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생성 이미지(Nano Banana), GIB
힘이 달릴 때 기운을 불어넣는 마법의 주문이 있을까. 평소보다 더 큰 힘을 폭발적으로 내야 할 때나 고통을 참아야 하는 순간이면 보통 숨을 크게 들이켠 뒤 손아귀에 힘을 쥐어짠다. 이럴 때 욕설이 의외로 해답이 될지 모른다. 헬스장에서, 병원에서 고통을 견디게 만드는 욕설의 과학적 쓸모를 ‘몸소’ 파헤쳐봤다.
"욕하면서 하니 운동 더 잘됐어요"
2026년 2월 3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헬스장. 눈앞에 놓인 바벨의 무게는 70kg. 기자의 평소 ‘1RM(1 Repetition Maximum·최대 무게)’을 상회한다. 벤치에 누워 숨을 들이켜고 바벨을 밀어 올리는 찰나 망설임 없이 외친 한 마디. “XX..!” 비명 섞인 욕설이 터져 나오자마자 꼼짝 않던 바벨이 살짝 들렸다(물론, 헬스장에서 욕설을 뱉거나 시끄러운 기합을 내는 건 예의에 어긋나므로 추천하지 않는다).
천한 언어의 대표격이자 인성 부족의 증거였던 이 욕설이, 어떻게 근섬유 속에 잠들어 있던 힘을 조금이나마 끌어올린 것일까. 운동 중 튀어나오는 욕은 단순한 입버릇이 아닐 수 있다. 2025년 12월 리처드 스티븐스 영국 키일대 심리학과 교수팀은 미국심리학회(APA)에 발표한 논문에서 욕설이 근력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을 하며 그 메커니즘을 공개했다. doi: 10.1037/amp0001650
이 메커니즘을 확인하기 위해 스티븐스 교수는 대규모의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설계는 간단했다. 먼저 88명의 첫 번째 실험 참가자와 94명의 두 번째 실험 참가자로 그룹을 나누고 두 가지 종류의 팔굽혀펴기를 서로 번갈아 시켰다. 두 운동의 차이는 욕의 유무뿐이다. 하나는 본인이 평소 쓰던 욕설을 쓰며 수행하는 ‘욕설 팔굽혀펴기’이며, 다른 하나는 욕설 대신 착한 말(?)을 하는 ‘착한 팔굽혀펴기’다. 두 그룹 중 한쪽은 ‘욕설 팔굽혀펴기’를 먼저 수행하고 다른 그룹은 ‘착한 팔굽혀펴기’부터 한 후에는, 두 그룹이 반대로 착한 팔굽혀펴기와 욕설 팔굽혀펴기를 했다.
실험 참가자들이 한 팔굽혀펴기는 일명 ‘의자 팔굽혀펴기(chair push-up)로 불리는 특수한 동작이다. 의자에 앉아 손을 허벅지 밑에 45도 각도로 넣었다. 이후 손가락은 안쪽을 향하게 한 뒤, 팔을 곧게 펴 몸 전체를 손으로 지탱한 채로 발은 공중에 떠 있는 동작을 수행했다. 이 자세를 최대한 오래 버티는 게 참가자들의 과제였다. 참가자들은 운동 직전과 버티는 운동 중 2초마다 평소 말하는 음량으로 특정 단어를 반복했다. 욕설 팔굽혀펴기 참가자는 자신이 평소 머리를 부딪혔을 때 쓸 법한 욕설을, 착한 팔굽혀펴기 참가자는 욕설과 전혀 관련 없는 중립적인 단어(예를 들면 테이블)를 말하며 버텼다.
