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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파트라는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혼혈이었고,
‘음악의 아버지’ 바흐는 머리숱이 적은 인상파였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인물의 얼굴을 복원하는 연구가 최근 세계적으로 활발하다.
초상화도 남아 있지 않은 클레오파트라의 얼굴은 어떻게 복원했을까?
과학과 예술의 결합으로 불리는 얼굴복원 기술의 세계를 소개한다.

까무잡잡한 피부, 낮은 이마, 조금은 넓어 보이는 눈 사이 거리, 얼굴 길이에 비해 길고 아래로 향한 코, 좁은 인중, 두터운 아랫입술 그리고 갸름한 턱. 이 얼굴이 정녕 2000년 전 뛰어난 미모로 지중해의 정치를 쥐락펴락했다는 클레오파트라란 말인가.

지난해 12월 영국 케임브리지대 고고학자이자 이집트연구가인 샐리 애쉬턴 박사는 클레오파트라의 얼굴을 복원한 결과 영화 속에서 그녀를 연기했던 백인 미녀의 표상이라 할 수 있는 엘리자베스 테일러나 소피아 로렌의 모습이 아니라는 결과를 밝혀냈다.

까무잡잡한 피부의 클레오파트라
애쉬턴 박사에 따르면 그는 그간 클레오파트라에 관해 연구된 역사적 자료와 미술품, 장신구들을 1년에 걸쳐 종합적으로 재분석한 뒤 컴퓨터를 이용해 3차원으로 클레오파트라의 얼굴을 재현했다.

애쉬턴 박사의 연구 결과 중 주목할 점은 클레오파트라 조상의 삶과 이주 경로를 추적해보니 그녀가 순수한 그리스 왕족 혈통의 백인이라기보다는 이집트인과 혼혈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추정이다. 그리고 클레오파트라나 당시 다른 이집트 미인을 묘사한 조각품들과 그들이 즐겨 사용한 장신구들을 살펴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백인 미녀의 모습과는 상당히 달랐을 것이라는 점이다.

사실 클레오파트라의 경우 초상화나 머리뼈가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애쉬턴 박사가 재현한 그녀의 얼굴이 실재와 얼마나 닮았는지 객관적으로 증명할 방법은 현재로선 없다. 하지만 과연 애쉬턴 박사가 복원한 얼굴과 우리가 지금까지 상상하고 영화로 익히 봐온 얼굴 중 어느 쪽이 클레오파트라의 실물에 더 가까울지는 잘 알려진 몇 가지 기록과 고대인과 현대인 사이의 얼굴 형태 변화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유추할 수 있다.

그 한 가지 예가 클레오파트라의 코다. 프랑스 철학자 파스칼은 “만약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짧았더라면 지구의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 말을 다른 각도로 해석하면 과학적이고 심미적으로 봤을 때 긴 편에 속하는 클레오파트라의 코 때문에 남자들을 완전히 사로잡기에 실패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또 당시 사람들을 묘사한 미술품을 보더라도 클레오파트라뿐 아니라 그 지역 여인들의 콧등과 이마는 거의 일직선으로 연결돼 상당히 길었던 것으로 보인다.

굳이 현대적인 기준으로 따지자면 클레오파트라가 살던 당시 나일강 하류 지역 고대 이집트인은 아프리카 흑인과 아랍계 백인의 혼혈에 가깝다. 여기에 키는 다소 작고 길고 좁은 얼굴뼈에 곱슬머리를 가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클레오파트라를 150cm의 작은 키에 약간 통통했다고 묘사한 역사서나 미술품 연구 결과와도 일치한다.

현재 백인 여성 대부분의 코는 오뚝하고 코끝이 위로 향해있는데, 이는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대뇌 전두엽이 발달하면서 앞이마가 튀어나오고 이로 인해 코가 짧아지기 시작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애쉬턴 박사가 복원한 클레오파트라의 모습이 실재에 좀 더 가깝지 않을까 추정되는 근거다.

