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지금 희토류는 과학과 경제, 지정학을 관통하는 키워드입니다. 하지만 많은 오해도 받고 있죠. 희토류는 정말 희귀할까요? 어디서 어떤 역할을 할까요? 장홍제 교수가 희토류의 흥미진진한 화학 이야기를 풀어내는 연재입니다.
오늘날 한 손에 들어오는 스마트폰의 연산 능력은, 수십 년 전에 집 한 채를 가득 채웠던 슈퍼컴퓨터를 압도합니다. 이런 혁신을 위해서, 모든 부품이 시대마다 마주한 기술적 한계들을 극복하는 압축 과정을 거쳐왔지요. 그중에서도 물리적으로 가장 어려운 과제가 바로, 자석이었습니다. 그 자석의 난제를 해결한 희토류가 네오디뮴입니다.

무겁고 약했던 물리적 난제, 자석
스마트폰은 우리의 일상이 응축된 기기입니다. 메신저 앱, 인터넷, 금융 서비스부터 게임이나 음악 감상까지 이 작은 장치로 모두 해결합니다. 스마트폰에서 현대 전자 문명을 관통하는, 두 방향의 거대한 진화를 볼 수 있어요. 모든 기능을 계속 압축하는 극한의 소형화, 이와 반대로 시각 정보는 더 크고 선명해지는 디스플레이의 혁신이지요. 상반된 두 목표를 함께 달성하는 데 기여한 숨은 영웅도 희토류입니다.
자석은 소형화의 난제입니다. 철판에 뭔가를 붙이는 건 자석의 용도 중 극히 일부지요. 자석은 전자기기 안에서 소리를 만들고 진동을 일으키며 정밀한 사진을 찍을 때 쓰입니다. 음악을 재생하면 스피커 내부의 코일에 전류가 흐르고, 자석의 자기장과 반응해서 빠르게 진동합니다. 이 물리적 진동이 공기를 울려 귀에 소리로 전달되죠. 통화할 때는 이 원리가 마이크에 역순으로 작용해 목소리를 전기 신호로 바꿉니다.
전기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바꾸거나, 반대로 운동을 전기로 바꾸려면 모두 자석이 필요합니다. ‘징~’ 하며 전해지는 스마트폰 진동도 자석의 작품입니다. 게임을 할 때 타격감에 맞춰 정교한 진동을 주는 리니어 진동 모터에서도 강력한 자석이 뛰고 있습니다. 걸어가며 사진을 찍어도 흔들리지 않고 선명한 것 역시, 아주 작은 자석과 코일, 그리고 자이로 센서가 협력해 카메라 렌즈의 수평을 유지하는 덕입니다.
자석이 물리적 난제였던 이유로 돌아올까요. 그것은 방금 본 기능들을 하나로 압축하기엔 과거의 자석이 너무 무겁고 약했기 때문입니다. 빨갛고 파란 두 극이 칠해진 이런 자석은 철과 산소가 결합한 페라이트입니다. 자연에선 자철석이란 광물로 만날 수 있죠.
하지만 스마트폰 같은 정밀 전자 기기에 넣기엔 페라이트는 자력과 내구성 모두 너무 약합니다. 특히 약한 내구성은 학교에서 저 자석을 떨어뜨렸는데 똑 부러진 걸 보셨다면 이해가 쉽겠죠. 따라서 페라이트 자석은 냉장고를 장식하거나 떨어뜨린 못이나 핀을 찾기엔 충분하지만, 첨단 전자 부품에 쓰기엔 부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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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네오디뮴 자석에 자철석이 안정적으로 붙어 있다. 자력과 내구성이 모두 강한 네오디뮴 자석은 전자 제품의 소형화를 이끈 핵심 부품이다.
