수도 없는 모양이었다.
모아가 달리는 도시는 무시무시하게 아름다웠다. 모아는 항상 차도가 거대한 바다 같다고 생각했었다. 해가 져야 본색을 드러내는 바다. 그 바다는 자정을 지나서도 잠시도 멈추지 않고 흘렀다. 연료를 불로, 불을 빛과 탄소로, 빛을 다시 물결로 바꾸며.
이무기를 돛대에 감은 채, 한밤중의 도시 속으로 질주하는 트럭을 모아도 전속력으로 쫓아갔다. 처음에는 버릇처럼 인도로 갔지만 멋대로 주차한 전동 키보드에 몇 번 뒤집힐 뻔하고서야 차도로 뛰어들었다. 경적이 들렸지만 금세 바람과 불빛 속에 흩어졌다.
트럭이 세끝아파트 주변 오래된 동네를 벗어나려면 신호등이 다닥다닥 붙은 수많은 교차로를 지나야 했다. 그 복잡함이 모아의 편이었다.
모아가 트럭 뒤로 다시 붙자, 전조등과 후미등이 넘실대는 바다였다. 머리 위로는 바다 위를 가로지른 다리처럼 지상철 선로가 그림자를 드리웠다. 꾸엥은 여전히 날개를 빼내려고 발버둥 치는 중이었다.
“꾸엥!”
들리지 않을 걸 알면서도 모아는 이름을 불렀다. “꾸엥! 기다려!”
트럭의 최종목적지는 몰랐지만 우선은 강변역 근처에서 강변북로로 진입할 것이다. 이 동네 커다란 차들은 전부 그렇게 갔으므로. 이제 두 번만 돌면 강변북로 진입로였다. 빨간 신호등 앞에서 모아는 생각을 정리하려 애썼다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뀐 순간, 여러 힘이 모여서 꾸엥을 풀어줬다. 덜컥 하더니 크레인 줄의 펜듈럼이 꾸엥의 날개와 어긋난 방향으로 움직였고, 트럭은 다시 그것과 반대 방향으로 큰 커브를 돌면서 발생한 우연이었다.
꾸엥이 신호등과 차량의 파도 위로 날아올랐다. 아니, 떠올랐다. 너무 짧은 순간이라 잠시라도 눈을 떼면 놓칠 판이었다. 모아는 초등학교 때 학교 대표 피구팀 권유까지 받았던, 남다른 집중력을 끌어모았다. 다만 이번에는 피하지 않고 받아야 했다.
모아는 최대한 오래 지켜보다가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끼이익 하며 자전거를 거의 180도로 틀었다. 옆 차선으로 뛰어든 셈이다. 차들의 급정거 소리. 이동 흐름이 깨지는 소리. 결국 바퀴가 회전력을 잃자 모아와 자전거는 차도 한가운데로 넘어졌다.
손안에도 눈앞에도 꾸엥은 없었다. 모아는 자신이 꾸엥을 잡지 못했다는 것을, 실패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 상황의 의미를 파악할 틈도 없이 경적이 울려 퍼졌다. 차들은 감히 제 구역에 들어온 인간을 용서할 수 없다는 듯, 모아가 조금이라도 더 이 공간에 있는 것을 참을 수 없다는 듯, 지나가면서 다가오면서 가차 없이 경적을 울렸다. 머리와 오른쪽 어깨가 이상할 정도로 무거웠고, 손바닥과 무릎에 피가 맺힌 것이 느껴졌지만 당장은 차도를 나가야 했다.
모아가 자전거를 간신히 끌고 보도로 나왔을 때였다. 익숙한 꾸에엑 소리가 들린 것은. 귀가 아플 정도로 모아 귀 바로 옆에서 들렸다. 부스스한 깃털은 관자놀이를 간지럽혔다. 꾸엥이 모아의 어깨에서 자전거 안장으로, 자전거 안장에서 보도 위로 팔짝팔짝 뛰어내렸다. 이제 날개를 접은 꾸엥이 모아를 빤히 본다. 날개를 휘저으며 뭐라 설명이라도 시작할 것 같은 눈빛이다.