이 이상한 실험의 결과는 번갈아서 진행한 두 그룹 모두 일관됐다. 욕설을 한 집단은 중립 단어를 말한 집단보다 평균 2.6초 더 오래 버텼다. 첫 실험에서 욕설을 곁들인 88명의 참가자들은 의자 팔굽혀펴기 수행 시간이 평균 26.92초로, 중립적 단어를 외치며 팔굽혀펴기를 한 94명(24.19초)보다 2.73초 길었다. 착한 팔굽혀펴기를 먼저 진행하는 두 번째 실험에서도 욕설을 외친 94명(26.97초)이 중립적 단어를 말한 88명(24.55초)보다 약 10%인 2.42초가 길었다. 총 182명을 분석한 통계로도 욕의 신체적 효능이 증명된 셈이다.

American Psychologist
실험에 참여한 참가자의 모습. 연구팀은 욕설의 운동 효과 상승을 확인하기 위해 총 182명의 실험 참가자들에게 의자 팔굽혀펴기(chair push-up)를 수행케 했다.
‘사회적 자물쇠’ 풀어 힘 끌어올린다
욕설의 유무가 운동 능력에 유의미한 결과를 가져온 비결은 무엇일까. 스티븐스 교수팀의 결론은 사회적 금기를 벗어던지는 ‘봉인 해제’다. 만화 속 등장인물이 자신을 제한하던 모래주머니를 풀고 숨겨왔던 진짜 힘을 드러내며 전투에 임하듯이, 현실의 사람들도 욕설을 뱉는 동시에 자신을 억누르던 사회적 제약을 벗어 던지고 신체 능력을 끌어올린다는 게 스티븐스 교수의 가설이다.
사실 스티븐스 교수은 자타공인 욕설 전문가(?)다. 그는 십수년째 욕설에 관한 과학적 분석과 연구를 거듭해 오고 있으며, 2009년에는 ‘욕설이 고통 완화에 미치는 심리적 효과’에 대한 연구로 이그노벨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그는 이번 연구 이전에도 줄곧 욕설의 효험을 실험해 왔다.
스티븐스 교수가 이번 실험을 2022년 수행한 실험(118명)과 통합 분석한 결과, 총 300명의 통합 분석에서 욕설 조건의 평균 지속 시간은 27.97초, 중립 조건은 25.36초였다. 2024년 진행한 연구에서는 욕설을 사용한 33명의 실험 참가자들의 플랭크 유지 시간이 12%, 벽 스쿼트(wall sit) 버티기 시간은 22% 증가했다. doi: 10.3389/fpsyg.2024.1445175
그의 핵심 이론은 ‘상태 탈억제(state disinhibition)’였다. 즉, 욕설이 평소 사회 규범을 지키느라 억누르던 상태를 일시적으로 깨뜨리면서 내적 심리의 장벽을 낮춘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를 20세기에 활동한 생물심리학자 제프리 앨런 그레이의 ‘행동 억제 체계(BIS)’와 ‘행동 활성화 체계(BAS)’ 이론으로 설명했다.
사람에게는 BIS와 BAS가 상존한다. 흔히 내향적인 사람은 충동적인 행동을 억제하는 BIS가 높다. 반대로 BAS가 높으면 사회적인 활동이 늘어난다. 욕설은 충동과 억제를 다루는 이 둘의 균형을 깨뜨린다. 욕설이 BIS를 약화시키면 BAS가 우세해진다는 것이다. BAS는 눈앞의 목표(이번엔 평소보다 더 무겁게 들어보자)에만 집중시키고, 사회적 걱정(욕하면 주변 사람들이 안 좋게 생각할 텐데)을 억제한다. 욕설을 하면 행동 지향적으로 바뀌는 셈이다.
스티븐스 교수는 통계 분석과 심리 검사 결과에서 욕설을 한 집단은 욕설 전보다 심리 상태, 자신감, 주의 집중도가 모두 높아져 14%의 운동 상승 효과가 있었음을 알아냈다. 욕설이 다른 생각을 차단하고 운동에 집중하게 만든 것이다. 스티븐스 교수는 “많은 상황에서 사람들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자신의 전체 힘을 억제한다”며 “욕설은 이 억제를 푸는 즉각적인 방법”이라고 논문에서 설명했다. doi: 10.1177/17470218221082657
욕설, 자신감 불어넣어 신체 능력 끌어올린다
리처드 스티븐스 영국 키일대 심리학과 교수팀은 2022년 욕설 전후로 심리가 어떻게 변하는지 설문 조사와 측정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 먼저 욕설을 한 뒤 중립 단어를 말하거나 그 순서를 반대로 바꿔서 말했다. 그 결과, 순서에 관계없이 욕설은 유머 감각, 자신감, 주의력 등을 상승시켰다. 흰 점은 욕설 조건, 색깔 점은 중립 단어 조건을 나타낸다.