전쟁이 가져다 준 네오디뮴의 데뷔 무대
이를 보완하기 위해 1930년대 후반부터 페라이트에 코발트(Co)란 금속 원소를 섞어 성능을 좀 더 강화하려는 노력이 시작됩니다. 철(Fe)에 알루미늄(Al)과 니켈(Ni), 코발트까지 섞은 알니코 자석은 더 유용해졌습니다. 이런 시도들 끝에 1960년대, 드디어 자석에 희토류 원소를 하나 쓰게 됩니다. 사마륨(Sm)이죠. 사마륨-코발트 자석은 당시로선 혁명적인 성능을 발휘했고, 특히 고온에서도 자성을 잃지 않고 잘 작동해서 자동차, 전자기기의 희망으로 떠오릅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상치 못한 지리적·정치적 변수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전 세계 코발트 생산의 70%는 아프리카의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가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1978년 자이르에서 내전이 발발해 코발트 공급망이 마비된 것입니다. 이 ‘코발트 쇼크’로 가격이 20배 이상 폭등했고, 전자 제품이나 자동차 부품 기업들이 경영 위기에 빠집니다. 지금도 코발트는 고갈 가능성이 있어서 주시받는 원소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과학은 전쟁 중에 가장 빨리 발전한다는 말도 있듯이 절박한 필요가 닥쳤을 때, 위대한 발명이 탄생합니다. 코발트를 쓰지 않는 새로운 산업용 강력 자석이 급해진 상황에서 일본의 사가와 마사토 박사는 생각의 방향을 바꿉니다. 코발트 대신에 희토류를 철과 연결한 것이죠. 누구나 할 법한 생각이지만 철과 희토류가 결합하면 공기 중에서 금방 녹이 스는, 즉 산화돼 버리는 치명적 결함이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붕소(B)를 조금 넣어주면 철과 희토류가 단단히 결합한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여러 희토류 원소 중 네오디뮴(Nd)이 철과 결합할 때 가장 강력한 자석이 만들어졌고, 이것이 바로 우리 일상 곳곳에서 활약하는 은빛의 강력 자석, 네오디뮴 자석입니다.
네오디뮴 자석의 자력은 이전 자석의 5~10배에 달합니다. 희토류 원소인 네오디뮴 없이는 절대로 도달할 수 없었던 영역이지요. 자석의 역사가 네오디뮴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것도 자연스럽습니다. 이 네오디뮴 자석 덕분에 컴퓨터 하드디스크의 기록 헤드는 더 정밀해졌고 전기차의 모터는 더 가벼워졌으며, 컴퓨터를 압축한 스마트폰이 비로소 우리 주머니 속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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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분해로 정제한 코발트. 코발트는 공급망이 불안정한 편에 속하고, 고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어서, 대체 소재 개발이 주목받는 원소다.
원자 안쪽에서 펼쳐진 f-오비탈의 마법
왜 하필 네오디뮴이었을까요? 그 비밀은 지난달에 짧게 언급한 f-오비탈에 숨어 있습니다. 오비탈을 양자역학의 측면에서 간단히 말하면, 전자가 채워질 수 있는 방입니다. 오비탈의 종류는 지금까지 s, p, d, 그리고 f의 네 종류가 원소들에서 확인됐습니다. s부터 f까지의 각 오비탈에 순서대로 2개, 6개, 10개, 14개의 전자가 채워질 수 있습니다. 순서대로 방이 점점 커지는 것이죠. 원소 주기율표를 보면 리튬(Li), 마그네슘(Mg)이 속한 가장 왼쪽의 1, 2족은 s-오비탈에 전자 2개가, 그 반대편 위로 톡 튀어나온 13~18족은 p-오비탈에 6개가 채워지는 원소들입니다. 전이 금속이라 불리는 넓은 중간 구역의 원소들은 10개가 채워지는 d-오비탈, 희토류는 14개인 f-오비탈이 중요한 원소들입니다.
우리는 시내버스에서 좌석 2개가 붙은 좌석들만 비어 있을 때, 우선 한 명씩 여유롭게 떨어져서 앉곤 합니다. 전자도 마찬가지로 한 방에 전자가 하나씩만 들어다가가, 빈방이 없어지면 전자가 한 방에 두 개씩 채워집니다. 게다가 자석은 화살표처럼 방향을 가리킬 수 있는 홀전자의 존재가 결정적입니다. 자석의 자성은 홀전자가 많을수록, 그것도 가리키는 방향이 같을 수록 강합니다. 네오디뮴은 전자가 14개나 들어갈 수 있는 넓은 방에, 홀로 존재하는 홀전자를 4개나 가진 희토류 원소입니다. 네오디뮴이 최고의 자석 재료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네오디뮴은 이 f-오비탈이 원자의 가장 바깥이 아닌, 안쪽 깊이 숨어 있다는 점도 특별합니다. 만약 전자가 바깥에 있다면 열이나 화학 반응 등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는데, 네오디뮴은 다행히도 홀전자들이 성벽 안에 숨어 있어서 자력이 잘 유지됩니다. 네오디뮴 자석이 외부 자극에 쉽게 반응하지 않는 비결도 f-오비탈이지요.