모아는 자신이 꾸엥을 과소평가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모아는 꾸엥이 날 수 있다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닭이나 오리 같은 것이 아닌가 마음대로 생각했다. 꾸엥은 꾸룩꾸룩 자전거를 살피듯 맴돌고 모아의 다리도 살폈다. 날개 한쪽 끝이 꺾여 있었지만 딱 봐도 크게 다치지 않았다.
모아는 힘이 빠져 주저앉았다. 꾸엥의 동그란 머리가 팔과 다리 사이로 밀고 들어왔다. 쿡쿡 꾸륵꾸륵. 꾸으응. 꾸엥은 머리를 모아의 품에 부비적거렸다. “너 진짜 뭐야…”
어쨌든 집에 가야 했다. 하지만 휴대폰이 보이지 않았다. 최적 경로를 검색할 수도, 엄마에게 연락할 수도 없었다. 자전거가 있어서 다행인가 싶었지만 체인이 풀어져 있었다. 다시 감아보려고 해도 좀처럼 잘되지 않았다. 꾸엥은 자전거 바구니에 태우고 밀면서 가면 될 것 같았지만, 꾸엥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꾸엥은 모아가 쓰다듬는 것은 허락했지만 결코 들어 올리게 두지는 않았다. 껴안는 족족 빠져나갔다.
“이리 와.” 손을 벌려도 까만 눈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눈썹도 코도 입도 달리지 않은 까만 눈.
“나도 몰라 그럼. 그냥 간다.” 몇 걸음 가다 돌아보니 꾸엥은 잘도 따라왔다. 세 갈래로 나뉜 두 발로 보도를 야무지게 짚으며.
휴대폰 앱으로 찍어 보면 버스로 15분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지하철도 다니지 않는 시간, 강변역과 세끝아파트 사이는 좀체 줄어들지 않았다. 아니, 모아가 발로 메우는 만큼만 줄어들었다. 어쩌면 이것이 진짜 거리였다.
세끝아파트는 얼마나 남았을까. 아직 남은 잔 더위에 온몸이 치덕치덕했다. 옆에는 공실이 된 상가와 무인 가게들만 가득했다. 주변 가게들이 아예 비거나 무인으로 바뀐 다음에도 영원할 것만 같았던 사거리 편의점도 닫은 모양이었다. 빈 선반에 지난 시즌 포스터와 끝내 팔리지 않은 프링글스 통만 가득했다. 모아의 그림자 옆으로 작고 뚱뚱한 새의 그림자가 졌다. 곧 세끝동으로 돌아 들어가는 골목이었지만 그 사실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때였다. 낯선 구륵 소리, 그리고.
“엄청나다. 괜찮아?” 고개를 들기도 전에 알았다. 가로등이 만드는 수직의 그림자, 스쳐 가는 차들보다 먼저 떠나는 불빛, 먼 사무실 빌딩들의 하얀 조명 아래, 노아가 서 있었다.
모아는 자기도 모르게 울컥했다. 친절하고 똑똑하고 이상한 말투. 설명할 수 없는 모든 걸, 어쩐지 그는 다 알 것만 같았다. 꾸엥이 얼마나 위험했는지, 그 사람들이 이무기를 얼마나 함부로 다뤘는지, 얼마나 멀리 데려갔는지, 지금도 데려가는 중인지, 그리고 모아가 얼마나 많은 결정을 했는지.
낮은 그르르르르, 꾸억 소리가 아니었다면 눈물을 참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치지도 않는 꾸억 소리에 내려다보니 노아의 다리 뒤에 당고새가 한 마리 더 있었다. 해적처럼 한 눈에 붕대를 감고 군데군데 깃털이 뽑힌 새가 모아를 노려보았다.
그들은 쓰레기가 쌓인 골목과 빛이 쏟아지는 사거리 사이에서 긴 얘기를 나누었다. 자전거는 폐점한 편의점 유리 벽에 기댄 채로. 노아는 단 한 번도 끼어들지 않고 모아의 이야기를 들었다. 트럭이 강변북로 쪽으로 향했다고 말을 맺은 후에도 2분 정도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있더니, “그렇구만”.
