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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 바이러스 질환 치료하는 백신 개발에 도전한다.

지난 4월 말부터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신종 인플루엔자 A. 아메리카 대륙에서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이 바이러스는 계절성 독감의 주범인 인플루엔자 H1N1 바이러스의 변종으로 다행히 병원성이 약해 대부분 자연적으로 치유된다.

자연적으로 치유가 된다는 말은 바이러스가 침투하더라도 면역 시스템으로 이겨낼 수 있다는 의미다. 더 정확히 말하면 면역 시스템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를 찾아 바이러스를 제거한다.

“우리 몸에서는 지금도 여기저기서 비정상적인 세포분열이나 바이러스 감염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건강한 이유는 면역 시스템이 병든 세포들을 없애는 덕분입니다.”

면역제어연구단을 이끄는 서울대 생명과학부 안광석 교수는 “면역 시스템에 관여하는 세포 중에서 특히 종양이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를 찾아내 없애는 ‘킬러 T세포’(killer T cells)는 우리 몸을 지키는 군사인 셈”이라고 말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 공격하는 킬러 T세포

킬러 T세포는 골수에서 탄생한 림프세포의 한 종류로 혈액이나 림프액을 타고 몸속 곳곳을 순찰한다. 림프세포는 킬러 T세포 말고도 헬퍼 T세포와 B세포가 있다. 몸속으로 침투한 세균이나 바이러스, 즉 항원을 발견하면 헬퍼 T세포는 B세포를 활성화시켜 항체를 생산해 간접적으로 항원을 잡는다. 반면 킬러 T세포는 감염된 세포를 직접 공격한다.

킬러 T세포는 도로에서 음주 단속을 하는 경찰처럼 세포를 하나하나 감시하면서 어떤 세포가 바이러스나 세균에 감염이 됐는지 찾아낸다. 만약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가 킬러 T세포에 걸리면 바이러스를 죽이는 것은 물론 감염된 세포도 장렬히 죽음을 맞이한다.

킬러 T세포가 정상 세포와 병든 세포를 구분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안 교수는 “세포 표면에 있는 주요 조직적합성 유전자 복합체(MHC)와 T세포 표면에 있는 T세포 수용체(TCR)이 결합해 면역 정보를 전달한다”고 설명했다. MHC는 꽃게 집게발 모양의 단백질 분자로 세포 내부에 들어 있는 항원 조각을 세포 표면으로 끌고 나온다.

세포 속에는 리보솜에서 만들어진 생체 단백질(자기 단백질)이 대부분이지만 외부 병원체가 생산한 단백질도 있다. 예를 들어 세포가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바이러스는 세포 안에서 원래 없던 바이러스 항원 단백질을 만들어 증식해 다른 세포와 조직으로 퍼진다.





















자기 단백질과 항원 단백질은 프로테아좀 같은 단백질 분해효소에 의해 작은 펩티드 조각으로 분해돼 세포 속을 떠돌아다닌다. 펩티드 조각들은 세포 소기관인 소포체 안으로 들어가며 MHC와 결합해 세포 표면으로 배달된다.

킬러 T세포는 세포 바깥으로 나온 MHC와 펩티드 조각이 결합해 이루는 3차 구조를 인식함으로써 이 세포가 항원에 감염됐는지 여부를 구분한다. 만약 MHC가 자기 단백질을 갖고 있다면 T세포는 자신이 만난 세포를 정상 세포로 인식하고 그냥 지나친다. 하지만 MHC가 항원 단백질을 가졌을 경우 T세포는 활성화되면서 그랜자임이나 퍼포린 같은 단백질을 감염된 세포 속으로 보내 파괴한다.

