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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SF소설] 한여름의 투명도감 2장 “오래된 새들과 침묵하는 도마뱀의 밤”

▲Midjourney, 라헌

 

편집자 주
과학동아 창간 40주년을 맞아 2026년 상반기, 짐리원 작가의 중편 SF 소설 ‘한여름의 투명 도감’을 연재합니다. 재건축을 앞둔 서울의 아파트 단지에서 투명한 생물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과학이 반드시 바라봐야 할 생명의 섬세함을 SF로 확장합니다.

 

선풍기 소리와 바람 소리에 전자 피아노의 울림이 섞여 들었다. 음악은 잘 모르는 모아가 듣기에도 딱히 굉장한 연주는 아니었지만(일단, 젓가락 행진곡이 세 번 정도 들렸다), 이 음악이 어떤 변화를 일으켰다. 이무기는 완전히 잠들지는 않고 때때로 눈을 뜨며 그릉거렸다. 하지만 이 옥상 속 평화의 농도는 조금 전에 비해 꽤 높아졌다. 결국 평화란 고통이나 걱정과는 무관한 상태일지도 모른다.
이무기 머리에 제 머리를 부비던 작은 새는 이제 이무기 주둥이 아래쪽에 몸을 들이밀고 있었다. 어쨌든 머리를 맞대려는 듯이 말이다. 둘이 제대로 맞대기에는 머리 크기의 차이가 너무 컸지만. 새의 머리 무게에 밀린 주둥이가 조금 구겨졌다. 주둥이 끝이나 혀, 눈 같은 부분은 말랑말랑한 모양이었다. 동시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사람들 쪽으로 놓인 이무기의 한쪽 눈이 피아노 뒤에 뜬 달 같았다. 감으면 감은 대로 뜨면 뜬 대로. 문득 모아는 거대하다는 것이 얼마나 외로운 일인지 생각했다. 아주 거대한 눈을 가졌다는 것이 얼마나 외로운 일일지. 세상을 만지기 위해 만들어진 까끌거리고 말랑대는 것들.
 
모아는 잠시만 더 이대로 구석에 조용히 앉아 있다가 내려갈 생각이었다. 모아를 제외한 사람들은 이 옥상에서 모두 할 일이 있는 것 같았으므로. 중간중간 손목을 주무르며 피아노를 치든, 목의 땀을 닦으며 부채를 부치든, 부드러운 수건을 양동이에 계속 빨고 식혀서 이무기 머리를 닦아주든 말이다. 모아는 자기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곧바로 잘 빠져나오곤 했다. 학교에서도. ‘아닌 것 같으면 빠지자. 조용히 있다가 그냥 집에 오자.’ 모아의 생존 전략이자 모토였다.
“아야야!” 
모아의 계획은 몸을 일으키자마자 틀어졌다. 일어서자 다리에 전기가 흘러서 소리를 내고 말았다. 이무기 머리 옆에 세상 편한 자리를 잡았던 새가 반가운지 “꾸응” 소리를 내며 뒤뚱뒤뚱 옥상을 가로질러 달려왔다.
“아이고, 심씨 할머니네 꾸엥이 아냐.”
모아 가까운 자리에서 물수건과 풀 더미를 정리하던 미화원 아주머니가 말했다. 새는 진짜 “꾸엥꾸엥” 거리면서 모아의 무릎에 올라올 기세였다.
“얘 아까부터 배고픈 것 같던데… 괜찮은 것 맞아요? 그게, 508호에 아무도 안 계신 것 같아서…”
존재감 없이 머물다 내려갈 계획이었던 탓에 물을까 말까 망설였지만 모아는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했다. 작은 키에 웃는 상의 아주머니는 조금 슬픈 얼굴로 말했다.
“심씨 할머니, 요양원 가셨지. 지난 달에. 거동을 못하게 되셔서 자식들이 모셨다고 했어.”
“그럼 얘들은… 얘 말고도 엄청 많았거든요.”
“아이고, 걔네는 걱정 말아요.”
하지만 아주머니는 어쩐지 기쁜 표정이었다. 모아가 새들을 걱정해줬다고 생각해서 그런 걸까. 아주머니는 심씨 할머니가 요양원에 들어갔지만 그 집은 일부러 팔지 않았다고 했다. 새들이 계속 쓸 수 있도록. 요 며칠 이쪽 일로 바빠서 다들 못 들여다봤는데 곧 청소도 한 번 할 예정이라고 알려줬다.
“특히 얘는 아주 유명해. 여기 올라와서 하루에 세 번씩 꼬박꼬박 얻어먹고 가거든. 배가 고플래야 고플 수가 없어.”
아주머니는 모아 무릎의 새를 가리키며 말했다. 모아는 알 수 없는 배신감을 느꼈다. 낮에 밥을 줄 때는 꼼짝없이 며칠은 굶은 모양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진짜 굶지는 않았다니 물론 다행이었지만…
 