구룩이 꾸엥을 위협하듯 몇 번 목을 긁은 것을 빼고는, 당고새 두 마리도 끼어들지 않았다. 꾸엥은 모아 옆의 뒤집힌 편의점 의자 다리 사이로 뒤뚱뒤뚱 걸어왔다.
“네가 너무 많은 걸 했네.” 노아는 모아를 똑바로 보며 덧붙였다. 굳이 칭찬하는 것 같지는 않고, 그냥 객관적인 정의를 말하는 투였다. 웃지도 않았다. 하지만 모아는 뭔가 해낸 기분이었다. 그 정도로 가슴 깊이 자신만만해진 것은, 중학교 때 딱 한 번 사회 과목 전교 20등에 오른 후로 처음이었다. 다짜고짜 반말도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모아는 티 내지 않고 어깨만 으쓱했다,
노아는 가방에서 꺼낸 반창고를 모아에게 건넸다. 반창고는 반짝반짝 투명했고, 옥상에서 받은 물수건처럼 서늘하고 섬세했다. 상처에 닿기만 했는데 뭔가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노아는 투명식물로 만든 투명반창고라고 설명했다. 원래 사밭조경이라는 투명식물 소재 전문 회사에서 생산했는데, 그 회사가 닫은 뒤로는 구하기 어려워졌다면서.
“그런 걸 써도 돼요?”
“필요할 때 쓰라고 있는 거지. 좋아, 이제 나는 가봐야겠다. 아참, 이왕 신세 진 김에 뭐 하나 더 부탁해도 되려나. 혹시 구룩을 집까지 데려다줄 수 있어? 막 구조해 온 애라 좀 예민하긴 한데….”
노아는 읏차 하고 일어섰다. 하지만 모아가 쳐다만 봐도 구룩은 다시 위협적으로 구룩댔다.
“누가 괴롭히기라도 한 거예요?”
노아는 사바티엘팰리스 쪽에 ‘투명안’을 가진 사람이 있는 모양이라고 설명했다.
“투명안…?” 노아는 자기 눈과 모아 눈을 차례로 가리켰다.
“볼 수 있는 사람이? 그런데 괴롭힌다고요?” 모아의 반문에 노아가 생각에 잠겼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길고양이를 학대하는 사람들도 고양이를 볼 수 있잖아? 슬프게도. 세끝아파트 분들은 옛날 분들이라, 볼 수 있으면 괴롭히지 않을 거라고 여전히 믿는 것 같지만… 그래도 너 같은 애를 만나기도 하니까. 그건 좋은 일이지.” 또 엄청난 칭찬을 받은 기분. 모아의 마음이 출렁였다. 모아는 물었다.
“그쪽… 괴롭히는 쪽도 단체 같은 게 있는 거예요?” 노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괴롭히는 쪽에서 조직이 왜 필요하겠어. 온 세상이 돕고 있는데?”
요즘은 불가살이웹이라는 다크웹도 있는데, 그쪽 채팅방에서 투명안을 개안한 사람끼리 학대용 정보 공유가 이루어지는 모양이라고 했다. 하지만 잡고 보면 다 보통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모아는 뭐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모아 반 애들만 생각해 봐도 최소 70퍼센트 이상은 “재미 있다면 안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일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90퍼센트. 모아는 무릎을 굽히고 앉아 구룩에게 손짓을 했지만 구룩은 그런 식으로 부르지 말라는 듯이 다시 그르륵댔다. 그리고 모아를 제대로 노려보기 시작했다. 모아와 구룩의 눈싸움을 지켜보던 노아는 구룩을 향해 말했다.
“아무래도 어렵겠구만. 어쩔 수 없네. 너는 나랑 가자.” 노아가 일어설 채비를 하자 구룩이 잽싸게 일어섰다. 노아는 구룩의 위협적으로 들이민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디로요?” “쫓아가 봐야지. 이상한 사람들한테 넘긴 거라면... 면목이 없으니까.” 노아가 대답했다.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원래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에요?” 노아는 생각에 잠겼다.