만약 더 튼튼한 자석을 원한다면 다른 희토류를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름부터 낯선 디스프로슘(Dy)이나 터븀(Tb)을 조금 넣어주면 고온에 잘 견디는 희토류 자석이 됩니다. 이 원소들은 원자의 모양이 둥근 공이 아니라, 럭비공처럼 길쭉하게 눌려 있어서 특정한 방향을 가리킵니다. 이런 원자의 모양은 디스프로슘이나 터븀 자석이 고온의 전기 자동차 모터에서도 자력을 잃지 않는 이유입니다. 또한 이 자석에서 볼 수 있듯 아주 적은 양의 희토류만 넣어도 물질 전체의 성질을 완전히 바꿔놓는 점에서, 희토류가 왜 ‘첨단 산업의 비타민’인지도 알 수 있지요.
더 작고 유용한 스마트폰을 만든 희토류
네오디뮴 자석(Nd)은ㅁ 강한 자력과 내구성으로 다양한 기능을 작은 스마트폰에 압축한 소형화의 핵심이다. 디스플레이의 형광체인 유로퓸(Eu), 터븀(Tb)은 더 크고 선명한 시각정보 구현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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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렌즈: Nd
네오디뮴 자석은 다른 부품들과 함께 카메라 렌즈의 수평을 유지한다. 움직이며 촬영해도 사진이 흔들리지 않고 선명한 이유다.
무선 충전: Nd
무선 충전기에서 스마트폰과 충전기의 코일 간 거리를 줄이고 정확하게 정렬시켜 고속 충전의 효율을 높인다.
디스플레이: Eu, Tb
스마트폰 디스플레이를 채우는 붉은색, 푸른색 빛은 유로퓸, 초록색 빛은 터븀의 전자가 에너지를 받아서 들떴다가 제자리로 돌아오면서 방출하는 것이다. 디스플레이의 모든 색은 이 세 빛의 조합으로 이뤄진다.
소리와 진동: Nd
스마트폰의 전기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바꿔서 진동이나 소리를 내고, 반대로 목소리의 물리적 진동을 전기 신호로 바꾸는 것도 네오디뮴 자석의 역할이다.
일상의 정교한 지휘자, 희토류
희토류의 마법은 자력이란 보이지 않는 힘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 화려한 스마트폰의 디스플레이에도 숨어 있습니다. 옛날의 두꺼운 브라운관 TV부터 요즘의 최첨단 OLED까지, 화면이 색을 만들어내는 데는 형광체란 물질이 필수입니다. 이 형광체의 핵심도 바로 희토류랍니다.
형광체로 쓰이는 가장 대표적인 원소는 유로퓸(Eu)입니다. 유로퓸은 화학이 만든 카멜레온 같습니다. 전자를 넣거나 빼내서 조절하는 산화 상태에 따라 붉은색(Eu3+)과 푸른색(Eu2+) 빛을 선명하게 내뿜지요. 우리가 보는 스마트폰 화면의 강렬한 레드와 깊은 블루는, 역시 유로퓸의 f-오비탈을 채우고 있던 전자가 에너지를 받아 들떴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면서 뱉어내는 빛입니다.
아주 맑은 초록색을 구현하고, 자석을 강화하는 터븀(Tb)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모든 색상이 빨강, 초록, 파랑(RGB)의 조합에서 비롯되므로, 희토류로 모든 색을 그릴 수 있는 셈입니다. 만약 희토류가 없었다면 우리의 디스플레이는 지금처럼 선명한 색채를 구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심지어 지폐의 위조 방지 표식에도 자외선을 받으면 빛을 내는 유로퓸 형광체가 사용될 정도이니, 희토류가 만드는 색이 세계 경제의 신뢰까지 지탱하는 셈입니다.
결국 우리가 쓰는 모든 첨단 전자 기기는 희토류라는 지휘자가 정교하게 지휘하는 다양한 악기들입니다. 그렇게 자석이 동력을 만들고, 형광체가 빛을 발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문명을 지탱합니다. 문명은 희토류가 들려주는 정교한 교향곡인 셈이지요. 겉보기엔 그저 흙 속에 흩어진 원소 알갱이에 불과하지만, f-오비탈이란 작은 방에 전자가 어떻게 채워져 있는지의 그 미세한 차이가 오늘날 거대한 디지털 문명을 떠받치고 있습니다.
장홍제
광운대 화학과 교수. KAIST 화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화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드코어 화학 유튜브 채널인 ‘화학하악’을 운영하고 있으며 ‘화학 연대기’ ‘나노화학’ ‘들뜨는 밤엔 화학을 마신다’ 등의 책을 썼다. hjang@kw.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