무릎에 머리를 비비던 새가 고개를 들기에, 모아도 따라서 고개를 드니 친절한 사람이 다가와 있었다. 그는 새 머리부터 몇 번 쓰다듬었다. 어느 틈에 퇴역군인 아저씨도 와서 새를 쳐다보았다.
“큰일이야, 큰일. 혼양아파트 이무기도 아주 시들시들해서 잘못하면 올해 못 넘길 것 같다던데. 앞으로 어떻게 될는지 모르겠네.”
“여기는 그래도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다행이죠.” 친절한 사람이 말했다. 그는 선 채로 고개를 숙이고 새와 거의 머리를 맞대면서 쓰다듬었다.
“무슨 소리입니까. 노아 씨가 제일 고생이 많지.”
‘이름이 노아였구나.’ 모아는 생각했다. 아저씨가 말을 이었다.
“혼자 고생 많으시지요. 같이 다니던 분도 요즘 안 보이시던데. 그 머리 물들이시고 성격 밝은 여자분…”
“얘네는 여전하네요.” 
노아는 딴소리를 했다. 모아 생각에는 아무래도 말을 돌리려는 것 같았지만, 아저씨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세상이 참 많이 변했어. 원래는 이런 데서 내려다보면 이무기가 지천이었는데.”
“사람도 못 살겠는데 얘네가 어떻게 살겠어. 그래도 데려가 주겠다는 곳이 있으니 다행이지. 아저씨는 담쟁이 없으면 심심해서 어쩌시려나.” 미화원 아주머니가 끼어들었다.
“아니, 뭐 나야 다 늙었고…. 이 돈도 안 될 텐데 이 큰 걸 데려가 주겠다는 그분들이 고맙지. 더바이건설이랬나. 참된 기업이야.”
조명 때문인지 노아의 얼굴이 어두워진 것 같다고 모아는 생각했다. 이내 둘의 눈이 마주쳤다. 새는 노아 손가락을 살살 깨물고 있었다. 노아는 아프지도 않은지 손을 피하지 않고 새를 그대로 천천히 쓰다듬었다.
“아니 그분들은 언제 온다셔? 솔직히 며칠을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 내일도 거의 열대야 같던데.” 아주머니가 말했다. 
이무기가 다시 낮은 울음을 내며 뒤척였다.