“그런 사람들이라. 더바이 건설이 뭐 하는 사람들일까. 기업이니까 오직 돈 버는 목적으로 뭉친 집단이겠지. 그런 집단에 이무기 같은 생물을 맡겨도 될까. 그런 집단을 믿어도 될까. 믿어서는 안 됐는지도 모르지.” 노아는 그저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더바이 건설이요?” 모아가 되물었다. 중요한 디테일은 아닌 것 같았지만, 그런 이름은 아까 이무기를 데려간 트럭, 장비 어디에도 써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붉은 유니폼과 장비마다 한자 두 글자가 써 있었는데, 어떻게 읽어도 ‘더바이’ 같지는 않았다.
“무슨 화 건설이 아니고요?” 구룩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이 멈췄다.
“업화건설?”
공터에 주차된 차들은 하나같이 고장 난 채였고 먼지에 덮여 있었다. 새벽 두 시가 넘은 어둠 속에서도 보일 정도로 두터운 먼지 퇴적층이었다. 주차 구역 옆에 트레일러 하우스가 두 채 있었다. 타이어가 펑크 난 트럭 옆구리에도, 트레일러 옆에 쌓인 종이 상자들에도, 구석구석 업화건설의 붉고 검은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노아는 트레일러의 문을 열려다 실패하고, 창문을 열어보려 끙끙대고 있었다. 하지만 트레일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모아는 찌그러진 타이어에 걸터앉아 있었다. 서곤륜동 생태숲길은 매년 엄마와 벚꽃을 보러 오는 곳이었는데, 이쪽은 처음이었다. 곤륜천을 둘러싼 가파른 언덕을 내려가면 언덕 위 산책길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 작은 샛길이 있고, 그 길을 따라가면 이렇게 철책에 둘러싸인 공터까지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철책 사이로 굵은 넝쿨이 자라나 그물망을 벌려 놓지 않았더라면 모아와 노아도 들어올 엄두를 못 냈을 것이었다.
타이어 옆에 파손된 트럭 짐칸이 주저앉아 있었다. 앉은 채로도 손이 닿을 정도로 낮아진 짐칸에 투명생물의 비늘 같은 것들이 흩어져 있었다(모아는 이제 슬슬 투명동물과 불투명동물을 어떻게 구분해야 할지 알 것 같았다. 투명동물은 분명히 그곳에 존재하는 것 같다가도 몇 번 눈을 깜빡이면 한 번쯤은 보이지 않았고, 그 몸은 스노우글로브처럼 투명하면서도 무언가로 차 있었다). 이것도 이무기를 실었던 차인가. 모아는 생각하며 손을 뻗었다.
곤륜천 산책길에서 노아가 해준 얘기에 따르면, 지난 십여 년 사이 서울의 이무기 개체수가 80퍼센트 넘게 줄었는데, 가장 직접적 원인은 세끝아파트 재건축 열풍이라고 했다. 세끝아파트 브랜드의 단지들에는 투명동물이 유난히 많이 살았다. 좀처럼 번식하지 않고 줄기만 하는 이무기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충분한 양의 ‘노는 땅’, 야외 수돗가(노아는 이것이 투명동물들이 사는 데 중요한 조건이라고 했다. 물론 불투명동물에게도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다양한 불투명식물군과 투명식물군의 존재 등 투명생물이 서식하기 좋은 환경을 완벽히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이것은 용적률과 건폐율을 높이려는 재건축 시공사들에도 최적의 환경이었다.
이상한 점은 투명우산(노아가 속해 있던 투명동물 구조 단체라고 했다.)이 재건축 소식을 듣고 투명동물들을 구조하러 가면, 원래 있던 투명동물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경우가 매우 많았다는 것이다. 사실구 사실동의 세끝아파트만 해도 그랬다. 아직 주민 이주도 끝나기 전인데 투명우산이 구조 활동을 위해 도착했을 때는 일곱 동의 머리를 왕관처럼 두르던 이무기 일곱 마리도, 아파트 연못의 투명 해태도, 하다못해 오래된 상가 지하의 투명 도마뱀마저도 보이지 않고, 당고새 몇 마리만 길고양이들과 남아서 불가사의하게 비어 버린 단지에서 꽉꾸륵대고 있었다. 공통점은 업화건설이 재건축 시공업체로 선정된 아파트들이라는 점이었다.
