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이란 존재는 생각할수록 너무나 신기하지 않나요? 세포란 단위가 모여 인간이라는 개체가 되기까지 그 과정에선 엄청나게 복잡다단한 일들이 벌어지는데, 정작 현실 세계의 우리는 너무나도 매끄럽게 움직이고 있으니까요. 그래선지 저는 학창 시절에도 화학이나 물리학 참고서는 반복해서 읽는 게 그리 즐겁지 않았는데, 생물학 참고서만큼은 이야기책처럼 내내 재밌게 읽었습니다.
과학에서 찾아낸 나만의 즐거움
교과서나 참고서는 교육과정의 필수적인 지식을 기초부터 튼튼히 다져줬고, 과학동아를 보며 현재 이 세상에서 펼쳐지는 온갖 과학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접했습니다. 덕분에 중학교 시절에 운 좋게도 한국생물올림피아드에서 입상해 인천과학고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고등학교에서 과학의 여러 분야를 조금 더 깊이 만나면서, 저는 제가 ‘과학’보다 ‘과학이 인간과 만나는 지점’에 대한 관심이 더 크다는 사실을 점차 깨달았습니다. 특히 발명에 흥미를 갖게 됐는데, 책상 위의 지식에서 벗어나 과학이 어떻게 인간과 사회를 이롭게 하는지 짧게나마 체험해보는 시간이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한편으론 한 분야에 점점 더 깊게 몰두하는 주위의 친구들을 보며, 과학자는 자기 안에서 궁금한 질문을 발견하고 그 주제로 깊이 파고드는 집요함이 있는 사람에게 어울린다는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저는 ‘좁고 깊게’보다 ‘넓고 얕게’와 더 잘 맞는 유형이었어요. 이것도 궁금하고 저것도 궁금하지만 어느 정도 궁금증이 해소되면 또 다른 재밌어 보이는 이야기를 찾아 떠났죠. 세상엔 정말 놀랍고도 별난 이야기들이 많잖아요. 곰곰이 생각하다가 어느 날은 ‘이런 이야기는 누가 만들지?’라는 호기심이 들었습니다.
2 2020년 대만 여행 중, 편집한 책 ʻ과학자들’의 대만 수출본을 보기 위해 현지 서점을 찾았다.
과학동아에서 만난 특별한 저자들
저는 과학이라는 학문 속에서, 과학을 수행하지는 않는 직업을 갖고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과학책을 만드는 편집자로서 과학의 지식과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더 잘 전달하는 중간 다리를 놓는 일들을 합니다.
한 권의 과학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간단히 소개하면, 우선 가장 중요하고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책을 쓸 저자를 찾는 것입니다. 매체에 실린 글을 보고 그 필자께 연락을 취해서 책을 내자고 제안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주제의 책을 독자들이 원한다는 생각으로 기획안을 작성해서 그런 방향의 글을 써줄 수 있는 저자를 찾기도 합니다.
그렇게 저자가 집필한 원고가 모이면 본격적으로 책의 외형과 내용을 만들어 나갑니다. 여기서 외형이란 책을 둘러싼 껍질, 즉 겉표지입니다. 겉표지 속 책의 제목을 정하고, 표지 디자인을 의뢰하고, 누구에게 추천사를 받으면 좋을지도 논의하죠. 내용물은 바로 책의 본문입니다. 독자들이 저자의 글을 더 매끄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다듬는 것부터 본문의 이해를 돕는 사진 자료들을 추가하고 책의 전체 구성이 잘 드러나도록 차례를 수정하는 것까지 다양한 작업을 진행합니다.