“여기, 좀 도와주세요!” 이무기의 몸을 식힐 물 양동이들을 들고 온 사람들이 외쳤다. 곧바로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그쪽으로 달려갔다. 노아는 따라가지 않았다. 모아가 의아하게 바라봤지만 그림자가 군데군데 번지는 흐린 조명이 노아의 표정을 감췄다. 
“보인 지 얼마 안 됐죠?” 노아가 물었다. 
“네…?” 모아가 되물었다. 
노아는 턱 끝으로 옥상 위의 존재들을 가리켰다. ‘다 알면서 왜 그래’의 표정이었다. 
“많이 놀랐어요?”
“어? 아니 놀랐다기보다… 시끄러웠죠.”
모아가 솔직하게 말했다. 노아는 눈썹을 조금 들어 올리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파하하!”하는 폭소였다.
“시끄럽다고? 그렇죠. 시끄럽긴 하지.”
“진짜 시끄러운데… 맨날 이래요?”
모아는 우물거렸다. 모아는 노아가 왜 웃는지 몰랐지만 그 소리가 싫지 않았다.
“새 소리라면 항상 이 정도는 아니고, 지금은 담쟁이가 아파서 같이 더 그러는 거. 당고새는 의외로 사회적인 동물이거든요. 매미 소리를 말하는 거라면, 원래 좀 그래요. 이 동네 사는 게 우주매미라.”
“우주매미요?”
“응, 투명매미 중에서도 좀 극성인 종인데… 그러고 보니 소개도 안 했네. 이름 모르죠? 얘는 꾸엥. 얘는 담쟁이.”
노아가 새와 이무기를 차례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무기가 마침 눈을 꿈뻑 뜨고 살짝 모아 쪽을 쳐다봐서, 정식으로 소개받은 기분이었다. 노아 말에 따르면 모아가 도마뱀이라고 착각했던 것의 이름은 담쟁이고, 종은 투명이무기라는 것이었다. 투명이무기는 또 투명이무기 속에 속했고, 투명이무기 속은… 반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노아는 계속 이것저것 말했다. 투명생태계는 불투명생태계와 거의 같은 시기에 혹은 그보다 먼저 지구에 출현했는데, 지금은 거의 멸종됐고 투명이무기는 마지막 대형 투명동물들 중 하나라는 얘기. 원래는 오래된 나무에 붙어서 살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1970~80년대에 지어진 서울 아파트들에서 번식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어찌저찌 살아남았다는 얘기. 대형 투명동물은 대형 불투명동물들과 마찬가지로 가장 심각한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는 얘기. 
아, 당고새는 예외였다. 당고새는 워낙 생존력이 좋아서 아직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되지 않은 거의 유일한 투명동물이었다, 모아가 낮에 만난 새들이 그 당고새였다. 게다가 꾸엥은 당고새 중에도 친화력이 좋은 편이라나.
문득 모아는 멸종 위기에 처하지 않은 동물들과 함께, 아니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이 없는 세상에서 사는 기분은 어떨지 궁금했다. 하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되는데요?”
모아의 질문에 노아는 “음…”이라고만 했다. 밤하늘에 겹친 담쟁이의 실루엣은 아무리 봐도 별자리 같았다. 그 사이로 투명한 몸에서 삐져나온 수염인지 덩굴인지 모를 것이 습한 바람에 조용히 흔들렸다.
 
그날 밤 노아와 다시 얘기할 기회는 없었다. 모아는 집에서 전화가 오면 내려갈 생각이었지만 엄마는 그날따라 많이 늦는 것 같았다. 아니면 모아가 잔다고 생각해서 모아 방문을 열어보지 않은 채 안방에 들어갔을지도 몰랐다. 어쨌든 어둠과 빛이 교차하고 가짜 바람이 진짜 바람을 대체하는 옥상 위에 왜 그대로 남아 있었는지는 모아 자신도 몰랐다. 아무도 잡지 않았는데, 딱히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밤 열 시가 넘어서도 옥상에서 보이는 우주는 진짜 밤의 색으로 가라앉지 않았고, 온도가 정말 서늘해지지도 않았다. 공업용 선풍기는 계속 돌아가는데 그 바람이 진짜 바람을 불러오지는 못했다. 옥상 바깥에서 갑자기 불어온 바람이 몇 번인가 모아를 뒤돌아보게 만들었지만, 그뿐이었다. 어떻게든 온도를 더 내려보려는 생각이었는지 경비 아저씨가 옥상의 불을 하나씩 껐다. 나중에는 모든 조명이 내려갔다.
그르렁과 드르렁 중간쯤에서 이무기가 뒤척이는 소리가 멀리 뒤척이는 파도처럼 퍼졌다. 바다가 몇 블럭 너머로 다가온 것처럼. 모든 땅이 결국 바다와 이어진 것처럼. 이무기 소리가 커질 때마다 꾸르르륵 하는 당고새의 소리가 화답했다. 작은 새가 이무기의 비늘 사이에서 자세를 바꿀 때는 뽀득뽀득 소리도 들렸다. 불편하고 고요한 밤이었다.
아직 데이터가 많이 남았으니 평소처럼 숏츠를 볼 수도 있었겠지만 몇 번 화면을 넘기다 말고 모아는 폰을 접었다. 폰 안의 세상이 오늘따라 시끄럽고 어지러웠다. 하늘을 이렇게 오래 본 것도 오랜만이었다. 도시의 밤하늘은 완전한 검은 색이 결코 되지 않았다. 하지만 어둡지 않은 것은 아니고 보라색, 푸른색, 바다색 사이의 어딘가에서 일렁였다. 마냥 새벽의 경계에 머무르는 듯도 했다. 사바티엘팰리스 건물은 보라색으로 반짝였다. 몸을 감싼 답답한 더위와 눈에 비치는 건물의 시원한 아름다움의 온도 차이가 너무 컸다.
노아는 모아가 고개를 들 때마다 다른 곳에 있었다. 이무기의 수염을 빗듯이 만져주다가, 비늘을 토닥이다가, 붙은 풀잎을 떼어주다가. 지금은 휴대폰을 한 손에 든 채 옥상 난간에 몸을 기대고 있다. 하얀 별밭처럼 펼쳐진 도시를 등지고 선 노아의 실루엣이 유난히 선명했다.
 