바이러스는 반드시 세포 속에서만 살 수 있기 때문에 삶의 터전인 세포가 죽으면 바이러스도 함께 죽는다. 물론 죽은 세포는 새로운 세포로 대체돼 건강에는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이렇게 킬러 T세포가 병든 세포를 찾아내 죽이는 메커니즘은 일찌감치 1970년대에 발견됐다. 이 메커니즘을 밝힌 호주의 유전학자인 피터 도허티 박사와 스위스 취리히대 롤프 칭커나겔 교수는 1996년에 노벨상을 받았다. 하지만 세포 속에 존재하는 단백질 중에서 바이러스의 단백질을 골라낼 확률은 8만 분의 1. MHC가 주변에 있는 펩티드 조각을 아무거나 고르는 방법으로는 항원을 찾아 없애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과학자들은 MHC가 어떤 방법으로 자기 단백질이 8만 개일 때 1개꼴로 숨어 있는 항원 단백질을 찾아내는지 알아내기 위해 긴 시간 고민했다.

병든 세포 알려주는 산화환원효소 PDI

면역제어연구단은 MHC가 항원 단백질을 구분해내는 메커니즘의 비밀을 최초로 밝혔다. 안 교수는 “소포체 안에 들어 있는 산화환원효소인 단백질 이황화이성질화효소(PDI)가 그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었다”고 밝혔다. 과학자들은 이미 PDI가 산화환원효소로서 여러 가지 생화학 반응에 관여하며 단백질의 입체 구조를 바꾼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연구단은 PDI가 펩티드를 운반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 PDI가 면역 시스템에 관여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혔다. 연구단이 밝혀낸 ‘파리지옥’ 메커니즘에서는 소포체에 들어 있는 PDI가 펩티드를 MHC 분자까지 배달하는 동시에 MHC를 산화시킨다. 산화된 MHC에는 펩티드가 붙을 자리가 생기는데, 만약 그 자리에 펩티드가 붙지 않으면 다시 환원된다.

펩티드가 MHC의 집게발 같이 생긴 결합 부분에 구조상 잘 맞는 경우 펩티드는 MHC가 환원이 되지 않도록 단단하게 결합한다. 하지만 MHC의 결합 부분에 맞지 않는 펩티드는 단단하게 결합하지 못하고 MHC는 다시 환원된다. 적합한 펩티드와 단단하게 결합한 MHC는 세포막으로 이동하고 세포 바깥으로 펩티드를 내밀어 T세포가 다가오기를 기다린다.

이 메커니즘은 펨토초(10-15초) 단위로 일어나기 때문에 세포 안에 아무리 펩티드 조각이 많더라도 극소량으로 존재하는 항원 펩티드를 찾아내 MHC에 결합시키는 일이 가능하다. 안 교수는 연구 결과를 생명과학분야 국제학술지인 ‘셀’ 2006년 10월 20일자에 실었다.

하지만 면역 시스템이 항원을 완벽하게 막아내지 못하고 병이 시작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암 세포나 바이러스가 MHC의 기능을 방해해 킬러 T세포가 병든 세포를 정상 세포처럼 인식하기 때문이다. 또 비정상적인 모양으로 만들어진 MHC가 정상 펩티드를 세포 바깥으로 제시하더라도 킬러 T세포는 이를 병든 세포로 인식하며 공격한다. 바로 면역 시스템이 정상 조직을 파괴하는 루푸스 같은 자기 면역 질환의 원인이다.

안 교수는 “MHC가 최적의 펩티드와 결합해 항원 단백질을 구분하는 메커니즘을 알면 T세포의 활동을 제어하기보다는 MHC를 제어해 여러 가지 질환을 억제하는 치료제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면역 시스템 피해 세포 속에 숨은 바이러스

연구단은 헤르페스 바이러스의 한 종류인 사이토메갈로바이러스(HCMV)가 자신의 단백질이 MHC와 결합하지 못하도록 방해해 만성적인 질환으로 만드는 과정을 밝혀 그 결과를 ‘이뮤니티 저널’ 2004년 1월자에 실었다.