바흐는 머리숱 적고 짧은 백발
지난해 2월에는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독일 작곡가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얼굴도 복원됐다. 캐롤라인 윌킨슨 박사가 이끄는 영국 던디대 법의학 얼굴복원팀은 바흐의 유품을 소장하는 박물관인 바흐하우스의 요청으로 바흐의 얼굴을 재현했다. 이 팀은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2세의 두상을 만들어 화제를 불러일으킨 적도 있다.

그런데 복원 방법에서 바흐와 클레오파트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바흐의 얼굴은 그의 얼굴뼈를 바탕으로 복원됐다. 정확히 말하면 바흐의 실제 얼굴뼈를 복원한 청동상이 사용됐다. 윌킨슨 박사는 컴퓨터 3D 프로그램을 이용해 바흐하우스에 보관돼온 바흐의 두개골 청동상에 살과 피부를 붙이는 식으로 그의 얼굴을 재현했다. 그 결과 바흐의 사망 당시 나이인 65세를 가정해 복원한 얼굴은 머리숱이 적고 짧은 백발이었다. 윌킨슨 박사팀이 바흐의 머리를 짧게 복원한 이유는 바흐가 살았을 당시 물로 전파되는 역병을 걱정해 머리 감는 것을 극도로 꺼리면서 짧게 잘랐을 것으로 추정했기 때문이다.

또 윌킨슨 박사팀은 바흐하우스에서 제공받은 바흐의 기록물과 바흐의 눈꺼풀이 아래로 처져 눈을 괴롭혔다는 의료기록도 제공받아 얼굴을 복원하는 데 이용했다. 이 때문에 복원된 바흐의 눈 부위를 자세히 보면 눈꺼풀이 아래로 많이 처져 있다.

바흐는 생전에 초상화를 위해 단 한 차례 포즈를 취했다고 알려졌는데, 이렇게 탄생한 18세기 바흐의 초상화는 가발을 쓰고 인자한 표정을 하고 있다. 하지만 윌킨슨 박사팀이 복원한 얼굴은 초상화에 비해 통통하면서도 다소 완고하고 근엄한 모습이다.

이 결과에 대해 바흐하우스 외르크 한젠 관장은 “생전에 바흐는 건장한 체격이었고 춤추고 노래까지 부르는 활동적인 성격이었다”면서 “실제 바흐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초상화보다 더 친근감이 간다”고 평가했다.

얼굴뼈에 피부 붙이고 예술가의 손길 더해야
그렇다면 얼굴복원은 어떻게 이뤄지는 걸까. 클레오파트라처럼 얼굴뼈가 존재하지 않아도 역사적 기록이나 유물을 통해 얼굴을 복원할 순 있다. 하지만 대개 얼굴복원에서 가장 기본이 되고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것은 얼굴뼈다.

그리스 로마시대 의학자인 갈렌은 뼈와 살의 관계를 이렇게 설파했다.
“뼈와 모든 생명체의 관계는 마치 지지대와 천막 그리고 벽과 집의 관계처럼 뼈에 의해 그 생명체가 눈에 보이는 모습을 띠게 되고 또 변하게 된다.”

갈렌의 이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눈, 코, 입이라는 동일한 얼굴 구성요소를 가진 사람들이 각자 고유한 생김새를 가지게 된 데는 바로 얼굴뼈라는 기본틀이 다양하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지극히 상식적으로 들리는 이 사실이 얼굴복원의 기본원리다.

예를 들어 백인은 깊은 눈과 높은 콧날을, 흑인은 펑퍼짐한 콧방울과 튀어나온 입술을, 한국인을 비롯한 황인종은 넓적한 얼굴 같은 고유한 얼굴뼈를 가진다. 그래서 얼굴뼈만 갖고 인종을 추정할 수 있다. 또 치아로는 나이나 입술 두께를, 눈두덩 뼈로는 눈의 돌출 정도나 쌍꺼풀 형태를 예측할 수 있다.