“구륵꾸륵꾸륵.”
모아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꾸엥이었다. 꾸엥은 이무기의 몸 사이에 숨어서 실루엣이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소리만으로도 꾸엥이 긴장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소리는 내는 건 꾸엥만이 아니었다. 꾸엥의 구륵 소리 사이로 옥상 바깥의 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처음에는 고양이 소리인 줄 알았는데, “구륵꾸륵꾸륵” 소리였다. 중간중간 사람의 고함 소리도 들렸다. 비현실적인 총천연색으로 빛나는 사바티엘팰리스 쪽이었다.
옥상의 모든 사람이 어느새 난간 쪽에 늘어서서 이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군인 아저씨는 사바티엘팰리스 쪽 난간의 가장자리까지 가서 이마에 손을 대고 내려다보았고, 노아도 옥상을 가로질러 서성대며 전화를 걸었다. 수신음이 좀처럼 멎지 않았다. 노아와 아저씨는 몇 번인가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었고, 아저씨는 심각하게 고개를 저었다. 노아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노아가 한참 만에 옥상에 돌아왔을 때는 자정이 지난 후였다.
“10톤 트럭 진입 가능하냐는데요. 바로 요 앞이라고.”
노아는 반짝이는 휴대폰을 손으로 막고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요 앞? 크레인이 온 거예요?”
모아와 미화원 아주머니 옆에 앉아 있던 경비 아저씨가 몸을 일으키며 되물었다. 노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더 설명했다. 모아가 전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아무래도 담쟁이 상태가 좋지 않고 가을까지 버틴다고 보장할 수 없다고 했더니 그러면 지금 와서 바로 인수받겠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어느새 옆에 와 있던 군인 아저씨는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노아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했고, 노아는 손사래를 쳤다. 미화원 아주머니도 노아 쪽을 보며 말했다.
“투명우산에는 오랫동안 정말 고마워. 산하 씨한테도 고맙다고 전해줘요. 진짜 요즘 안 보이던데…”
노아는 웃기만 했다.
“이제 투명우산이 아니라 더바이건설이죠.”
“그럼 우리는 이제 뭘 하면 되나? 기다려서 그래도 보고 가?”
“그러실 필요 없어요. 자리 비워주는 편이 작업하기 편할 거고…”
노아는 모아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내일부터는 모아도 더 편하게 잘 수 있을 거라며, 그대로 떠났다. 벗어두었던 남방을 챙기고 옆으로 메는 가방에 여러 가지 짐을 넣더니, 이무기 팔을 슥슥 쓰다듬은 뒤에 옥상 문 너머로 사라졌다. 경비 아저씨도 함께였다.
옥상 문을 닫기 전 그들은 이무기를 돌아보았다. 미화원 아주머니가 손을 흔들었다. 밤새 피아노로 지친 손을 주무르던 약사 아저씨도 입속으로 뭐라고 작별 인사를 했다. 선풍기는 일부러 틀어두고 가는 거라고 했다. 그런데도 뭔가 잊어버린 듯, 끝인데 끝나지 않은 듯, 기분이 찜찜했다.
 
엘리베이터 패널을 보니 8층에서 7층으로, 7층에서 6층으로 내려갔다. 어른들은 엘리베이터가 내려갔다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대신 푸른 계단통을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애초에 비현실적인 밤이라서 그런지 10층을 걸어 내려가도 딱히 비현실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어른들은 계단을 앞장서서 내려가면서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었다.
“어디로 가는 건지는 안답니까? 막상 간다니까 마음이 또 그렇네.”
“어디서 잘 돌봐주겠죠. 대기업은 다르더라니까. 에버랜드 판다들 봐요. 몇 년을 살면서 새끼를 몇 마리째 낳아. 그것도 다 행복하니까 그렇게 되는 거겠지.”
“눈이라도 붙이세요. 얼른 들어가셔서.”
 