“업화건설은 옛날에 망하지 않았어요? 그, 막, 부실시공으로.” 어릴 적 뉴스에서 본 어렴풋한 기억으로 모아가 물었다. 노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용적률을 높이는 것만이 목적이었던 부실시공 때문에, 수사와 소송을 당하고 회장도 감옥에 있다고 했다. 그때 투명우산이 비공식적으로 조사에 참여한 덕에 노아도 업화건설의 이 서울 동북권 창고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 업화건설이 브랜드를 세탁하고 투명동물에 다시 관심을 보이는 것이라면, 담쟁이는 분명히 그곳으로 실려 갔을 것이라 했다.
노아는 산책길에서도 몇 번이나 이제부터는 위험하니 돌아가라 했지만, 모아는 자신도 담쟁이를 확인이라도 하고 가겠다고 우겼다. 하지만 창고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담쟁이도 트럭도 사람도. 노아는 어떻게든 이곳에서 담쟁이의 행방에 대한 힌트를 찾으려는 듯했지만, 창고는 너무 완전하게 버려진 터라 별 소득이 없는 듯했다.
모아는 무심코 손에 잡힌 비늘을 만지작댔다. 이무기의 비늘은 조약돌 같았는데, 손에 잡힌 비늘은 이무기의 것이라기에는 너무 동그랗고 물컹거리고 약간... 꿈틀댔다. 뭔가 이상한 느낌에 모아는 그 비늘을 내려놓고 다른 비늘도 그런가 보려고 트럭 짐칸 안쪽으로 손을 더 넣어 더듬거렸다. 다음 순간 물컹하고 투명하고, 분명히 꿈틀대는 것이 손끝에 닿았다. 그것은 아직 믿지 못하는 모아의 눈앞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거대한 손 같은 모습이었다. 손가락이 몇 개 잘린. 아니면 다친 불가사리 같기도 했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뿔... 혹은 손가락이 꺾여서 흐느적대고 있었다. 으악 소리를 지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던 순간. 모아의 비명을 멈춘 것은, 작고 느린 움직임이었다. 정체 모를 존재의 두 번째 손가락이 일어나더니 모아의 손끝을 슬쩍 건드렸다. 톡. 조금씩 반짝이는 것이 크리스마스 장식 같기도 했고 산호초 같기도 했다.
모아의 머릿속에 오만 가지 생각이 스쳤다. 눈앞의 존재가 당고새나 이무기와는 다르다는 것은, 투명동물을 오늘 처음 본 모아라도 느낄 수 있었다. 낯선 존재는 화가 나 있었다. 계속 그르륵대던 구룩보다 훨씬 훨씬 더. 하지만 분노만이 아니었다. 물론 모아의 추측에 불과했지만 어차피 추측에서 시작하는 일은 너무 많았다. 하다못해 엄마가 화났을 때도 엄마가 “나 화났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추측하고 확인하고 조금은 위험을 무릅써야 했다.
모아의 손끝을 건드린, 손가락인지 산호초 가지인지 모를 것은 공중에서 멈칫했다 두 번째 손가락의– 혹은 가지의 말단이– 잘게 떨렸다. 고민하는 것 같기도 했다. 모아는 아주 조심스럽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평화의 제스처였다. ‘악수를 이해할까?’ 같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결국 인간은 인간의 방식으로 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그리고 이해해 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생물은 한동안 모아의 손 앞에 멈춰 서 있었다. 하지만 불가사리의 손끝은 결국 모아의 손 위에 차갑게 조용히 닿았다. 한끝에 다른 한끝이 악수하듯.
그 손 위에 다시 노아의 차가운 손이 내려앉았다. 모아는 흠칫했다. 가까이 온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하기도 했고, 친절한 목소리와 다르게 노아의 손이 저 알 수 없는 가지보다 차가워서이기도 했다. 노아는 가지들이 갈라지는 부위를 손끝으로 살살 쓰다듬더니 꿀렁거리는 생물을 모아서 손에서 한 번에 휙 떼어냈다.