HCMV는 면역력이 저하됐을 때 증상이 나타나며 건강을 회복하면 증상이 완화되지만 면역력이 떨어지면 증상이 다시 나타나는 만성 질환으로 세계 인구의 약 90%가 감염돼 있다. HCMV는 면역력이 특히 떨어지는 신생아나 에이즈 환자는 각각 정신지체나 사망, 2차 감염을 유발할 만큼 위협적이다.

이렇게 치유가 되지 않고 오랫동안 남아 있는 만성적인 바이러스는 면역 시스템에 걸리지 않기 위해 세포 속에 숨어 있다. 안 교수는 HCMV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만드는 US3 단백질이 숨어 있는 장소를 알아내기 위해 감염된 세포를 관찰하던 중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US3은 감염된 세포의 소포체 안에 들어 있었습니다. 이상한 점은 US3가 들어 있는 소포체 안에는 PDI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죠.”

연구단은 US3가 PDI를 소포체 바깥에 있는 프로테아좀으로 보내 분해시키는 것을 확인했다. 이렇게 PDI의 산화환원 반응을 억제하면 MHC가 바이러스 단백질을 찾아내지 못한다. 연구단은 또 다른 HCMV 단백질인 US6가 항원 단백질이 소포체 안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막는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연구단은 이 2가지 외에도 비슷한 특징을 가진 US 단백질이 MHC가 바이러스 단백질과 결합하는 메커니즘의 여러 단계들을 방해해 킬러 T세포가 병든 세포를 찾지 못하도록 만든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런 HCMV의 면역회피 기능은 바이러스가 오랫동안 세포 속에 숨어 지내면서 만성 질환을 유발하도록 만든다.

안 교수는 “지금까지 바이러스성 질환을 예방하기 위한 백신은 많이 개발됐지만 아직까지 치료용 백신은 없다”며 “MHC가 바이러스의 방해를 피해 항원 단백질을 구분하는 방법을 알아내, 단순히 예방 차원이 아닌 자기 면역 시스템으로 만성 바이러스 질환을 치료하는 ‘치료용 백신’을 개발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1987년
서울대 생물교육학과 석사
1994년
미국 일리노이대 분자 통합생리학 박사
1994~1996년
미국 스크립스 연구소 박사후 연구원
1996~1997년
존슨&존슨 연구원
1997~2004년
고려대 생명과학부 교수
2004~현재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2004~현재
교육과학기술부 면역제어 창의연구단 단장

인류 건강 책임지는 면역학

“우리나라는 다른 선진국과는 달리 면역학 분야가 발달한 나라가 아닙니다. 신종 인플루엔자 A 같은 변종 바이러스가 탄생해도 국가적으로 이렇다 할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는 까닭이죠.”

면역제어연구단을 이끄는 서울대 안광석 교수는 신종 인플루엔자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이 같이 대답했다. 그는 아픈 사람이 빨리 낫도록 직접 치료하는 사람은 의사이지만, 전혀 다른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가 나타났을 때 치료제를 개발해 국민 건강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은 면역학자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기초 과학의 발전 없이 보건 강국이 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안 교수가 처음부터 면역학을 공부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세포 안에서 생체 단백질 분자들이 어떤 경로로 이동하고 활동하는지 밝히는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인류의 건강과 미래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에 박사후 과정에서 세계 최대의 면역 연구소인 미국 샌디에이고에 있는 스크립스 연구소에서 면역학과 인연을 맺었다.
안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면역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이유는 연구 인프라의 부족과 면역학은 어렵다는 편견 때문”이라며 “연구원들이 마음껏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신종 바이러스가 나타나도 치료제를 개발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최고의 ‘엘리트’보다는 최고의 ‘노력쟁이’라는 별명이 더 어울리는 제자들이 앞으로 더 나은 연구 환경에서 우리나라의 면역학을 발전시키기를 바란다”며 연구원들이 한창 연구를 하고 있을 실험실 쪽을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2009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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