1층 현관에 가장 늦게 내려온 건 모아였다. 모아는 1층까지 내려온 뒤에야 자신이 굳이 1층까지 내려올 필요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구축 아파트의 현관은 앞뒤로 열려 있었다. 아파트 뒤에서는 트럭 들어오는 소리와 사다리차 같은 것이 올라가는 소리, 경비 아저씨가 뭐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현관 앞쪽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맞은편 아파트로 가려진 도로 위로 간간히 차들이 밤공기를 스치는 소리만 들렸다. 며칠 만에 처음으로 구륵구륵에 시달리지 않는 고요였다.
‘잠깐.’ 모아는 생각했다. 
‘꾸엥은 어디 있지?’ 꾸엥 데리고 내려온 사람이 있나 모아는 물어보려고 했지만 어른들은 이미 어둠 속으로 조용히 흩어진 뒤였다. 모아는 피곤했다. 알아서 갔겠지 싶었다. 모아가 못 봤을 뿐 옥상 문 닫히기 전에 쪼르르 따라 나왔거나 누가 데리고 내려왔을 것이었다. 모아는 엄마 몰래 집으로 들어갈 방법을 궁리하며 엘리베이터를 기다렸지만, 언제 거길 올라갔는지 엘리베이터는 10층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눈 감은 우편함들과 듬성듬성한 기둥들이 시킨 것도 아닌데, 모아의 생각은 점점 이상한 쪽으로 흘렀다. 어떻게든 나갔겠거니 아무리 생각해도 꾸엥의 짧은 발이 문 사이로 따라 나오는 것을 본 기억이 없었다. 계단을 내려오는 누군가의 품에 안겨 있었던 것 같지도 않았다. 모두 양동이니 대걸레니 가방을 바리바리 싸 들고 있었으므로. 오히려 마지막까지 담쟁이의 품 안에서 자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설마, 누가 챙겼겠지.’ 모아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하지만 모두 꾸엥을 잊은 것만 같은 불길한 느낌이 자꾸 들었다. 결국 ‘에이, 잠깐인데 그냥 확인하고 오자’ 싶었다. 별로 힘든 일도 아닌데, 계속 신경 쓰일 바에야. 어차피 이미 피곤했고 말이다. 내일 원격 수업은 화면 끄고 책상 앞에서 졸면 될 일이었다.
 
한 손으로 난간을 붙잡고 헉헉대며 10층에 도착해서야, 모아는 엘리베이터가 그곳에 멈춰 있던 이유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열린 상태로 고정된 엘리베이터 안에는 빨간 카트가 테트리스처럼 들어차 있었다. 평소에 반의 반도 차는 일이 없는 엘리베이터 가득 가득 짐이 차 있었다. 옥상 문도 활짝 열린 채 고정되어 있었고, 두 개의 문 사이를 빨간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바쁘게 오갔다.
모아는 계단 아래에 가만히 있었다. 계단 아래 그림자에 몸을 숨긴 모아를 아무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모아에게는 들렸다. 카트가 굴러가고 크레인이 올라가고 거대한 장치가 설치되고 인간 다리가 척척 움직이는 소리 사이로, “어이어이” “오른쪽으로” 하는 고함 사이로, 당고새의 망설이는 듯한 울음이. 
꾸엥과 모아 사이를 가로막는 벽들과 다른 소음이 모두 투명해진 것처럼, 걱정 섞인 “꾸르릉” 소리만 선명했다. 담쟁이는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마지막 카트가 엘리베이터에서 실려 나간 뒤 모아는 소리 없이 계단을 마저 올랐다. 발소리를 냈더라도 밖에서 들리는 공사 현장 같은 소음에 묻혔을 테지만 말이다.
옥상은 그새 엉망진창이었다. 옥상 전체에 정교한 패턴을 그리며 흩어졌던 전깃줄은 엉망으로 밟혔고, 선풍기들도 쓰러져 있었다. 피아노 건반 위에는 공구 상자 같은 것을 놓아서 여섯 건반을 억지로 함께 누른 듯한 불협화음까지 들렸다. 공구 상자는 작업복과 같은 짙은 빨간색이었고 커다란 검은색으로 한자가 쓰여 있었다. 뒷글자는 한자를 거의 모르는 모아도 읽을 수 있었다. 불 화(火).
하지만 지상의 혼란은 허공에서 벌어지는 광경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진짜 뱃사람처럼 소리쳤다, 만약 이것이 배라면 아까 노아가 몰던 배와는 아주 다른 배였다. 담쟁이의 머리는 이미 하늘을 향해 들어 올려져 있었다. 눈 대신 거대한 턱만 보였다. 짧은 팔 한 짝이 공중을 헛발질하고 있었지만 다른 한 짝은 옥상 난간을 꽉 잡고 놓지 않은 채였다. 
길고 투명한 몸의 구석구석이 낚싯줄 같은 선으로 거칠게 감겨 있었다. 크레인은 거미줄 같은 구조를 이용해서 이무기를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이무기가 조금 움직일 때마다(그것이 무릎반사인지 고통이나 거부를 표현하는 버둥거림인지 모아는 구분할 수 없었다.) 비늘이 옥상 위로 후두둑 떨어졌다. 줄은 이무기의 온몸을 파고 들며, 구부러지는 부분마다 단단히 묶었다.