뇌가 욕설에 열렬히 반응하는 이유, ‘쾌감’
욕설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은 단순한 심리적 작용을 넘어선다. 뇌과학자들은 욕설이 뇌의 특정 영역을 활성화시키며, 이 과정에서 신경화학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2009년 미국의 신경과학자 티머시 제이의 연구에 따르면, 욕설은 뇌의 변연계, 특히 편도체를 강하게 자극한다. 편도체는 공포, 분노, 흥분 같은 원초적 감정을 처리하는 부위다. 일반적인 단어가 좌뇌의 언어 중추인 브로카 영역과 베르니케 영역에서 처리되는 것과 달리, 욕설은 우뇌와 변연계를 동시에 활성화시킨다. doi: 10.1111/j.1745-6924.2009.01115.x
이후 스티븐스 교수는 2018년 fMRI(기능적 자기공명영상) 연구를 통해 욕설이 뇌의 보상 회로도 활성화시킨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욕설을 내뱉은 직후 도파민이 분비되면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는 욕설이 고통을 견디게 할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쾌감까지 제공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신경과학자 엠마 번은 저서 ‘욕설은 당신에게 쓸모 있다’에서 욕설의 진화적 기원을 추적하기도 했다. 그는 “욕설은 신체적 공격을 대체하는 언어적 무기로 진화했다”며 “주먹질 대신 욕설을 내뱉음으로써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사회적 갈등을 덜 파괴적인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박동현
욕설의 효험(?)을 확인하기 위해 기자가 직접 신촌의 한 오락실에서 펀치머신 점수를 비교했다.
욕설 전 중립 단어를 말하며 내려친 기록은 999점 만점에 812점, 욕설을 내뱉으며 펀치머신을 내려친 기록은 878점(!)으로 점수가 유의미하게 상승했다.
욕설의 ‘이상적’ 사용법
단, 욕설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바로 ‘평소에 욕을 아껴 써야 한다’는 것이다. 스티븐스 교수의 2011년 연구에 따르면, 하루에 욕설을 60번 이상 하는 소위 ‘입이 험한’ 사람들에게서는 욕설의 통증 완화 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뇌가 욕설이라는 자극에 익숙해져 내성이 생겨버린 탓이다. 즉, 욕설이 ‘금기’로서의 힘을 잃는 순간, 신체 성능을 끌어올리는 욕설의 마법도 사라지고 만다.
스티븐스 교수는 그의 책 ‘검은 양: 나쁘게 구는 것의 숨겨진 이득’에서도 “욕설은 저렴하고 누구나 쓸 수 있는 강력한 심리 개입 도구”라고 설명하며, 결정적인 순간에만 욕설을 전략적으로 사용할 것을 권장한다. 헬스장에서 근 성장을 위한 마지막 한 세트를 앞두고 있거나, 도저히 참기 힘든 통증이 찾아온 순간에만 꺼내야 하는 ‘최후의 보루’가 욕설인 셈이다.
오늘도 헬스장에서 바벨과 사투를 벌이며 속으로 짧은 욕 한마디를 뱉은 당신, 앞으로는 너무 자책하진 말길. 그 순간만큼은 당신의 뇌가 사회적 억제를 풀고, 온몸의 에너지를 쥐어짜 당신의 근 성장을 돕고 있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단, 마음속으로 외치거나 아주 작게 읊조리는 식으로 공중도덕을 지킨다는 전제가 필요할 테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