물론 이 예측이 100% 확실한 것은 아니다. 얼굴뼈가 외형을 규정하긴 하지만 예외인 경우가 많다. 가령 영화배우 장동건의 경우 얼굴뼈로만 인종을 추정한다면 아무리 뛰어난 법의학자라도 아시아인이나 한국인으로 예측하기 매우 어렵다. 그의 깊은 눈과 높게 솟은 콧날을 보라!

얼굴복원은 얼굴뼈라는 이 기본틀에 피부를 적절히 입히는 일부터 시작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피부를 어느 위치에 어떤 두께로 입히느냐는 것이다. 현재 얼굴복원 전문가들은 눈이나 볼, 턱 같은 주요 해부학적 지점 20~30곳에 평균피부두께 데이터를 참조해 피부를 입히는 방식을 많이 사용한다. 성별, 나이 그리고 비만도에 따라 평균피부두께를 결정하고, 사전에 얼굴뼈 분석으로 추정한 인종과 연령을 고려해 얼굴을 복원한다.

이 작업이 끝나면 컴퓨터를 이용하거나 찰흙 같은 재료를 사용해 수작업으로 얼굴을 재현하면 된다. 그리고 어느 방법이 됐든 최종적으로 마무리할 때 예술가의 직관력과 섬세한 손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해부학적인 지식도 중요하다. 얼굴 복원을 과학과 예술이 만나는 제3의 학문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바흐의 얼굴복원 과정
캐롤라인 윌킨슨 박사는 바흐의 실제 얼굴뼈를 복원한 청동상을 토대로 컴퓨터에서 그의 얼굴을 복원했다.

최후의 신원확인 방법
사실 얼굴복원 기술의 궁극적인 목적은 발견된 유골의 얼굴을 재현해 신원을 확인하는 일이다. DNA 대조나 치아 분석, 현장에 남겨진 지문 감식처럼 법의학적으로 동원 가능한 신원확인 방법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 마지막으로 사용하는 방법이 얼굴복원이다.

발견된 머리뼈를 분석해 인종과 성별, 나이를 추정한 뒤 추정 결과에 맞는 피부평균두께에 따라 피부를 붙이고 나이에 맞게 주름이나 피부의 처짐을 표현한 뒤 미디어를 통해 가능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복원된 얼굴을 볼 수 있도록 해 신원을 확인하는 셈이다. 미국의 과학수사드라마인 ‘C. S. I’에도 컴퓨터로 얼굴을 복원하는 장면이 등장하곤 한다.

국내에서는 2000년 김대건 신부의 얼굴이 복원된 것을 비롯해 최근 여러 성과들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기초 연구는 부족하다. 가령 한국인의 얼굴 평균피부두께가 어느 정도인지 아직 잘 모른다. 해부학적 지점에 따라 다르지만 현재로서는 평균적으로 서양인에 비해 한국인의 피부가 두껍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다.

얼굴복원 연구는 단순히 하나의 얼굴을 재현하는 일을 넘어 해부학, 치의학, 법의인류학, 고고학, 인지심리학 그리고 CCTV 얼굴화면 분석 및 생체인식 기술까지, 활용할 수 있는 범위가 무궁무진하다. 얼굴복원 기술의 무한한 가능성에 기대를 걸어보자.

이원준 씨는
전남대 치대를 졸업한 뒤 동대학원에서 법치의학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유골에 대한 법의학적 분석과 연구를 하는 법의인류학을 공부하기 위해 영국 스코틀랜드에 있는 던디대로 건너가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던디대 해부학및신원확인센터 법의인류학 박사과정에서 법의학적 얼굴복원과 인지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2009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이원준 스코틀랜드 던디대 해부학및신원확인센터 법의인류학 박사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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