옥상 난간을 잡은 발 때문에 이무기가 완전히 들어 올려지지 않는 것이 문제인 듯했다. 머리는 이미 크레인이 억지로 떼어낸 뒤였지만 여전히 굴뚝 가까이에서 까딱까딱했다. 마치 원래 자리로 돌아오려는 듯, 오랫동안 붙어 있던 그곳이 자기 자리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어린아이의 고집 같기도 했고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감정 같기도 했다.
난간 옆에서 꾸엥이 낑낑거렸다. 꾸엥은 안절부절 못하다가 작업복을 입은 사람과 부딪혔고 그 사람은 꾸엥을 시원하게 걷어찼다. 아무 망설임 없이, 마치 축구공이나 안 열리는 문을 걷어차는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모아는 너무 놀라서 소리도 지를 수 없었다. 꾸엥은 몇 번 구르더니 푸드득하며 다시 담쟁이 곁으로 도망갔다.
“잠깐만요!”
모아는 결심하고 뛰어나갔다. 하지만 모아의 용기는 아무 것도 바꾸지 못했다. 가장 가까이 있던 남자가 흘끗 돌아봤지만 그뿐이었다. 대부분은 듣지도 못한 듯했다. 아니면 듣거나 못 듣거나 아무 상관 없었거나.
“팀장님, 갑니다!”
“들어 올려!”
옥상 난간에 붙어 있던 발이 뜯기듯 잡아 올려졌다.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이무기 몸의 나머지 부분이 드드득 소리를 내면서 아파트에서 떨어져 나갔다. 투명 초록색 비늘인지 꼬리인지 갈기인지 모를 것들이 공중에 흩날렸다. 이무기의 몸에서 떨어져서 천천히 아래로 향했다. 엄마가 수능 끝나고 옥상에서 찢었다는 교과서 조각처럼, 나뭇잎처럼. 특수 크레인은 그대로 움직이며 레고처럼 복잡하게 접혔고, 거대한 몸이 비틀렸다. 여전히 담쟁이 발 근처를 맴돌던 꾸엥의 날개가 줄에 걸린 것도 아마 그때였을 것이다. 푸드득하는 놀란 날갯짓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모아는 마치 투명인간이 된 것만 같았다.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시끄럽게 다시 트럭으로 돌아가는 장비들과 인력 속에서 누구도 모아의 말이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이 작업자들이 밀치지 않으면 모아도 투명한 존재나 다름없었다. 엘리베이터도 멍하니 선 모아를 무시하듯 필요한 짐을 빈틈없이 싣고 닫혔다. 

 


짐리원
‘올림픽공원 산책지침’으로 2023년 제3회 문윤성 SF 문학상 중단편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고, 과학동아 2024년 8월호에 ‘기억과 사회’를 기고했다. 기후 변화와 환경 오염, 서울에 대해 계속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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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짐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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