편집자로 일하며 과학동아와 더 돈독한 인연을 다진 것도 제게는 남다른 경험입니다. 제가 작업한 책 중 두 권의 저자가 과학동아 기자였던 덕분이죠. 우아영 기자의 ‘아기 말고 내 몸이 궁금해서’(2019, 휴머니스트), 이창욱 기자의 과학동아 이그노벨상 연재를 바탕으로 한 ‘웃기려고 한 과학 아닙니다’(2025, 어크로스)를 함께 만들었습니다. 평소 과학동아를 읽으며 사회와 과학을 바라보는 관점과 글솜씨를 눈여겨봤던 필자들이었기에 책 작업으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과학책이 찾아주는 우리의 질문들
과학책 편집자로 일하며 늘 마음 한편에 남는 아쉬움도 하나 있습니다. 아직 한국의 과학책 시장은 번역서 비중이 크고, 한국어로 쓴 과학책은 주제의 폭이 상대적으로 좁다는 점입니다. 물론 오랜 시간 축적된 연구와 탄탄한 저술 전통을 바탕으로 한 해외의 훌륭한 과학책이 많고, 저도 그 책들을 보며 많은 배움을 얻어왔습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 맞닿은 질문과 맥락에서 출발한 과학 이야기도 더욱 풍부해져야 한다는 필요성을 분명히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에 더 많은 새로운 과학 필자들이 등장해서 각자의 시선으로 과학을 해석하고, 한국의 연구실과 현장, 사회와 일상의 경계에서 길어 올린 이런 이야기들을 더 많은 독자가 책으로 읽는 환경이 만들어지길 바랍니다. 그와 함께 과학책을 읽는 독자층도 지금보다 훨씬 넓어지기를 기대합니다.
과학책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과학책은 우리 각자가 혼자서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질문을 내 안에서 끌어내고,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삶을 한층 더 풍성하게 만들어줍니다. 어떤 과학책은 당장의 해답을 넘어서, 깊은 질문을 남기는 역할도 합니다.
한국의 과학책을 둘러싼 이런 흐름 속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에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독자가 과학의 세계에 한 발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좋은 과학책을 만드는 일 말입니다. 과학이 특별한 사람들만의 암호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의 일상에서 살아 움직이는 언어와 이야기가 되는 데 제가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다면 아주 기쁠 겁니다. 과학동아가 학창 시절의 제게 그랬듯이, 제가 만드는 책들도 독자들이 과학이란 세계로 들어가는 또 하나의 입구가 되고, 자신만의 다음 질문으로 나아갈 작은 발판이 되길 바랍니다.
진로가 아닌, 태도로서의 과학
과학동아의 독자분들 중엔 과학자가 되길 꿈꾸거나 과학 연구의 진로로 나아가는 학생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 경험에 비춰본다면 과학이 늘 재미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떤 시기엔 전혀 흥미가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고, 나와 맞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순간이 와도 여러분이 ‘나는 과학이랑 맞지 않나 봐’라고 좌절하거나 ‘내가 과학을 공부하는 게 맞을까’ 하고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저 역시 지금은 전공과는 다소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학창 시절 과학을 공부하며 익힌 사고방식은 여전히 제 삶의 귀한 자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과학적 사고방식은 세상을 조금 더 의심해보고 나름의 가설을 세워서 근거를 찾아보며, 복잡한 현상을 단순한 이야기로 풀어보려는 저의 태도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므로 과학을 배운다는 건 반드시 과학자가 돼야만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대신 세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강력한 렌즈를 연마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이 렌즈와 함께라면, 여러분은 어떤 길이든 스스로 다져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과동 피플에게 묻는다
Q.당신의 호기심은 보통 어떤 순간에 시작되나요?
교과서나 책에는 어떤 현상의 원인과 결과가 늘 깔끔하게 정리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설명이 너무 매끄러울수록, 정말 이것 말고 다른 가능성은 없는지, 이 설명 뒤로 밀려난 이야기는 없는지 질문이 떠오를 때가 많습니다.
Q.과학동아에서 가장 호기심을 자극한 기사는 무엇이었나요?
생리대 파동이 일어났을 때, 시판 생리대 10종을 분석한 기사가 제 호기심에 큰 영향을 줬습니다. 우리 몸과 밀접한 문제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이 기사를 읽고 “이런 주제는 왜 제대로 연구되지 않았을까?”란 질문도 처음으로 진지하게 떠올렸습니다.
Q.지금 과학동아를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과학동아에서 읽은 기사 한 편, 혹은 문장 하나가 언제 어떤 순간에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나에게 되돌아와서 도움이 될지 모릅니다. 좋은 열매를 얻기 위해 많은 씨앗을 미리 뿌려둬야 하듯, 다양한 과학 이야기를 접하며 생각의 재료를 차곡차곡 쌓아가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모인 이야기들이 언젠가는 각자의 길 위에서 자신만의 지도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