“대단하네, 모아.” 노아가 천천히 버둥거리는 생물을 든 채로 말했다. 그 느린 움직임은 기회를 엿보는 것 같기도 했고 자기 나름의 생각을 하는 중 같기도 했다. 투명동물 ‘불가살이’는 1차 진화 형태에서는 얼핏 보기에 해양 생물 불가사리와 닮았지만 실은 진화 과정부터 속과 목까지 전혀 다른 생물로, 인간에게 공격적으로 반응하고는 한다는 것이었다. 그 반응의 형태가 자폭 공격이라 사람도 불가살이도 좋지 않고 말이다. 노아는 무서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서는, 여기 왜 다친 불가살이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찾을 것은 다 찾았으니 일단 가자고 했다. 노아의 다른 손에는 낡은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
“불가살이요? 불가살이웹?” 모아는 아까 들었던 이름이 생각나서 물었다. 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불가살이웹 사람들이 유난히 갖고 놀기 좋아하는 것이 불가살이라는 것이었다. 다리가 잘려도, 아주 오랫동안 영양 섭취를 못해도 웬만하면 죽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큰코다치지만.” 노아는 불가살이의 남은 다리 하나를 조심스럽게 들어보더니 자기 오른팔을 걷어 올렸다. 모아는 숨을 삼켰다. 팔은 멀쩡한 부분이 없을 정도로, 데이고 베인 듯한 상처가 가득했다.
그다음에 벌어진 일은 더더욱 믿을 수 없었다. 노아는 반투명하게 쉭쉭거리는 불가살이 앞에 맨 팔을 내밀었다. 불가살이는 세 개의 손가락을 꿀렁대며 보고만 있는가 싶더니, 눈이 보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노아의 팔에 달라붙었다. 달라붙는 정도가 아니라 쥐어 찢을 듯한 기세였지만 놀랍게도 불가살이는 몇 번 꿀렁댈 뿐,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거 그래도 되는 거예요?” 모아가 물었다. 방금 말한 대로 위험한 동물이면 뭔가 더 전문적인 절차가 있어야 할 것 같았는데, 이게 맞나 싶었다. 노아는 자신의 손끝으로 불가살이의 꺾인 손가락들을 쓰다듬었다. 불가살이는 에일리언 영화에서 사람을 잡아먹기 직전 같은 불길한 쉭쉭 소리를 냈지만, 노아는 만족한 표정이었다.
“원래는 안 되는데. 봐, 두 군데나 다쳤는데도 아직 진화도 하지 않았잖아. 참을성이 많은 개체야. 그보다 모아, 너도 이제 집에 가야지.” 노아는 소매를 내리며 말했다.
“아저씨... 아니 노아 씨는 안 가요?” 아저씨는 너무한 것 같아서 모아는 고쳐 말했다. 오빠라고 부르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그건 어쩐지 좀 민망했다. 노아 씨라는 말은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왔는데, 누구누구 씨라고 다른 사람을 불러본 것은 처음이었다. 노아는 낡은 휴대폰을 들어 보였다. “찾았거든.”
트럭 운전석 안에 버려져 있던 휴대폰 지도 앱에서 의심 가는 장소를 찾았다는 것이었다. 반복해서 도착지로 설정된 장소가 있는데, 지도 앱에 상세 정보가 표시되지 않는 경기도 북부 산속 어딘가였다.
“일단 차가 필요하겠다.” 노아는 말했다. 택시를 잡으려면 차가 다니는 큰길까지 돌아가야 했다. 모아가 몸을 일으키고 노아가 가방을 챙기는데, 공터 앞에 끼이익, 차가 멈춰 섰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노아와 모아는 둘 다 굳었다. 택시 갓등이 달린 차였다. 긴 전조등이 공터를 비췄다.
짐리원
‘올림픽공원 산책지침’으로 2023년 제3회 문윤성 SF 문학상 중단편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고, 과학동아 2024년 8월호에 ‘기억과 사회’를 기고했다. 기후변화와 환경 오염, 서울에 대해 계속 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